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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찾아보니까 풍생에대한 자료가 있네요...

작성자임준혁|작성시간03.06.09|조회수3,827 목록 댓글 0

창단에서 축구명문으로

  1980년

 

 고교평준화시책에 따라 학교 특색의 발현을 위해, 특활부 창단을 구상하게 되었다. 당시 축구에 재질이 있는 우수한 중학교 선수들이 고등학교에 축구부가 없어 타 시도로 전출되고 있었으며, 성남시는 신생도시로 시를 대표할 만한 운동부가 없었다.  마침 풍생고등학교에 중앙대학교 축구선수 출신 지성길 선생이 부임하였고, 그해 성일중학교 축구선수(현 중대부고)들이 축구부를 창단하면 진학하겠다고 희망해 왔다. 이에 축구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인연을 갖고 있던 홍사흥 교장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축구부 창단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단은 지역사회의 사기진작은 물론 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울러 전국대회 출전을 통해 단결력과 애향심, 애교심을 심어주는기폭제가 되었다.

 

 1981년

 

 축구부 지도자 개편이 있었다. 창단 감독인 지성길 선생은 중학교 축구부 창단을 위하여 중학교로 전출하였고, 후임으로 洪思興 교장과 동문 관계인 전국가 대표팀 감독이었던 함흥철 감독이 초빙되어 6월부터 선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는 선수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열과 성의를 다하는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것이 축구부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했다. 각 매스컴에서도 풍생고등학교 축구부를 대대적으로 소개하여 풍생 축구부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역사회 인사들 사이에서 축구부 후원회 구성에 대한 관심과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또한 洪思興 교장이 한국 중.고축구연맹 회장으로서 싱가폴에서 개최되었던 아시아 쥬니아 축구선수권대회(제5회 Lion-City Cup대회)에 한국팀 단장으로 대표 선수를 인솔하여 참가하였다. 이 대회 참가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하고 귀국하여 풍생 축구의 미래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였다.

 

 1982년

 

 풍생축구부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한 해였다.

함흥철 감독후임으로 최만희 감독이 2월에 부임하여 풍생 축구는 새로운도약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는 청소년 대표선수, 중앙대학교 축구팀 주장, 국민은행 선수생활을 거쳐 남강고교에서 지도자로 출발한지 1년 만에 풍생고등학교 축구부를 맡았다.

그는 "오로지 축구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석사 출신 지도자로 사생활을 뒤로한 채 눈부신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 결과 부임한 첫 해, 축구 창단 2년만에 88올림픽유치기념 제1회 KBS배 고교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전국대회 4강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풍생의 축구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매스컴과 축구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지역 사회 후원도활성화되었다. 축구부 후원회는 성남시 국회의원 오세응의원을 회장으로, 총무로 성남시어머니합창단 단장인 전옥녀 여사를 선출하였다. 그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후원기금의 모집,심석 김영배 화백의 초대작품전시회 모금 등은 축구부 운영에 큰 도움을 주었다.

 

 1983년

 

전국대회 8강에 두 번이나 올라갔지만 입상을 못한 해였다. 그 해에 청주에서 TV 중계된 제2회 KBS배 춘계 전국 중고축구대회가 있었는데 당시 최강이었던 영등포공고와 맞붙게 되었다.   우리 선수들이 내용면에서 상당히 우세한 경기를 펼치면서도 득점을 못한 채 아슬아슬하게 끌고 나가다 경기종료 30초를 남기고 진경식 군의 실수가 자살골이 되어 1:0으로 패한 일도 있었다.

 

 1984년  

 

 창단이래 최고의 전력을 갖춘 때였다. 그러면서도 안타깝게 입상을 못하다가 시즌 마지막 대회인 제39회 청룡기 쟁탈 전국 중고축구선수권대회(10월)에서 겨우 4강에 입상하였다.

 이 해에 일본 시미즈시와 자매결연을 맺게 되어 한일고교 친선축구 교환경기가 시작되었다. 시미즈시 고교 선발팀이 3월에 내한하여 성남 공설운동장에서 2회에 걸친 경기를 하였고 풍생축구는 1승1무를 기록하였다.

 

 1985년  

 

창단 5년만에 전국을 제패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전국대회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조선일보사 주최 제40회 청룡기쟁탈 전국중고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그때 KBS TV와 MBC 라디오에서 중계 방송 되었는데, 각 신문에서도 "풍생 축구 王中王 올라" "돌풍 풍생 전국제패"라는 타이틀로 대서 특필되었다. 이 대회에서 주장인 오성민 군이 최우수 선수상을, 최만희 감독이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경기 내용은 1회전에서 수도공고를 2:0으로, 2회전에서 대신고를 1:0, 3회전에서 축구명문 한양공고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4:3, 준결승전에서 강릉상고를 3:1로 제치고 결승전에서 숭실고를 2:0으로 제압하여 전국 강호들을 모두 물리쳤다.

 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FW 김훈수군은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며 국가대표팀 박종환 감독에게 스카웃되어 서울 시청팀에 입단했다.

 축구부 창단 5년만에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풍생 돌풍을 일으킨 저변에는 최감독의 끈질긴 투지와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다. 그는 체력과 신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탄탄한 팀웍을 다져 세트플레이를 완벽하게 활용했다. 또한 추운 겨울 남한산성에서 산악훈련을 실시해 체력과 정신력을 키웠고, 또 탁월한 추진력과 친화력으로 성남 공설 운동장의 인조 잔디구장을 수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협조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풍생 축구의 영광이 있기까지는 3,000여 풍생 가족의 열화 같은 성원과 풍생을 아끼는 성남 시민들의 깊은 관심과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삼영 전자 주식회사 변호성 회장, 경기교통 김충호 사장 그리고 성남시 체육회 마광수 국장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을 빠뜨릴 수 없다. 그리고 한 사람 당시 누구보다도 어려운 일을 맡고 있던 사람은 朴鍾大 부장(現풍생고 교감)이다. 豊生 축구를 말할 때에 그는 언제나 숨어있는 이름이다.

  풍생 축구가 전국을 제패한 영광으로 들떠 있을 때 그는 위에서 선수들이 교만하지 않도록 다독 거렸으며 풍생 축구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는 넘어지지 않게 받치는 버팀돌이 되었다.

  그는 남을 말하면서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인격과 성실성으로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한 번도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큰형같은 듬직함으로 풍생 축구를 이끌어온 사람이다.

 풍생 축구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한국 축구계의 새별로 떠오른 것은 洪思豊 이사장의 지대한 관심과 洪思興 교장의 과감한 뒷받침, 그리고 朴鍾大 부장의 탁월한 관리와, 崔滿熹 감독의 불타오르는 투지와 기술, 전략등 지도력을 빠뜨릴 수 없다.

 

1986년

 

 전년도 우승에 이어 제41회 청룡기 쟁탈 전국 중고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의 영광을 안음으로써 풍생의 이름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으며 축구 명문 고교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경기 내용은 1회전에서 고창고에 4:0, 2회전에서 동대부고에 2:0, 3회전에서 한양공고에 1:0, 준결승전에서 문일고와 연장전 끝에 승부킥으로 3:2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올랐다. 결승전(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이해 초고교급의 전력을 가지고 이미 3관왕을 차지한 명문 대신 고교와의 대전에서 3:1로 패하여 아깝게도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1987년

 

첫 대회 출전은 제6회 춘계 KBS배 전국 중고 축구대회(3월9일)였다. 이 대회에서 본교는 4강에 올라 창단이래 시즌 첫 대회에서 입상하기는 처음이었다. 또한 9월30일 폐막된 제42회 중고축구 선수권대회에서는 전년도 준우승에 이어 3위에 입상하였다. 창단이래 한해에 두 번 4강에 오르는 전적을 쌓았다.

