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열전 마균(馬均) ? ~ ? : 위의 문신. 조예가 사치를 일삼고 크게 토목 공사를 이룩할 때 공사 감독의 책임을 맡아 궁사극치하게 하였기 때문에 백성의 원망과 국력의 피폐가 말이 아니었다. 동인을 옮기고 승로반을 세우며, 끝내는 섬돌 앞에 항시 기름 가마를 끓여 간하는 신하의 입을 막았다. 일개 박사의 몸으로 조예의 명을 방아 했을 뿐이겠지만, 위의 황실은 이리하여 기울어진 것이다. 마대(馬岱) ? ~ ? : 촉한의 대장. 서량태수 마등의 형의 아들. 마등이 조조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였을 때, 간신히 죽음을 모면하여 변장하고 도망가 이 소식을 고향에 전하였다. 뒤에 사촌 마초를 도와 숙부의 원수를 갚으러 여러 차례 싸웠고, 패한 뒤에도 계속 마초와 행동을 같이하여 촉한의 대장으로서 활약하였다. 제갈량의 신임을 받아 크고 작은 싸움에 계속 참여하여 그때마다 실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였다. 제갈양 사후, 양의와 위연의 대립에서 양의의 명령을 받고 도망치는 위연을 추격하여 그의 목을 베었다. 마등(馬騰) ? ~ 211 : 서량태수.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으로, 자는 수성(壽成). 농서 사람. 영제 말엽, 탕구우트족의 반란을 진정한 공으로 초평 년간에 정서장군 괴리후에 책봉되었으며, 진서장군 한수와는 형제의 의를 맺고 지냈었다. 장안이 동탁의 잔당들 손에 들어갔을 때도 근왕병을 이끌고 올라왔으나, 날짜를 끄는 통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갔다. 워낙 본거지가 멀기 때문에 시일을 끄는 것은 식량의 수송 관계로 언제나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조정에 있어서는 조조의 횡포를 미워하여 동승을 통해 의대조를 받들고, 이내 고향으로 돌아가 군사를 길렀다. 적벽대전 후 조조는 설욕차 남침하고 싶었으나, 그의 후방 교란이 염려되던 중 순유가 꾀를 내어 벼슬을 돋우어 서울로 불러 올렸다. 마등 자신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간적을 치려는 계획이었는데, 조조의 응대차로 보낸 황규가 조정 중신 황완의 아들이라, 서로 뜻이 통하였다. 그러나 황규 집안의 사소한 사고로 일은 탄로나 부자가 함께 죽음을 당하고, 형의 아들 마대만이 목숨을 건져 서량으로 도망하였다. 아들 마철, 마휴도 함께 목숨을 잃고, 장자 마초만이 고향에 남아 마대와 함께 조조를 쳐서, 여러 번 곤경에 몰아 넣었었으나 그때마다 성공치 못하고 나중에 유비에게로 가서 활약하였다. 마막(馬邈) ? ~ ? : 촉한의 장수. 등애가 촉한을 치고자 검각의 험한 재를 넘었을 때 강유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사태가 그른 것을 알고 아내 항복하여 향도관이 되었다. 아내 이씨는 의를 내세워 이것을 말리다 남편이 듣지 않으니까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마량(馬良) 187 ∼ 223 : 유비의 막하 모사. 본시 유표의 수하였던 이적이 천거하였다. 누대 형주에 살았는데, 5형제 중 눈썹 사이에 흰 터럭이 있는 이가 제일 출중하다 하여, 백미라는 이름이 생기게 한 장본인이다. 양양 의성사람으로 자는 계상(季常). 다른 네 형제도 모두 출중한 가운데, 마속은 그의 아우요, 자를 유상(幼常)이라 하였다. 제갈량과는 유달리 형제같이 친한 사이였으며, 관직은 종사로 동오와 친선을 유지했고, 형주를 맡던 관우의 보좌관이 되었다. 후에 여몽의 계략으로 형주는 함몰되고, 다시 형주를 되찾으려는 유비를 따라나섰으나 결국 패했고, 그 어지러움속에서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마속(馬謖) 190 ∼ 228 : 촉한의 대장. 양양 의성사람으로 자는 유상(幼常). 마씨 5형제 중의 한 사람으로 제갈량과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마량의 아우다. 