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역사
(느헤미야 2장 9-20절)
9-10.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느헤미야가 왕의 허락을 받고 극히 짧은 기간 내에 페르시아를 떠났을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느헤미야가 팔레스틴으로의 귀환 길에 폐르시아 군대를 대동한 것은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이라는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간다는 점이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자신의 술관원이라는 신분의 소유자이며, 유다 지역의 총독이라는 중대한 직분을 부여받은 자라는 점을 감안하여 호위병들을 보냈을 것이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이방인들의 반응은, 성전 재건 사업에의 참여 요청이 거부된 사건이 있은 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냉전 상태가 매우 심화되었음을 잘 보여 준다.
호론 사람 산발랏에서, 호론은 벨호론 지역 사람을 의미한다. 이곳은 당시에ㅡ사마리아 사람들이 차지하고 살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산발랏은 바벨론식 이름으로서, 신이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다.
“종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 종(에베드)은 신하 혹은 부하의 의미로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산발랏의 신하가 된다. 도비야의 조상이 암몬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총독의 이같은 반응은 성벽재건의 방해 공작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에 따른 두려움, 예루살렘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가 유다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을 상실할 가능성에 따른 염려때문이었다.
11-12.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이같이 예루살렘 도착 후 삼일을 쉰 까닭은 예루살렘의 정확한 상황을 청취하며, 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기 위한 목적 때문일 것이다.
삼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후 삼일만에 부활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출애굽에서 삼일 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삼일은 새로운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표현인 것이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느헤미야 자신의 성벽 재건 계획이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알려질 경우 그 사업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거나 그 대적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해 올 것을 염려하여 취해진 조처였다. 느헤미야가 심지어 자신의 동족에게 까지 말하지 아니한 까닭은, 그들의 상당수가 산발랏과 도비야와 결혼 등 이모 저모로 인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야심한 밤에 시찰을 나간 것이다. 간접적인 보고로만 들은 예루살렘의 형편을 직접 파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느헤미야가 밤에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이런 확인 활동이 산발랏과 도비야와 내통하고 있던 유대인에 의해서 감지되지 않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의 몇몇 사람은 느헤미야의 형제 하나니 등을 가리킬 것이다. 느헤미야만 짐승을 탄 것은, 최대한으로 대적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3-14.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골짜기 문은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위치한 힌놈의 골짜기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한 문이었다. 느헤미야가 이 문을 택한 이유는 그 지경이 가장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용정은 힌놈의 꼴짜기와 기드론 계곡의 합류점에서 남쪽으로 약 210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욥의 우물로 추측된다. 분문은 골짜기 문에서 약 450m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의 최남단에 위치했으며, 예루살렘에서 나온 온갖 쓰레기, 심지어는 성전의 희생 제사 때 나온 짐승의 배설물까지 이문을 통해서 힌놈의 골짜기에 버려졌었다. 이같이 느헤미야가 직접 확인한 상황은 하나니의 보고 내용과 동일했다.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앞으로 나간 것은 동쪽으로 기드론 골짜기를 내려다 보면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샘문은 분문에서 북쪽으로 대략 120m 정도에 위치했으며 그 바로 앞에는 실로암못이 있었다.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었다는 말은 그곳이 무너져내린 성벽의 잔해 및 온갖 쓰레기 등으로 메워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15-16.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느헤미야가 나귀에서 내려서 성벽을 살피러 걸어 올라간 것을 가리킨다. 즉, 그가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기드론 시내 쪽으로 내려간 후 그 시내를 따라서 북쪽으로 향했음을 가리킨다.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으나” 느헤미야가 성벽의 북동쪽 모퉁이까지 살펴봄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중도에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북쪽 성벽 지역에는 사람이 많이 살고 있어서 느헤미야 일행이 눈에 띌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느헤미야의 조사 활동이 이처럼 비밀리에 진행 됐던 까닭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벽 재건 계획이 누설될 가능성이 매우 큰 때문이었다.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 당시 유다공동체를 구성했던 대표적인 네 계층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유다 사람은 반드시 유다 지파 사람만을 의미치 않는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유다지파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인구수에 있어서 가장 컸던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처럼 표현했을 뿐이다.
