還國 亡命 과 李承晩 博士
국무원사무국 ( 國務院事務局 ) 에서 보내온 四 월분 봉급을 받고 五 월분 봉급은 과도정부 수반 허정이 개인 적으로 보내온 돈으
로 충당이 됐다 。
철저한 베일속의 出國準備도무지 이화장 생활은 평상시와 하나도 다른 것이 없었으므로 비 서진이나 그밖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눈치를 챌 길이 없었던 것이다 。 그러나 이미 결심을 세웠 던 이승만과 프탄체스카는 조용히 출발을 위한 채비에 바빴다 。 경무대에서옮 겨온 화분은 늘 예배를 보아오던 정동 교회에 보내졌다 。
차고에 임시보관된 안평대군의 글씨와 그밖의 서화 ( 書畫 ) 그리고 병풍은 국립박물관에 기증하는 문제를 협의하다가 낙착을 보지 못한 채 떠날 날짜가 당도 했다 。
삼각지 ( 三角地 ) 를 지나 한강다리를 건너 자봉차 대열이 드디어 김포가도에 올라섰다 。 이른 아 침이어서 도중의 거리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이따금씩 왕래하는 시발 택시들도 이 자동차 대열이 무엇인지 눈치를 채지 못했다 。 김포가도에 들어서면서 도로 양편 논에 괸물이 아침 해에 반사되 어 반짝이고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에는 신륵이 아름답다 。 미끄러지듯이 김포가도에 올라선 「 캐 딜라는의 운전사 박덕일 ( 朴德一 ) 은 이승만의 지시로 차의 속도를 시속 五 마일 정도로 즐였다 。
영영 마지막이 됳지도 모를 고국
의 산과 들을 좀더 눈여겨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득히 물이 괸 논을 내다보면서
이승만은 문득 고시(古詩) 한 토
막을 읊조린다.「春水滿四澤
...」으로 시작되는 (陶潛)의 사
시시(四時詩)다.
혼자몇마디를 웅얼거리던 그는
앞자리에 앉아있는警護 부탁 拒絕 한 美八軍 이날 새벽 六 시 조금 전 신교동 집을 떠나 김포 공항에 기의 경호경찰관 김종완 ( 金鍾完 ) 경감에게 『 봄물은 네 못에 가득하고 ··· 라는 듯이지 』 하며 풀이를 해준다.
일행의 자동차 대열은 어느덧 김포 공항 가까이 다다랐다 。
警護뷰탁 巨絶한 美八軍 이날
새벽 六시 조금 전 선교동 집을 떠나 김포 공항에 미리 나와서
대기중이던 과도정부 수반 허정 ( 許政 ) 은 이승만 일행의 도착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근 한 시간을 공항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허정은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았나 조바심이 대단했다。
끝 내 실현은 안 됐지만 이승만의 자동차 대열을 그 누구도 방해하
지 못하도록 엄중한 경호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후회 막급하다 。전날 그러니까 二八 일 그는 만의 하나라도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자 이승만 일행의 자동차 대열에 엄중한 경
호조치를 취하기로 작정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허정의 시도는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 먼저 그는 주한 미국대사 ( 駐韓美國
大使 「 매카나기 」 와 미 八 군
사령관 (美八軍司令官)「 매그
루더 」 에게 전화를 걸었다 。
미 八 군 헌병들로 하여 금 이승만 일행의 자동차 대열을 경호토록 요청하기 위해서다 。
물른 비공식적인 의논이다 。 그러 나 「 매카나기 」 도 「 매
그루더 」 도 『 입장이 난처해질 것 』 이라는 이유로 허정의 요청
을 완곡히 거절 했다 。 四 · 一九 학생데모와 이승만 정권의 붕괴가 상당 부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촉진됐다는 이 야기가 많았다 。 비록 풍문에 불과했지만 그러한 형편에서 주한 미 당국자들이 허정의 요청을 들 어 주기란 지극히 어려웠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
國軍憲兵隊 조차 護衛 꺼려 허정
은 다음의 시도로 평소 신임해 오
던 국군의 한 지휘관을 밤에 몰래 신교동 집으로 불러 들였다 。 정원 한곁의 송풍정에서 단둘이
서 마주 앉았다 。
육군 헌벙대 동원을 요청받자 군의 이 지휘관은 먼저 이승만의 망명소식에 놀랐고 다음엔 난색
을 표명했다 。
『 그렇게 하면 잠자는 범을 깨우
는 격이 될 것입니다 。 군에는 이박사를 좋지 않게 생각 하는 과
격한 장교들이 있는 만큼 헌병대 동원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책
임지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헌병대를 동원해서 이승만의 자동차 대열을 경호하기를 거절
하는 답변임이 분명하다 。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 이승만
과 프란체스카를 「 하와이 」 까지 태워 갈 자유중국의 민항사 ( 民航社 · CA T)소속 전세기가 이미 「 팜 」 도로 부터 날아와 김포 공항에 대기중이다 。 그리고 이날 오전에는 망명하는 두 사람의 여권이 준비됐고 미국 대사관에선 비자 발급까지 끝났다 。 二九 일 아침 八 시에 김포 공항 이륙이라는 통보도 이화장에 가있었다 。 허정은 실망했다 。 그러나 별 도리가 없 다. 어쩔 수 없이 경호조치의 강화없는 모험을 결행하는 수밖에 없다 。이승만과 프란체스카의 출발은 그 계획 처음부터 철두철미 기밀이 유지됐다 。 이화장에서 일을 보아 오던 측근 중의 측근도 감감소식이었다 。 망명 나흘 전에 갑자기 부름을 받고 이화장에 와서 임시로 근무하던 경성전기 주식회사 감사 ( 京城電氣株式會社監事 황규면 ( 黃圭冕 ) 도 소식을 전혀 몰랐
다 。 一九四六 년부터 五五 년까지 이승만의 영문비서와 총무비서 ( 總務秘書 )로 일한 적이 있던 황규면을 불러 들인 목적은 망명 후의 잔무처리를 부탁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에게마저 사실의 공개는 봉쇄돼있었다.
