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인초대석]보들레르와 근대

작성자시엔푸에고스|작성시간02.12.17|조회수172 목록 댓글 0
최근 우리의 문학지형에서 근대성이 핵심 논제로 떠오르다가 지금은 리얼리즘ㆍ모더니즘 논쟁이 한창이다. 문단 한편에서는 이를 구태의 반복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 ‘해묵은’ 문제들이 치열한 논쟁 형태로 재론되는 현상은, 과거 문학적 유산의 유효한 부분을 슬기롭게 계승하면서 달라진 현실의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려는 비평정신이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좀더 풍성하게 진행된다면, 근대 민족문학의 성과에 대한 정확한 재평가와 지속되는 역사적 싸움으로서의 ‘리얼리즘’의 재확인 작업이 새롭게 이루어질 이 ‘공동의 현안’에 독자로서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런데 이처럼 절호의 논의ㆍ논쟁을 ‘외곽’에서 지속하고 심화할 수 있는 방편은 없을까? 가령 서구 문학비평에서 근대성이나 모더니즘이 화제가 될 때마다 감초처럼 끼는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1821~67)를 놓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보들레르는 국내의 일반독자에게도 낯익은 시인이다. 이십여년 전에--더구나 외국 시인이란 점을 고려하면--드물게 평전이 국내에서 출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역시 흔치 않게, 그의 시 전체가 번역된 상황이다.이런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들레르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나아가 근대시의 효시로서, 또 모더니즘적 감수성의 대명사로서 확고한 고전이 된 듯하다. 여기다가 부르즈와지의 속물성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고 시어(詩語)의 충격적 혁신을 꾀한, 이른바 모더니즘의 미적 자의식 또는 미적 근대성을 대표하는 ‘물건다운 물건’이 다름아닌 『악의 꽃』임을 고려하면 그가 안팎에서 근대성의 거의 필수적 사례로서 거론되는 현상은 필연이라고 말함직하다.
이 글은 이러한 사례로서뿐 아니라 서구 모더니즘의 핵심적 성취를 대변하는 보들레르의 시를 근래의 근대성 논의와 리얼리즘ㆍ모더니즘 논쟁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려는 시도다. 하지만 근대성에 대한 정의나 모더니즘 재인식 등의 ‘원론’ 차원에서 논의를 출발하기보다는 그의 시를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읽는 가운데 작품이 밝히는 근대의 진실을 생각해보고, 시의 성취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엄정한 평가를 매김으로써 근대성과 모더니즘이란 난제에 대해 좀더 깊이 성찰하고자 한다. 검토 대상은, 근대의 예술가가 처한 도시적 삶의 기만 및 허위, 정신적ㆍ육체적 빈곤과 처절하게 대면하면서 하나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창조한 『악의 꽃』(1857)과 1848년 혁명 이후 빠리 거리에서 찰나적으로 포착된 근대적 삶의 다양한 양태를 묘파한 『빠리의 우울』(1864)이다.
 
