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육이야기

용서는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해주는 게 아니예요

작성자Visionbloom|작성시간21.03.05|조회수805 목록 댓글 0

오늘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게요. <인생수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간디에게 한 상처받은 아버지가 왔습니다.
"나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아들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용서할 수 있나요?" 간디가 말했습니다.
"원수의 자식을 입양해서 키워보십시오.그러면 그도 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용서를 해야할 상황을 맞이합니다.
용서는 마음의 치유이고 사람과의 연결 방법입니다. 문제는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 없거나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계속 아프게 하고 상처와 분노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과거를 떠올리며 분노를 되새김질 하게 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이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용서할 때 가장 힘이 드는 것은 내가 용서함으로써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용서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마치 '나에게 상처를 줬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짓밟아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인정하는게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상태가 최선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잘못한 행동 이상의 귀한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용서할 필요가 없으며 고통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그 사람"을 용서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또하나 용서를 방해하는 것은 복수에 대한 욕망입니다.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죠. 자신이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알리고 싶어서 상대방을 더 심하게 비난합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기억하면 용서가 더 어렵습니다. 비난하는 것이 훨씬 쉽지요. 그러나 상처 속에 사는 것은 자신을 영원한 피해자로 만드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 때문에 영원히 상처받은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용서를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나약한 인간, 실수투성이, 정서적 불안자, 나와 같은 인간"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내 안에 있는 분노를 자각하고, 슬픔, 고통의 상처들을 충분히 인정한 후에 그 감정을 풀어 놓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내적인 평안을 누리는 것이지요.


알리시아라는 여자는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거기에서 죽었고 자신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남은 사람들이 풀려났습니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학대했던 독일인 병사들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간직해서 전쟁이 끝나면 복수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그 사진을 찢어버립니다. 용서든 복수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입니다. "동생, 언니, 부모님이 죽었어요. 어떻게 용서해 줄게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어요? 단지 모든 것은 신의 판결이고 신의 몫인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나는 내안의 분노와 슬픔을 떠내려가게 할 몫이 남은 것이지요."
이와같이 다시 안정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려는 선택이 용서입니다. 과거의 불행의 감정에 묶여있기 보다 지금 그리고 미래 행복할 수 있는 상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한 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를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자유와 평화를 다시 누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용서해야할 기억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묶여있는 감정을 풀어놓아 주십시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의 자유를 누리길 바랍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삶에 행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축복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