 

1988년

 

첫 번째 대회인 제7회 KBS배 춘계 중고축구대회(3.2∼3.10)에서 포철공고를 제치고 결승에 올랐으나, 동래고에 2:1로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또한 강릉에서 개최된 KBS배 추계 대회에서는 창신고교를 누르고 결승에 올랐으나,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한양공고에게 승부차기까지 가는 경기 끝에 3:0으로 패하여 2번에 걸쳐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매스컴에는 풍생의 플레이가 돋보였다는 찬사와 함께 황중철 군이 초고교급 스타로 부각되었고 강경수군이 주니어(16세 이하)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최만희 감독이 주니어(16세 이하)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하여 풍생 축구의 명예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1989년

 

창단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해였다. 제8회 KBS배 추계전국 중.고 축구대회(8.4∼8.13강릉)에서, 1회전-부전승, 2회전에서 장성고교와 전.후반 무승부로 13명까지 승부차기를 하여 9:8로 힘겨운 승리를 한 후 정명고교를 누르고 4강에 올랐으나 준결승전에서 안양공고에 타임아웃 30초를 남겨놓고 통한의 실점을 하여 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또한 제22회 대통령금배 전국고교 축구대회(6.3∼6.11)에서는 현대고교를 2:0으로 제치고 결승전에 올라, 다시 정상도전을 노크했으나 거제고에 2:0으로 패하여 동대문운동장 응원단 함성의 보람을 뒤로한 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제44회 전국 중.고 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1회전 중동고에 2:0승리, 2회전 남강고에 2:0승리, 3회전 숭실고에 2:0승리, 준준결승전에서는 대륜고에 2:0승리, 준결승전에서 광운공고에 2:0승리로 축구의 명문 강팀들을 5게임 연속 2:0으로 이기는 진기록을 세우면서 결승전에 올랐다. 전반 39분 김영삼의 패스를 받은 박유희가 수비 2명을 제치고 멋진 결승골을 터트려 2번째로 전국을 제패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 대회에서 전국대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무실점 우승(11골 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GK강경수가 감투상을, 유익상이 득점상(5골)을, 김영삼이 최우수선수상을 받으며 고교축구 최고의 스타로 매스컴의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최만희 감독이 지도자상을 수상하였다. 풍생축구가 전국 최강 대열에 오른 해로 최만희 감독은 "축구인의 밤" 행사에서 올해의 우수지도자상을 받았으며, 홍사흥 교장도 공로패를 받았다.

 

 1990년

 

창단이래 성적이 가장 저조한 해였다. 지금까지는 쫓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쫓기는 입장으로 바뀐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해였다. 남이 잘되면 시샘이라도 하듯이 모든 팀은 풍생을 견제하는 가운데 무관의 설움을 겪으며 불운한 한해를 보내야만 했다.

  그렇지만 최만희 감독이 청소년 국가대표팀 지도자로 발탁되어 남북 단일팀 코치로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출전과 남북축구 교환경기에 참여함으로써 풍생 축구부의 발전과 함께 유능한 지도자로서 촉망을 받으며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해였다.

  그러나 풍생 축구부의 3대 감독(1982년부터)으로 풍생 축구가 전국 최강에 오르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희생으로 팀을 지도해온 최만희 감독이 숭실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전출하였다.(현재는 울산대학교 감독을 거쳐 전북 다이너스 프로축구단 감독)

 

 1991년

 

 풍생 축구팀 4대 조관섭 감독이 부임하였다. 조관섭 감독은 청소년대표를 거쳐 중앙대학교 선수시절 대학선발 대표선수로 활약했고, 기업은행 축구단에서는 실업선발 대표선수 및 주장을 맡는 등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풍생 중학교에 부임하여 2년간 지도자 경험을 쌓고, 고등학교 감독을 맡게 되었다.

 전년도 무관의 아픔을 톡톡히 겪어야만 했던 축구부는 이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짧은 역사속에서 축구 명문의 전통을 이루어 다른 팀들의 심한 견제를 집중적으로 받게 되고 또 전임 감독이 이루어놓은 실적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그러나 창단이래 경기도 대회에서는 매년 우승은 해왔지만 전국체전 대표로는 한번도 선발된 적이 없었던 풍생은 조관섭 감독이 팀을 맡으면서 처음 출전한 대표 선발전에서 제72회 전국체전 출전권을 획득,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면서 산뜻한 출발을 하게 되었다.

 조감독 부임 첫 해 제46회 전국 중.고 축구선수권대회(9.5∼9.13)에서, 1회전 진주상고에 5:1승, 2회전에 부평고에 승부차기 6:5승, 3회전 한양공고에 3:1승, 준결승전에서 통진종고에 연장전 끝에 3:2로 승리하면서 기라성 같은 전통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결승전에 올라 양교의 열띤 응원전속에서 중동고와 결승전을 맞이하였다.

 중동고교는 축구 명문고교로 당시 남북 단일 청소년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초고교급의 서동원군이 포진한 막강한 팀이었다. 그러나 전·후반 2:2무승부로 연장전까지 치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손에 땀을 쥐는 공방전 끝에 결국은 5:4로 승리하여 전국 중·고 축구 선수권대회에서만 3번째 정상을 차지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 대회에서 안성수가 득점상(4골)을 박광연이 최우수선수상을, 조관섭 감독이 지도자상을 받으며 동대문 금잔디 구장에서 헹가레를 받는 기쁨을 누렸다. 또한 임방현은 주니어 대표로 선발되어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1992년

 

 제73회 전국체전(:대구)

 

경기도 대표로 출전하여, 경북대표인 포철공고와 결승전에서 1:0으로 분패 준우승을 함으로써 경기도가 종합우승을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제47회 전국 중.고 축구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문일고에 3:1로 패하여 3위에 입상하였다.

 

 조관섭 감독은 지난해의 좋은 전적으로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아 17세이하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태국에서 열린 코카콜라컵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하여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고, 윤중희군 역시 청소년대표 수비수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 학교의 명예와 국위를 선양하였다. 또한 고교 축구부 창단 멤버 홍성재가 코치로 부임하였다. 

 

 1993년

 

 제48회 전국 중.고 축구대회(9.16∼9.24)

 

 인천 운봉공고와의 준결승전에서 3:2로 역전패하여 3위에 그쳤다.

 

 홍성재 코치가 체육교사로 정식 발령을 받았으며, 조관섭 감독은 한국 중.고축구연맹 이사로 선임되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었다.

 

 1994년

 

 제3회 금석배 전국학생축구대회(:전주)

 

1회전 순천고에 3:1승리, 2회전 전주공고에 4:0승리, 준결승전에서 영등포공고에 4:2승리, 결승전에서 한양공고에 2:1로 패하였다. 이 대회에서 1학년 고민기가 득점상(5골)을 받아 스타 탄생을 예고하였고 김종천군이 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조관섭 감독은 국가대표 2진 코치를 맡아 중국 상해에서 열린 국제 축구대회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함으로써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선진축구 기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10월 15일부터 29일까지 독일 축구연수를 다녀오는 등 축구 발전을 위해 강력한 의지를 보인 바쁜 한해였다.