1. 근대의 감수성, 댄디와 플라뇌르

『악의 꽃』이 현대 독자들에게 여전히 매력을 잃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철저한 도시적 감성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긴 해도 19세기 근대 서구의 시사에서 『악의 꽃』만큼 감수성 자체가 도시화된 경우도 드물거니와, 그러한 감성이 그토록 지독한 ‘육체성’을 획득한 예도 흔치 않다. “촘촘히, 우글거리는 백만 마리의 벌레들처럼/우리 뇌 속에서 악귀의 무리가 주연을 벌이고/우리가 숨쉴 때, 죽음이 폐 속으로,/보이지 않는 강처럼 흘러내린다”(FM, 「독자에게」) 같은 세기말적 표현이 19세기 유럽의 어느 시인에게서 가능했을까. 동시에 “지나가는 구름…… 저기…… 저기…… 희한한 구름”(SP, 「이방인」)으로 표상되는 절대적ㆍ순간적 미가 (거의 결하다고까지 말해야 할) 고독과 단절감을 기반으로 추구된다는 점에서, 또 바로 그런 소외감이 진지하고도 비장한 어조로 표현되면서 지독한 반어와 역설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악의 꽃』은 제임슨(F. Jameson)이 주장한바 ‘본격 모더니즘’(high modernism)의 한 선구적 전형이다. 그 자신 『악의 꽃』에 대해 “인간혼에 뿌리박은 하나의 운율법”(전집Ⅰ-1, 183면)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그의 시에는 1848년 6월 약 2만 5천의 빠리 시민이 학살된 이후 프랑스 사회의 독특한 분위기가 생동한다.
그러나 그런 도시적 감성말고도 그의 시가 실감나는 것은, 1848년 당시 27세였던 보들레르가 온건파 사회주의 신문에 잠시 몸담고 ‘전사’로서 포연이 자욱한 빠리 거리를 누볐다는 전기적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그의 시가 1848년 혁명의 패배 이후 참다운 예술가들이 대중독자들에게 급속도로 외면당하는 풍조에 정면으로 맞서-- 가령 『악의 꽃』의 「돈에 팔리는 시신(詩神)」에서처럼--자본의 노예가 된 시인의 운명을 비감어린 어조로 고발하고 있다는 사실은註3) 대중과 작가의 괴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에 있는 현재 우리의 문화현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아가 보들레르 특유의 탐미주의적 의식이 반영되면서 민중의 삶에 아로새겨진 1848년 혁명의 희망ㆍ좌절ㆍ분노 등이 착잡하게 뒤엉켜 표출되는 보들레르의 작품은 우리 자신의 착종(錯綜)된 근대사와도 맞닿아 있다.
이 모든 단편적 사실들이 중요한 것은 보들레르의 작품을 근대 서구역사의 특정 국면에서 읽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작품에 우리 당대와의 구체적인 현실연관성을 부여하는 한편, 1848년 혁명의 여러 문화적 여파들을 단순히 반영하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1848년 혁명과 이후 프랑스 역사의 흐름이야말로 『악의 꽃』 및 『빠리의 우울』의 시적 성격과 그 세계관을 근거짓는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1848년 혁명 이후 프랑스 역사의 특정한 맥락은 보들레르의 시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피할 수 없는 논제가 된다. 이를테면 작품을 보듬는 근원적 정서가 혁명의 파장이 모든 계급에게 퍼지는 과정에서 발원하는데, 바로 그 과정을 통해 보들레르의 시는 비로소 뚜렷한 역사성을 획득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악의 꽃』과 『빠리의 우울』에서 반복되는 이원적 대립항, 즉 천국/지옥, 성스러움/악마성, 퇴폐/정화, 꿈ㆍ환각ㆍ권태/좌절ㆍ현실ㆍ열망 등이 충돌해 그 사이에서 전율적 서정이 고양되는 현상은 첨예한 계급투쟁의 현실이 시인의 눈을 통해 알레고리적으로 재해석된 결과라 하겠다. “『악의 꽃』이 유럽문화권 전체에 영향을 끼친 최후의 서정시”註4)가 된 것도 당시 범유럽 차원의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악의 꽃』의 근본정서인 반항ㆍ우울ㆍ도취ㆍ권태ㆍ허무 등을 통해 미적으로 응집된 까닭이다.
『악의 꽃』에서 그런 응집의 결정(結晶)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컨대 “대지는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거기서 희망은 박쥐의 겁먹은 날개로/벽을 때리며, 썩은 천장에/머리를 부딪치고 떠돌 때”(FM, 「우울IV」)라든가, “확실히 나는, 행동이 꿈과 맞지 않는/이 세상에서, 내 기꺼이 나서리라,/검으로 싸우다 검으로 죽을진저!/성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했겠다, 잘했고말고!”(FM, 「성 베드로의 부인」) 같은 대목이 암시하는 바는 1848년 혁명의 좌절이 한 시인의 의식에 남긴 상흔인 동시에 1848년 혁명을 기점으로 유럽 문화권 전체에서 발생한 감수성의 기류변화를 알려주는 신호다. 그 변화양상은 보들레르의 댄디이즘(dandyism)에서 잘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남을 놀래키”면서도 “자신은 결코 놀라지 않는 오만한 만족감”이 주는 절대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는 태양과 스러지는 별” 같은 운명을 타고난 댄디는 경제적으로 무산자의 운명에 처한 보들레르가 내건 독특한 삶의 철학이다(전집 Ⅱ-1, 「현대적 삶의 화가」, 710,712면). 그 자신이 정의하듯 그것은 “승리한 부르즈와지의 민주주의가 완전하지 못하고 귀족정치가 단지 부분적으로만 흔들리고 타락한 과도기”적 산물이다(전집 Ⅱ-1, 711면). 그런 시기에 보들레르는 사회현실과는 무관하게 정신적 귀족주의에 끝까지 충실하면서 부르즈와적 속물근성을 짐짓 증오하는 ‘저주받은 시인’이자 ‘소외된 영웅’의 운명을 댄디이즘의 표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댄디의 진정한 특징은 ‘분열’과 분열에 대한 자의식에 있다. 그는 승리한 부르즈와지의 물질적 활력에 대한 동경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관념적 기반은 귀족주의에 둔다. 댄디의 정신은 고상한 귀족주의를, 그 의식은 부르즈와지의 물질적 화려함을 각기 분열적으로 갈망하지만, 정작 육체는 “거리마다 매음이 홍등에 불을 켜는”(FM, 「황혼」) 빠리 뒷골목을 나뒹군다. 따라서 댄디이즘의 반부르즈와적 성격과 그것이 지향하는 귀족적 ‘고상함’ 때문에 한편으로는 (1789년 혁명 이래로 가속화된) 평등 개념에 내포된 기계적 평준화 및 상품화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註5)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개념에 내용을 부여해줄 실제 현실의 부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악의 꽃』은 특이한 미적 긴장을 획득한다. 요컨대 보들레르의 댄디이즘은 1848년 6월 프롤레타리아트 대 부르즈와지의 전면적 계급투쟁에서 스스로를 가공대상으로 삼아 시적으로 대상화함으로써 자기에로의 몰입을 강화하고, 객관적 현실의 모순에 예술로써 대응하려는 자세를 다지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댄디는 『악의 꽃』 및 『빠리의 우울』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플라뇌르(flaneur)와 동일한 궤도를 돈다. 플라뇌르는 댄디 의식을 체화한 채 대중과 냉정한 미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모든 것이, 공포마저도 환희로 둔갑하는/고도(古都)의 꾸불꾸불한 길가에 숨어”(FM, 「초라한 노파들」) 19세기 유럽의 수도 빠리의 온갖 욕망을 전유한다. 「지나가는 한 여인에게」註6)를 살펴보자.


주위에선 귀가 멍멍해지도록 거리는 아우성이었어.
늘씬하고 호리호리한, 상복 차림의 여인이 엄숙한 고뇌의 표정 지으며,
꽃무늬 레이스와 치맛자락을 화사한 손으로
살짝 쳐들고 살랑거리며 지나갔지,
 
조각상 같은 다리로 민첩하고도 고상하게.
나는, 미친놈처럼 부르르 떨며,
태풍이 이는 납빛 하늘 같은 그녀 눈에서
넋을 빼는 감미로움과 뇌쇄적인 쾌락을 마셨어.
 
섬광…… 그리고 어둠! 그 시선으로 홀연
나를 되살린 덧없는 여자여,
저 곳, 아득히 멀리! 이미 늦었지!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없으리!
 
저 세상에서밖엔 그대를 이제 다시 못 볼 것인가?
그대 사라지는 곳 나 모르고, 내 가는 곳 그대 알지 못하기에,
오 내가 사랑할 수도 있었을 그대, 오 그것을 알았던 그대여!
(전집 Ⅰ-1, 92면)

