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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第一共和國

작성자김상옥|작성시간26.06.22|조회수30 목록 댓글 0


國父 의 還國

낯선 故國 땅에 첫발

一九四五 년 一 ◯ 월 一六 일 오후 五 시 이승만 박사는 三 三년만에 고국 에 돌아왔다 。
미 군용기 한 대가 김포 공항에 내린 것이다 。 전투복을 입은 몇사람의 미군장교와 함께 이들 장교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 노인이 백발을
날리며 서서히 트랩에서 내렸다。
중절모자를 손에 든 그는 회색 양
복 위에 군복을 걸치고 있었다 。
군용기를 타는 민간인은 군복 걸
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

서러웠던 旅券 수속

이승만 박사가 일본 패망의 소식을
듣고 하루라도 속히 고국에 돌아오
기 위해 미국무성에 여권수속을 시작
한것은 九 월 초의 어느날 。
이박사는 국무성 여권과장「루드시
플레이」여사에게 자신의 여권을 발급해 주도록 요청했다 。
九월 五일「 제임즈 번즈 」국무장관
이 「런던」으로 떠나기에 앞서 여권
발급 승인이 났다 。
여권발급을 여권과장인 「 시플레
이 」여사에게 위임한 것은이박사
를 위해 다행한 일이었다 。이박사로서는「 번즈」 국무장관
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시플레
이 」여권파장을 상대하는 것이
월씬 손쉬운 일이었다 。
미육군 전략부대 ( 美陸軍戰略部隊OSS ) 의 책임자고 이승만의 가까운 친구인 「 푸레스톤 굿텔로우 」 대령
은 「 시플레이 」 여권 과장과 여러가
지 사무적인 접촉을 해온。
관계가 있어「시플레이 」여사는 이승
만을 위해 편의를 보아 줄 만한 처지였
기 때문이었다 。
다음 할 일은 미군의 작전지역의 하나
인 한국에 가기 위한 군 당국의 허가를
받으면 그만이었다 。
국방성의「스위니」대령이 태평양
지구 미육군 최고사령관인「맥아더」
장군에게 작전지역 통과에대한 전문을 치자 곧장 이를 허가한다는 통고가 왔다。
「스우니」대령은 구미위원부(歐美
委員部) 대표인 이승만이 적당 지점을
거처 한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여권서
류를 정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일사천리로 순조
롭지는 못했다。꼬투리가 붙은것이
다。이박사가 대수롭지 않게써온 <구미위원부대표>의 영어표기가 그들
의 까다로운 행정 절차애 걸린 것이
다。팡파르가 없어도 좋다 국무성 당
국은 구미위원부 대표의 영어표기
High Commissioner from Korea to the United States 가 마치 공식 외교대표기관 같은인상을 준다는 이유
로 「 시플레이 」여권과장에게 이런
호칭에 찬성 할 수 없으며 발급된 여권
은 취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청천 벼력이었다 。
이승만이 탑승할 항공기를 콜색하는
순간에 일이 이렇게 틀어지자 국무성「 매닝 」이 이승만에게「시플레이
」여권과장을 만나보도록 요청했으나,
50이 넘은 이 부인을 만난 것은 사흘 뒤였다。
九월二一일 금요일 오후는 벌써 여권
과의 창구가 닫혀 있었다 。허탈상태
에 빠진 이승만은 구미위원부 대표라
는 간판을 매고 서울로 들어갈 수 없을
바에야 몸만이 라도 들어가고싶었다。
『 좋소 。 나에게 아무런 직함이 없어도 좋소 。 떠들썩하게 공표 안 해도 좋고 팡파르가 없어도 좋으니 그저 한국에 돌아가도록 만해 주시오
。』이승만은 중년 여인인 여권과장
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
그 여권문제에 대해 배려해「스위니」
대령은 이승만의 직함을 빼고 여권을 다시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새여권을 받긴했지만 이승만이
「 매닝 」 을 다시 찾아갔을 때 또하
나의 냉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
『국무성은귀하에게 귀국에 대한 절충
을 해주지않기로 결정했오 。』
「 매닝 」 은 뱉듯이 말했다 。
『 귀하가 「 오키나와 」나「 토오쿄
오 」 에 기착하려면 「 맥아더 」장군
의 특별허가를 다시 받아야. 할것이
오。 또한 군용기로 한국에 가려면
「 맥아더 」 장군의 보증이 필요할 것입니다。
』 이승만에게는 구미위원부의 간판을
버리는 댓가로 국무성의 여권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생소한 군인의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 또하나의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