 

 1995년

 

 제28회 대통령금배 전국고교 축구대회

 

 배재고교를 2:0으로 제치고 준결승전에서 이천실고에 2:1로 패하여 3위에 머물렀지만 석연치않은 심판 판정에 아쉬움이 컸던 경기였다. 또한 조관섭 감독은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었으나 본교 축구부 지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대표팀 코치직을 사퇴하고, 풍생 축구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으나 더 이상의 성적은 거두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오세웅 선수가 아시아 학생 선수권대회 대표선수로 크게 활약하였으며 양현정, 서광운, 이유성, 서기호가 주니어 국가 대표 상비군에 선발되었다. 

 

 1996년

 

 제23회 대한축구협회장배 전국 중.고교 축구대회(8.9∼8.16: 부산)

 

 창단이래 4번째 전국을 제패하였다. 이 대회는 1982년(8회대회)지방 경기로는 처녀 출전하였다가 영남상고에 4:0으로 대패하는 수모을 당한 대회였다. 특히 이번 대회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중요한 고비마다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준 동래고를 준결승전에서 1:0으로 격파하였다.

 우승에 이르기까지 5경기를 치르는 동안 1회전 경남공고에 5:0승리, 2회전 보인상고에 2:0승리, 3회전 중동고에 3:0승리, 준결승전은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는데 후반 7분 크로스바 우측 20m프리킥을 고민기(주장)가 그림 같은 골로 연결시켰다. 결승전에서는 동아고를 3:0으로 가볍게 물리쳤다. 이 대회에서 고민기가 득점상(5골)을, 김길식이 최우수선수상을, 조관섭 감독이 지도자상을 받았으며 모든 선수가 무더운 여름 날씨에 강인한 정신력으로 최선을 다하였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김길식(10번)군과 이경춘(GK)군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리고 1989년 44회 전국 중.고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무실점으로 우승한 이후 다시 한 번 5경기를 치르는 동안 14득점을 올리며 무실점으로 우승을 하였기 때문에 5년만의 우승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번의 우승은 풍생 학원 창학 30주년을 맞아 이룩한 성과이기에 대단히 값진 것이었다. 

 

 1997년

 

 제30회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6.18∼28: 효창)

 

1회전 문일고 1:1무승부, 승부차기 3:1승리, 2회전 창신고는 이종찬, 조성용, 황정훈, 박대동 선수의 골로 4:1로승리,3회전 통진종고 0:0무승부, 승부차기 4:2승리, 준준결승에서 서울의 영등포공고와 0:2로 져 또 한번 8강에 머물러야 했다.

 

 도 교육감기(6.30∼7.5: 평택)

 

 1회전 파주공고 5:0승리, 2회전 수원공고 4:2승리, 준결승 정명고에 황정훈 선수의 결승골로 1:0승리, 결승전에 부천 정명고에 먼저 선취골을 내주었으나 박승광, 이종찬, 황정훈 선수의 골로 3:1로 역전승 우승을 하였다.

 

제33회 추계한국남녀중.고 축구연맹전(7.25∼8.4: 울산)

 

1회전 부산상고에 3:2로 패하고 말았다.

 

 제24회 대한축구협회장기(8.14∼22: 부산)

 

 전년도 우승팀으로 참가하여 1회전 하남고 3:0승리, 2회전에 거제고에 0:0무, 승부차기 4:3으로 패하고 말았다.

 

 제52회 전국 남녀 고교 축구선수권대회9.19∼27: 효창)

 

 1회전 영등포공고와 2:2무승부, 승부차기 4:3으로 승리하였으나, 2회전 용문고에 1:1무승부, 승부차기 4:3으로 패하고 말았다. 제78회 전국체육대회(10.9∼  마산) 경기도 대표로 출전한 풍생고등학교는 1회전에 부산광역시 대표 동래고에 전반 시작 5분만에 이동근 선수의 2:1패스에 의한 슛으로 선취점을 올리고 후반시작 1분만에 전정현 선수와 교체로 들어간 송현중 선수의 헤딩골로 2:0으로 리드한운데 후반30분 1골을 허용했으나, 끝까지 선전하여 2:1로 승리, 2회전은 전국체전 개최지 마산의 홈팀인 마산공고와의 시합으이었으나, 편파 판정으로 2:1로 패하여 8강에 머물러야했다.

 

 조관섭 감독은 브라질에서 열린 청소년 축구대회에 17세 코치(본교 선수인 박승광 선수와)로 참가하여 우승을 일구어 지도력을 또 다시 인정받았다.  

 

 1998년

 

 '98 백운기 전국 우수고교 초청 축구대회(2.6∼12 전남광양)는 동계훈련 겸 한해를 평가하는 대회로 1회전 대전상고 3:1승, 2회전 순천고 6:2승리, 준준결승 경신고 4:1승리(이병화 선수 헤트트릭 기록), 준결승에서 학성고 1:0승리, 결승전에서 부평고에 3:0으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제34회 한국 춘계남녀 중.고 축구연맹전은 1회전에서 진주상고에 3:1로 져 충격을 주었다. 제36회 도협장기쟁탈 축구대회(4.13∼17 동두천) 참가 1회전 파주종고 2:0승리, 2회전 능곡고 1:0승리, 준결승 대성고 3:1승리, 결승전은 수원공고와 승부차기 끝에 3:1로 지고 말았다. 심판의 편파 판정에 게임이 15분 정도 중단되는 사고도 있었다.

 제36회 부산 MBC배 전국 고교 축구대회에서는 1회전에서 보인상고에 2:1로 패하고 말았다. 제7회 금석배 전국학생축구대회(5.29∼6.5 전주) 1회전에서 복병 중대부고에 2:1져 아쉬움을 남겼다. 제34회 추계 한국남녀 중.고축구연맹전(8.1∼11 서울) 1회전 태성고에 김용규, 송현중, 이병화, 박승광, 박광민 선수의 골로 5:0승리, 2회전 한양공고와의 경기에서는 송현중 선수의 골로 1:1무승무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승리, 3회전 보인상고는 부산에서 패한 설욕전으로 송현중 2골, 이성재, 강연석 선수의 골로 4:1로 대승을 거두었다. 준준결승전에서는 수원공고와 0:0무승부를 이룬 후 승부차기 4:2로 패해 8강에 머물러야 했다. 조관섭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위촉되어 한국 축구발전에 더욱 기여하게 되었다.

 

 1999년

 

 제35회 춘계 전국 남녀 중·고 축구연맹전

 

1회전에서 후반 20분경에 장신 스트라이커 이병화 선수의 헤딩골로 운봉공고에 1:0으로 승리, 2회전에서 올해 우승후보로 지목되었던 안양공고에 주장 조성용선수의 골로 1:0승리, 3회전에서 울산 학성고와 비가 내리는 가운데 0:0무승부를 기록, 승부차기 끝에 4:3승리, 그러나 준준결승전 서울 보인상고와의 경기에서 전후반 득점없이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제4회 무학기 전국 중.고 축구대회('99.4.15∼4.23마산,창원)에서는 '96년 제23회 대한축구협회장기 쟁탈 축구대회 우승(부산)이후 3년만에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본 대회는 월드컵 방식으로 각 시도에서 엄선된 24개팀이 6개조로 나뉘어 리그전으로 경기를 하여 각조 2팀으로 16강을 선발하고 나머지 4팀은 각 조에서 와일드카드로 선발하여 16강전부터는 토너먼트 경기로 치루어 졌다. 경기 전적을 살펴보면 1회전 울산 현대고에 1년생 스트라이커 장남석 선수의 결승골로 1:0승리, 2회전에서는 홈팀인 마산공고와 작전상 0:0무승무, 3회전은 중대부고와 1:1무승무로 조2위로 16강 진출하였다. 16강전에서 전 국가대표 박이천 감독이 이끄는 부천 정명고에 이성재 선수 2골, 이인성 선수의 골로 가볍게 3:1승리, 준준결승에서 그동안 전국 주요대회에서 발목을 잡았던 강호 부평고를 이성재선수의 2골로 승리하였다. 준결승전에서는 거제고를 맞아 승부차기 끝에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우리 선수들은 빠른 몸놀림으로 경기를 주도했고, 후반 종료 몇 분을 남기고 1학년김근철 선수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이겨 대망의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에 주장 조성용 선수가, 최다득점상에 김근철 선수가 GK상에 이정형선수, 수비상 강연석선수, 그리고 조관섭 감독이 지도자상을 수상하였다.