    
이 시는 들끓는 마차들로 어리벙벙해진 빠리 거리에서 순간적으로 시선에 들어온 한 여인을 향한 관능적ㆍ미적 열정 및 그 아련한 덧없음을 그린다. 이는 댄디ㆍ플라뇌르의 전형적인 내적 도시체험이다. 죽음의 기억ㆍ엄숙의 실체인 상복 입은 여인과 “꽃무늬 레이스와 치맛자락을 (…) 살짝 쳐”든 요염한 숙녀, 빛과 어둠, 순간과 영원 같은 상반된 이미지들의 율동은 보들레르적 시어 사용의 큰 특징인바, “태풍이 이는 납빛 하늘 같은 그녀 눈”에서 고양되는, “넋을 빼는 감미로움과 뇌쇄적인 쾌락”은 댄디ㆍ플라뇌르의 미적 자의식을 집약한다. 최음(催淫)적 상태에 빠진 자의식 속에서 일종의 반현실(反現實)이 된 감미로움과 쾌락은 보들레르 특유의 영탄법을 통해 원심적으로 증폭되니, “저 곳, 아득히 멀리! 이미 늦었지!”로 표현되는 미적 표상에 대한 화자의 집착과 회한은 빠리 현실과 거리를 두게 되는 댄디ㆍ플라뇌르의 내면 의식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댄디ㆍ플라뇌르의 기원은--그 속성을 여러모로 공유한--루쏘(Rousseau)의 ‘고독한 산책자’(promeneur solitaire)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고독과 소외감이 사회의 총체적 삶에 대한 명상으로 이어지곤 하는 루쏘의 인물과는 약간 다르다. 그 차이의 역사적 기점은 프랑스혁명으로 짐작되는데, 보들레르의 댄디ㆍ플라뇌르는 사회와 운명적으로 맞선 발자끄(Balzac) 소설의 주인공인 라스띠냑이나 뤼씨앙의 관념적 환상을 미적으로 정제한 인물이며, 그런 만큼 ‘탈계급화’(de′racine′)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플라뇌르의 눈에 비친 주정뱅이ㆍ창녀ㆍ협잡꾼ㆍ부랑배 등의 인간군상은 루이 보나빠르뜨의 ‘12월 10일회’(Society of December 10)를 구성한 다종다양한 룸펜프롤레타리아의 사회상과 거의 일치하거니와, 보들레르는 이미 자유ㆍ평등ㆍ우애의 시민적 이상이 부르즈와지의 이데올로기로 동원되는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근본정서인 연대와 공감으로부터도 떨어져나오는 것이다. 사실상 그를 이어받은 말라르메(S. Mallarme′)ㆍ베를레느(P. Verlaine)ㆍ랭보(A. Rimbaud) 등의 실험적 시인들이 빠리꼬뮌(1871)을 고비로 민중정서와 회복할 수 없는 괴리를 드러내고, 각기 감수성의 ‘아름다운 파탄’으로 치닫는 데는 바로 그런 근대 프랑스문학의 계보뿐만 아니라 1848년 혁명 이후의 역사적 정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들레르적 관찰자이자 소외된 영웅으로서의 플라뇌르는 혁명과 반혁명이 꼬리를 무는 과정에서 자신의 계급적 귀속성으로부터 뿌리뽑힌 채 빠리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소외 그 자체에서 미적 활력을 끌어내는 룸펜인텔리겐치아의 운명을 예시한다.註7)
 
