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의 난을 살펴보자 -
동귀비는 헌제의 둘째 아내이다. 뭐 성씨가 동씨니까 동귀비일 것이고, 동승의 난이 벌어졌으니 동승과
뭔 관계가 있는 것 같기는 할 터이다. 자, 동승의 난은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하나 파악해
보자. 동승의 난에 연루된 사람들의 프로파일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동귀비
한헌제의 둘째 부인이며 오라비 동승의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임신 5개월의 몸으로 조조에게 끌려가 참
수되었다라고 ‘연의’에서 나온다. 정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승이 오라비가 아니라 ‘부친’인 것
이 다르다.
2) 동승
한영제의 모친인 동태후의 조카이며 한헌제의 둘째 부인인 동귀비의 부친. 하간 출신이며 거기장군에 위
장군을 역임한 인물이다. 곽사가 수도를 미현으로 옮기려 하자 양봉에게로 천자가 도망쳤는데 이때 곽사
가 양봉을 공격하여 위험에 처했을 때 위장군의 신분으로 군대를 끌고와서 양봉과 함께 곽사를 물리치고
헌제를 낙양으로 모신다. 이때가 195년. 196년에 양봉과 한섬등이 낙양에서 헌제를 등에 업고 다시금 이
각, 곽사와 같은 짓을 하려 하자 동승은 과감하게 조조의 제의를 받아 황제를 설득하여 허현으로 옮긴다.
199년 4월에 거기장군에 임명되고, 12월에 헌제의 밀명으로 유비, 마등과 함께 조조를 척살하기 위해 반
란을 도모하지만 200년 1월에 그 계획이 누설되어 사형에 처해진다. ‘연의’에서는 동승의 반란이 실패하
게 된 것을 동승의 첩 운영과 밀통을 했던 노비 진경동에게 암살계획을 밀고당한 것으로 나온다.
3) 진경동
동승의 노복이다. 200년 1월에 진경동은 동승의 애첩 운영과 몰래 사통을 하다 발각되어 곤장 40대를 맞
고 광에 갇혔으나 탈출하여 조조에게 동승의 반역행위를 밀고하여 이로 인하여 동승의 암살계획모의를
모두 수포로 만든다.
4) 왕자복, 오자란, 오석
왕자복은 후한서에서는 왕복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자복은 편장군, 오석은 의랑에 있던 인물이다. 동승
등과 함께 조조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사전에 비밀이 누설되어 실패하여 200년 1월 조조에게
체포되어 참수당한다.
5) 충집
189년 동탁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유, 하옹, 정태, 오경등과 함께 모의하여 동탁을 주살하려다가 거사 직
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여 옥에 갇혔던 인물이다. 동탁이 죽으면서 옥에서 사면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199
년에 동승등과 함께 조조를 시해하려다가 실패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6) 마등
199년에 동승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하지만 서량의 소수민족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할
수없이 서량으로 돌아간다.
7) 유비
198년에 유황숙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헌제의 신임을 얻었고, 조조에 대한 모반을 계획하고 동승등의 모
반 연판장에 서명을 하지만 12월에 하비성에서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고 군사를 일으킨다.
이들 인물들 중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동승이다. 그러니 동승의 난이라고 이름 지어 지는 것이다.
하지만 동귀비와 동승의 어떠한 밀약같은 것은 없다. 헌제가 동귀비의 오라비 동승을 만나 ‘옥대의 밀
약’을 한 것이다. 그런데 시기가 문제가 된다.
197년 조조는 완에서 장수를 항복시키지만 장수와 조앙, 조안민을 잃는 대패를 당하고, 198년에 다시 장
수와 유표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하비에서는 여포를 사로잡았으며 199년에는 원술을 토벌하고 장수를
다시 굴복시켜서 아랫사람으로 받아들인다. 200년 원술 토벌에 유비를 보내나 유비는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하고 이에 조조는 친히 출격하여 유비를 격파하고 관우를 항복시킨다. 유비는 원소에게로 도망가고
그 유명한 관도대전이 벌어진다.
포학독재 동탁이 주살을 당한 해가 192년이고, 이후 이각, 곽사가 동란을 일으켜 난장을 피우다가 죽은
해가 198년 (곽사는 197년)이다. 동탁의 뒤를 이어 천하를 방랑하며 어지럽힌 여포가 조조에게 잡혀 죽
은 해가 198년이다. 즉, 동탁에서부터 이각, 곽사의 횡포 밑에서 ‘황제’같지 않게 살던 헌제를 허현으로
모시고 와서 ‘황제’로 대접을 하고 그리고 중원에 어지럽게 난립해 있는 각 군웅들을 제압하면서 천하 평
정을 하면서, 원소와의 관도전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왜 헌제는 멀쩡하게 잘 있다가 왜 느닷없이 199
년에 반란을 꿈꿨는가 말이다.
헌제가 느닷없이 ‘옥대의 밀서’를 199년에 동승에게 건네준 것도 의아하고, 동승등도 ‘조조’가 제멋대로
한다 할지라도 ‘구석’을 받은 것도 아니고, 황제를 홀대한다고 하더라도 ‘동탁’이나 ‘이각’등과는 다르다.
