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타 선생 사후 지어진 묘지명과 제문 등
13. 墓誌石 丁範祖 묘지석(정범조)
贈通政大夫(증통정대부), 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 行集慶殿參奉勿巖金先生墓表(행집경전참봉물암김선생
묘표) 此文成於元集刊畢後(차문성어원집간필후) 故附于此(고부우차)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되신 집경전참봉 물암
김 선생의 묘표(묘지석). 이 문장은 원집(문집 본문) 간행을 마친 후라서
여기에 붙이는 것임.(본 문집에 추가하여 붙임)
師李先生學者周山南(사이선생학자주산남) 其道德所造(기도덕소조)
非末學所敢測知(비말학소감측지) 大抵多躬行篤實君子(대저다궁행독실군자)
豈非傳授旨訣使然哉(기비전수지결사연재)
(퇴계) 이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학자들이 영남으로 모여들었다.
그 도덕이 만들어진 바는 학문이 얕은 사람이 감히 측량하여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대저 스스로 실천하는 독실한 군자라면 어찌 그 뜻과 비결을 전수하지 않았겠는가?
勿巖金公(물암김공) 少嘗事先生(소상사선생) 年四十有六而卒(연사십유육이졸)
蓋其學(개기학) 謂制行原倫常(위제행원륜상) 故事父母孝(고사부모효) 處兄弟友(처형제우)
敦宗族篤朋舊(돈종족독붕구)
島夷構難(도이구난) 乘輿蒙塵(승여몽진) 則草野悲憤(즉초야비분) 飛檄列郡(비격열군)
抵書方伯(저서방백) 爲忠義倡(위충의창) 謂盡性在窮格(위진성재궁격)
물암 김공은 어려서 일찍이 퇴계 선생을 모셨고 46세에 돌아가셨다.
대개 그 학문은 몸가짐과 인륜의 상도를 말하는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고, 우애로서 형제들을 대했고,
종친들과 도타웠고, 친구들과는 독실하
였다. 섬나라 오랑캐가 병란을 일으키니 왕의 수레가 피란을 가자 곧 초야에서 비분강개하여
여러 군에 격문을 돌리고 관찰사에게 편지를
보내 (사람들에게) 충의로 의병을 일으키게 하니 있는 힘을 다하여 격물치지한 것이다.
故進而講質函丈(고진이강질함장)
究極經旨(구극경지) 退而記述文
字(퇴이기술문자) 私資省發(사자성발) 有講錄諸書(유강록제서)
凡此可謂知本末該體用(범차가위지본말해체용) 進德有序矣(진덕유서의) 獨恨其天不假年(독한기천불가년)
不克卒其大業(불극졸기대업)
傳先生嫡統(전선생적통) 爲世師宗(위세사종)
然顧門路旣(연고문로지) 正規模已(정규모이립)
譬如構大厦(비여구대하) 位置間架(입치간가) 望而知爲明堂制度(망이지위명당제도)
詎不偉歟(거불위여)
예전에 스승에게 나아가 익히고 질문하며 경서의 뜻을 지극히 연구하였고 물러나서는 문자를 기술
하니 스스로 취한 깨달음이 일어났다.
강록 여러 권이 남아 있다. 무릇 이는 본질과 말단
을 알고 근본과 작용이 호응하는 것이고 덕이 향상시키는 질서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독 한스러운 것은 하늘이 물암공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아서 그 대업을 마치고 스승의 적통을
전하고 세상의 큰 스승이 되지 못한 점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학문의 길이 이미 끝났으나 바른 규범이 이미 섰다.
비유하자면 큰 집을 지으면서 뼈대를 보면 좋은 집이 됨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 위대하지
아니하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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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가(間架) : 뼈대.