2. 보들레르적 모더니즘의 자기전개

“옛 빠리는 이미 없어요 (한 도시의 모습은,/아! 한 인간의 마음보다 빨리 변하는군요)”(FM, 「고니」). 플라뇌르가 그러한 빠리에서 포착한 근대의 생활상은 군중으로 제시된다. 그것은 (1805년 나뽈레옹 행정부에 의해 강제되어 빈민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온) 거주공간의 지리정치적 재배치와 행정개편으로부터 본격화된 개발된 도시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근대성의 실체였다. 카네티(E. Canetti)의 예리한 지적대로 연대와 전통의식이 결여된 익명의 인간들 내부에서 고양되는 감정은 ‘해방’이다. 군중 속의 인간들은 끊이지 않는 혁명과 반혁명의 와중에서 신분적 차이를 벗어던지고 연극무대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거리낌없는 자유를 구가한 것이다. 저마다 자유의 횃불을 치켜들고 “여느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인간들도 매년 한번씩은 자기에 몰두하여 마치 그런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註8)
이 글의 문제의식과는 많이 다르지만 마샬 버먼(Marshall Berman)이 보들레르를 주목한 것도 바로 그런 자유의 현상학 때문이다. 그의 핵심 논지는 (오스만의 도로정비사업이 만든) 마까담(macadam) 포장도로에서의 속도성과 혼돈의 경험을 통해 “탈신성화”(desanctification)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모더니즘의 영원한 갱생’을 약속하는--“새로운 유형의 자유”가 획득된다는 점에 모아진다. 그에 따르면 “맑스가 이러한 경험을 세계-역사적 문맥에 자리매김했다면, 보들레르의 시는 내면에서부터 그 경험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註9) 하지만 여기서 강조할 점은 마까담에서 구가되는 자유는 본질적으로 ‘일탈로서의 자유’이며, 그 자유의 주체인 군중 역시 철저하게 근대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누린 군중은 무엇보다도--빠리에만 한정된 것은 물론 아닌--물적 토대의 ‘모더니제이션’이 도시와 농촌 사이에 남아 있던 비자본(非資本)적 유대를 끊어놓는 과정에서 도시로 유입된 유령인간들이자 산업예비군으로 이해하는 것이 순서다. 그 점에서 빠리의 군중은 가령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을 구성한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의 문화적 응집력을 갖춘 위계질서화된 민중과도 판이하다.
빠리 군중의 실상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키메라가」(SP)에서 하나의 섬뜩한 정물화로서 제시된다. 잿빛 하늘과 푸르름의 흔적조차 사라진 황무지를 배경으로 “영원히 무엇인가를 갈망하도록 천형을 받은 인간들처럼 체념한 모습으로 길을 재촉하는” 무리들, “수염도 눈도 등도 지팡이도 누더기도,/그 어떤 특징으로도……/분간되지 않”는 “이상야릇한 허깨비들”처럼 “획일적인 걸음걸이로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군중의 모습은 모더니즘 예술에서는 사실 꽤나 흔한 소재다. 또한 그 사회적 맥락도 분명하다. 산업주의가 불러온 도시 프롤레타리아들의 힘겨운 하루살이가 보들레르에게는 환영(幻影)으로 나타난 것이다. 환영은 거대한 발톱으로 노동자들의 가슴을 옥죄는 괴물 키메라로 시각화된다. 일종의 알레고리로 나타나 의미가 명료하지는 않지만, “밀가루나 석탄 포대, 또는 로마보병의 장비처럼 무거”운 키메라를 걸머진 구부정한 인간들의 목적지 없는 행렬은 이윤의 무한추구를 생명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근대의 불모성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의 몸뚱이에 달라붙은 괴물 키메라에 대해 아무런 불평이 없으며 그런 상황에 대해 아무런 절망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을 자기 몸의 일부로 여기고 엄숙한 표정으로 불모의 길을 간다. 그것이 플라뇌르의 눈에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삶의 생득적 조건으로 제시되는 키메라의 실체는 더이상 탐구되지 않는다. 화자는 키메라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하지만 키메라보다도 무서운 “어쩔 수 없는 무관심”과 권태에 압도됨을 고백한다. 결국 화자는 군중의 이면으로 눈을 돌린다.
『악의 꽃』에 나타난 ‘권태’는 권태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충격ㆍ흥분ㆍ기대 등이 무의미하게 반복되어 닳아버린 정신적 에너지의 한 변형이다. “물담배(houka)를 물고 교수대를 꿈꾸”(FM, 「독자에게」)는 괴물로 권태가 의인화되고 그렇게 의인화된 권태가 댄디이즘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현상은 권태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군중」(SP)은 권태와 무관심이 절대적 미의 추구를 위한 동력으로 기능하는 과정을 담는다. 플라뇌르는 익명성이 본질인 군중과의 ‘합일’(e′pouser)을 통해 스스로의 육체를 탈피하고 순수한 두뇌작용으로서의 자유를 즐긴다. 플라뇌르에게는 “자기 앞에 나타나는 뜻밖의 사람에게, 면식 없는 행인에게 자신을 송두리째 내주는 영혼의 형용할 수 없는 대향연, 시와 자선, 그 거룩한 매음에 비하면, 인간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주 사소하고 제한적이며 빈약한 것이다.” 이처럼 「군중」의 숨은 배경은 아무런 구속 없는 놓여남 그 자체의 자유와 도취다. 군중 속의 고독은 근대인의 개탄스런 소외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미적 활력을 끌어오는 계기가 된다. “군중과 고독, 이 두 단어는 풍요롭고 적극적인 시인에게는 등가이며 서로 전환될 수 있는 말이” 됨으로써 고독은 군중을 통해 해소되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화자는 도처에 널려 있는 허깨비 같은 무리들에 스며들어 다중적 인격을 구현하는바, 그는 그런 재주를 통해 1848년 혁명의 모든 현실, 부르즈와지의 정신적 천박함과 프롤레타리아의 물질적 비속함으로 나타나는 빠리의 제반 현실을 ‘초월’한다.
하지만 플라뇌르의 바로 그러한 초월이야말로 파괴와 소진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적 생산력이 낳은 근대성의 모순을 예시한다. 타자에의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가공ㆍ조립하는 플라뇌르는 이글턴(T. Eagleton)이 『발터 벤야민: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에서 주장한 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상품의 자기모순적 형식, 즉 끊임없이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해야 하는 상품의 운명에 상응하는 것이다. 시인에게 군중은 일종의 쾌락기계(machine plaisir)가 된다. 그는 군중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주적 교감을 느끼고 자아의 확장에서 발생하는 희열을 맛본다. “영혼의 성스런 매음”으로 표현된 정신의 향연은 구획화ㆍ획일화된 거리의 공간이 만들어낸 해방된-- 하지만 그런 만큼 기계화ㆍ자동화된--감수성의 잔치이며, 보들레르 자신이 그런 감수성을 과학자적 정신으로 소설화한 포우(E. A. Poe)의 작품을 번역하고 그와 강력한 친화력을 느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보들레르는 「군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스런 매음”의 신비한 도취와 열정을 “지구 끝으로 유랑을 떠난 식민지 개척자, 민중의 목자, 선교사들은 틀림없이 알았”으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식민지 개척에서 근대화의 양분을 공급받은 서구의 근대, 그리고 제3세계의 철저한 수탈과 지배로 이어진 서구 근대화의 주역들이 “성스런 매음”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 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과 총칼로 무장한 채 근대라는 성당에서 ‘영혼의 뚜쟁이’ 역할을 자임한 서구의 선교사와 (근대화로 지칭되는) 발전과 행복이라는 ‘보편주의’의 사도로 나선 지식인들이 제3세계에서 겪은 자기도취와 환멸을 이 대목의 행간에서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콘래드(J. Conrad)의 소설 『어둠의 속』(Heart of Darkness, 1902)에서 ‘고매한’ 서구의 이상주의가 아프리카 콩고라는 오지에서 불러일으킨, 주인공 커쯔(Kurtz)의 형언키 어려운 자기파멸적 도취와 공포, 환멸을 이 대목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직관적인 감성으로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암시하기도 한 보들레르 시의 선구적 성격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의 일탈징후를 예리하게 드러내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핵심까지도 시사한다는 데 있다. 가령 「후광의 상실」(SP)이 그러하다.


“아니, 뭐야, 자네가 여기에? 이런 지저분한 델! 정기만을 마시는 자네가! 암브로씨아만을 먹는 자네가! 이거 정말 놀랄 일인데.” “여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말과 마차들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난 방금 말일세, 길을 건너왔는데, 갑자기 한꺼번에 달려드는 저 소용돌이치는 혼돈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다가 갑자기 몸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그만 내 후광이 머리에서 포도의 진창 속으로 떨어져버렸네, 나는 후광을 주워올릴 용기가 없었어. 뼈가 으스러지느니 휘장을 잃어버리는 편이 덜 다친다고 판단했지. 그리고 심지어 나는 전화위복이란 말도 일리가 있다고 혼자 생각했네. 이제 나는 남모르게 돌아다니거나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고, 보통사람들처럼 저속한 행동에도 빠질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보다시피 자네와 똑같이 나도 여기에 와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자네 후광을 잃어버렸다고 방을 붙이든지 신고해서 되찾아야 할 것 아닌가.” “아니, 천만에, 그럴 맘 없네, 난 여기가 좋아, 날 알아본 것도 자네뿐이야, 게다가 위엄 부리는 것도 권태로워. 더군다나 이런 걸 생각해봐, 얼마나 즐겁겠나. 어느 엉터리 시인 나부랭이가 그걸 주워서 뻔뻔스럽게 쓰고 다니는 꼴을 말야. 사람을 웃기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더구나 날 웃기는 행복한 치들 말야! X나 Y 같은 치들을 생각해보게나. 어때! 정말 꼴불견 아니겠나!”(전집 Ⅰ-1, 352면)

