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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이야기

"예술적 영역인 땅고를 사랑하지만, 가야할 길을 잃은 것 같은 순간" 마주한 글 한 편이 넘넘 좋아 퍼옴

작성자가또땅고|작성시간26.06.10|조회수127 목록 댓글 0

페이스북 Sebastian Arce 글 => 치카님 번역 펌

https://www.facebook.com/share/p/1EFiDg1vHH/

나는 점점 더 분명하게 하나의 현실을 보게 된다. 그것은 단지 탱고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거의 모든 예술 표현에 해당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법보다,
달리는 법을 먼저 배운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과정의 가치를 잊은 채, 도착만을 찬양하는 문화.

구축하는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해진 문화.

그리고 예술은 결국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무대, 더 많은 행사, 더 많은 컨퍼런스, 더 많은 축제, 더 많은 자기표현의 기회를 보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사진 한 장, 영상 하나, 혹은 신중하게 선별된 삶의 단편을 공개하는 것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하지만 우리는 좀처럼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있는가?

성장하는 것과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배우는 것과 그렇게 보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쌓아 올리는 것과 전시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속도가 곧 발전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곧 깊이를 얻는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더 많은 행사에 참석하면 자동으로 더 나은 예술가가 될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예나 지금이나 늘 같은 곳에서 일어난다.

조용한 작업 속에서 일어난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을 때.

아무도 바라보지 않을 때.

하나의 동작을 백 번 반복하며 비로소 그것을 이해하게 될 때.


책을 읽을 때.

더 많이 귀 기울일 때.

변명 없이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일 때.

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며,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큼 겸손할 때.


왜냐하면 지식은 노출에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은 경험과 겸손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경험은 서두를 수 없다.

겸손은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다.

깊이에 이르는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년간의 이해를 다운로드해 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없다.

감수성, 음악성, 신체 인식,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르는 데 필요한 시간을 대신해 줄 안무나 기술, 혹은 순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결과를 소비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예술은 여전히 진정한 내적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강렬함을 깊이와 혼동한다.

젊은 동료들이여, 주목하라.

* 우리는 많이 춤추면서도 거의 배우지 못할 수 있다.
* 우리는 많이 여행하면서도 거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할 수 있다.

깊이는 우리가 방문한 장소의 수로 측정되지 않는다.

우리를 바라본 사람들의 수로도 측정되지 않는다.

깊이는 우리가 그 여정을 통해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로 측정된다.

진정한 예술은 결코 동작들의 집합이 아니었다.

진정한 예술은 변화다.

단지 더 잘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더 잘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더 잘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신과 타인과 더 좋은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이 보여지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되는 순간, 우리는 예술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성장하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될 때,
예술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결과보다 과정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결과는 한순간에 속한다.

과정은 평생에 속한다.

결과는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결과는 찬사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은 정체성을 만든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배우기 어려운 교훈 중 하나는 이것일 것이다.

진정한 미덕은 더 많은 박수나 더 많은 인정받음에 있지 않다는 것.

진정한 미덕은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칭찬보다 자신의 침묵을 더 소중히 여기는 데 있다.

왜냐하면 침묵은 우리가 진실과 마주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의 자신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예술가는 타인을 위한 연기를 멈추고, 자신을 위한 구축을 시작한다.


박수에 의존하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갇힌 포로가 된다.

자신의 침묵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떤 인정도 줄 수 없는 자유를 얻게 된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여정이 끝나고, 조명도 박수도 인정도 모두 사라질 때,

진정으로 남는 것은 세상에 보여준 것이 아니다.

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 안에 쌓아 올린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에서, 그리고 삶에서,

가장 잘 꾸며 보인 사람이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한 그것이 되기 위해 인내하고, 수련하고, 용기를 낸 사람이 남는다.

— 세바스티안 아르세 (Sebastián A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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