 

 제22회 교육감기 쟁탈 도내 축구대회(6.14∼19용인) 겸 제80회 전국체전 대표 선발전2차 평가전

 

1회전 신한고 1:1무승부, 승부차기 3:2승리, 2회전 이천실고와의 경기에서는 김근철, 장남석 선수의 골로 2:0승리, 준결승전 하남고 이인성 선수의 2골로 2:1승리, 결승전은 용인의 홈팀인 태성고와의 경기에서 이인성 선수와 장남석 선수의 골로 가볍게 2:0으로 우승을 하였다. 본 대회 최우수 선수상에는 수비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인 이강일 선수가, 득점상에는 이인성 선수, 지도자상은 유성우 코치가 수상하였다.

※ 제80회 전국체전 대표 선발전 3차 평가전 우승, 참고로 1차 평가전은 무학기 대회 참가로 불참하였으나 2차 대회 우승으로 1차 우승팀 신흥고등학교를 3:0으로 승리하여 경기도 대표로 선발되었다

 

 제32회 대통령금배(6.3∼11 안동)전국 축구대회

 

1회전에 강동고에 박광민, 조성용 선수의 골로 2:0으로 서전을 장식하였고, 2회전은 군산 제일고와 경기 장남석, 김근철 선수의 골로 가볍게 2:0승리하였다. 8강전에서는 강릉상고와 2:2 접전을 벌였으나 승부차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제8회 금석배 전국축구대회(6.23∼30 : 익산)

 

1회전에 안동고에 김근철선수의 골로 1:0승리, 2회전에서 홈팀인 이리고와의 경기는 일방적인 심판의 편파 판정결과 2:0으로 지고 말았다.

 

 제35회 추계 한국 남녀 중.고축구 연맹전(8.27∼9.4: 파주)

 

1회전 대구공고와의 대결에서 후반전 35분까지 3: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1학년 김근철 선수가 상대편 골키퍼가 손에 들고 있던 볼을 빼앗아 골로 연결켰다. 이 골로 3:3무승무를 이룬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 2회전은 진주상고를 맞아 박광민, 이병화, 장남석, 김근철 선수의 릴레이 골로 4:1로 가볍게 승리, 3회전 수도공고전은 이성재, 이강일 선수의 골로 2:1승리, 준준결승에서는 거제고를 맞아 김근철 2골, 장남석2골, 이성재 1골로 5:0 대승을 거두었다. 준결승전에는 경신고를 맞아 첫 골을 먼저 내주었으나, 저력을 발휘하여 김근철, 이성재 선수의 골로 역전승을 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은 3:0으로 패하고 말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 대회에서 감투상은 이성재, 수비상은 문순호, 득점상에는 1년생 김근철, 장남석 선수가 5골로 공동 수상하였다.

 

 제54회 전국 남.녀 고교 축구 선수권대회(9.9∼9.17: 효창)

 

추계 연맹전참가로 선수들의 체력이 완전히 회복이 안된 상태에서 출전하여 힘든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1회전 용문고 0:0무승부, 승부차기 5:4승리, 운봉공고 2:0승리, 정명고 1:1무,승부차기 4:2승리, 준준결승 부평고 0:0무승부, 승부차기 5:4승리, 준결승전 청구고와는 연장전 끝에 골든골을 허용해 3:2로 패하고 말았다.

 

 울산 MBC배 전국 고교 축구 왕중왕전(9.27∼30: 울산)

 

부산, 대구, 진주, 마산 MBC배에서 우승 준우승을 한 팀만 초청되어, 울산서부구장에서 열린(국가대표팀 전용 훈련장)1회전 충남 신평고와의 경기에서는 이성재 3골, 김근철 2골, 장남석, 조성용, 권민철 선수가 각각 한 골로 8:1대승을 거두어 우승을 예견한 경기였고, 2회전 군산 제일고와는 먼저 선취골을 내주었으나 선수들이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가 김근철, 박광민 선수의 골로 2:1 역전승을 하였고, 준결승전서 울산 홈팀인 현대고에 김근철, 박광민 선수의 골로 2:0으로 가볍게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하여 역시 홈팀인 학성고와 우승을 겨루게 되었다. 학성고는 '99년도에만 2번 경기를 하여 2번 모두 우리가 승리했던 전적이 있어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승전은 울산 공설운동장(현대프로팀 전용구장)에서 MBC TV가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가운데 펼쳐졌다. 김근철 선수의 선취골과 조성용 선수가 골키퍼가 전진해있는 것을 보고 날린 50M 장거리 슛이 성공하여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상대의 반격에 한 골을 내주어 2:1, 그러나 후반 종료 5분을 남기고 김근철 선수가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 3명을 제치고 골로 연결시켜 3:1로 또 한 번의 우승을 일구었다.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은 3학년에 재학중인 주장 조성용 선수, 최다 득점상은 김근철 선수가 5골로 수상하였으며 조관섭 감독이 지도자상을 수상하였다.

 

제80회 전국체전

 

1회전 부산상고와 2:2무승부, 승부차기 4:3승리. 2회전은 울산 학성고와 경기에서 3전4기에 도전하는 학성고에 1:0으로 패해 8강에 머물렀다.

1999년은 풍생고등학교 축구부 창단이래 가장 좋은 성적 (우승2회, 준우승, 3위, 8강 3번)을 거둔 해였다. 

 

 2000년

 

 제36회 춘계 한국 남녀 중.고 축구연맹전(3.12∼18)

 

동계 일본 전지훈련에서 습득한 4:4:2 전술을 처음으로 선보인 대회로 1회전에 능곡고등학교를 맞아 2학년 장남석 선수의 헤트트릭과 이인성선수의 골로 4:0으로 완승, 4:4:2 전술을 극대화 한단계 높은 기량으로 완벽한 경기였다. 2회전 재현고는 김영철, 박광민선수의 골로 2:0 승리. 3회전((16강)은 전남의 신흥강호 광양제철고와 경기에 5:3으로 패해 합동훈련, 동계훈련 등 약 4개월 동안의 노력을 아쉽게 했다.