公諱隆(공휘륭) 字道盛(자도성)
勿巖其號(물암기호) 生嘉靖己酉(생가정기유)
卒萬曆甲午(졸만력갑오) 葬在榮川郡杜陵洞負震之原(장재영천군두릉동
부진지원) 前卒一年(전졸일년) 除集慶殿參奉(제집경전참봉) 卒後五十八年(졸후오십팔년)
贈承政院左承旨(증승정원좌승지) 又三年
(우삼년) 配享三峯祠(배향삼봉사)
공의 이름은 륭이고 자는 도성이며 물암은 호이다. 가정 기유년에 태어났고 만력 갑오년에 돌아
가셨으며 무덤은 영천(영주)군 두릉동 동쪽언덕이다.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집경전참봉을 제수받았고 돌아가시고 58년 후에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고
다시그 3년 후에 삼봉사당에배향되었다.
咸昌之金(함창지김) 爲世聞閥(위세문벌) 戶曹參判諱爾音(호조참판휘이음)
有孝行旌閭(유효생정려)
公六世祖也(공육세조야) 東萊縣令諱漢珍
(동래현령휘한진) 典牲署主簿(전생서주부) 諱諟敬(휘시경) 全州敎授(전주교수)
諱龜息(휘구식) 高曾祖三世也(고증조삼세야) 考曰司宰參奉諱應麟(고왈사재참봉휘응린)
妣曰玄風郭氏(비왈현풍곽씨) 參奉子保女
(참봉자보녀) 公娶甘泉文氏參奉經濟女(공취감천문씨참봉경제녀) 生起秋(생기추)
早卒(조졸) 起秋生堯弼(기추생요필) 堯翊(요익) 女柳宗之(여유종지)
堯翊生兌輝(요익생태휘),鼎輝(정휘), 晉輝(진휘), 履輝(이휘)。
鼎輝後堯弼(정휘후요필)。曾玄以下不錄(증현이하불록)
함창김씨는 대대로 문벌가문으로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받은 호조참판 김이음이
공의 6대조이다.동래현령 김한진, 전생서주부 김시경, 전주교수
김구식이 고조, 증조, 조부 3대이다.
부친은 사재참봉 김응린, 모친은 현풍곽씨 참봉
곽자보의 딸이다. 공께서는 감천문씨 참봉 문경제
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 김기추를 얻었으나 일찍 죽었다.
아들 김요필, 김요익을 낳았고 딸은 유종지에게
시집갔다. 김요익은 김태휘, 김정휘, 김진휘, 김이휘를 낳았고 김정휘는 김요필의 뒤를 이었다.
증손자 이후는 기록하지 않는다.
公五世孫尙建氏(공오세손상건씨)
屬範祖表公墓(촉범조표공묘)
範祖念公之德行(범조염공지덕행) 李先生爲之奬許(이선생위지장허)
具本集中(구본집중) 權公斗寅(권공두연), 金公應祖爲之狀若誌(김공응조위지장
약지) 又有朝家之褒贈(우유조가지포증) 士林之崇祀(사림지숭사)
固無待範祖言而重(고무대범조언이중) 獨撮其爲學次序大槪而略有論敍
(독촬기위학차서대개이략유논서)
使鑱之石(사참지석) 冀後世識公才中身歿
(기후세식공재중신몰) 而其道體成立已如此(이기도체성립이여차)
通政大夫前行承政院同副承旨錦城丁範祖(통정대부전행승정원동부승지금성정범조)
謹撰(근찬)
공의 5세손 김상건이 나에게 공의 묘표(묘의 표지석 문장)를 부탁하였을 때, 나는 퇴계 선생
께서 공의 덕행을 크게 칭찬하셨던 일, 문집 속에
있는 권두인, 김응조의 표지, 또 조정의 포증(褒贈)
이 있었던 일, 사림(士林)이 공을 떠받들어 제사를
지내고 있는 점 등을 보고 내가 별도로 말을 보태지
않아도 공은 훌륭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있었다.
그리하여 선생의 학문을 순서대로 대강 모아서 견해와 진술을 축약하여 돌에 새기게 하였다.
바라건대 후세인들은 공이 겨우 중년에돌아가셨
으나 도의 본체(道體)는 이미 이와 같이 공에게 완전히 성립되어 있었음을 알기 바란다.
통정대부 전 승정원동부승지 금성 정범조 삼가 쓰다.