관직은 참군.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각지의 요직을 역임했다. 유비는 임종이 '저자는 말이 실속보다 앞서니 중용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인데, 맹획 정벌 중에 칙사로 온 것을 만나 그의 식견을 듣고는 매사에 신임하고 부렸다. 제 1차로 위를 치러 출병할 때 사마의를 거짓소문으로 한 때 물러나게 함. 228년 봄, 가정의 요충을 지키게 해서 위의 명장 장합과 대결했다. 이것은 촉의 중원 진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싸움이었으나, 제갈량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대패하게 된 죄로 군율에 의해 처형되었다. 당시 촉한으로서는 인재가 모자라 그만한 장수도 아쉬운 형편이었으나,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그를 베니 39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래, 그의 심경을 동정하여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유명한 성어가 생겼다. 마연(馬延), 장개(張?) ? ~ 209 : 조조의 부하 장수. 본시 원소의 부하였는데 항복하여 적벽대전에 종군하였다가, 패해 오는 조조를 맞이하여 위기를 벗어나게 하고는, 둘이 함께 오의 장수 감녕의 손에 걸려 죽었다. 마완(馬琓) ? ~ 211 : 마등의 인척 장수. 조조와의 싸움에서 죽음. 마우(馬宇) ? ~ 189 : 후한의 중신. 시중 벼슬로 있을 때 동탁의 잔당이 반란을 일으켜 장안을 점령하고 횡포를 일삼자, 동지들과 근왕병을 불러들이기로 하였는데, 서량의 군대가 도착하여 접전하는 중, 내응 된 것이 알려져 동지들과 함께 멸문을 당하였다. 마원의(馬元義) ? ∼ 184 : 황건적의 수령. 장각의 부하. 장각의 거병직전에 수도에 들어가 궁정 안에 내응자를 확보했으나, 거사 직전 밀고자에 의해 사형을 당함.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마일제(馬日?) ? ~ 192 : 후한의 중신. 자는 옹숙(翁叔). 태부 벼슬에 있어, 동탁이 죽은 뒤 채옹이 저자에 버려진 그의 시체를 안고 곡하였다 하여 왕윤의 손에 죽게 되었을 때, 갖은 말로 구하려 하다가 이루지 못하였다. 이각이 여포를 몰아내고 수도 장안에서 실권을 쥐고 있을 무렵, 원술 휘하에 있던 손책을 설득하여 회의교위에 임명했으나 원술을 회유하는 일에는 실해하고 굴욕적인 죽음을 당했다. 마준(馬遵) ? ~ ? : 위의 천수군 태수. 제갈량의 제 1차 침공 때 성을 지켜 잘 싸웠으나, 지략이 뛰어난 강유가 촉한에 항복한 뒤로, 부지할 길이 없어 총지휘관 하후무와 함께 오랑캐 땅을 의지해 달아났다. 마철(馬鐵), 마휴(馬休) ? ~ 211 : 서량태수 마등의 두 아들.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왔다가 조조의 태도가 돌변하매 용감히 항거하여 싸웠으나, 철은 난전을 맞아 죽고 휴는 아비와 함께 잡혀서 죽었다. 동행하였던 종형 마대와 형 마초만이 나중까지 남아 유비 밑에서 활약했다. 마초(馬超) 176 ∼222 : 촉의 장군. 서량태수 마등의 큰아들. 무릉 사람. 자는 맹기(孟起). 얼굴은 분을 바른 듯이 희고 늘씬한 키에 허리는 가늘고 어깨통이 넓어 '비단 마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무용은 절륜했으나 성질이 사납고 지모가 모자랐다. 아버지가 조조에게 속아 패하여 죽자, 양주에 근거하여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기동력 있는 기마대를 소유하여 211년, 한수와 함께 장안을 뺏고 동관을 떨구어 용명을 날렸다. 적벽대전에서 패해 서쪽으로 온 조조군과 동관에서 싸움에서는 허저와는 백여 합을 싸워 승부 나지 않았으며 조조를 추격하여 붙잡을 뻔 도 하였으나 경륜이 모자란 때문에, 친삼촌같이 여겨오던 한수를 조조의 반간을 받고 의심하여 죽이려다, 이루지 못하고, 방덕, 마대만을 데리고 도망하여 농서의 임조를 향해 갔다. 