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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겟세마니 피정의집 방화범입니다

작성자cecilia|작성시간26.06.13|조회수86 목록 댓글 0

97년 부활즈음에 제 영세신부님이신 조선희필립보 신부님을 또 한두달만에 찾아뵈었습니다.

 

본당 사목 은퇴후 인제신남의 소양강줄기 산자락의 겟세마니 피정의집이 완성되고 십자가의 길을 만드신다고, 양재동 꽃시장에서 장미묘목 300주를 부탁하신 부활주일였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신부님께서 좋아하시는 미국대형슈퍼인 코스트코 양평에서 그날도 베이글빵과 빈스콩 통조림 조개통조림외 부활주일 이라 바베큐용 소고기를 넉넉히 16인분 준비해서 가족이랑 미사 봉헌을 했습니다.

 

지금은 종탑이 있는곳에 대형 차고 창고가있었고 필립보 신부님께서는 소양강에 배를 띄우신다고 미사기도시간외에는 매일 뚝딱하고 만드셨습니다.

 

그곳에서 파티 와인잔을 준비하던중 드럼통에서 불꽃하나가 잔듸로 옮겨붙어 불은 순식간에 바람과 건조하고 마른 마당으로 번지더니 불꽃조차 보이지않게 푸른색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전교회장님이신 임보나님께서 물호스를 끌고오는동안 119 소방차는 도착했고, 인근부대에서 미사에 온 군인들 네명이 차고에서 삽을 가져와서 잔듸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공사중인 모래를 잔듸위에 뿌리며 .

 

한시간여 동안을 잔듸밭위에서 불끄기 사투를 벌리고 땅에 주저앉다보면 꺼진불은 또다시 푸른색을 띠고 살아나고 또 살아나고 ,지금 동산기도하시는 예수님상까지 번져,지쳐서 숯검둥이 차림으로 주저 앉았서 울면서 서로를 쳐다보고 모두 점심을 굶은채 그렇게 보낸 그 부활주일 였습니다.

 

저는 졸지에 방화범이 되에 경찰 조사두 받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고 점심은 신남으로 나와 식당에서 먹으며 시커멓게 된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었습니다.

 

필립보 신부님께서는 절 영세해주시고 성당의 반주자가 필요해서 간성성당반주자로 부르셨습니다. 그 당시 간성시장 안 광신상회집.고씨네 8남매는 저 하나만 영세를 받았고 ,저로인해서 요셉,요셉피나로 부모님이 받으셨고,아들넷 딸넷도 신앙의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겨자씨하나 저에게 심어주심으로 온가족이 큰나무가 되고 신앙의 숲으로 이루심에 감사드립니다.

 

목동성당 혼배성사로 모셔서 가정을 이루게 은총을 주신 신부님. 아이들도 대건안드레아로,은교로사로 직접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본국 멜본으로 돌아가시던 날 인천공항에서 뵐때,당신께서 쓰시고있는 아끼시는 양가죽 반지갑을 만원짜리 하나넣어 짝꿍 베드로에게 주셨을때 모두 울면서 껴앉았습니다,마르시고 왜소해신 모습에.

 

이제 서울살이 30년을 접고 바닷가보이는곳,해뜨는 고성군 봉포비치 앞에 돌아와 동명동 성당의 반주자로 돌아왔습니다

이 모든 부르심 에는 조선희필립보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엊그제 21주기 기일에 다시 겟세마니 피정의집을 찾아 필립보신부님 조각상에 앞에서니 눈물이 앞서고 세시미사에 봉헌을 하며 감사드리며,

 

미사후 따뜻한 차 한잔 건네시는 요한보스코신부님께 리모델링 들으며 반주자로 부르심에 감사드리며 겟세마니 피정의집에 2단 알렌 오르간을 봉헌하겠습니다.주님께서 쓰시겠다십니다.

 

오늘주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하신 시편의 말씀처럼 살게 해주신 필립보신부님의 가르침과 하느님의 사랑이십니다.

 

가톨릭 성가 270번을 첫곡으로 당신께 바칩니다.아베 아베 아베마리아 ㅡ묵주의기도 드릴때에ᆢᆢ

 

집에서 한시간거리인 그곳에 자주 찾아뵙겠습니다.필요하실때 반주자로 써 주십시요.그옛날40여년 전 간성성당으로 부르셨던것 처럼요.

 

하느님,그에게 평안한 안식을 주소서.

ㅡㅡㅡ

 

 

담당자님.

부족하나마,두서없이,주절주절.메일을 보냅니다.

편집실에서 잘 다듬어 수정해 주시면 더욱 감사드립니다.

 

고금순체칠리아

010.8998.4700

 

간성성당 반주자

목동성당 반주자

송도국제도시 반주자

현 동명동성당 반주자

 

 

Daum 메일앱에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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