  
그런데 이 후광상실을 마까담 포장도로에서, 나아가 20세기 뉴욕의 예술거리에서 새로운 예술을 성취하기 위한 불가피하고도 다행한 사건으로 해석한 버먼에 동조하기 힘들다. 첫째 이 시는 기본적으로 앞서 예거한 일탈적 자유의 변주이고, 둘째 후광을 “방을 붙이든지 신고해서 되찾”을 수 있는 깜빡 잊은 물건쯤으로 비하하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일체의 진지성을 배격하는 아이러니컬한 익살꾼으로서의 화자 때문이며, 셋째 전체적으로 볼 때 근대적 삶의 ‘한’ 현장에 지나지 않는 화자의 도시체험은 버먼이 주장하는바 모더니즘의 영원한 갱생을 약속하기에도 너무나 제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두루 강조할 때 눈에 띄는 점은, 도시의 이른바 충격체험에 다름아닌 화자의 후광상실이 근대의 시간개념을 특징짓는 속도성의 경험과 그로 인한 ‘관념의 고양’을 통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마차의 기계적 운동이 내포한 반생명적 현상을 예리하게 간파한 토머스 드퀸씨(Thomas de Quincey)가 「영국의 우편마차」(1849) 중 ‘갑작스런 죽음의 비전’ 부분에서 속도성의 파국을 실감나게 그려낸 바 있지만, “소용돌이치는 혼돈” 속에서 후광을 진창에 떨어뜨린 실수는 화자에게도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왜냐하면--생명의 고유한 기(氣)를 뜻하는 ‘아우라’(aura)에 어원을 둔--후광(aure′ole)은 버먼이 전제하는 전근대적 구습의 상징보다는 참된 자아를 표상하는 알레고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화자는 자신(만)의 후광이 상실된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후광이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현실을 약삭빠르게 이해하고 그런 상황을 즐기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다. 그렇다면 후광을 되찾을 용기와 의욕이 상실된 상태에서 전화위복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역시 ‘자유’다. 방탕ㆍ저속에 몸을 맡긴 화자가 혼돈의 거리에서 얻은 (근대성의 가시적 징표로 봄직한) 회피와 일탈로서의 자유가 한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보들레르적 모더니즘의 자기전개를 염두에 둘 때, 이 시의 진정한 핵심은 일탈이 주는 해방감에서 한술 더 떠, 그 잃어버린 후광을 주워서 자기 것인 양 하는 시인 나부랭이들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살맛나는 일이 어디 있느냐라는 화자의 익살스런 반문에 있다. 나를 웃기는 인간들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느냐는 어조 자체가--익살꾼으로서의 화자 역시 ‘그 웃기는 인간들’에서 예외가 될 수 없기에--‘풍자성’을 어느정도 띠기는 하지만, 그런 어조의 경박함은 오히려 하비(D. Harvey)가 『탈근대의 상황』(The Conditon of Postmodernity)에서 인용한 포스트모더니스트 화가의 그림과 유사하다면 유사하다 하겠다. 한 여성이 지구를 탈출하여 외계로 날아가고 있는 그림에 대해 “그녀는 말하자면 홀로 그저 즐기고 있는 겁니다. 둥둥 떠서 세계가 폭파되는 것을 구경하면서요”라고 설명한 화가의 가벼움과 근사한 것이다.
이 모든 예술에 대한 적절한 ‘해석’으로는 차라리 랭보의 「나쁜 피」 한 구절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연속되는 희극! 나의 순진함이 나를 울게 하리라. 삶은 우리가 이끌어가는 광대놀음이다.” 어쨌든 이러한 일탈로서의 자유와 ‘가벼움’에의 탐닉이 『인공낙원』(1860)이나 「들라크르와의 작품과 삶」(1863) 등에서 주창된 보들레르 특유의 도취의 미학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환기할 때, 보들레르적 모더니즘의 자기전개 양상은 한층 분명해진다. 즉 “항상 취해야 한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그것이 유일한 문제”(SP, 「취하라」)라는 그의 신념처럼, 주신(酒神)과 아편에서 유발되는 인위적 황홀경이 시와 등치되고, 오감이 도취로서의 시를 통해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스런 매음” “뇌수의 진정한 향연” “희한한 시간”의 본질이야말로 포스트모던 예술의 ‘정수’를 선취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보들레르의 선진성을 강조하는 비평가일수록 그가 지향하는 감각의 (기계적) 확장과 상상력의 (관념적) 고양이 다다이즘ㆍ쒸르레알리슴을 포함해 비구상(非具象)예술로 통하는 비밀통로임을 강조하는 것도 나름의 근거가 있는 셈이다. 비정하고도 유희적인 도피에의 몽상을 그린 포스트모더니스트 화가의--싸이버스페이스의 전조 같은--그림을 이미 19세기 중엽에 시로써 예언한 그는 리오따르(Jean-Fran★ois Lyotard)가 열렬하게 찬양하는 재현불가능 자체의 재현에서 나오는 ‘숭고미’나 제임슨이 포스트모던의 새로운 감수성으로 치켜올리는 ‘히스테리적 숭고미’를 예시ㆍ선취한 하나의 전범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논리적인 어법에 따르더라도 보들레르의 이러한 ‘전위적 성취’는 거꾸로 (특히 회화 분야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적 파산’을 비추어준다는 해석이 성립한다.
 
