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두이노 문학관

블루파일-자기 돌잔치에 초대된 사나이⑧

작성자블루아바타|작성시간04.04.27|조회수73 목록 댓글 0




<제 17화>

어머니가 치마자락을 올려쥔 채 밥상 위에 서있다. 그 곁에 회초리를 들고 울먹이며 서있는...
그래...생각난다. 학교는 교실이 부족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홀짝 반으로 나눠, 돌아가며 1,2부 수업을 했었다. 2부 반이었던 그 날, 저녁 노을에 쫓겨 집에 왔을 때 어머니는 저녁밥 대신 회초리를 한 묶음 밥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밥상 위로 올라가 치마를 걷었다.

"한아, 거기 그 회초리로 엄마를 때려라. 그만하랄 때까지, 힘껏."

청상과부인 어머니는 고왔다. 몇 차례 매파가 다녀가고, 어머니의 외출은 잦아졌다. 밤늦게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달력 날짜 밑에 어머니 몰래 '×'표시를 해 넣었다. 청상과부. 그 어머니가 초등학교 2학년 아홉 살배기 무량한씨를 다그친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 날의 어머니 말은 삼십 몇 해가 지난 지금껏 귓속말처럼 쟁쟁하다.

"어서 때려, 한아. 힘껏, 니 힘껏. 엄마 다리 부러져도 좋으니까 어서, 안 그러면 엄마...죽어버릴 거야."

아홉 살배기 무 량한씨가 연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 종아리에 회초리질을 한다. 치마자락을 움켜쥔 어머니가 주먹손을 떨며 울고 있다. 회초리 자국 엉긴 어머니의 종아리를 부등켜 안고 기어이 아홉 살배기 무 량한씨가 울음보를 터뜨린다. 밥상 위에 선 채로 어머니가 달력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한다.

"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아저씨한테 엄마 뺏길까봐서...그 땐 너무 철이 없어서...용서하세요, 어머니."

무 량한씨가 서럽게 울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다. 치자꽃처럼 희고 말간 얼굴. 눈물 젖은 그 처연한 어머니 모습이 순식간에 손 끝에서 사라진다. 만지지도 쥘 수도 없는 지난 시간들. 그렇게 허망한, 어머니의 텅 빈 시간속으로 팔개월 동이 어린 무 량한씨의 비명이 파고든다.
무 량한씨는 소리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팔개월 동이 어린 무 량한씨가 성냥골에 불을 내며 벌죽벌죽 웃고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어머니가 손재봉틀을 돌리며 앉아있다.

"아아아, 아아아악"

꿈 속에까지 드르륵 드르륵 쫓아오던 어머니의 재봉틀이 팔개월 동이 어린 무 량한씨의 비명 소리를 박음질하고 있다. 무 량한씨는 팔개월 동이 자신의 비명 소리에 은근히 웃음이 났다.

"명우씨, 내가 좀 개구졌거든요. 쟤, 성냥불에 팔뚝 데고 울어대는 겁니다. 바로 여기, 훈장있는데."

무 량한씨는 왼 팔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풀어 팔뚝 까지 걷어부치고는 사내에게 검지손가락으로 팔뚝을 찔러 보였다. 사내는 무 량한씨가 손가락으로 짚고 있는 달걀만한 검은 점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곤 코까지 대고 킁킁 냄새 맡는 시늉을 했다.

"완전히 익었는데요."
"사십 년 넘었으니까, 익어도 엄청..."

팔목을 굽혀 사내처럼 냄새를 맡으며 장난기가 동하던 무 량한씨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눈 앞에서 어머니의 재봉틀이 흔들렸다. 어머니는 손재봉틀 손잡이를 움켜쥔 채 잔뜩 고개를 젖히고 있다. 무 량한씨는 그런 어머니 앞에 다가가 앉았다. 재봉틀 바늘이 어머니의 중지 손톱을 뚫고 노루발 깊이 박혀 있다. 고통으로 아랫 입술을 옥깨물고 있던 어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재봉틀 손잡이를 몸쪽으로 돌리며 몸을 비튼다. 노루발 깊이 박혀 있던, 어머니의 중지 손톱을 뚫고 있던 재봉틀 바늘이 뽑혀 올라온다. 동시에 어머니 손톱에서 붉은 색실 꾸리가 뿜어진다. 붉고 선명한 핏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솟구쳤다 박음질하던 공단 치마 위에 방울져 떨어진다.

"여보, 나 어때요? 이뻐요?"

겨울이 가고 있었다. 지붕 기와의 눈녹이물이 추녀 밑 흙마당에 어머니의 바늘땀 마냥 가지런한 홈을 파 놓고 있었다. 어머니는 치마 몇 벌을 더 지어 받치고 바느질삯 대신 떠안은 그 공단치마를 차려 입고 마냥 좋아했다. 얼음기 풀린 황토 언덕은 걸을 때마다 쇠똥 같은 흙뭉치를 운동화 밑창에 붙여댔다. 나뭇가지로 운동화 밑창의 흙뭉치를 긁어내는 동안 어머니는 공단치마자락을 나풀대며 아버지 무덤에 향을 올리고 술을 올리고 절을 올렸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 들고는 그 담배가 다 탈 때까지 어머니는 누렇게 젖은 금잔디를 손바닥으로 쓸며 아버지 무덤을 몇 번이고 맴돌았다.

"아빠가 이쁘대. 진짜로 이쁘대. 그러니까 이제 집에 가자, 춥단 말야."

그 겨울이 어머니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핏값이었던 그 공단치마를 다시는 입지 못했다. 어머니가 헝겊으로 손가락을 싸매고 있다. 한 손과 입으로 매듭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가 고개를 숙인다.

"어서 때려, 한아. 힘껏, 니 힘껏. 엄마 다리 부러져도 좋으니까 어서, 안 그러면 엄마...죽어 버릴 거야."

헝겊 붕대 매듭을 짓느라 수그린 어머니의 야윈 목덜미 위로 아홉 살배기 무량한씨를 다그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얹혀왔다.

"병원엘 가세요. 약도 안 바르고...약이라도 바르세요, 좀.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사셨어요."

어머니와 함께 한 십여 년의 짧다면 짧았을 세월.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곶감이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맘대로 세상을 떠난, 그래서 세상에 홀로 버려지게 한 원망받이 어머니.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곶감을 빼먹으며 살아왔고 어머니는 빈 곶감꼬치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무릎 밑에 이마를 짚은 무 량한씨는 죄되고 욕된 무게에 짓눌려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으으음...음으음...아이고 으으으..."

어머니의 애잔한 신음 소리가 무 량한씨를 감싸고 돌았다. 사내가 겨드랑이에 팔을 질러 무 량한씨를 일으킨다. 무 량한씨는 사내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둘러 보았다. 자신과 사내 뿐, 방 안은 적막했다. 무 량한씨는 손바닥으로 하관을 쓸어내리며 벽시계를 확인했다. 벽시계의 시침은 숫자 '9'를 가리킨 채 훌쩍 이동해 있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