國務省 은 못돕겠다

이승만은 여권과장을 다시 찾아갔다。
七〇 노인이 三三 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해방된 제 나라를 찾아가는 데 이렇게도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
一九一二 년 일본 식민지 하의 한국에
서 미국으로 떠나는 데도 이렇게 어려
움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
이승만이 「 스위니 」 대령에게 이 새
로운 허가를 얻기 위해 「 맥아더 」 사령부에 전문을 쳐줄 것을 요청하자 「 스위니 」 대령은 국무성의 구체적
인 지시 없이는 그것도 권한 밖의 일이
라고 거부했다 。
이승만이「시플레이」 여권과장 에게
지시를 해 주도록 요청하자『국무성은
이박사에게 도움이 될만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 고 잘라 말했다 。
미국에서 오랫동안 이승만의 독립을 도와온 「 로버트 · 티 · 율리버」는 그의 전기 《리승만- 신화 속의 인물》 에서 이승만의 순조로왔던 귀국계획이
이처럼 늦어진 이유를 뒷날 다음과 같
이 추측 하고 있다 。
『책임있는 미국 군부와 외교관은 일
본군대의 무장 해제가 끝나면 소련은
통일정부의 수립을 위한 종선거의 실시
에 협조하리라고 예상했었다 ...。
이러한 가정이 옳았다면 선거에 참가
하기 위한 이승만의 귀국은 이론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 하지 」 중장 예하의 제 六 군단 이 한국에 상륙한지 며칠이 지나
지 않아 소련이 협조하지 않는 것이 명백해졌다 。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의 하나는 「 하지 」 가 석탄과 교환하기 위해 한 화차와 물자를 북송
했을 때 나타났다。 소련은 석탄을 보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열차까지 압류했던 것이다 。
이러한 사정하에서 당국은 그들이 우연
히 분단시켰던 한반도를 조속히 통일
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과제는 남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느냐 혹은 미 군정하에
둠으로써 소련과의 협상을 시도하는
동안 사태를 유동적인 상태로 보존하느
냐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
후자를 택했다면 국무성으로서는 한국
의 독립을 가장열렬하고 강력하게 주장
하는 인물인 이승만의 귀국을 꺼려했을
것임을 명백하다。』
「 하지 」, 따뜻하게 맞아 어떻든 국무성 당국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동경의「택아더」나 서울릐「하지 」
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 백아더 」사령관은 「도오교오」
에서 「 하지 」 중장에게 이승만을 개선 장군처럼 대접해 주도록 귀떰
했다。귀국 다음날 군정청 회의실
(지금 中央聽 회의실 ) 에서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밝힌 것처 럼 이승만 박사는 < 평민의 자격 > 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
『 임시정부의 대표도 아니요 외교부 ( 歐美委員部 ) 의 책입자로 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 고 강조한 것은 그 자신의 외롭고도 먼 여정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
10월 四 일 귀국길에 오른 이박사가
그의 부인 프탄체스카와 함께 「워싱
던」 의 「 유니온 스테이션」에 나왔
을 때만 해도 알음알음으로 이박사를
환송하는「 워싱턴」에 사는 一 〇 여
명의 교포들이 나 와 있었다 。
그러나 정작 「 뉴우요오크 」 교외의
「 라 갈디아 」 군용 비행장에 나온
사람은 二 ◯ 여년동 안의 그의 내조
자였던 부인 프란체스카와 구미위원부
일을 함께 한 임병직(林炳稷) 밖에는 없었다。

軍政廰 서 記者會見

『내가 귀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 갈소。
수백명이 호텔 입구에 믈려 나를 만나
기를 원하고 있오。「 하지 」장군과 나는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지 내 가 귀국했다는 것을 알리지 않기로 약속했
었지만 그 이튿날 아침 장군이 와서
미국 신문기자 들이 기자회견을 요청한
다는 것이었오 。
그래서 「 하지 」장군과「아놀드」
장군이 나를 안내하는 가운데 궁전
( 경복궁 - 당시 군정청인 중앙청 ) 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갔오。 나는
영어와 한국말 두 가지를 썼오。』
조선호텔에 여장을 푼지 며칠 뒤 이박
사는 그의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
『 이때부터 군중들은 정문 밖에서
응성댔고 남녀 할것없이 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또 일분
도 쉴 틈이 없었오。
어제 오후 나는 그들을 불러 빨리 돌아
가서 자기 직책에 충실 하라고 타일
렀오 。』 편지는 이렇게 이어갔다。 이승만은 이른 세벽부터。군중들이 창
밖에서 만세를 외치는 바람에 잠을 깨
어 침대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
그는 파란 눈의 부인을 미국땅에 그대로 두고온 것이 안타까왔다。
고국에 돌아와 느끼는 객고━아이러
니칼한 기분 속에 부인 프란체스카에
게 편지로나마 소식을 전하고싶었다。
『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오。
오늘은 이만 쓰겠오。』 그가 항상 자랑해오던 왕 같은 자기의 풍모와 열광적인 민중의 환호, 그리고 한시도 쉴 수 없는 자기의 바쁜 생활을 실감
있게 부인에게 전하고 싶었던것이다。
이승만은 영문으로 타이프친 편지를
아침 일찍 찾아온 윤치영과 임영신에게 자랑스레 보여 주기도 했다 。