3. 미적 자의식을 통한 근대적 삶의 재현

이처럼 자신의 시대를 앞서나간 보들레르가 그렇다고 1848년 혁명 이후 당대 현실에 눈멀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그는 “취객이 여전히 현실상황을 의식하는 것처럼 사회적 현실을 의식하고”註10) 있다. 그가 그려낸 빠리의 사실적 풍경에는 자유의 희구와 그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배어 있고, 그것은 미(美)와 시(詩)를 통해 채색된다. 『악의 꽃』의 독특함이라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분수처럼 피가 쏟아지지만 “아무리 더듬어도 상처를 찾을 수 없”(FM, 「피의 분수」)는--근대적 삶에 대한 묘하게 뒤틀린 서정의 약동과 풍자이겠다. 그가 프로이트와 쉽사리 결합하는 것도 그런 까닭인 듯하고, 그 서정이나 풍자에 으레 따라다니는 내러티브의 교묘한 복잡성에 온갖 첨단이론의 조명이 현재 비춰지지만, 우리의 관심은 보들레르적 내러티브 자체보다는 근대를 바라보는 보들레르의 시선이 왜 그렇게 비틀린 형태로 나타나며, 그 결과는 어떠한가 하는 점에 있다.
당시 빠리 민중의 구체적인 편린들이 담긴 시는 『악의 꽃』 중 특히 ‘빠리 풍경들’ 편에 집중된다. 『악의 꽃』을 혹평한 헨리 제임스(H. James)나 정반대로 극찬한 프루스뜨(M. Proust) 모두 높이 평가한 「초라한 노파들」을 읽어보자. 이 시에서는 “합승마차들의 굴러가는 폭음에 발발 떨며,/꽃이나 알 수 없는 그림을 수놓은 작은 가방을,/성자의 유물인 양 옆구리에 바싹 낀” 채 “북풍의 부당한 채찍을 맞으며 기어”가는 노파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포착된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러한 사실성이 처리되는 방식이다. 빠리의 빈민가 뒷골목뿐 아니라 마까담 포장도로가 난 곳이면 어디서나 발견될 수 있었을 빈민들의 실상이 그 나름의 흡인력을 지닌 플라뇌르의 미적 자의식을 통해 재현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무엇보다 “구멍난 치마나 싸늘한 피륙을 걸”친 그녀들로 하여금 “다친 짐승들처럼 몸을 질질 끌”면서 싸구려 물건들을 팔게 내모는 사회의 실체, 그런 노파들의 분노와 희망 등은 시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것들은 암실에서 엿보는 사진들처럼 희미하게 그 윤곽만이 겨우 잡힐 뿐이다. 그렇다면 플라뇌르는 노파들을 과연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그러나 나는, 그 위태로운 발걸음에 불안한 시선을 고정시키고,
멀리서 다정스레 살피면서,
아 놀랍게도! 마치 아비라도 되는 듯이,
남몰래 은밀한 기쁨을 맛보고 있으니.
 
풋내기 정열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어둡든 밝든 그 지난날들을 경험하고
확장된 내 마음은 그대들의 온갖 악덕을 즐긴다!
내 넋은 그대들의 모든 미덕으로 빛나는구나!
 
폐인들! 내 가족들! 오, 내 정신의 친구들이여!
나는 저녁마다 엄숙한 작별인사를 한다!
신의 끔찍한 압제에 짓눌리는 여든살 이브들이여,
당신들은 내일 어디에 가 있게 될까?註11)
(전집 Ⅰ-1, 91면, 68~80행)