 제5회 무학기 전국 중.고교 축구대회(4.20 ∼5.1 경남 창원)는 80개팀이 참가(4팀이 한조, 20개조) 예선리그를 거쳐 각조1위 20개팀이 32강에 먼저 진출하고 12개팀은 조2위팀이 와일드카드로 진출, 32강 확정 후 토너먼트 경기로 우승팀을 가리는 대회로 예선 1회전 원주공고를 맞아 장남석, 이규석 선수의 연속골로 2:1로 승리했다. 예선 2회전 광운전자공고에서는 전반18분 김근철 선수의 코너킥을 박광민 선수의 오른발 아웃사이드 논스톱으로 방향만 바꾸는 슛으로 선취점을 얻고, 후반21분 강성남의 패스를 받은 김근철 선수가 수비 2명을 제치고 슛을 성공시켜 2:0승리하였다. 예선 3회전 부산상고는 먼저 2승으로 1위를 확정, 주전선수 대부분을 뺀 상태에서 여유있게 1학년을 기용하여 3:2로 패하고 말았다. 32강전 동래고는 춘계연맹전 준우승팀으로 전반전을 리드했으나 득점으로 연결치 못하고 후반전 시작 50초만에 김영철선수의 선취골로 앞서다 후반8분 동점골을 허용 1:1로 경기를 마치고 승부차기에서 7:6으로 승리하였다. 16강전 경희고의 장신선수들을 맞아 후반8분 장남석 선수의 중거리 슛으로 선취골을 얻어 1:0승리, 8강전 청주상고와는 0:0무승부를 기록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 4강에 진출하였다.

 준결승전 대구공고와의 경기는 대회에서 게임 내용이 최고에 달했던 경기였다. 경기 초반부터 짧은 패스에 의한 팀 플레이로 완벽하게 리드한 경기였다. 연장 전반 8분 우측 페널티 에어리어를 돌파한 이용찬 선수의 패스를 받은 김근철 선수의 골든골로 승리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은 학성고를 맞아 전반 시작 1분만에 김치우선수의 코너킥을 김근철 선수가 헤딩 슛한 볼이 상대 수비수 머리를 맞고 득점이 되어 1:0으로 리드한 가운데 전반 28분 우리편 수비수가 헤딩 백패스 한 볼이 상대편 스트라이커에 인터셉트되어 동점골을 허용 1:1부승부로 전후반 경기를 마치고, 연장전에서도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승부차기 끝에 아깝게 4:3으로 패한 아쉬운 결승전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2학년 김근철 선수가 감투상을, 노현민  선수가 어시스트상을 수상하였다.

 

 울산MBC배 제2회 전국고교 축구 왕중왕전

 

MBC-TV 전국생방송  (10/4~6,울산서부구장 및 공설운동장)

2000학년도 전국고교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제2회 울산 MBC배 전국 고교축구 왕중왕전에서 1999년 우승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풍생고등학교 축구팀은 10월 4일 울산 서부구장에서 1회전 대구 MBC준우승팀 경남 창원기계공고와의 대전에서 전반 36분 김근철 선수의 대간선 패스를 박광민 선수의 헤딩슛으로 첫 골로 포문을 연뒤 시종 우세한 경기로 리드하다 후반 35분 김근철 선수의 대각선 패스를 장남석 선수가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오른발 슛을 성공 2:0 완승을 거두었다.

 울산 홈팀인 현대고등학교와의 준결승에서는 후반 14분 하프라인 좌측 앞에서 얻은 프리킥을 김치우 선수의 왼발 센터링을 문전 쇄도하던 스트라이커 장남석 선수가 상대편 골키퍼가 나온 것을 보고 살짝 키를 넘기는 재치 있는 헤딩슛으로 성공시킨 것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승리하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은 서울체육고등학교를 맞아 전반 13분 김남석 선수의 패스를 받은 주장 박광민 선수의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개인 돌파와 상대편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오른발 아웃프론트로 가볍게 차 넣어 쉽게 득점하여 승리하는 듯 했다. 전반전은 1:0으로 마쳤으나, 후반 6분 동점골을 허용하고, 후반 13분 상대편 골키퍼가 롱 킥 한 것을 스피드가 빠른 상대 스트라이커가 골로 연결 2:1로 역전되고 말았다. 그러나 후반 30분 장남석 선수의 감각적인 패스를 문전 쇄도하던 김근철 선수가 상대 골키퍼와 1:1상황에서 페널티킥을 유도 장남석 선수의 침착한 골로 연결시켜 2:2무승부를 만들고 연장전에 돌입했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고 결국 대회 규정에 따라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5:3으로 승리해 대회 2연패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에 2학년 김근철, 최다득점상에 2학년 장남석, 최우수수비상에 2학년 김규석 선수가, 그리고 최우수지도자상에을 조관섭 감독이 수상하였다.    

 

 2001년

 

 제37회 춘계 한국 남녀 중.고 축구연맹전(3.14∼28)

 

2001년 첫 대회인 춘계연맹전에 88개팀이 출전, 각 4팀이 22개조로 편성 예선 1,2위팀이 본선에 진출하는 대회방식으로 풍생고등학교 축구팀은 예선 리그 1차전에 충주상고 김근철, 장남석 선수의 골로 2:0승, 리그 2차전 부산상고에 후반3분 선취골을 내주고 장남석 선수의 35M중거리 슛으로 동점골을 만들고 1:1로 무승부, 리그 3차전 인천의 운봉공고와 경기에서 후반 교체 멤버로 들어간 1학년 윤찬구 선수가 14분경 오른발 인스텝(드롭)슛팅으로 득점 1:0으로 승리하여 2승 1무로 조1위로 32강에 진출하였으나, 서울 대신고에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후반24분 골을 허용하여 1:0으로 분패하고 말았다.

 

 제39회 도 협회장기 겸 제82회 전국체전 1차 평가전 우승(4.2 ∼4.6)

 

1회전 수원공고 2:0 낙승, 2회전 청평공고와의 승부차기 끝에 3:1승리, 결승은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통진종고와 대전에서 2학년 김영철 선수가 2골을 넣어 4:2로 우승을 했다.

김치우 선수가 최우수선수상을, 우수GK상을 황인성 선수가, 지도자상을 조관섭 감독이 수상했다.

 

 제6회 무학기 전국 중·고교 축구대회(4.17 ∼4.23)

 

총 48개팀이 참가 12개조로 나누어 상위 2팀, 와일드카드 4팀을 선발 28강전부터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대회로예선 1회전 거제고와 전반 19분 거제고 6번 선수의 롱 드로인으로 인한 패스 연결로 선취골을 내준 뒤, 후반 10분 이종현 선수의 반칙으로 PK허용 추가 득점을 내주어 2:0으로 패했다. 예선 2차전 남강고(진주 MBC 준우승팀)를 맞아전반 11분 김근철 선수의 패스를 장남석 선수의 헤딩 득점 전반 27분 김근철 선수의 직접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온것을 김영철 선수의 헤딩 득점, 후반30분 상대편 선수의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김근철 선수가 성공시켜 3:1로 승리했다. 예선 3회전에서 금호고를 맞아 후반 3분 김남석 선수의 패스를 김영철 선수의 인스텝 슛으로 득점, 후반 25분 상대 파울로 얻은 직접프리킥을 김근철 선수가 득점 2:0으로 앞서다가 후31분 헤딩골을 허용했으나 2:1로 승리하여 2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28강전 수원공고를 맞아 전반 7분 김근철 선수가 25m 직접 프리킥을 시도하였으나 상대편 골키퍼가 잡았다 놓쳤고, 이것을 장남석 선수가 득점시켰다. 전반18분 이종현 선수의 롱킥을 장남석 선수가, 전반 25분 장남석 선수의 사이드 센터링을 김영철 선수가, 후반 33분 김영철 선수의 센터링을 장남석 선수가 득점으로 연결시켜, 이 경기에서  장남석 선수가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16강전에서는 중동고를 맞아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후반31분 상대의 골을 맞아 0:1로 분패하였다.

 

 수원 월드컵 개장기념 자매도시 국제청소년 축구대회 3위(4.13 ∼5.20)

 

 A조 : 수원고교, 루마니아, 중국, 스페인, 호주

 B조 : 풍생고교, 멕시코, 일본, 인도네시아, 터어키.

