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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역사

[스크랩] (2) 비극작가들과 이상주의적 철학자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기원전5세기)

작성자양기석|작성시간11.11.05|조회수77 목록 댓글 0

 2. 비극작가들과 이상주의적 철학자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기원전5세기)


  그때 세계에서는
  BC 484년경: 그리스, 헤로도토스 태어남. '역사'저술
  BC 450년경: 중국, '논어'성립


 

오이디푸스
 


  지금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신전에 가면 언덕 밑에 디오니소스극장 자리가 있다.  옛날 아테네 사람들이 모여 상연되는 연극을 즐거이 감상했던 곳이다. 그 당시 그들이 눈물을 머금고 깊이 감동에 젖은 작품들 중에는 소포클레스(Sophokles, 496-406 BC)의 작품들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대표적인 것이었다. 지금도 그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오이디푸스의 부왕이 점을 쳐본다. 점쟁이 얘기는 장차 태어나는 아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같이 사는 패륜아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부왕은 그 뜻이 이루어질 수 없게 하기 위해 아들이 탄생되는 대로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에 내다버린다. 응당 죽었어야 할 아기는 그곳을 지나던 목동에 의해 구출된다. 그래서 그 목동의 아들로 자라게 된다.  건장한 젊은이로 자란 이 아들 오이디푸스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떤 귀인의 행차에 부딪힌다. 길을 비키는 문제로 싸움이 벌어져 오이디푸스는 그 귀인 일행과 싸워 귀인을 죽이고 성안으로 들어간다.  성안에서는 왕이 궐위가 되었기 때문에 후임자를 뽑는 일이 벌어진다. 오이디푸스는 그 시험을 치르고 통치자의 위치에 오른다. 그리고 홀로 있는 왕의 부인과 결혼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최선의 노력과 통치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라에는 불행한 일들이 계속된다. 이상히 생각한 오이디푸스는 점쟁이를 찾아가 그 원인을 묻는다.  점의 결과는 이 나라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같이 사는 패륜아가 있기 때문에 재난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그가 누구냐고 물어도 점쟁이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그 패륜아를 찾으려고 노력하나 끝내 실패하고, 점쟁이에게 누군지 알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노라고 위협한다. 국민을 위해서는 그 패륜아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쟁이는 할 수 없이, 그 패륜아가 바로 당신이며 지금의 부인이 어머니라고 말한다. 길에서 죽인 귀인이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의 품에서 바늘로 두눈을 찔러 맹인이 되고, 모친과 더불어 사막으로 떠나면서, 하늘이 사막바람과 모래로 이런 버림받은 모자가 사람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도록 사막에 묻어달라고 호소한다.  사막의 폭풍이 모래를 휘몰아쳐와 이 두 사람을 장례 지내게 만든다.

  그렇게 지혜롭고 예술성이 풍부한 그리스 인들이 이 비극에 크게 공감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리스 인들에 따르면, 자연 및 자연의 질서가 모든 삶의 기본이 된다. 그들의 세계관에는 자연, 인간, 신은 같은 질서 속에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과 신들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연속성 위에서 제각기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멀리 구름에 가리어진 올림포스 산 위에는 신들이 살고 있으며, 인간과 신들은 필요한 때는 서로 삶의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 자연, 인간, 신들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질서가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운명은 절대적이며, 그 운명의 종말은 비극이라는 관념이었다. 최고의 신이며 만능의 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 제우스 신이라도 운명이 그렇게 결정되어졌으면 그 앞에서는 무능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바로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주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면 이런 운명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자연의 반복되는 질서와 그 자연질서의 법칙의 필연성과 통하는 것이다. 인도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노, 장자의 철학에도 같은 뜻이 있었다면, 그리스 인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 인들이 이렇게 어두운 운명관에만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니다. 밝고 조화로운 세계질서도 지니고 있었다. 플라톤의 이상주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념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지 않은가. 비극적 작가들에 비하면 철학자들은 비교적 긍정적이며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택했던 것 같다. 물론 같은 자연질서에서 출발한다고 하였어도...  우리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리스 정신의 위대성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깊은 비극정신에서 가장 높은 이상주의까지를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기도 하며 이상의 꿈을 키워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고스와 더불어 카오스를 알려주었으며, 아폴로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적인 양면성을 이끌어 오늘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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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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