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덩치가 큰 누군가가 제게 달려오는 것입니다. “오지마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저의 이 다급한 말에도 불구하고 이분은 멈추지 않고 다가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손으로 오시는 분을 막아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급한 마음에 발을 힘껏 내밀었습니다. 너무 세게 쳤는지 발이 너무나 아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잠에게 깼습니다. 무슨 일이었을까요? 맞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제게 힘차게 달려온다고 생각했던 것은 침대 옆의 벽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벽을 향해 돌려차기를 한 것이었지요. 그 결과 제 발가락에는 피멍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피멍은 누구 때문에 생긴 것일까요? 침대 옆의 벽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저 때문입니다. 아마 벽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이를 벽이 다가오는 것이라고 착각했었나 봅니다. 분명히 벽이 커다란 사람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했기에 그 순간 너무나 무서웠고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했던 행동이지만 스스로 자해를 한 셈이 된 것이지요. 잠결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깨어 있는 지금의 현실 세계에서도 그랬던 적이 참 많지 않나 싶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생기는 어리석었던 모습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남을 받아들이지도 또한 따뜻하게 포옹해줄 수 있는 여유는 없습니다. 바로 내가 맞고 남은 틀리다는 생각에 올바른 길이 아닌 잘못된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뤄두고 대신 내 자신이 해야 할 올바른 일, 사랑의 행위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베드로가 주님께 요한을 가리키면서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로 알려져 있었지요. 더군다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겪으실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유일하게 예수님 곁을 지켰던 제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금했었나 봅니다.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했었던 요한의 미래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의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리고 계속해서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남에 대한 생각과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집중하고 계십니까? 혹시 여전히 다른 이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내 자신에 집중하고, 지금 해야 할 사랑의 일에 관심을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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