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열왕기하 7장 8-20절)
8-10.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아람 진영에 들어가서 취한 행동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첫째, 식욕을 채우는 것이다. 나병환자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목숨까지 건 위험을 감행했다. 나병환자들은 죄인을 상징하며, 죄인들은 세상의 것들을 채우는 자들이다.
둘째, 재물욕을 채우는 것이다. 식욕이 채워지고 나면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구를 위해 온 신경을 쏟으나, 그럴수록 탐욕으로 인한 공허감과 불만은 더욱 가중되어 간다.
셋째, 뉘우침이다. 나병환자들은 자신들의 배만 채우다가 성 안에서 굶주리고 있는 형제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나병환자들의 행위는 구원의 복음을 받은 신도들에게 적용된다. 성도들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복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추어 두기만 한다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미련한 자가 될 것이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베스라)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베스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생명을 건지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은 조국애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성 안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때에 자기들만의 욕심을 채운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벌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가서 성읍 문지기(쇼에르)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쇼에르는 성문을 수비하는 병사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다. 나병환자들은 자신들이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당시의 규례 때문에 성안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아람군이 도망했다는 기쁜 소식을 문지기에게 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살리는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 여러 단계의 명령 계통을 거치게 됨으로 시간적으로 상당히 지체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나병환자들은 직접 목격한 사실을 사실대로 전했다. 왜냐하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은 조심스럽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만일 거짓으로 판명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첨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전하는 자들도,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여 성경의 말씀을 왜곡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문자 그대로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과 섞지 말라는 것이다.
11-15.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그들이 병거 둘과 그 말들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니
이스라엘 왕은 나병환자들이 전한 소식을 즉시 믿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섞어서 이것을 아람 사람들의 책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왕의 추측이 전혀 황당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공동체와 격리되어 살던, 나병환자에 불과한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공격할 때도 적이 이와 같은 수법을 사용했었으며, 아비멜렉이 세겜 성을 탈취할 때도, 적이 동일한 책략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왕은 쉽게 그렇게 판단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왕은 나병환자의 전달된 말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가 가장 천한 나병환자를 통해서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이 전했다면 그는 믿었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주로 창녀, 과부, 세리 등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그들과 항상 대화하고 그들을 친구로 여기셨기 때문에,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천하게 대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경험과 판단에 의해서 복음이 배척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신하에 의해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하게 된다. 즉, 한 신복의 제안은 네 명의 나병환자와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결단을 내리자는 것으로 결국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이 마병들이 성중에서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아직 생존해 있는 모든 이스라엘 무리와 같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마병들은 성중에 남아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사를 당하게 될 것이며, 설혹 적진에 들어가 붙잡히더라도, 싸울 힘이 없어 점령당할 사마리아 성민과 같이 죽게 될 것이니,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더라”
요단 강까지 따라간 정탐군들은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에 대한 공격 의지를 완전히 버리고 도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버린 의복과 군물이 길에 가득하였으며, 왕이 의심한 것과 같이 아람 군대가 도망간 것처럼 꾸민 책략으로 보기에는 너무 실제적이었다. 아람 군대가 얼마나 황급히 도망했는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16-17.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두 가지 예언의 성취가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엘리사는 고운 가루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고 왕에게 예언했던바, 이것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자기 아들을 삶아 먹을 정도로 기근이 심했던 사마리아 성의 경제가 하룻밤 사이 이렇게 거의 정상적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없을 만큼 큰 이적이었다.
둘째, 엘리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장관에게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심판적인 예언을 했다. 이 예언도 정확하게 이루어졌으니, 곧 그가 성문의 출입을 통제하던 중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음으로써 그 곡식들을 맛보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 했던 장관은 사마리아 성이 구원되는 그 순간에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입구에서, 정탐꾼 열두명을 보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 외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반역했다. 그 결과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해석함에 있어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18-20.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에게 약속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 구원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밟혀 죽은 장관과 같이 구원의 소식만 듣고 그것에 참예하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엘리사의 예언에 대해 불신앙을 나타냈던 한 장관을 백성이 밟으매라는 말은 매우 엄격하고 잔인한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히브리어 이르메수후를 번역한 것으로 토기장이가 진흙을 이기기 위해 짓밟은 것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본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과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강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부가시켜준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나병환자 네 사람과 아람 군대를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가장 미천한 것을 들어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을 주관하심으로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