오랑캐 땅에서 힘을 길러 2년만에 다시 재기해 왔으나, 하후연의 대군에게 패하여 또다시 방덕·마대만을 데리고 한중으로 장로를 의지해 갔다. 그리고 거기서 가맹관을 지키던 장비와 마주쳐 수백 싸워 또다시 용명을 떨쳤으며, 그를 아낀 제갈량이 뒤로 장로의 모사 양송을 매수하여 난처한 입장에 세우고 이회가 항복을 권하는 바람에 마침내 성도를 포위한 유비군에게 항복했다. 마초가 항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용맹을 무서워하던 성도성내가 동요되어 10일도 되지 전에 성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때 형주를 수비하고 있던 관우가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가르쳐 달라고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내자 제갈량은 마초를 장비와 겨룰 만한 용장이라고 칭찬했다. 소위 오호대장(五虎大將)의 한 사람으로 극진히 대우받았으나 제갈량이 위를 치기에 앞서 서평관을 지키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위후(威侯) 마충(馬忠) ? ~ 222 : 동오 손권의 막하 장수. 반장의 부장. 관우가 패하여 가는 길을 추격하여 말 째 걸어서 넘어뜨리고 묶은 공으로 그의 타던 적토마를 상으로 탔으나 말은 여러 날 굶은 끝에 죽어버렸다. 유비의 침공을 받았을 때는 노장 황충을 쏘아 맞혀 황충은 그로 인해 죽었다. 그러나 촉한의 군세가 호대한 것을 본 부사인과 미방이 그가 관우를 잡은 장본인인 때문에, 다시 옛 주인을 찾아갈 명목을 세우고자, 밤중에 자는 것을 목베어 가지고 유비 진으로 갔다. 마충(馬忠) ? ~ ? : 촉의 장수. 파서 낭중사람. 자는 덕신(德信). 관직은 진남대장군. 남만에서 공명을 따라 조운과 여러 차례 공을 세움. 만욱(萬彧) ? ~ 272 : 동오 중신. 오주 손휴가 죽자, 오정후 손호를 세워 황제로 삼고 육개와 함께 좌우 승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었다. 그러나 손호의 날로 횡포해지는 꼴을 보다 못하여, 바른말로 간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만정(萬政) ? ~ ? : 위의 장수. 곽회의 부장으로 가정 싸움에서 촉한의 후퇴하는 군사를 추격하였는데, 조운과 맞닥뜨려 그의 화살이 투구 끈을 맞혀 끊는 바람에 놀라 골짜기에 굴러 떨어졌다. 조운은 그를 살려주며 위협하여 뒤를 따르지 못하게 하여 손 실없이 물러갈 수 있었다. 만총(萬寵) ? ~ ? : 조조 막하의 모사. 자는 백녕(伯寧). 산양 창읍사람으로 유엽의 천거로 그의 사람이 되었다. 구변 좋게 달래어 서황을 끌어들이고, 계속 조조를 위하여 진력하던 중, 관우와의 양양성 싸움에서 정세를 잘 파악하여 조인을 도와 승전으로 이끌었다. 여러 번 오군을 파했으며 외교에 능하여 여러 차례 중요한 사신으로 다니며 많은 공을 세워 벼슬이 태위에 이르렀고, 죽어 경후(景侯)의 시호를 받았다. 망아장(忙牙長) ? ~ 225 : 남만왕 맹획의 대장. 절두대도를 잘 썼는데 협산곡에서 마대와 싸우다 그의 칼에 죽었다. 맹공위(孟公威) ? ~ ? : 남양의 숨은 인재. 여남 사람으로 제갈량이나 최주평, 석광원, 서서 들과는 함께 공부한 친한 사이였는데, 난세에 나오기를 꺼려 그 몇몇이서 술과 글로 세월을 보냈다. 맹달(孟達) ? ∼ 228 : 유비 수하의 장수. 자는 자경(子慶). 익주의 유장의 수하였으나 주인이 암약하여 부지 못할 것을 한탄하고, 장송, 법정과 함께 외부에서 영웅을 불러들일 것을 획책하였다. 법정과 같이 우부 풍미현사람. 유봉, 이엄과 사이가 좋았다. 유비에게 협력하여 의도태수가 되어 곽준을 천거하고 가맹관에서 장로의 침입을 막았다.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자 상용관의 수비를 맡았는데 관우가 형주에서 패해 궁지에 들었을 때, 구해 주지 않은 죄를 추궁 당하게 되자 조조군에 항복하여 신성태수에 임명되었다. 그랬다가 뒤에, 사마의가 동병 하여 촉한을 칠 때, 내응 하여 옛 죄를 씻으려 하였으나 도리어 사마의에게 간파되고 동지로 믿었던 신탐의 손에 죽었다. 