제사장은 포로 후 시대라는 그 당시 상황에서는, 행정 및 경제의 측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신분이었다
귀족은 문자적 의미로는 자유로운 자라는 의미를 갖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갖고 있던 신분 정도로 추측된다.
방백들은 회중들에 의해서 선출된 백성의 대표들이다.
그 외에 일하는 자들은 성벽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 자들을 가리킨다.
17-18.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느헤미야는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후 삼일 간 숙고할 기회를 가졌었고, 직접적인 조사 활동을 통해서 모든 정황을 파악했을 것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암행 탐사 그 다음 날에 이 같은 발언이 있었을것이다.
“우리가 당한 곤경(하라하:라)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우리는, 귀환한지 삼일밖에 되지 않은 느헤미야가 본토의 유대인들과 깊은 연대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곤경으로 번역된 라는 1장 3절에서 환난으로 번역된 단어로서, 성벽을 갖고 있지 못했던 예루살렘 거민들이 이방인들의 상습적인 노략으로 인해 처하게 된 어려운 상황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유다의 다른 주요 성읍들은 나름대로의 방어용 성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오직 유다의 심장부이자,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만 방어용 성벽이 없어 노략을 계속 당한다는 사실은 그 도시의 주민 뿐 아니라 다른 곳에 사는 백성들에까지 수치일 수밖에 없었다.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벽 재건 사업에 참여토륵 한 신앙적 원동력이 되었다.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벽 재건 사업에 참여케 한 정치적 원동력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재건을 주저하고 있었던 이유는 산발랏과 같은 사마리아 관리의 방해, 사마리아 관리의 참소에 따른 아닥사스다 왕의 성벽재건 중지령등의 정치적인 것들이었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성벽 재건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느헤미야에 대해서 아닥사스다 왕이 호의를 베풀었던 사실은 상당한 용기를 불어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선한 일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다. 성벽 재건 사업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이미 시작되었음을 암시해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성벽 재건을 시도했었기에 큰 용기를 가지고 나선 것이다.
19-20.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아라비아 사람은 앗수르 시대부터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요단 동부 지역의 지배 계급이었다. 아라비아 사람 게셈은 요단 동쪽 및 남쪽지역을 다스리던 자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게셈이 도바야와는 달리 산발랏의 휘하에 있었던 한 관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6장 2에서 이 게셈이 사마리아의 총독 산발랏과 함께 느헤미야에게 대면요청을 했다는 점을 통해서도 분명해진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대적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시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사용한 두 가지 무기이다. 즉, 하나는 조롱이며 또 하나는 협박이었다.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라는 질문은, 일찍이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관원들의 참소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복구사업을 중지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협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사업은 중지령을 내렸던 아닥사스다왕의 새로운 허락과 명령에 따라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산발랏 등의 적대적 태도에도 블구하고 자신이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았던 사항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느헤미야의 이 같은 태도는 인간의 어떠한 훼방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반영한다. 아울러 산발랏 일당이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느헤미야에게 허락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느헤미야가 이미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발랏 일당은 도리어 왕의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성벽 재건을 방해하고자 하은 것을 부각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하나님은 백성들을 궁극적으로 보호하고 형통케 하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과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었던 것에 근거하였다.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다의 문제에 대해서 간섭할 하등의 명분이나 이유가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서 기업(헬레크)은 이스라엘의 땅 분배와 관련해서 사용된 법정적 용어이다.
권리(체다카)는 행정 구역으로서의 유다에 대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리킨다. 앞의 기업이 시민권의 문제와 관련 있다면, 이것은 행정권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 정리)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벽이 무너졌던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믿는 등의 불순종의 결과였으며, 이후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무너진 성전의 벽을 재건하는 일은 여호와의 신앙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시점에 다시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A.D. 70년 경에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졌던 것이다. 페르시아의 점령 하에서는 일부만 무너졌으나, 로마의 지배 당시에는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시고, 성전이 세워질 것을 말씀하셨으나, 이는 돌로 된 성전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전을 말씀하셨는바, 이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질 성전,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느헤미야를 통한 성전의 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계시하는 것이다. 부활은 바로 심령 속의 성전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