尹致暎 에게 첫 連絡

윤치영은 이승만에게 달려간 최초의 한국 사람이었다 。윤치영은 이승만이
조선호텔에 여장을 푼 그 이튿날 그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
三 층 계단을 뛰어 오르 느라 숨이 찼다 。달걀색 양복에 조끼를 받쳐
입은 이승만의 표정은밝았다 。
「 워싱턴 」의 구미위원 부에서 그를
모시고 일하다 헤어진지 10 여년 만에 다시 뷥게 되는 이박사 ,해방된 조국에
서 이제 다시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
『 어떻게 이렇게...저한테도 안 알리
시고...。』『 응 그렇게 됐어 。 미국
사람들이 비밀을 지켜달라는 거야 。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고생 이
많았지 、치영이도... 。』
四七 세의 윤치영은 70 을 넘어선 노애국자가 『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
냐 』 고 물었을 때 가슴이 또한번 뭉클했다 。
윤치영 (七七 · 초대 내무부장관 · 전 민주공화당 의장서리 씨는그때 이야기
를 다음과 같이 전 했다 。『그 어른이 동경에 오셨 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언
제 귀국 한다는건 알 수가 있어야죠。
누구다 누구다 하는 사람들이 날고 뛰는데 그 사람들 가지고는 안데。 나
는 처음부터 우리 지도자로는 이승만
박사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침인데 내 집사
람 (異恩惠여사 ) 이이박사한데서 전화가 왔다는 거야。
이거 이런 일이 어디 있나。그래 단숨
에 조선호텔에 달려가 그 어른을 뵈었
어요...°』 『 군정을 맡은 미국 군인들
이 뭘 알겠오. 그래 그날부터 바로 이박
사를 모셨어요. 임영신씨와 집사람이 그 어른의 잔일을 보살피고 나는 우선 정치 정세가 어떻고 누가 누구라는 걸 자세하 게 보고드렸어요。 요새식으로 말하면 브리핑이랄까°』