 

 9개국 10개팀이 참가 각조 1,2위팀이 크로스 경기로 국제 방식을 채택하였다. 예선 1회전 멕시코와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고(장남석 2골, 윤찬구 1골), 예선 2회전 터키에 7:0으로승(장남석 3골, 윤찬구 2골, 김근철, 이주섭 각 1골), 예선 3회전 인도네시아와의 경기도 8:1로 승리(장남석 4골, 윤찬구, 김근철, 김영철, 김치우 각 1골)했으나, 수원고를 맞은 준결승에서 2:1로 패했다. 3,4위 전에서는 일본팀을 맞아 2진을 기용하고도 4:1로 승리하여 3위를 차지했다.

 

 제34회 대통령금배 전국 고교 축구대회 8강(6.7 ∼6.11)

 

전국 지역예선을 거친 32개팀이 참가하여, 예선리그를 거쳐 16강전부터 토너먼트 경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예선 1회전 경남정보산업고를 맞아 전반 40분 김영철 선수의 코너킥을 김근철 선수가 백헤딩으로 연결하고 윤찬구 선수 득점, 후반 39분 김치우 선수가 롱킥한 볼을 김영철 선수가 수비수 2명을 돌파 추가 득점하여 2:0으로 이겼다. 예선 2회전 이리고를 맞아 전반 26분 선취골을 내주었으나, 전반 39분 김근철 선수의 볼을 장남석 선수가 가볍게 득점, 후반 시작하자마자 김근철 선수가 센터링한 볼을 박형근 선수가 득점, 후반1분 30초 장남석 선수의 패스를 강희택 선수가 득점, 후반 35분 이주섭 선수의 패스를 김영철 선수가 득점하여 4:1로 이겼다. 16강전에서는 남강고를 맞아 후반 21분 김근철 선수의 패스를 김영철 선수가 득점으로 연결시켰으며, 후반 34분 김치우 선수의 센터링을 박형근 선수가 득점하여 2:0으로 승리하였다. 8강전 금호고와의 경기에서 전반 22분 김치우 선수센터링이 상대 수비선수 손에 맞아 핸드링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을 김근철 선수가 직접 득점에 성공시켰으나, 전반 28분 동점골 허용하였고, 후반 30분 상대편 선수의 센터링을 걷어 내려다 자책골 허용, 후반 32분 사이드에서 김근철 선수가 수비수 1명을 제치고 센터링 한 볼을  김영철 선수가 헤딩으로 득점하여 극적으로 2:2 동점을 이루었으나, 승부차기에서 4:1로 지고 말았다.  

 

 제 45회 청룡기 전국 중.고교 축구대회(6.17 ∼6.25)

 

전국 강호 30개팀이 10개조로 나누어 예선 경기를 치룬 후 16강전부터 토너먼트 경기로 진행되었다. 예선 1회전 순천고와 경기에서 전반 11분 김근철 선수의 프리킥을 장남석 선수가 볼 트래핑을 한 다음 침착하게 첫 득점에 성공했으나, 전반 23분 상대 프리킥 한 볼이 문전에서 우리 수비수가 자책골을 허용하여 전반을 1:1로 마감하였다. 후반 28분 오른쪽 코너킥을 김치우 선수가 센터링하고 반대편 김영철 선수가 헤딩으로 연결한 것을 박형근 선수가 수비수 등을 지고 오른발 터닝 슛으로 결승골을 득점하였다.

예선 2회전 부산 알로이시오고(소년의 집)와의 경기는 0:0무승부로 1승 1무를 기록하면서 조1위로 16강 진출하였다. 16강전 서울 배재고와 경기는 전반 8분 상대에게 먼저 선취골을 주고, 전반 26분 김영철 선수의 슛팅을 장남석 선수가 성공시켜 동점골을 만들고 전반 34분 사이드에서 김영철 선수가 센터링 한 볼을 윤찬구 선수가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이어 후반 19분 페널티 에어리어 지점에서 김영철 선수가 2:1패스로 득점, 후반 28분 추가골을 허용 했으나, 후반 30분 김근철 선수의 프리킥을 박형근 선수가 헤딩으로 연결해 4:2로 승리하였다. 8강전 부산상고를 맞아 전반 8분 사이드에서 김영철 선수가 센터링 한 볼을 장남석 선수가 헤딩으로 연결시켜 김근철 선수가 논스톱 발리슛으로 선취 득점하였다. 후반 33분 최동오 선수의 패스를 윤찬구 선수가 수비수 2명을 제치고 득점, 후반 36분 김영철 선수의 패스를 박형근 선수가 수비수 1명을 제치고 왼발 슛으로 득점함으로 3:0의 완승을 거두었다.준결승전 학성고 전반 9분 김근철 선수의 패스를 윤찬구 선수가 사이드 돌파에 이어 센터링 한 볼을 장남석 선수가 침착하게 득점하고, 후반 12분 김영철 선수의 드루패스를 윤찬구 선수가 득점, 후반 14분 한 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35분 김근철 선수의 드루패스를 윤찬구 선수가 추가 득점해 3:1로 승리했다.

결승전(부산 PBS-TV 중계) 동대부고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29분 장남석 선수의 볼을 교체 멤버로 들어간 박형근 선수가 선취점을 올리고, 후반 12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장남석 선수가  드루패스해 윤찬구 선수가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후반 23분 프리킥으로 헤딩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34분 최동오 선수의 롱킥을 장남석 선수가 침착하게 트레핑, 오른발 슛으로 득점 함으로 4:1로 승리하여 금년 대회 첫 우승의 감격을 안았다.

이 대회 지도자상은 조관섭 선생님이, 최우수선수상을 3학년 장남석 선수가, 최다득점상을  1학년 윤찬구 선수가 수상하였다.

 

 제 24회 도 교육감기 축구대회(6.26 ∼6.27: 파주)

 

1회전에서 광문고와 0:0 무승부,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하였으며, 2회전 안양공고와 시합에서는 전반 15분 김영철선수가 사이드에서 공간패스 한 것을 김근철 선수가 득점하였으나 후반 30분 동점골을 허용, 승부차기에서 10:9로 패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제 82회 전국체전 최종 평가전(8. 2) 평택시 서부 공설운동장

 

 "정명고 1: 0승 경기도 대표 확정"

 

 제3회 울산MBC배  전국고교 축구 왕중왕전 3연패(MBC-TV 전국 생방송 중계 8.30)

 

1회전 학성고전에서 4:2으로 승, 2회전 천안농고전 2:0승. 3회전 부산정보고와 0:0무승부, 4회전 동래고에 4:2승, 결승전 현대고전에서 3:2승을 함으로 대회 3연패를 기록했다. 김근철 선수가 최우수선수상을, 김규석 선수가 최우수수비상을 받았고, 조관섭 감독은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연도별 고교축구단

◆1980년 창단멤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지성길

 

선 수 : 16명

  1학년: 홍성재, 박종각, 이흥기, 윤선일, 한영국, 김영주, 권승도, 양국현

  2학년: 오귀창, 안원근, 최천석, 최극선, 이재섭, 김세훈, 이세은, 이종규

◆1981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지성길, 함흥철(6월~)

 