14. 跋 丁範祖 발문 정범조
文章(문장) 固有待而後傳(고유대이후전) 彼焜燿其繪采(피혼요기회채)
鏗鏘其聲律以爲奇(갱장기성률이위기) 曼衍潏皇多出而以爲能(만연휼황다출이이위능)
自古操觚家如此者何限(자고조고가여차자하한)
문장은 본래 기다림이 있은 후에 후세에 전해진다. (사람들이 문장에)
채색을 화려하게 하고 성률을 쟁쟁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길게 늘이고 장황하게 많이 짓는
것을 뛰어나다고 하니, 옛날부터 이와 같이
글을 짓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而風火灰颺(이풍화회양) 未見其至今在人眼睫(미견기지금재인안첩)無他(무타)
可恃者不存焉爾(가시자부존언이)
夫能有以明倫常述道德
(부능유이명륜상술도덕) 爲世敎輔(위세교보) 則片言之善(즉편언지선)
金石弊而弗泯(금석폐이불민)
詩書所載(시서소재) 豈盡一人之言哉
(기진일인지언재) 篇雜章裒(편잡장부) 各取其善者焉爾(각취기선자언이)
그러나 (그렇게 한때 칭찬받던 문장들이) 바람에 날리고 불에 타고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지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
라 그 문장 속에 믿을 만한 것(좋은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무릇 인륜을 밝히고 도덕을 진술하여 세상을 교화하는 데 보탬이 된다면(문장이 좋은 내용
이라면) 곧 한마디의 훌륭한 말도 금석이 닳아 없어지더라도(오랜 세월이 지난 후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경과 서경에 실려 있는 것이 어찌 모두 한 사람의 말이겠는가?
여러 글을 모아서 각각 그 좋은 말을 취한 것이다.
金斯文尙建氏(김사문상건씨)
以其先祖勿巖公遺集(이기선조물암공유집)
屬不佞爲跋文(촉불령위발문) 將鋟之梓(장침지재) 不佞謹受而讀之(불령근수이독지)
大抵皆原古訓而推廣夫吾人性分中事者也(대저개원고훈이추광부오인성분중사자야)
自唯諾進退愛親敬長童穉之學
(자유낙진퇴애친경장동치지학)
以達夫德性問學廣大精微中庸之道(이달부덕성
문학광대정미중용지도) 而近之爲容貌言動婚姻喪祭之節(이근지위용모
언동혼인상제지절) 遠之爲太極陰陽五行萬物之理(원지위태극음양오행만물지리)
分毫析縷而欲其疏之也(분호석루이욕기소지야) 探本溯源而欲其窮之也(탐본소원이욕기궁지야)
入其中而浩洋若充棟宇(입기중이호양약충동우)
而細檢之則三編文字(이세검지즉삼편문자이이)
선비 김상건 씨가 그 선조 물암 김 공의 유집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발문을 부탁하였다.
간행할 때에 내가 삼가 받아서 읽어 보니, 대체로
모두 옛날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여 우리들의 성품(성질)에 관한 사항들을 미루어 넓힌 것이었다.
부름에 대답하고, 나가고 물러나고, 어버이를 사랑
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 같은 어린아이를 가르
치는 학문에서부터 덕성과 문학(問學), 광대하고 정미한 중용의 도에 이르는 내용이었다.
가까이는 용모와 언어, 동작, 혼인과 상제의 절도에
서부터 멀리는 태극과 음양오행 및 만물의 이치에
이르기까지 (작은 부분까지) 정밀하게 살피고 분석하여소통하고자 하였고,
학문의 근본을 찾고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끝까지연구하고자 하였다.
그 문장 안에 들어가 보면 넓고 넓어서 온 집안을 채운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단지 세 편의
글에 불과하다.
