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三峯書院奉安文略 金應祖撰
삼봉서원봉안문략(김응조지음)
曰惟榮州(왈유영주) 鄒魯遺風(추로유풍) 屈指仁里(굴지인리) 莫如我東(막여아동)
勿巖嘐嘐(물암교교) 考德溪門(고덕계문) 孜孜供職(자자공직) 餘力博文(유력박문)
接武聯聲(접무연성) 四賢一村(사현일촌)
風流旣遠(풍류기원) 典刑猶存(전형유존) 生旣範俗(생즉범속) 歿宜祭社(몰의제사)
생각해보니 영주에는 공자 맹자의 유풍이 남아 있고, 풍속이 아름다운 마을을 꼽자면 우리 동방
에서비교할 곳이 없다. 물암 선생 (덕이) 높고
컸으며 퇴계 문하에서 덕성을 이루시고, 맡은 직무에 힘쓰고 남은 힘으로 학문을 넓혔다.
가까운 곳에서 서로 연이어 한마을에 네 명의 현자가 나시니, 풍류가 이미 오래되었고 법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살아서 이미 풍속의 모범
이셨으니, 죽어서도 마땅히 사당에 제향하여야
할 것이다.
睠玆名區(권자명구) 後岳前野(후악전야) 巖巒帶躅(암만대촉) 草木留馨(초목유형)
輿人血忱(여인혈침) 數間丹靑(수간단청) 良辰旣卜(양신기복) 盛禮斯張(성례사장)
豆籩有楚(두변유초) 陟降洋洋(척강양양)
이 경치 좋은 지역을 보니 뒤는 산이요 앞은 들이며, 바위산이 연이어 늘어서고 초목이 향기롭
게 우거져 있다. 많은 사람 진심 어린 정성으로작은 집을 짓고 단청을 올리니, 좋은 날은 이미
정해졌고 성대한 예식을 도에 맞게 베풀며 제사음식 늘어놓으니 신령께서 오셔서 많이 흠향
하소서.
三峯增秀(삼봉증수) 一水益淸(일수익청)尙鑑精衷(상감정충) 惠我光明(혜아광명)
삼봉의 경치 빼어나고 강물은 더욱 맑은데,우리의 정성을 살펴서 우리에게 광명을
내려주소서.
10. 常享祝文 金應祖撰 상향축문(김응조 지음)
故家懿行(고가의행) 明師旨訣(명사지결)餘芳所在(여방소재) 百世芬苾(백세분필)
전통 있는 집안의 좋은 행실과 현명한 스승의 뜻과 비결을 이어받아,남겨진 아름다움
여기 있으니백대에 걸쳐 향기롭게 남으리라.
11. 上樑文略 金應祖撰 상량문략(김응조 지음)
道義交孚於勿巖(도의교부어물암) 淵源實本於玩樂(연원실본어완악)
句求其訓(구구기훈) 字求其義(자구기의) 大闡未發之微(대천미발지미)
生我者父(생아자부) 成我者師(성아자사) 克盡心喪之制(극진심상지제)
令聞施於南服(영문시어남복)幾入薦賢之書(기입천현지서)
異數賁於重泉(이수분어중천)更應褒孝之典(갱응포효지전)
도덕과 의리가 물암에게서 함께 빛나니 그 연원은 (도산서원) 완악재에 근본한 것입니다.
문장에서그 가르침을 구하고, 문자에서 그 뜻을 구하여,발하지 않은 은미함을 크게 밝혔습니다.
나를 낳은 이는 아버지요 나를 완성시킨 자는 스승이라, 극진히 스승의 3년 심상(心喪)을 치르
니 아름다운 명성이 남쪽지역을 덮었고, 몇 번이나 현인을 천거하는 글이 (임금께) 들어갔던가.
저승에서는 크게 특별한 예우를 받으시길 바라며,다시 응당 제사의 의례로 기립니다.
12. 記聞錄 기문록
金勿巖隆(김물암륭) 居榮川(거영천) 生於嘉靖己酉(생어가정기유) 有美質(유미질)
十八(십팔) 負笈門下(부급문하) 凡有問難(범유문난) 直窮到底(직궁도저)
先生深加奬歎(선생침가장탄)公益自憤勵(공익자분려) 築精舍(축정사)
左右圖書(좌우도서) 硏窮體驗(연궁체험) 尤用力於禮學(우용력어예학)
先生之歿(선생지몰) 爲服心喪(위복심상) 壬辰之亂(임진지란)方居憂(방거우)
諭列邑(격유열읍) 激以忠憤(격이충분)呈書體相(정서체상)
惓惓於復讐之義(권권어복수지의) 恤民之政(휼민지정) 辭意激切(사의격절)
服闋(복결)用薦除齋郞(용천제재랑) 謝恩而歸(사은이귀)俄卒(아졸
)年四十六(연사십육)鶴沙金公應祖入侍經筵(학사김공응조입시경연
) 力陳公學行(역진공학행) 贈承旨(증승지)-溪門諸子錄(계문제자록)
물암 김륭 선생은 영천(영주)에 살았으며 가정 을유년(1549년)에 태어났다.
