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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바위

작성자서울아씨|작성시간26.06.22|조회수20 목록 댓글 0

돌아오기를 빌던 자리

태어나기를 비는 자리

 

오늘은 너울도

온몸으로 절한다

 

 

" 사진 한 장에
   고향 바다가 밀려왔다."

 

에세이 제목 : 마음이 먼저 간 곳 (문예지에 올릴 때)

 

고향 소식은 늘 예고 없이 온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고향 소식 하나만 들리면 귀가 먼저 열린다. 누가 바다 사진 한 장 올려도 반갑고, 어느 골목 가게가 아직 있다는 말에도 마음이 간다.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풍경인데, 떠나온 사람에게는 그것이 소식이 된다. 떠나온 지 오래됐는데도 마음은 아직 그 동네 골목을 서성이고 있는 모양이다.

 

여고 선배가 카카오톡에 사진 세 장을 올렸다. 사진을 보고 있는 사이 동영상 하나가 따라 들어왔다. 하필 그날은 바람도 세게 불었다. 동해안에는 너울성 파도 주의보까지 내려졌다고 했다. 이 험한 날씨에 거긴 왜 갔을까.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그 걱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손가락은 어느새 사진을 확대하고 있었고, 동영상은 몇 번이고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흰 물보라가 터지고, 잿빛 바다가 화면 가득 흔들렸다. 고향 소식이었다.

 

소돌해변. 그 이름만 보아도 바다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흐린 날이면 바닷물 냄새와 미역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스치고, 파도가 센 날이면 먼 데서도 쿵쿵 울리던 소리가 있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그런 소리에 잘 놀라지 않는다. 날이 거칠면 거친 대로, 바다가 성을 내면 내는 대로, 오늘 바다는 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오래 떠나온 사람은 사진 한 장에도 마음이 출렁인다. 내 앞에 있는 것은 휴대폰 화면뿐인데, 귓속에는 벌써 동해 파도 소리가 차오른다.

 

사진 속 바다는 잿빛이었다. 하늘도 바다도 경계가 흐렸고, 바위는 그 사이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흰 포말이 사방으로 터졌지만 아들바위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파도 쪽이 더 성급해 보였다. 달려들고, 깨지고, 흩어지고, 다시 달려들었다. 바위는 그 모든 것을 받아내며 제자리에 있었다. 강릉 바다는 원래 저랬다는 듯이. 아니, 아들바위는 오래전부터 그런 소리를 들어왔다는 듯이.

 

어릴 적에는 그 바위를 그냥 아들바위라고 불렀다. 이름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고향의 지명이나 바위 이름은 대개 그렇게 몸에 먼저 들어온다. 뜻을 배우기 전에 이름부터 익숙해진다. 나중에야 그 바위에 전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다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던 어느 어미의 이야기, 백일기도 끝에 자식을 얻었다는 이야기. 어느 것이 먼저인지, 어느 것이 더 오래된 이야기인지 따져 묻고 싶지는 않다. 전설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사람들의 입을 지나며 조금씩 모양을 바꾸고, 바뀐 모양 그대로 또 누군가의 마음에 자리 잡는다.

 

묘한 것은 전설이 살아 있는 방식이다. 처음의 기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달고 다시 살아난다. 기다림이 소망으로 바뀌고, 소망이 다시 속설이 되어 사람들을 데려온다. 요즘은 아들바위 앞에서 빌면 아들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더 널리 퍼져 있다. 슬픔이 기원이 되고, 기원이 믿음이 되고, 믿음이 또 다른 발길을 만든다. 바위는 그 모든 말을 듣고도 모른 척, 여전히 바다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동영상을 멈추어 놓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파도는 쉴 새 없이 바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서지고, 흩어지고, 다시 밀려왔다. 한 번 부딪힌 파도는 그대로 끝나는 것 같지만, 다음 파도가 곧 그 자리를 잇는다. 마치 누군가가 오래도록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돌아와라. 태어나라. 들어달라. 알아달라. 바다는 그 많은 말을 한꺼번에 끌고 와 바위 앞에 쏟아놓는 듯했다.

 

그때 문득, 파도가 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손을 모으는 절이 아니었다. 얌전히 허리 숙이는 절도 아니었다. 온몸을 던져 엎드리는 절이었다. 바위 앞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가 꼭 절을 올리고 난 뒤 흐트러진 옷자락 같았다. 나는 혼자 웃었다.

 

“아이고, 오늘은 너울도 절을 다 하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도 한동안 화면을 끄지 못했다. 창밖에는 서울 하늘이 걸려 있는데, 내 눈은 자꾸 동해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몸은 서울에 있는데 눈은 벌써 소돌 바다 앞에 서 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입술에는 짠맛이 묻는 것만 같았다.

 

고향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잊었다 싶으면 사진 한 장이 불쑥 날아오고, 다 지나갔다 싶으면 파도 소리 하나가 오래 묻어둔 시간을 깨운다. 나를 키운 곳은 내가 떠났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카카오톡 사진 속에서, 어느 선배의 짧은 동영상 속에서 느닷없이 다시 살아나 나를 부른다.

 

바다에 간 까닭은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람은 가끔,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곳으로 뒤늦게 몸을 끌고 가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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