未嘗有意乎其外之詞藻(미상유의호기외지사조) 而文秖典雅而已(이문지전아이이)
詩秖閒澹而已(시지한담이이)
夫其義正其思遠(부기의정기사원)
故其言淺而深(고기언천이심) 約而博(약이박) 其中之可恃者若是其富(기중지가시자약시기부)
則奚止片言之善而已哉(즉해지편언지선이이재)
일찍이 그 밖의 사조(문장 꾸밈)에 대해서는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의 문장은 법도에 맞고
단아하였고 시는 여유가 있고 담박하였다.
무릇 의리가 바르고 생각이 원대하였기 때문에 그 말씀이 얕아 보이면서도 깊이가 있고 간략해
보이면서도 넓이가 있다.그 문장들 속에 믿을 만한 것이 이와 같이 풍부하니
어찌 한마디의 좋은 말에 그친다 하겠는가?
公師退溪李先生而學者也(공사퇴계이선생이학자야)
先生集衆賢而成一家言(선생집중현이성일가언)
故遺集(고유집) 地負海涵(지부해함)
莫測其涯涘(막측기애사) 蓋其言多而不爲費(개기언다이불위비) 公之集則簡而不爲局
(공지집즉간이불위국) 意者淵源授受(의자연원수수) 一致而同歸歟(일치이동귀여)
先生遺集(선생유집) 當與天地相終始(당여천지상종시) 則公之集(즉공지집)
其亦傳之也遠可必(기역전지야원가필)告尙建氏(고상건씨) 努力鋟之梓(노력침지재)
通政大夫(통정대부) 前行承政院同副承旨錦城丁範祖
(전행승정원동부승지금성정범조) 跋(발)공은퇴계 이황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사람이다.
이황 선생께서는 여러 현자들의 말씀을 모아일가의학설을 이루셨다.
그래서 남겨진 (퇴계)문집은 대지가 만물을짊어지
고 바다가 온갖 물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다. 대개 (이황 선생은)
그 언설이 많으면서도 군더더기가 없고, 공의 문집 또한 간략하면서도 (작은 데) 국 한되지 않는다.
생각하건대, 같은 연원(淵源, 사물의 근원)을 전수하고 전수받아 (서로 근본이) 일치하고 함께
공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퇴계 선생의 문집이 마땅히 천지와 더불어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의 문집 또한
반드시 오래도록 먼 후세까지 전해질 것이다. 이에 상건 씨에게 (문집을) 간행하는 데 더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통정대부 전행승정원동부승지 금성 정범조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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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해함(地負海涵) : 대지가 만물을 그 위에 실어 주듯 바다가 온갖 물줄기를 다 받아들이듯
넓고 큰 지식을 비유하는 말.
* 정범조(丁範祖). 자 법세(法世), 호 해좌(海左), 시호 문헌(文憲) 1723년(경종 3년)~1801년
(순조 1년) 본관 나주(羅州) 개성유수, 형조판서, 예문관·홍문관의 제학. 정시한(丁時翰)의 현
손이며, 정도항(丁道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영신(丁永愼)이고, 아버지는 유학 정지령(丁
志寧)이며, 어머니는 신필양(申弼讓)의 딸이다. 세거지는 원주로 홍이헌(洪而憲)·신성연(申聖
淵)·유한우(兪漢遇) 등과 친교가 깊었다. 시율과 문장에 뛰어나 사림의 모범으로 명성을 얻었
고, 또 이로 인해 영조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문체반정(文體反正)에 주력하던 정조에
의해 당대 문학의 제1인자로 평가되어 70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 오랫동안 문사의 임무를 맡았다.
남인 집안 출신으로서 정치적 자세는 불편부당
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당시의 탕평책에는 비
판적이었다.
즉, 탕평책이 외면적이고 형식적인균용론(均用論)
만 취하는 것이어서 사의(私意)가 횡행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신 붕당을 없애기 위해서는 공정한 인사 관리와
신의 있는 시책, 분명한 정치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문집으로 『해좌집』 39권이 있다. <끝>
나름대로 열심히 올렸으나 혹시 오자나 중복
있었 것으로 생각 합니다. 勇進前海洋警察聽 廳長님께 누를 끼치지나 않았는지 생각합니다
누가됐다면 양해 바랍니다. 옮긴이 相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