선 수 : 24명

  신입생 : 최창무, 진경식, 이명수, 이길로, 최학주, 아인태, 박동교, 김찬관

◆1982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선 수 : 23명

  신입생 : 강형석, 신효호, 백주현, 정영철, 박경훈, 천창우, 천용훈, 정금수, 김준기, 김종길, 문승판, 김선곤

◆1983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선 수 : 23명

  신입생 : 오성민, 최순석, 김훈수, 박한성, 박영근, 박병운, 김진기, 강성대, 이창희, 박동순, 고상수

◆1984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원동률

감 독 : 최만희

주 무 : 김광석

선 수 : 28명

  신입생 : 오현철, 김용근, 정충환, 서정률, 강영민, 황휘연

◆1985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주 무 : 김광석

선 수 : 28명

  신입생 : 허정재, 김기환, 장구현, 서양원, 임홍섭, 이정원, 백영동, 석송길, 이규창, 박일원, 김기호

◆1986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주 무 : 김광석

선 수 : 28명

  신입생 : 황중철, 김현기, 이영수, 이화윤, 이기상, 서명국, 유재록, 박동환, 조건웅

◆1987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주 무 : 김광석

선 수 : 27명

  신입생 : 정창모, 석인경, 이상호, 김승수, 김  혁, 박유희, 김영삼, 유익상, 이춘경, 유성우, 이승렬

◆1988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주 무 : 김광석

선 수 : 28명

  신입생 : 이우진, 권순권, 김병렬, 강경수, 배상국, 조규성, 박윤일, 강대준, 김임배, 임정환

◆1989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주 무 : 김광석

선 수 : 28명

  신입생 : 박광연, 이석영, 김현기, 이두영, 김태원, 이기석, 이영호, 이영호, 김숭우, 안성수

◆1990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최만희

주 무 : 김광석

선 수 : 28명

  신입생 : 김윤열, 임방현, 유강원, 권찬수, 김  호, 김기홍, 김기태, 지우진, 김기현

◆1991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홍성재

선 수 : 24명

  신입생 : 김영선, 신현수, 황규호, 이영웅, 김영철, 유덕우, 이현경, 윤승수

◆1992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홍성재

선 수 : 23명

  신입생 : 김종천, 김영하, 김지산, 이희만, 조성우

◆1993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홍성재

선 수 : 25명

  신입생 : 양현정, 오세웅, 채양학, 서광운, 박석훈, 김종혁, 이유성, 박병호, 서기호

◆1994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홍성재

선 수 : 23명

  신입생 : 고민기, 박중희, 박성현, 양영래, 탁준석, 김성수, 김길식, 이주용

◆1995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홍성재

선 수 : 27명

  신입생 : 이동근, 황정훈, 최병훈, 유범석, 전정현, 김병철, 김세윤, 윤상민, 이종찬, 이창현, 한문기, 박경춘

◆1996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홍성재

선 수 : 28명

  신입생 : 이강영, 박승광, 송강훈, 원성혁, 박대동, 강병철, 송현중, 강광희, 김용규, 신창호

◆1997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김임배

선 수 : 28명

  신입생 : 조성용, 이병화, 이강일, 한기민, 이성재, 이정형, 강연석, 문순호, 문영일

◆1998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김임배

선 수 : 27명

  신입생 : 박광민, 권준호, 이인성, 이용찬, 권민철, 윤기탁, 하  얀, 장현배, 문의윤, 박현규

◆1999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유성우

선 수 : 28명

  신입생 : 김규석, 장남석, 최동오, 오윤택, 김근철, 강희택, 노현민, 이대희, 김치우, 한태진

◆2000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유성우

선 수 : 27명

  신입생 : 이길호, 황인성, 박대성, 김정기, 용환국, 고영준, 김영균, 박성주, 김영철, 유민철, 강성남, 임승현

◆2001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박종대

감 독 : 조관섭

주 무 : 유성우

선 수 : 29명

  신입생 : 강재욱, 박성기, 박형근, 박동일, 이주섭, 이상우, 이주환, 이상용, 이치준, 이승원, 윤찬구, 윤종민

◆2002년도

단 장 : 홍사흥

부 장 : 마광철

감 독 : 조관섭

주 무 : 유성우

선 수 : 29명

  신입생 : 김영민, 김세준, 김민수, 권정민, 은종민, 김태윤, 이화섭, 유호진, 신영철, 최승규, 김상겸, 정명훈, 이의수

 

졸업생 활동현황

축구부 1회

83년 2월(풍생고 7회) 졸업

  o 홍성재(중앙대학교 축구단-현 풍생고등학교 체육교사)

  o 이흥기(서울시청 축구단-상무축구단-현 국민은행 성남점)

  o 윤선일(숭전대학교 축구단-대우축구단-사업

  o 한영국(국민대학교 축구단-할렐루야 축구단-울산현대 축구단- 현 장호원여상)

  o 박종각(서울시청 축구단-삼익악기 축구단-사업

축구부 2회

84년 2월(풍생고 8회) 졸업

  o 최창무(관동대학교 축구단)    

  o 이길로(관동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3회

85년 2월(풍생고 9회) 졸업

  o 김종길(울산대학교 축구단)      o 김선곤(울산대학교 축구단)  

  o 강형석(호남대학교 축구단)      o 정영철(호남대학교 축구단)

  o 백주현(호남대학교 축구단)      o 박경훈(호남대학교 축구단)

  o 신효호(호남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4회

86년 2월(풍생고 10회) 졸업

  o 김훈수(서울시청 축구단-전 청소년대표)

  o 오성민(국민대학교 축구단)     o 최순석(국민대학교 축구단)

  o 박동순(충북대학교 축구단)     o 강성대(홍익대학교 축구단)

  o 박병운(홍익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5회

87년 2월(풍생고 11회) 졸업

  o 김용근(동아대학교 축구단)     o 오현철(숭실대학교 축구단)

  o 서정률(숭실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6회

88년 2월(풍생고 12회) 졸업

  o 민병직(중앙대학교 축구단-울산현대축구단)

  o 서양원(중앙대학교 축구단)     o 임흥섭(경희대학교 축구단)

  o 허정재(호남대학교 축구단-현 풍생중학교 축구 코치)

  o 김기호(전북대학교 축구단)     o 박일원(전북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7회

89년 2월(풍생고 13회) 졸업

  o 황중철(한양대학교 축구단-현 한솔초등학교 축구코치)

  o 서명국(경희대학교 축구단)     o 유재록(경희대학교 축구단)

  o 유기상(건국대학교 축구단)     o 조건웅(전남대학교 축구단)-현 체육교사

  o 김현수(전북대학교 축구단)     o 양  훈(세종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8회

90년 2월(풍생고 14회) 졸업

  o 유성우(서울시청 축구단-현 풍생고등학교 축구코치)

  o 김영삼(서울시청 축구단)       o 박유희(경희대학교 축구단)

  o 유익상(전주대학교 축구단)     o 조상호(호남대학교 축구단)

  o 이승렬(전북대학교 축구단)     o 전창모(단국대학교 축구단)

  o 손숭수(성균관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9회

91년 2월(풍생고 15회) 졸업

  o 강경수(한양대학교 축구단)     o 이우진(한양대학교 축구단)

  o 강대준(한양대학교 축구단)     o 배상국(동아대학교 축구단)

  o 권순권(인천대학교 축구단)     o 김임배(호남대학교 축구단)

  o 김병렬(숭실대학교 축구단)     o 조규성(숭실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0회

92년 2월(풍생고 16회) 졸업

  o 이두영(중앙대학교 축구단)     o 김현기(중앙대학교 축구단)

  o 박광연(경희대학교 축구단)     o 이기석(인천대학교 축구단)

  o 이영호(숭실대학교 축구단)     o 이석영(숭실대학교 축구단)

  o 김태원(전북대학교 축구단)     o 안성수(전북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1회