난세를 치세로 변해가는 시점이었고, 조조로서도 주변의 군웅들을 정리하면서 ‘원소’와 결전을 앞두고 있
던 시점이었다. 더군다나 어느 누구도 ‘헌제’를 모시려고 하지 않을때 나서서 헌제를 모심으로써 길바닥
의 황제를 그나마 황제로서 만들어 놓은 이가 조조다.
난세에는 ‘자신의 지위보존’은 필요치 않다. 하지만 치세가 되면 ‘지위보존’에 신경쓰게 되는게 ‘인지상
정’이다. 동탁과 이각에게서 당했던 ‘공포의 두려움’을 벗어나 조조에게서 ‘당하는 억울함’을 느끼니 이 아
니 서럽겠는가. ‘죽음의 공포’에서야 ‘깩’소리 한마디 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버리지만 ‘무시당하는 서
러움’이야 ‘깩’소리 할 수 있는 것일테니 말이다.
반란 도모자 중에서 충집은 ‘한의 충신’으로서 동탁에 대한 반란을 도모했었던 인물이요, 동승은 그 스스
로가 ‘조조’에게로 가자고 헌제를 모신 주동적인 인물이다. 조조에게 의탁한 해가 196년이다. 그런데 반
란도모는 199년. 이 3년 동안에 ‘조조는 충신이 아니다’라는 일을 당할만한 것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는
가. 조조로서는 각지에 난립한 군웅 척결이 우선시였을 것이지, 내부에서 황제를 기만할 만한 일이 얼마
나 많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동승의 난은 조조의 외지로서는 치고 박고 지지고 하는 등 복잡한데 조조의 품안에서 조조가 무시한다고
반란을 꿈꾸면서 기존 권세를 다시 누리려는 복고세력의 무모함이었다. 반란에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한다’라는 그 만고의 명언을 동승은 무시했다. 자신의 애첩이 노복과 놀아나자 그를 두들겨패고, 노
복이 그 ‘반란계획’을 알 수 있게 비밀 이야기를 차단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요, 광에 가두었는데 그것마저
도 제대로 간수를 하지 못해 도망가서 조조에게 고자질하게 한 ‘동승’에게 모든 문제의 책임이 있다.
더군다나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유비와 마등도 모두 빠져나간 마당에 ‘반란계획폐지’를 해야지, 군사
력도 가지지 못한 이들끼리 조조를 어찌 대항하겠다고 설치고 나서는가 말이다. 이미 동승의 난은 깨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실패한 거사에서 한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거사 인물에서 논하지 않았지만 가장 경건하
고도 잔인하게 죽은 길평의 존재다. 즉, 길평이 동승의 난에 참여를 했는가의 문제다. 후한서에는 ‘경기
위황의 난’에 길본이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 본래는 길본이 아니고 길비(吉丕)이지만 조비의 비(丕)를 피
하기 위해 본(本)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평(平)이 된 것은 비(丕)를 평(平)이라고도 적는다는 주가
있는 것에 의거한 것으로 나관중이 ‘삼국지연의’에서 평으로 적은 것이라고도 한다.
하여튼 길평이 조조의 모살에 참여한 것은 199년 동승의 모반 때가 아니라 건안 23년인 218년이 된다.
무려 18년의 세월 착오가 생긴다. 삼국지 무제기에는 다음처럼 나와있다.
건안 23년 봄 정월에 한나라 태의령 길본이 소부 경기, 사직 위황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서 허도를 공격
하여 승상장사 왕필의 군영을 불태웠다. 이에 왕필이 영천의 전농중랑장 엄광과 함께 토벌하여 목을 베
어 죽였다.
그런데 나관중은 느닷없이 ‘동승의 난’에 길평을 ‘동조자’로 함께 집어넣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소설의
이미지에 의함이다. 길평은 태의령으로서 일종의 어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소설의 구성을 함에
있어서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만들기 좋지 않은가.
동승의 노복에게서 조조는 자신의 모살계획을 듣는다. 조조는 태의령 길평으로부터 두통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길평이 치료를 위해서 조조에게 오자 조조는 길평을 잡고는 각종 모진 고문을 한다. 길평은 피터
지고 혼절을 당해도 ‘혼자 모살을 계획했다’면서 꿋꿋하게 늠름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조조는 그런 길
평의 모습을 동승에게 보여준다. 동승은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떨며 두려워하며 두 인물의 전혀 다른
모습을 배치한다. 길평은 처절하게 자결하고, 동승을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도 모두 척결된다.
소설의 플롯으로는 너무 멋진 셈이다. 나관중은 이러한 계산으로서 길평을 동승의 난에 집어넣으면서 18
년후의 경기위황의 난에 길평 대신 후손들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마냥 틀리지는 않다.
길평은 길목, 길막과 함께 그 난에 참여했었으니 말이다.
나관중은 동승의 난에서 ‘길평’의 숭고한 죽음으로써 조조의 잔혹함과 후한의 만고충신을 만들어내는 화
려한 문재를 발휘한다. 정녕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소설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