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동락(同苦同樂)- 같이 괴로워하고 같이 즐거워한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온 국민의 아쉬움 속에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명동성당을 비롯하여 곳곳에 분향소가 설치되어 그 분의 선종을 애도하는 조문객이 찾아들었는데, 조문객의 숫자가 4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조문객들 가운데는 천주교 신자도 많이 있었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추기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특히 가난하고 힘든 사람, 일이 뜻대로 안 되는 불우한 사람,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생전에 추기경을 알지도 못하던 이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몇 시간을 기다려가면서 조문 대열에 참여했을까? 추기경으로부터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였다. 추기경이 살아 계실 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현실적으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소원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비록 추기경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조문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추기경을 만나 위로를 받고 소원을 보상받고자 한 것이었다.
추기경은 천주교 성직자로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고, 로마교황청에서도 그 서열이 상당히 앞에 가는 고귀한 분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권위를 피우거나 남에게 으스대거나 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늘 마음가짐이 공정하고 당당했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바른 소리를 계속해 왔고,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중용(中庸)의 도(道)를 지키도록 선도해 주었다.
특히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하고 등을 두드려주는 자상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래서 추기경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정신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조문 대열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런 심리적인 동기에서 조문 대열에 참여했을 것이다. 살아 계실 때도 우리 국민 대다수의 존경을 받았지만, 세상을 떠난 이후에 더 존경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국민들의 머릿 속에 훌륭한 성직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많은 재산을 모아 세상에 한 푼 베풀 줄은 모르고,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은 우선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숨을 거두는 그 순간에 그 이름도 바로 사라진다. 많은 돈을 들여 무덤을 호화롭게 꾸미고 큰 비석을 세우고, 자서전을 지어 뿌린다고 세상에 이름이 남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마음을 갖고 올바르게 처신을 할 때, 세상에 좋은 이름이 남는 법이다.
종교라는 이름을 빌려 신도들의 헌금이나 시주에 신경을 쏟으며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의 행적과 자신의 행적을 비교해 보면 저절로 등에 식은땀이 흥건할 것이다.
또 입으로는 언제나 국민들을 위한다고 외치면서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얽매어 나라 일을 그르치는 정치가들도 김수환 추기경의 언행을 보면,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할 것 없이 지도자는 백성들과 함께 해야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이외에도 모르는 데서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선을 베푸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이외에도 이런 분들을 많이 발굴하여 세상에 소개해야 할 것이다. * 同 : 함께 동. * 苦 : 괴로울 고. * 樂 : 즐거울 락.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