93년 2월(풍생고 17회) 졸업

  o 임방현(경희대학교 축구단-한일은행)

  o 유강원(중앙대학교 축구단-전북현대 다이노스 축구단)

  o 권찬수(단국대학교 축구단-한일생명- 성남일화 천마 축구단)

  o 지우진(숭실대학교 축구단)     o 김기태(인천대학교 축구단)

  o 김기홍(인천대학교 축구단)     o 김기현(명지대학교 축구단)

  o 김윤열(배재대학교 축구단)     o 김  호(경희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2회

93년 2월(풍생고 18회) 졸업

  o 김영선(경희대학교 축구단-현 수원삼성 축구단)

  o 윤중희(중앙대학교 축구단-유공SK축구단)

  o 김영철(서울시청 축구단)       o 유덕우(단국대학교 축구단)

  o 이영웅(명지대학교 축구단)     o 이현경(전북대학교 축구단)

  o 신현수(전북대학교 축구단)     o 황규호(경희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3회

94년 2월(풍생고 19회) 졸업

  o 김종천(중앙대학교 축구단-현 포항프로팀)

  o 김지산(배재대학교 축구단)     o 김영하(충남대학교 축구단)

  o 이희만(전북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4회

95년 2월(풍생고 20회) 졸업

  o 양현정(단국대학교 축구단-현 전북 다이노스 축구단,1순위 지명)

  o 오세웅(단국대학교 축구단-현 포항 프로팀, 4순위 지명)

  o 김종혁(단국대학교 축구단-현 전북 다이노스 축구단)

  o 서광운(단국대학교 축구단-현 경찰청 축구단)

  o 박석훈(경희대학교 축구단)

  o 이유성(중앙대학교 축구단-현 전북 다이노스 축구단)

  o 서기호(중앙대학교 축구단-현 상무 축구단)

  o 채양학(인천대학교 축구단-현 중앙초등학교 코치)

 축구부 15회

96년 2월(풍생고 21회) 졸업

  o 고민기(고려대학교 축구단)     o 탁준석(고려대학교 축구단)

  o 김길식(단국대학교 축구단)     o 박중희(배재대학교 축구단)

  o 이주용(배재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6회

97년 2월(풍생고 22회) 졸업

  o 최병훈(단국대학교 축구단)     o 이종찬(배재대학교 축구단)

  o 김세윤(배재대학교 축구단)     o 류범석(단국대학교 축구단)

  o 황정훈(중앙대학교 축구단-벨지움 축구유학)

  o 이창현(중앙대학교 축구단)     o 한문기(배재대학교 축구단)

  o 전정현(경기대학교 축구단)     o 이동근(경기대학교 축구단)

  o 박경춘(동의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7회

98년 2월(풍생고 23회) 졸업

  o 강광희(경일대학교 축구단)     o 송강훈(단국대학교 축구단)

  o 박승광(광운대학교 축구단)     o 송현중(광운대학교 축구단)

  o 박대동(광운대학교 축구단)     o 이강영(전남 광양프로축구단)

  o 김용규(광운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8회

99년 2월(풍생고 24회) 졸업

  o 조성용(고려대학교 축구단)     o 이정형(고려대학교 축구단)

  o 이병화(인천대학교 축구단)     o 강연석(단국대학교 축구단)

  o 문순호(단국대학교 축구단)     o 이강일(광운대학교 축구단)

  o 이성재(광운대학교 축구단)     o 문영일(대전대학교 축구단)

  o 김근대(광운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19회

2000년 2월(풍생고 25회) 졸업

  o 박광민(배재대학교 축구단)     o 이인성(인천대학교 축구단)

  o 이용찬(고려대학교 축구단)     o 권민철(안동과학대학교 축구단)

  o 하  얀(한양대학교 축구단)     o 윤기탁(안동과학대학교 축구단)

 축구부 20회

2001년 2월(풍생고 26회) 졸업

  o 김규석(중앙대학교 축구단)     o 김치우(중앙대학교 축구단)

  o 장남석(중앙대학교 축구단)     o 남준석(중앙대학교 축구단)

  o 차병민(고려대학교 축구단)     o 이종현(홍익대학교 축구단)

  o 강희택(안동과학대학교 축구단) o 노현민(안동과학대학교 축구단)

  o 김근철(배재대학교 축구단, 일본 주빌로이와타 프로팀 입단)

  o 최동오(배재대학교 축구단)

 

사진과 기사에서

 사진으로보는 풍생 축구의 역사

1980. 3. 15  축구부 창단식

축구부 창단멤버

1985. 8.  5  시미즈시 공설운당장에 선 축구부

 

 

 

1987. 3. 24~26일 제6회 한일축구 교환경기에서

1988. 1.  27~30 제9회 한일축구교환경기 고등학교팀

1988. 3. 25~25 제10회 한일축구교환경기 중학교팀

 

 

 

1989. 6. 12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준우승

1990. 4. 1~2 제6회 국제쥬니어  黑潮杯 축구대회

준우승(풍생고를 비롯 일본각지 대표 8개팀 참가)

 

 

 

1991.3. 21~22  제14회 한일축구 교환경기

1991. 9. 13  제46회 전국 중고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

1991. 9. 13  제46회 전국 남녀중고 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92. 9. 29 제47회 추계전국중고축구선수권대회 풍생중 우승

1993. 1. 30 한일친선 축구교환경기 10주년기념식

1995. 1. 21~30 제20회 한일친선 축구교환경기(시즈오까현)

 

 

 

1995. 1. 21~30 제20회 한일친선 축구교환경기 성남시 축구단 환영식

1995. 3. 22~25 제21회 한일친선축구교환경기 참가 양국 임원진

1996. 8. 11~16 제23회 대한축구협회장배전국중고교축구대회 풍생고우승

 

 

 

 

 신문 스크랩

1982. 01. 22   경인일보

  풍생중 " 심봤다"  

1983. 09. 16   소년조선일보

  달리는 열량, 날마다 도시락 두세 개로 때우며 고된훈련 투지로 이겨내

1985. 10. 09   스포츠서울

  창단 5년만에 전국 패권 "낙생고" 축구팀 : 산악훈련으로 체력다져

1989. 09. 02   경인일보

  풍생고 4년만에 정상 "노크" / 기4

1989. 09. 22   일간스포츠

  풍생고 정상탈환 : 14년 패권노린 강릉상 울려 /기5

1990. 03. 09   경기일보

  풍생중, 동래꺾고 준결도약/ 기6

1990. 07. 26   스포츠서울

  강경수 공격하는 수문장: 한국축구 물건났다 /기7

1991. 09. 13   스포츠조선

  풍생고 중동고 정상다툼 /기8

1991. 09. 13   조선일보

  풍생 - 중동 남고제왕 가린다 /기9

1991. 09. 14   조선일보

  풍생, 2년만에 왕중왕 복귀 /기10

1993. 01. 04   우리신문

  축구명문 풍생고교 전국대회 우승 3회, 향토명예 빛내 /기11

1993. 05. 18   새한신문

  축구 태권도 명문고교 /기12

1996. 08. 17   국제신문

  풍생고 조관섭 감독  개인특성 고려 전력 극대화 /기13

1996. 08. 17   국제신문

  풍생고등학교 첫 V 영광 /기14

1996. 08. 17   국제신문

  협회장배 결산 시종 명승부전 축구수준 상향 / 기15

2001. 축구부 일동

<풍생고등학교 축구부: 2001년>

 

자료를 제공해주신 풍생고등학교와 홍성재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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