맹우(孟優) ? ~ ? : 남만왕 맹획의 아우. 줄곧 형과 행동을 같이 하며 제갈량의 토벌군과 대항하고 꾀로 속이려 하였으나, 그때마다 붙잡혔다간 놓이곤 하던 끝에 일곱 번 만에는 완전히 심복하게 되었다. 일신의 용맹이 있었으나 머리가 모자람. 맹절(孟節) ? ~ ? : 남만왕 맹획의 형. 만안계에 숨어살던 만안 은자. 제갈량의 군대가 독룡동에서 독천을 마시고 병신들이 되었을 때, 산신의 지시로 그를 찾아가 약을 얻어먹고 모두 나았다. 왕을 시켜주겠다는 말도, 선사하는 금품도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맹탄(孟坦) ? ~ 200 : 조조 휘하의 장수. 관우가 조조의 앞을 떠나 유비를 찾아 떠날 때, 낙양관을 지키던 한복의 아장. 역시 관우의 손에 죽었다. 소위 오관찬장의 제2인자. 맹획(孟獲) ? ~ ? : 남만의 왕. 건흥 3년, 1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익주에 침입하여, 군의 태수4들도 많이 그에 협력하였다. 촉한의 전권을 맡아 있던 제갈량은, 먼저 역내의 주군을 평정하고 그를 토벌하고자 남만 땅 깊숙이 원정하였다. 그리하여 일곱 범 잡았다 일곱 번 놓아준 은의에 감복하여 진심으로 항복하게 되었고 제갈량은 그로 하여금 남만의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모개(毛?) ? ~ ? : 조조 막하의 모사. 진류 평구사람으로 자는 효선(孝先). 조조가 연주목으로 있을 때 순찰관으로 초빙되었다. 이때 천자를 받들어 불신을 다스리고, 농경을 일으켜 군량을 비축하라는 등 진언을 하여 조조의 천하평정계획에 중요한 시사를 주었다. 조조가 전권을 잡은 뒤 동조연이 되어 내정을 도왔으며 적벽대전에서는 채모와 장윤이 죽은 뒤 별로 경험도 없이 우금과 함께 수군도독을 맡았다가 크게 패하였다. 조정에 있어 근무에 매우 충실하였으나, 참소를 입어 쫓겨나 있다가 병으로 죽었다. 모황후(毛皇后) ? ~ ? : 위주 조예의 후(后). 하내 사람으로 자색이 있어 평원왕이 있을 당시부터 총애하였는데 높여서 황후로 삼았다. 뒤에 곽씨를 사랑하게 되어, 하찮은 일로 주위 사람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조예의 무궤도하기가 이와 같았건만 주위에서는 아무도 간하는 이가 없었다. 목록대왕(木鹿大王) ? ~ 225 : 남만왕 맹획의 반란에 협력한 팔납동의 동주. 법술로 코끼리를 타고 갖은 맹수를 부하처럼 부렸는데, 제갈량이 미리 준비한 인조 맹수에게 쫓기어 짓밟힌 끝에 난군중에서 죽었다. 목순(穆順) ? ~ 214 : 복황후의 심복 환관. 조조의 세력이 커져 황제를 능멸하기에 이르자, 복황후의 친서를 받들어 복완의 사이를 왕래하였으나, 상투 속에 감춘 밀서가 탄로나 복씨네 와 함께 일가족 몰살을 당하였다. 묘택(苗澤) ? ~ 211 : 조조 밑에 문하시랑으로 있던 황규(黃奎)의 처남. 매부인 황규의 첩과 정을 통하여 언제나 드러내 놓고 살아 볼까 하던 중. 황규가 마등과 뜻이 통해 조조를 해치려는 기미를 알아내 밀고하였다. 조조는 마등과 황규의 일족을 죽인 뒤, '여자 하나가 탐난다고 누이의 집안을 멸명시킨 나쁜 놈'이라고 이 역시 죽여 버렸다. 무안국(武安國) ? ~ 190 : 공융의 장수. 근왕병 때 여포에게 도전하다가 팔이 잘림. 묵돌 ? ~ ? : 흉노의 추장. 원소의 아들 원희, 원상의 패한 군사를 도와 조조를 반격해 나오다, 백랑산에서 조조의 대군과 마주쳤을 때 장요의 칼에 죽고 나머지 20만이나 되는 군사는 모두 항복하였다. 문빙(文聘) ? ~ ? : 조조 막하의 장수. 남양 완성사람으로 자는 중업(仲業). 본시 유표의 장수로 유비가 신야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양양을 의지하려 하였을 때, 이를 방해하였다. 유표의 대를 이은 유종이 결국 조조에게 항복하여 버리자 뜻을 잃고 강개하였으나, 조조의 부름을 받아 강하 태수가 되었다. 적벽대전에서도 싸우다 부상하였고, 동작대 잔치에서는 활재주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강하를 지키기 수십 년에 치적이 매우 올랐으며 벼슬이 후장군에 이르렀고 뒤에 병으로 죽어 장후(壯侯)의 시호를 받았다.. 