좋은 자질을가지고 있었으며 18세에 스승의 문하에 공부하러 갔다. 무릇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곧 궁리하여 근본에 도달하였다.
스승께서 깊이 권장하고 칭찬하니 선생께서는 스스로 더욱 분발하고 힘썼다.
정사를 짓고 좌우에 도서를 두고 학문을 닦고 연구하고 체험하며 더욱 예학에 힘을 썼다.
스승께서 돌아가시자 3년간 심상을 치렀다.임진왜란 때 상중에 있었지만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려 설득하고 충심과 의분으로 분발하도록 하였다.
도체찰사에게 글을 올렸는데 복수의 뜻이 간절하고백성을 구휼하는 정사의 뜻이
격렬하고 간절하였다. (어머니) 장례가 끝나고 천거를 받아 재랑으로 제수되었으나
사의를 표하고 돌아왔으나 갑자기 돌아가시니 향년 46세였다.
학사 김응조공께서 경연에서 임금을 뵙고 힘써선생의 학행을 진언하시니 승지로
추증되셨다.-계문제자록
勿巖金處士(물암김처사) 器局峻嚴(기국준엄) 論議正直(논의정직) 平生用力(평생용력)
在孝友忠信上(재효우충신상) 餘事學文(여사학문) 而不喜擧子業(이불희거자업)
以親老(이친로) 屈意場屋(굴의장옥)竟不成(경불성) 其所居之室(기소거지실)
與親舍雖在一里(여친사수재일리)亦非跬步之地(역비규보지지)而晨昏定省(이신혼정성)
一如古禮(일여고례)如得適口之味(여득적구지미) 雖菜羹湯水之微物(수채갱탕수지미물)
必奉進高堂(필봉진고당)竭誠孝養(갈성효양) 此非有深愛於父母者耶
(차비유심애어부모자야)且其居鄕處身(차기거향처신)一以禮法從事(일이예법종사)
而誨人勤(이회인근) 待朋友信(대붕우신)處兄弟怡怡(처형제이이) 遇親族款睦(우친족관목)
好施人周急(호시인주급)此固得於天者(차고득어천자) 而亦賴師門之妙法也(이역뢰사문지묘법야)
噫(희) 生不能擧(생불능거)歿不能旌其閭(몰불능정기려) 豈非明時褒善之一大欠也
(기비명시포선지일대흠야)-郭丹谷𡺽闡幽錄(곽단곡진천유록)
물암 김 처사는 그릇과 재능이 매우 높고엄격하였고 논술과 토의가 바르고 곧았다. 평생 힘을
쏟은 바는 효도와 우애 충성 신의에 있었고그 나머지 힘으로 학문을 하였으나 과거를 보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 때문에 뜻을 굽히고 과거장에 갔지만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셨던 곳이 부모의 집과
1리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또한 가깝지 않았는데도아침저녁 이부자리를 살피고 한결같이 옛날 예절
대로 하였다.
입에 맞는 음식이 생기면 비록 나물국처럼 하찮은 것이라도 반드시 부모님께 먼저 드리고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다.이러한 행실은 부모님께 대한 깊은 애정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향리에서 처신할
때도 한결같이 예법을 따랐다.
남을 가르치는 데 근면했고 친구들을 신의로써대했고 형제간에는 우애로웠고 친족들을 만나면
정성스럽고 화목하였고 급한 형편의 사람들을돕기를 좋아했다.이는 진실로 하늘에서 낸 성정이며
사문이묘법에서힘입은 바일 것이다.
아아 살아서는 능히 쓰여지지 못했고 죽어서는 정려를 받지 못했으니 어찌 밝은 시대에 (선비의)
선행을 기리는 데 한 가지 흠이 아니겠는가? -곽단곡진천유록
勿巖金表兄諱隆(물암김표형휘륭) 字道盛(자도성) 師事退溪先生(사사퇴계선생)
服心喪三年(복심상삼년) 平生以孝悌忠信爲本(평생이효제충신위본) 學文餘事矣(학문여사의)
余未能逐日受業(여미능축일수업)而誘掖琢磨之功(이유액탁마지공)不可勝記(불가승기)
不幸哲人先逝(불행철인선서)每抱悲慕之情(매포비모지정) 今日吾將隨歸(금일오장수귀)
庶敍哀慟於冥冥之中耶(서서애통어명명지중야) -丹谷師友錄(단곡사우록)
외종사촌 물암 형님의 이름은 륭이고 자는도성이다. 퇴계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돌아가시자
3년의 심상을 치렀다. 평생 효, 제, 충, 신을 근본으로 삼았고 학문은 그 뒤의 일이었다.