     
확실히 이 시에서는 「우울」 연작시나 「성 베드로의 부인」 「사탄 연도(連禱)」(FM) 등이 파격적으로 보여주는 자해욕구나 반항, 허무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군중 속에서 생의 순간적 단면을 미적으로 전유하는 플라뇌르 특유의 시각이 노파들같이 헐벗고 굶주린 자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아릿하게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이 점을 좀더 엄밀하게 따져보기 위해 이번에는 「가난한 자의 눈」(SP)을 살펴보겠다.
이 시 역시 마까담 포장도로의 체험을 담는다. 투명유리를 통해 까페의 화려한 내부를 들여다보는 빈민과 이들을 바라보는 (까페 내부의) 두 연인의 의식을 포착한 이 시는 두 시선의 극적인 대조를 다룬다. 두 시선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엄밀하게 말한다면 세 개의 시선, 즉 까페의 풍요와 사치를 들여다보는 가난뱅이의 시선과 이들을 상이한 태도로 내다보는 ‘듯한’ 두 연인의 시각이다. 까페의 호화로움을 바라보는 두 아이와 그 아버지가 느끼는 동경은 나이가 어려질수록 점층적으로 고양된다. 어린 막내의 경우 “너무나 매혹당한 나머지 어리둥절하고 깊은 즐거움 외에 그 어떤 감정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보는 화자는 이내 “그들의 눈에서 연민을 느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고도 남을 너무 큰 잔들과 술병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화자는 “당신의 시선에서 ‘나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 애인을 향해 눈을 돌린다. 적어도 이 대목의 화자의 태도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호사스런 삶을 반성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변덕의 여신이 살고 있는 듯한” 애인의 눈에서 읽어낸 ‘나의 생각’은, “마차문처럼 눈을 벌리고 있는 이 인간들은 견딜 수가 없군요. 까페 주인에게 부탁하여 그들을 이곳에서 멀리 쫓아낼 수 없어요?”라는 힐난이다. 뒤이어 화자는 사랑하는 연인들마저도 의사소통이 단절된 현실을 개탄한다.
1848년 혁명 이후 부르즈와지의 승리가 확연해진 전형적 상황으로 봄직한 이 대목에서, 버먼이 그러했듯이, 연인들마저도 바리케이드의 양편으로 갈라진 살벌한 당대 현실을 읽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그렇게 명료한 상황을 담은 듯한 이 시가 결과적으로 아리송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내뱉은 ‘나의 생각’이 그처럼 표독스럽게 나타남으로써 화자의 진정한 속내도 끝내는 독자에게 소통되지 않는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연인들의 이런 ‘의사소통의 단절’을 두고 인간 보편의 체험이라느니, 원죄의 결과라느니 하는 번설(煩說)도 물론 있지만, 당대 계급투쟁의 현실 속에 부르즈와 연인들의 고통스런 도덕적 갈등이 뚜렷이 각인된 이 시의 진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시를 압축된 하나의 단편소설로서 읽을 때는 선망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빈민보다는 그들의 눈앞에서 움츠러들고 분열되어버린 화자의 자의식이 부각된다. 이는 초라한 노파들을 바라보는 플라뇌르의 연민과도 상통한다. 이 두 시를 비교할 때 먼저 드는 생각은, 세파에 찌든 노파들이 살아간 삶의 희로애락을 훔쳐보면서 깊은 연민을 느끼거나 가난한 이들을 앞에 두고 의사소통이 단절되어버린 연인의 안타까운 상황을 개탄할 때의 화자는 본질적으로 댄디적ㆍ플라뇌르적 체험을 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당대에는 거의 일상적이었을 체험에 시인 나름의 절실한 목소리가 다소간 담겨 19세기 근대 서구도시의 전형적 체험이 여실하게 그려지고, 일부 현대독자의 감수성에 더 호소력을 발휘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이 두 시 모두 ‘주머니가 가난한 자’의 현실적 절박함과 ‘마음이 가난한 자’의 가없는 진정성이 결합된 경지에는 미달한다는 판정을 과연 피할 수 있을까? 만약 피할 수 없다면 “예술의 천공(天空)에 새로운 전율”을 던졌다는 빅또르 위고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보들레르의 시적 성취는 궁극적으로 연민과 감상(感傷)의 세계를 후련히 넘어선 ‘삶다운 삶’의 성취와도 멀어진다고 우리는 말해야만 하지 않을까?
이 글에서 이러한 보들레르의 시적 성취를 19세기 프랑스 시사(詩史)에 놓고 가늠하기에는 프랑스문학 전반에 대한 나의 공부가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나름의 방편으로 프랑스 시의 전통에서 받은 영향을 창조적으로 활용하기도 한 엘리어트(T. S. Eliot)의 평가를 여기서 상기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엘리어트는 대체로 두 가지 면에서 보들레르를 옹호한다. 하나는 흔히 그의 한계로 거론되는 불경과 부도덕성이 실은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정직하게 확인하고픈 욕망에서 기인한 역설적 표현이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보들레르야말로 근대 시어(詩語)의 혁신자라는 것이다. 그는 도덕관념이나 선악의 잣대로 『악의 꽃』을 재단하는 ‘부도덕성’을 경계하면서 그것의 진정성을 옹호하는 것이다. 동시에 “보들레르는 진정코 그 어떤 언어로 씌어진 근대적 시에서도 가장 위대한 모범이다. 왜냐하면 그의 시와 언어는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한 완벽한 혁신에 가장 가까이 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한다.註12) 엘리어트의 시각에서 보면 보들레르의 뒤를 이은 새로운 감수성의 천재들인 말라르메ㆍ베를레느ㆍ랭보 등이 추구한 파격으로서의 언어혁신도 보들레르적 전범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독일과 영국의 낭만주의를 이어받은 진정한 계승자들로서 19세기 유럽 낭만주의의 치열한 시정신--하인리히 하이네의 사망년도는 1856년이다--을 가장 늦게까지, 또 가장 첨단까지 밀어붙인 낭만주의 ‘최후의 전위’들이라는 판단까지도 가능할지 모르겠다.註13)
하지만 시대와 시야를 달리하여 근대 한국 민족문학의 시사(詩史)에 비춰보면 보들레르는 과연 어떤 평가가 가능할까? 극히 일반적인 몇마디로 만족할 수밖에 없고 평면적인 비교도 넘어서기 어렵지만, 서구의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에 깊은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현실과의 긴장을 감히 넘보기 어려운 가락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낸 김수영(金洙暎)이나 50년대 동족상잔의 폐허 속에서 자라난 (보들레르 못지않은) 탐미적 의식과 허무주의가 현실에서의 엄혹한 단련을 통해 화엄적 경지로 나아가는 도정에 있는 고은(高銀)에 비한다면, 『악의 꽃』이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의미는 그만큼 제한되는 듯하다. 이 점을 좀더 분명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보들레르와 서구 근대 시문학의 다른 성취와의 대비도 간과할 수 없다. 예컨대 횔덜린(F. Ho¨lderlin, 1770~1843)이 비가(悲歌) 『빵과 포도주』에서 물었고 하이데거(M. Heidegger)가 그 물음의 의미를 거듭 강조한 ‘궁핍한 시대에 시인의 사명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이 『악의 꽃』에 끝내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릴케(R. M. Rilke, 1875~1926)가 만년에 『두이노의 비가』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탐색한--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활의 시위를 견디는-- ‘천사’로 대변되는 차원높은 ‘존재’에 대한 심도있는 성찰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보들레르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한계를 따져본다면 다음과 같은 짐작도 가능할 것이다. 즉 그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확고한 의식과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추론이다. 그것은 댄디이즘과 플라뇌르에서 일단이 드러났듯이 단적으로 말해 ‘예술’이다. 그리고 이때의 예술은 1848년 혁명 이후 현실에 안주한 부르즈와적 허위의식 및 패배한 프롤레타리아적 비속함의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가령 “식물성의 주신(酒神)이여, 영원한 파종자가 던진/귀중한 씨앗인 나, 그대 속으로 흘러들리라/우리 둘의 사랑에서, 희귀한 한떨기 꽃처럼,/신에게로 솟구치는 시가 태어나도록”(FM, 「포도주의 혼」)이라든가, “신이여 제게 은총을 내리시어, 제가 인간말종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한 놈이 아님을 제 자신에게 증명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시 몇 수를 쓸 수 있도록 해주소서”(SP, 「새벽 1시에」) 등에 담긴 파우스트적 희구의 절실함은, 엘리어트의 말 그대로 (신이 사라져버린 현대에) 저주받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좀도둑이나 정치모리배 같은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저주’가 어울리는 것이다. 『악의 꽃』과 『빠리의 우울』 전체를 감싸는 보들레르 특유의 절박한 미적 충동은 범인의 운명을 뛰어넘는 힘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가 「1846년의 쌀롱」의 첫머리(전집 Ⅱ-1, 415~17면)인 ‘부르즈와에게’에서 부르즈와계급의 승리를 확언하는 것도 계급투쟁의 승리자 부르즈와지를 칭송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미에 대한 근대적 신념, 즉 “당신들은 빵 없이도 사흘은 살 수 있지만 시가 없다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전집 Ⅱ-1, 415면)을 주장하기 위한 일종의 수사법인 셈이다. 그리하여 ‘빵과 시’를 철저하게 대립시킨 보들레르의 미적 자의식은 생명과 현실의 변증법적 긴장ㆍ갈등관계를 압도한다. 그 결과 역사적 실체로서의 빠리 민중의 애환과 희망은 단지 흐릿한 배경이 되면서 「가난한 자들의 눈」에서처럼 부정해야만 하지만 언제나 의지대로는 되지 않는, 이를테면 원죄를 짊어진 인간이 부각된다. 또는 「초라한 노파들」에서처럼 그런 삶의 고달픔이 그려진다고 해도 결국 미적 자의식의 일부로 전유ㆍ활용되어 한낱 연민과 감상의 대상으로 이해될 뿐이다. 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보들레르의 시에는 근대의 뒤틀린 삶의 이면이 투시되면서 ‘도덕적’ 감성이 어느정도 생동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미덕을 지닌 모더니스트로서의 보들레르는 앞서도 강조했듯이 횔덜린적 물음에서 멀리 벗어난 시인이기도 하다. 보들레르는 시인의 천분을 타고난 투시적 감수성을 좀더 구체적ㆍ사실적 인식과 결합함으로써 얻어지는 근대의 삶에 대한 시원적 차원의 깨달음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그런 감수성을 통한 특정 현실의 굴절현상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발원하는 야릇한 미적 쾌감을 선호한 것이다.
 
