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M. 쿳시John Maxwell Coetzee(왕은철 옮김)
철기시대
차고 아래쪽으로 골목길이 있다. 너도 그걸 기억할 게다. 네가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서 가끔씩 놀곤 했었지. 이제 그곳은 죽은 곳이다. 쓸모없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바람에 불려온 낙엽들만이 쌓여 썩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어제 보니까, 종이박스와 플라스틱 시트로 된 집이 그 골목길의 끝자락에 있었다. 그 안에는 한 남자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내가 길거리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마르고, 쭈글쭈글한 피부와 충치 먹은 긴 송곳니 하며, 헐렁한 회색 옷에 챙이 축 늘어진 모자를 쓴 모습이 틀림없는 그 남자였다. 그는 모자를 그대로 쓴 채 자고 있었다. 그의 귀에 눌려 모자의 챙이 접혀져 있었다. 그는 떠돌이였다. 밀 스트리트에 있는 주차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쇼핑 나온 사람들한테 동냥을 하고, 고가도로 밑에서 술을 마시고, 쓰레기 깡통을 뒤져 먹는 떠돌이들 중 하나였다. 비가 많이 오는 8월이 최악의 달인, 집 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턱을 쩍 벌리고 꼭두각시처럼 다리를 쭉 뻗고 종이박스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주위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오줌, 싸구려 포도주, 곰팡내 나는 옷, 혹은 그 외의 다른 것들 때문에 나는 고약한 냄새. 불결했다.
잠시 동안 나는 그를 빤히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빤히 내려다보면서 냄새를 맡으며. 방문객. 허구한 날 중에서 하필 이런 날 나를 찾아온 방문객.
어제는 내가 시프레트 박사로부터 그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그건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것이었다. 나를 위한, 전적으로 나만의 것인,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그것은 내가 팔로 받아들고 가슴에 안고, 손을 떨지도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의사선생님, 고마워요. 솔직하게 얘기해주셔서.”
내가 이렇게 얘기하자 의사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할 것입니다. 우리, 이 문제를 함께 극복해나갑시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의 동지 같은 겉모습 뒤로, 그가 몸을 움츠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Sauve qui peut. 죽어가는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에 대한 충실함.
차에서 내렸을 때에야 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차고 문을 닫았을 때쯤엔, 나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그걸 멈추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핸드백을 움켜쥐어야 했다. 내가 그 박스로 된 집을 본 것은, 그 남자를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당신, 여기서 뭘 하는 거죠?”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고 얘기했다.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나가세요.”
그는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으며 위를 쳐다보고, 나의 겨울용 스타킹, 감색 코트, 늘어진 모양새가 언제나, 뭔가 잘못된 데가 있는 스커트, 아이들의 것처럼 핑크색이 도는 머리가죽에 듬성듬성 난 흰머리를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발을 오므리고 한가롭게 일어섰다.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는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검정색 플라스틱을 툴툴 털더니 반으로 접고, 다시 4등분으로 접고, 다시 8등분으로 접었다. 그리고 가방(거기에는 프랑스 비행기라고 쓰여 있었다)을 꺼내 그걸 집어넣고 지퍼를 닫았다. 나는 옆으로 비켜 서 있었다. 종이박스들과 빈 병 하나와 오줌 냄새를 뒤에 남기며, 그는 나를 지나쳤다. 바지가 아래로 늘어지자, 그는 바지를 위로 추슬러올렸다. 나는 완전히 떠났는지 확인하려고 기다렸다. 그가 다른 쪽에서 담장 안으로 플라스틱을 집어넣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한 시간 내에 두 가지 일이 생긴 셈이었다. 오랫동안 두렵게 기다리던 소식, 그리고 이 정찰, 이 통보. 기민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타난, 썩은 고기를 먹는 새들 중 첫 번째.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저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수가 결코 줄어들지 않는, 케이프타운의 넝마주이들. 벗고 다녀도 추위를 타지 않고, 밖에서 잠을 자도 아프지 않고, 굶어도 쇠약해지지 않고, 술기운으로 속에서부터 따뜻해지고, 그들의 핏속에 든 전염병과 감염도 술의 불길에 타 없어지는 사람들. 잔치가 끝나면 뒤처리를 하는 사람들. 마른 날개와 흐릿한 눈을 한, 무자비한 파리들. 나의 상속인들.