朝鮮 호텔은 門前成市

말하자면 윤치영은 이승만을 맨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일 뿐만 아니라 면접 대
상 인물을 추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
윤치영은 이박사에게 말했다 。
『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에 선생님께
서 동경에 오셨다는 소문이 있어서 「 루이즈 임 ( 任永信 )」이 랑 여럿
이 혹 무슨 소식 못들었느냐고 이야기
했읍니다 。』
윤치영의 이 말을 듣자 이승만은 『 아 방금 누구랑 무슨 이야기를 했다고 그
랬지 』『루이즈임,임영신말입니다。
』 『 오 그랬어 。 「 루이즈 임 」 이 、 우리 딸이 지금 한양에 있단 말
이지 。 치영이 「 루이즈 」 도 오라
고 그래 지금。 』 임영신도 달려왔
다 。이박사가 아직 프란체스카와 결혼하기 전인 一九三二 년 「 워싱턴
의 교포 들은 이박사와 임영신과의 결혼을 청하기도 할 만큼 두 사람은 가까왔다 。 이승만이 미군정 당국의 융숭한 배려 속에 군정청에서 기자회견
을 마친 다음 호텔로 들어서자 조선호
텔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
그가 부인에게 쓴 편지 대목처럼 남녀 할 것없이 문 안으로 틀어오려고 애썼
다 。그러나 무명 인사들은 미군 헌병
이 경비하는 호텔의 정문 앞에까지 밖
에 갈 수 없었다 。
이때에 도 그의 방안에까지 들어설 수 있었던 사람은 열댓 사람 안팎이있다 。 윤치영은 이박사의 건강을 걱정하는 한편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게 해주면 이 박사의 판단을 흐리게 할 염려가 있었기 때 문에 면회는 엄격하게 제한했다 。 극히 제한
된 정계 지도자들 가운데 송진우 (宋鎭禹 )김병로(金 炳魯 ) 이인 (李仁 ) 조병옥 (趙炳玉 )김도연 (金度演 )서상일 (徐相日 ) 허정 ( 許政 ) 장덕수 ( 張德秀 )백관수
(白寬洙)등 (韓國民主黨) 사람들
과 「 건국준비위원회 (建準 )」 를 하던 안제홍 ( 安在鴻 )여운홍
(呂運弘)등이 끼어있었다。
이른바 「인민공화국(人共 )」의
여운형 (呂運亨)허헌 (許憲) 이 나 조선공산당의 박헌영 (朴憲永) 이 그를 찾아간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美將校服 입은 韓國人 한편 윤치영 임영신 외에 이박사의 스케즐을 조정하는 사람이 또 하나 없었다 。 그는 一七 일 오후부터 거의 하루 종일 이박사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 밤에는 자리를 비웠다 。
거의 말이 없고 묻는 말 외에는 침묵을 지켰다 。 강원도 말씨를 쓰는 그는 누구보다도 유창하게
영어를 썼다 。 이 계급장 없는 장교복을 입은 이 四 〇 대의 사람
이 이박사 방에서 일하게 된것은 「 하지 」사령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 이박사가 귀국한 그 이튿날 아침 「 하지 」 사령관은 이 중년의 장교를 반도호텔로 불
렀다 。 관수 『 아니 이박사는 지금 어디에 『 귀관은 앞으로 이승마 박사를 도와 주어야겠오. 귀관이 할 일은 반은 우리 사령부 일을 보고 반은 이박사 일을 도와
주는 것이오 。』『 아니 이박사
는 지금 어디에계신데요。』
『 어젯밤에 귀국했오 。 지금 이 옆 조선호텔에 묵고 있오. 이박사와 친분이 두터운 귀판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것은 귀판이 적임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 「 하지 」 사령관의 말에 미육군 전략부대 (OSS) 요원으로 한국에 온 장기영 (張基永) 은 깜짝 놀랐
다 。이박사가 벌써 서을에 돌아
왔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 四二 세의 장기영은 三 년 동안 미육군 전략부대 요원의 한 사람
으로 二 주일 전부터 한국에 배치 되어 있었다 。 장기영은 순간 이박사를 돕더라도 자신의 군복부
터 하루속히 벗고 민간인으로서 해방된 조국 에서 떳떳하게 일하
고 싶었다 。
『 각하, 이박사를 다시 돕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그러나 각하의 뜻을 받들기가 난 처합니다 。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미국에 돌아가 군복부터 벗고 돌아와서 이박사를 도왔으면 합니다 。』 『 그건 안돼. 시간이 급해 。 귀관은 군인이야, 오늘 오후부터 내 명령에 따르도록 。』장기영이 이박사 일을 들보게 된 것은 전혀 타의였다 。
그가 이박사와 헤어진 것은 一九四二 년 、 미육군 질략부대 요원으로 지원하기 직전이었다 。 三 년 이상이나 만나지 못했던 노애국자를 보고 싶기도 했다 。 그러나 그보다도'이 기회를 자신이 제대할 수 있는 구실로 삼으려 한 것이다 。

歐美委員部 옮겨온 듯

나이까지 속여 전략부대 요원으로 지원하여 대평양의 전선을 돌아다
닌 자기였지만 이겐 노병 ( 老兵 ) 을 청산하고 싶었다 。
장기영이 미리 연락을 한 다음
조선호텔의 이박사 방에 들어 서
자 그는, 기엉 영이가 미국 군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다니... 。 그 래 아주 당당하군 。 방금 미국 사람으로 로부터 기영이를 내게 보내기로 했단 말 들었어 。』『 선생님을 여기서 뵙게 되니 더욱 감개무량합니다 。 뭐 불편
한 일이 있으시면 제가 성심껏 도와 드리겠읍니다 。』『 치영이랑 상의해서 잘 해봐 。윤치영은 주로 그 동안의 국내 정치정세나 면회를 원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면회시간을 조정한데
반해 장기영 ( 七二 · 제헌의원 전 체신부 장관 ) 씨는 『 지원해서 미국 군인이 됐지만 해방이 되자 왜 그렇게 군복을 벗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회고했다』이박사로서는 조선호텔에서의 며
칠 동안의 생활이 마치 「 워싱턴
의 구미위원부 한 조각을 서울에 에 옮겨다 놓은 듯했다 。 윤치영 . 임영신 · 장기영 등이 항상 자기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계속>
(東亞日報社 編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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