문숙(文叔)의 처 ? ~ ? : 권세를 누리다 패하여 죽은 조상의 종제의 아네. 하후령의 딸로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아비가 재가를 시키려 하자 귀를 잘랐고, 조상이 패한 뒤 또 시집 보낼 의논이 나오자, 이번엔 코를 베어 절개 굳은 것을 나타내었다. 이를 들은 사마의는 그의 정절을 찬양하여 양자를 주선하여 조씨의 대를 잇게 하였다. 문앙(文鴦) ? ~ ? : 위의 장수 문흠의 아들. 사마사의 폐립을 감행한 죄를 물어 군사를 일으켰을 때 아비를 도왔다. 나이는 아직 18세였는데 창과 동편을 잘 써 효용이 절륜하였다. 첫 번 출전에 아비와의 연락이 끊겨 단기로 여러 차례 적의 추격을 물리치어 위병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다. 뒤에 패군 하여 항복하였다가 나중에 진에서 장군 벼슬을 하였다. 문추(文醜) ? ∼ 200 : 원소의 상장. 백마의 전투에서 조조의 장수 장요, 서황을 상대로 하여 싸워 장요를 쏘아 말에서 떨어지게까지 하였으나, 조조에게 얹혀 있던 관우에게 죽었다. 본시 안량과 함께 원소의 자랑하던 장수였는데, 정사에는 관우에게 죽은 것으로는 안량만 나와 있고, 그에 대해선 써있지 않다. 문흠(文欽) ? ~ 258 : 위의 장수. 초군 사람. 자는 중약(中若). 사마사가 폐립을 감행하였을 때 양주자사로 있었는데, 조정을 무시한 행동을 분히 여겨, 진동장군 관구검과 상의하여 군대를 움직여 그를 쳤다. 그러나 사마사가 친히 대군을 거느려 항전해 오매, 중간에 윤대목의 조언도 있었건만 계속 대진하지 못하고 군대를 물렸다가, 제갈탄에게 수춘성을 빼앗기고는, 동오로 손준을 의지해 달아났다. 뒤에 제갈량이 사마씨 토벌의 군사를 일으키자 동오의 군사를 이끌고 나와 그를 도왔는데, 수춘성에서 그가 패하였을 때 오해를 사서 죽음을 당하고, 아들 문앙과 문호는 수십 인을 죽이고 탈출하여 위채에 가 항복하였다. 관직은 전장군이며 유주목에 초후에 책봉됨. 미방(?芳) ? ~ 222 : 미축의 아우로 역시 유비의 처남이다. 관우 막하에서 남군태수가 되었으나, 양양 공격을 앞두고 실화한 죄로 매를 맞고 강릉(江陵)의 수비로 좌천되었다. 형주가 함락되자 부사인과 함께 동오 손권에게 항복하였다가, 유비가 복수의 군대를 일으켜 연전연승해 나오자, 관우 잡은 장본인인 마충의 목을 베어 가지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갔으나, 관우를 구하지 않은 죄로, 세자의 외숙이건만 죽음을 당하였다. 미부인(?夫人) ? ~ 208 : 유비의 부인. 유비에게는 감부인과 함께 두 부인이 있었는데, 미부인에게서만 한 아들을 두어 아명을 아두(阿斗), 이름을 선(禪)이라 하며,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위에 오르므로, 흔히 후주(後主)라 부른다. 당양파 싸움에서 난군중에 부상을 당하고 조운을 만나 아두의 보호를 당부한 뒤, 자신은 헌 우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미축(?竺) ? ~ ? : 촉의 중신. 동해 구현사람으로 자는 자중(子仲). 서주의 명문 출신으로 수많은 자산에 노비가 1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서주태수 도겸의 별가종사로 있다가 조조의 침공을 받자, 그를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공융의 원병을 청하고, 도겸의 유탁으로 유비를 지성껏 도왔다. 195년, 유비가 여포에게 하비를 빼앗기고 유랑하게 되었을 때도 그가 자금을 대주고 누이동생을 그에게 출가시켜 두 번째 부인이 되니 유비에게는 처남이다. 201년, 유비의 형주 망명 때 사전 준비를 위해 유표에게 사신으로 갔었다. 아우 미방이 배반하여 오에 항복한 것을 고민하다 병들어 죽었다. 벼슬은 안한장군(安漢將軍). 민공(閔貢) ? ~ ? : 하남 중부연리. 십상시 난리에 임금을 받들어 달아나는 내시 단규를 목베고, 최의의 집에서 황제와 진류왕을 찾아내어 무사히 환궁하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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