4. 보들레르와 근대(성)의 극복ㆍ성취

보들레르는 근대성을 “덧없고 일회적이며 우발적인 것”과 “영원하고 불변한 것”으로, 즉 양분된 시간성으로 파악한다(전집 Ⅱ-1, 「현대적 삶의 화가」, 695면). 그것은 근대 서유럽에서 발원한 듯한 생산과 소비 양식이 전면적 현실이 된, 후에 자본주의라는 명칭이 붙여진 역사적 지속국면에서 발생한 시간 개념이다. 비유컨대 그의 근대성은 순간과 영원이라는 두 관념의 축이 끊임없이 회전하면서 도취와 환멸을 발생시키는 미적 동력기관에 가까운 것이다.註14) 동시에 권태와 허무를 기본 에너지로 이용하는 그런 기관이 철두철미하게 ‘새로움’을 지향한다는 점이야말로 보들레르 문학의 선진적 성격을 뚜렷이해준다. 맑스의 낯익은 표현대로 하면 그것은 ‘모든 고정된 것을 연기처럼 날려버리는’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환상이 불러온 새로움을 향한 열망이다. 그는 바로 그런 새로움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를 회복케 하는 그대(죽음―인용자)의 독을 부어다오!/이 불길이 이처럼 우리의 뇌수를 태우나니/지옥이든 천국이든 무슨 상관이랴, 심연의 바닥으로,/미지의 깊은 곳으로 뛰어들겠다, 새로움을 찾기 위해.”(FM, 「여행」)
이처럼 새로움을 향한 열망이 시에 투사되면서 발생하는 다분히 역사적인 현상 중 하나는 (모든 것을 파편화하는) 시간에 대한 극한적 자의식과 불안이다. “오! 그렇다! 시간이 다시 나타났다. 이제서야 시간은 군주로서 다스린다. 그 징글맞은 늙은이가 온갖 악마 같은 종자들, 기억ㆍ후회ㆍ경련ㆍ공포ㆍ안타까움ㆍ신경증과 함께 되돌아온 것이다.”(SP, 「이중의 방」) 이후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에서 본격화될 소외와 자기분열이 이미 보들레르의 시에서 대도시의 신경증적 체험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보들레르가 전율적 서정으로 내면화한 근대현실은 생성과 변화의 역사적 시공간이 사라지고 순간과 영원 사이도 진공상태로 남는다. 그는 진공으로 변한 시간 속에서 권태와 허무를 발판삼아 새로움을 찾아 헤맨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볼 때, 자본주의 근대 세계체제에서 이런 새로움의 열망이 수행한 역할은 자명하다. 생명의 진정한 갱신에서 움트는 경이라기보다는 최신 감수성의 감각적 또는 말초적 쇄신에 가까운 새로움에의 몰입은 소용돌이치는 자본주의 근대의 세계상과 상품망을 구축한 정신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즈(R. Williams)의 구분법을 따르면, 보들레르는 모더니스트가 취한 반부르즈와적 태도의 두 유형 중 첫번째에 해당한다. 즉, 그는 부르즈와지 계급에 대한 모더니스트의 경멸적ㆍ적대적 정신이 “성스런 영역”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숭상으로 ‘승화’되는 범주에 해당하는 경우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시에서 더 결정적인 것은--그리고 그를 모더니스트의 진정한 전범으로 만든 핵심적 요인은--단순히 ‘예술을 위한 예술’만은 아니다. 앞서 『악의 꽃』과 『빠리의 우울』을 통해 회피ㆍ일탈로서의 자유가 불러일으키는 환멸과 도취의 미학이 후기자본주의의 몇몇 문화현상을 예시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지만, 도취와 환멸을 오락가락하면서, 즉 ‘예술에의 미몽’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설정한 무시간적 근대성에 빠져든 보들레르 특유의 근대주의야말로 그를 본격 모더니스트의 한 전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악의 꽃』을 특징짓는--20세기 모더니즘의 문제사례인 T. S. 엘리어트에 육박하는 ‘현대성’이라고 말해야 할--“현재의 아이러닉한 영웅화, 자유를 현실로 변환시키는 유희, 자아의 금욕적 가공”註15)은 근대주의가 내면화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함직하다.
그의 시는 서구의 근대문학에서 계승해야 할 것과 떨쳐버려야 할 것 모두를 우리에게 분명히해주는 미덕이 있다. 보들레르를 통해 우리의 근대 민족문학에서 아직껏 댄디적ㆍ보바리슴적 성취가 아쉬운 부분이 있음을 확인하는 한편, 근대적 삶에 무반성적으로 몰입할 때 빚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파산양태까지도 현재적 ‘교훈’으로 얻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시적 성취가 갖는 결코 단순하달 수 없는 이런 양면성을 고려하면, 그를 근대시의 왕국에서 더이상 폐위될 수 없는 “무관의 제왕”으로 속단하는 것은註16) 분명히 일방적인 평가라고 본다. 다만, 보들레르가 예표하는 본격 모더니즘의 진정한 수용과 극복을 위해서라도 ‘악의 꽃’의 역설과 그 악마주의나 허무주의가 갖는 도덕적 파탄에 대해 처음부터 선 긋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근대의 본질적 연장인 ‘근대 이후’를 좀더 치열하게 사유하여 근대(성)의 철폐와 완수라는 힘겹고도 희귀한 과업을 수행하려는 우리에게 보들레르는 더할 나위 없는 도발이자 도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