나는 형님에게 날마다 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내게 학업을 갈고 닦는 공을 계발시켜 주셨으니
이렇게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철인께서 먼저 가시니 매양 슬프고추모하는 정을 품고 있다. 오늘 내가 장차 돌아가
려고 하니 아득하고 먹먹한 애통함을 풀어놓는다. -단곡사우록
金隆字道盛(김륭자도성) 少從退溪先生受學(소종퇴계선생수학) 先生(선생)
未久下世(미구하세) 未克卒業(미극졸업) 而慕道向善(이모도향선) 學術俱優(학술구우)
癸巳冬(계미동) 補集慶殿參奉(보집경전참봉) 甲午(갑오) 病不起(병불기)
有子起秋(유자기추) 不幸短命(불행단명)兄陶亦能文好讀(형도역능문호독)
有三子皆能文(유삼자개능문)仲子遇秋(중자우추) 尤善屬文(우선속문)
丙午進士(병오진사) 李炊沙汝馪師友錄(이취사여빈사우록)
김륭의 자는 도성이고 어려서 퇴계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오래지 않아 퇴계 선생께서 돌아가
셔서 학업을 마치지 못했으나 도를 흠모 하고 선을지향했으며 학문과 재주가 함께 우수하였다.
계사년 겨울 집경전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갑오년에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아들 김기추가 있었으나 불행히도 일찍 죽었다.형 김도 또한 문장을 잘하고 독서를 좋아했다.
아들 셋이 있는데 모두 문장에 능했다.
차남 김우추는 더욱 글을 잘 지었고 병오년에진사가 되었다. -이취사여빈사우록
金勿巖誠孝出天(김물암성효출천)友愛篤至(우애독지) 遊退陶門下(유퇴도문하)
甚見推許(심견추허) 士林重之(사림중지) 先生下世(선생하세) 心喪三年(심상삼년)
萬曆癸巳(만력계사)以遺逸除齋郞(이유일제재랑)繼有承敍之命(계유승서지명)
未及除拜而卒(미급제배이졸) -榮州志(영주지)金鶴沙應祖撰(김학사응조찬)
김물암의 효성은 진실로 하늘이 낸 것이었고 형제간의 우애도 도타움이 지극했다.
퇴계 문하에서 배웠는데 스승으로 부터 크게 칭찬을 받으니 사림에서 그를 중히 여겼다.
스승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심상을 치렀다.만력 계사년에 (숨은 인재로) 천거되어 재랑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관직 제수의 명이 있었으나임명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영주지,
학사 김응조 지음
退溪先生初喪時(퇴계선생초장시)喪次方位(상차방위) 諸人議多異同(제인의다이동)
門人金勿巖隆(문인김물암륭) 曾聞於先生(증문어선생)不分東西南北(불분동서남북)
前爲南後爲北(전위남후위북)左爲東右爲西(좌위동우위동) 遂依此定行(수의차정행)
柳謙菴雲龍錄(유겸암운룡록)
퇴계 선생 장례식 때에 여막의 방위에 대하여 여러 사람의 의견이 많이 달랐다. 문인 물암 김륭이
일찍이 퇴계 선생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라 동서남북을 나누지 아니하고 앞을 남쪽으로, 뒤를 북쪽
으로, 왼쪽은 동쪽으로, 오른쪽은 서쪽으로 삼으니드디어 이에 의거하여 정하고 장례를 치렀다.
-유겸암운룡록
先生儀表魁偉(선생의표괴위) 質性方嚴(질성방엄) 自年少時(자년소시)
往學舍則諸生方喧譁(왕학사즉제생방훤화) 見先生輒肅然(견선생첩숙연)
-從子値秋記行錄(종자치추기행록)
선생의 몸가짐과 태도는 크고 훌륭했고 자질과 성품은 방정하고 엄정했다. 어렸을 때부터
학사에가면 여러 생도들이 막 떠들다가도 선생을 보면문득 숙연해졌다 –조카 치추 기행록
先生從學陶山(선생종학도산) 坐有常處(좌유상처) 不移尺寸云(불이척촌운)
同上(동상)
선생께서 도산에서 배울 때 항상 같은 곳에 앉으셨고 한 자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고 한. 상동
壬辰亂(임진란) 有遁師(유둔사) 先生通諭諸儒(선생통유제유) 必欲鞭扑(필욕편복)
聞者莫不激聳(문자막불격송) 同上(동상)
임진란에 도망하는 벼슬아치가 생기자 선생께서 여러 선비들에게 두루 알리고 반드시 따끔하게
나무라니 듣는 자가 분발하고 두려워하지않음이 없었다. 상동
先生常訓子弟曰(선생상훈자제왈)凡事必須謹愼(범사필수근신)雖小節(수소절)
不可放心(불가방심) 同上(동상)
선생께서 항상 자제를 가르치며 말씀하시길 ‘범사에 모름지기 삼가고 조심하라. 비록 작은
부분이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상동
<다음에계속>前海洋警察廳 廳長 中始祖 德原君
27世孫(三路公派)勇進 解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