황규면이 이화장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것은 五 월 二六 일이다 。 그는 며칠동안 이화장에 배달 된 수많은 편지에 답장도 쓰고 밀렸던 그 밖의 서무일을 정리하느라고 바빴다 。 이화장에 들어 오자 그는 프란체스카로부터 한 달치 대통령 봉급과 五 ◯ 만환 액면의 수표 二 ◯ 장이 든. 금고를 인계받았다 。 살림살이를 도맡은 것으로 생각했다 。
蔣介石 엔 「 國內安住 」 편지 이승만의 건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 권력의 좌에서 벗어
나면 일시에 긴장이 풀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듯이 이승만도 예
외는 아니었다 。
설사병을 치료하 느라고 미 八 군
의 군의관이 매일 드나들었다 。 낮에는 정원의 나무들을 매만지고 저녁에는 잡자리 에 일찍 드는 등 이승만의 일과는 규칙적이었고 어디에서 하나 망명이 준비되고 있다는 냄새조차 나질 않았다 。 주한 중국대사 왕동원 ( 王東原 ) 이 가지고 와 전달한 장개석 총통의 위문편지에 한학자 ( 漢學者 ) 신호열 ( 辛鎬烈 ) 과 상의하여 한문으로 된 회답을 써서 보내기도 한 황규면에게 이화장은 여느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 이승만은 이 회답문에 특별히 자신의 의견을 삽입할 것을 요청할 정 도였다 。 『 독립과 반공의 일념으로 살아
오다 아래 사람들을 살피지 못한
탓으로 큰 부정이 일어났다.
그래서 학생들이 궐기하여 마침내
부정을 바로 잡게 됐으니 나로선
유감이 있을 수 없고 앞으로 이화
장 한 구석에서 한 평민으로 여생
을 보낼 작정이다』
이승만의 특별한 요청으로 회답문에 삽입된 이 귀절로 보아도 황규면은 이박사의 망명을 꿈에 도생각 못할 것이 당연하다 。 다만 한 가지 수상했던 일은 외무차관 이수영이 두어번 이화장에 들러 프란체스카와 정원 한 모퉁이에서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고 갔던 사실밖에는 아무것도 없 었다 。 감감소식인 채 내수동 집에서 곤히 잡든 황규면에게 二八 일, 그러니까 토요일 밤 늦게 『 전화론 안 되고 급한 일을 알려야겠으니 사람을 보내달라 』 는 전화가 이화장 경호담당 김종완 정감으로부터 걸려왔다 。孤獨 한 還國 、 孤獨 한 亡命
이 전화를 받고 그의 머리엔 무엇
인가 불길한 에감이 번개같이 스 쳐간다 。 이날 동아일보 석간에 보도됐던 < 이승만 망명 〉 이야
기가 혹시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황규면은 생각하면서 그러나 설
마했다 。
사실 이승만의 망명계획 특종 기
사를 일면 톱으로 큼직하게 보도
했던 토요일자 동아임보를 손에 든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면 서도
또 한편 설마 그럴 리가 있 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 황규면이 보냈던 인편에 김종완이 써 보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제례하옵고... 。 二九 일 오전 七시에 이화장을 출발하신다고 극비리에 말씀이 있었읍니다. 무에게도 연락하지 말라고 하시니 절대로 일체 알리지 마십시오•••중략•••각하께
서 분부시오니 극비에 붙여 두셔
야 합니다. 』 이 쪽지를 받아든 황규면은 어쩔 바를 몰랐다.
통행금지 탓우로 이화장에 당장
에 갈 수도 없다.
이튿날 아침 가까스로 시발택시를
잡아 타고 이화장엘 가보니 벌써
집은텅털 비어있었다.
잔무처리를부탁하는 프란체스카
의 영문편지 쪽지하나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승만은 오랜 해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一九四五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했었다.
희망에 찬 환국(還國)이었다.
오늘의 재차 망명(再次亡命)이
두꺼운 비밀 속에서 홀연히 이루
어졌듯이 一五년 전의 환국 또한
그것을 미리 안 국내인은 없었다.
기묘한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아무에게도 사전에 연럭하지 않고
그냥 홀연히 귀국한 것이다환국과
재차망명은 그런 점에서 공통돼
있다. <다음에계속>61쪽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