나는 이 텅 빈 집 안으로, 울리던 소리도 모두 잦아들고, 바닥을 밟는 발바닥 소리도 단조롭고 밋밋하기만 한 이 집 안으로, 얼마나 더딘 걸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는지 모른다! 네가 여기에 있어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줬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나는 껴안음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껴안아지기 위해 껴안는다. 우리는 미래의 팔에 껴안아지도록, 우리들 자신을 죽음을 초월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그런 곳으로 보내지도록, 우리의 아이들을 껴안는다. 내가 너를 껴안았을 때는, 언제나 그랬던 거다. 우리들이 아이들한테 보살핌을 받기 위해 그들을 낳는다. 본연의 진실, 어머니의 진실. 바로 이것이 네가 지금부터 끝까지 나한테서 듣게 될 이야기의 전부다. 그래, 나는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위층으로 올라가 네 침대 위에 앉아 나의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학교 다닐 때 아침마다 그랬던 것처럼, 네 귀에 대고 “얘야, 일어날 시간이야!” 하고 속삭일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때 너는 몸을 돌리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으로 젖내 나는 입김을 내뿜으며, 사람들이 흔히 “엄마를 크게 한번 껴안아주렴” 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를 덥석 껴안았었지. 그 껴안음의 비밀스러운 의미는, 그 의미를 우리가 말한 적은 결코 없지만, 엄마는 죽지 않고 네 속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기에,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
산다는 것! 너는 나의 삶이란다. 나는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만큼 너를 사랑한다. 아침이면 나는 집에서 나와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들어올려 바람에 댄다. 차가운 바람이 네가 사는 북서쪽에서 불어오면, 나는 오랫동안 서서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집중시킨다. 네가 아직도 네 귓불 뒤와 목에 난 주름 속에 지니고 다니는 젖 냄새가 만 마일도 넘는 육지와 바다를 건너 나한테 도착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업. 나의 죽음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는 것. 너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용서하고 비통함 없이 떠나는 것. 죽음을 내 자신의 것으로, 오로지 나의 것으로 껴안는 것.
그렇다면 이 글은 누구한테 쓰는 걸까? 이 글은 너한테 쓰는 것이지만 너한테 쓰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결국 나한테 쓰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너한테.
오후 내내, 나는 바쁘려고 노력했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면서, 그 속에 든 서류를 정리하고 어떤 것은 버리고 했다. 해질녘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차고 뒤에는 전처럼, 검정색 플라스틱이 그 위에 말끔히 걸쳐진 움막이 세워져 있었다. 그 안에는 그 남자가 다리를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그 남자 옆에는 한 마리의 개가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치고 있었다. 검정색 바탕에 하얀 점이 박힌, 강아지보다 크지 않은 콜리.
“불은 안 돼요. 알겠어요? 불은 안 된다고요. 나는 어수선한 건 싫어요.”
그는 일어나 앉으며 드러난 발목을 문질렀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봤다. 알코올중독자처럼 눈 주위가 부풀어 있고, 쭈글쭈글한 길쭉한 얼굴. 이상야릇한 녹색 눈동자. 건강하지 못하다는 표시.
“먹을 것 좀 줄까요?”
내가 이렇게 말했더니, 그는 나를 따라 부엌까지 왔다. 개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내가 샌드위치를 자르는 동안 기다렸다. 그는 한 입 베어먹더니 씹는 걸 잊어먹은 사람처럼 그걸 입에 가득 담은 채, 문에 기대고 서 있었다. 빛이 그의 텅 빈 녹색 눈을 비추고 있었다. 개가 부드러운 소리로 낑낑거렸다.
“나는 청소를 해야 해요.
나는 조급하게 말하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는 아무 소리도 없이 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기 전에 샌드위치를 던져버리고, 개가 그걸 향해 다이빙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네가 이곳에 살았을 때는 이처럼 집 없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이곳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그들이 나를 놀라게 하느냐고? 대체로 그렇지 않다. 약간의 구걸과 약간의 도둑질, 그리고 오물과 소음과 만취상태, 그 이상으로 나쁘진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슬렁거리는 갱들이다. 감옥의 첫 번째 그늘이 벌써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상어처럼 게걸스럽고, 무뚝뚝한 입 모양을 한 사내애들. 경이로움의 시기와 영혼의 성장기인 유년기에 대해 코웃음을 치는 아이들. 경이로움을 감지하는 영혼의 발육이 정지되고 화석화된 아이들. 그들과 분리되어 다른 쪽에 사는, 점점 더 단단하게 실을 자아 움직임이 없는 고치 속으로 자꾸만 들어가는, 영혼의 발육이 똑같이 정지된 백인 아이들. 수영 레슨, 승마 레슨, 발레 레슨, 잔디 위의 크리켓 경기, 불독들이 지키는 담으로 둘러싸인 뜰에서 지내는 삶, 푸티(고무찰흙)처럼 부드럽고 천사 같은 빛으로 환히 빛나는 블론드 머리의 순진한 아이들, 천국의 아이들.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지옥인 그들의 거처, 꿀에 흠뻑 젖어, 그들의 부드러운 피부로 단물을 빨아들이는, 포동포동하고 하얀 벌의 유충 같은 그들의 순진함.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추상적인, 그들의 졸리는 영혼.
내가 왜 이 남자에게 음식을 주지? 개(틀림없이 이 개는 훔친 거다)가 졸라대면 먹을 것을 주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내가 너한테 젖을 물린 것과 같은 이유에서. 줄 정도로 충분히 충만하기 위해서. 충만하니까 주기 위해서. 그보다 더 깊은 충동이 어디 있을까? 노인도 그들의 쪼글쪼글한 몸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주려고 하는 법이니까. 주려고 하는, 영양을 주려고 하는 완강한 의지. 죽음이 그의 첫 화살을 내 가슴에 겨냥했을 때, 그 과녁은 빈틈없었다.
오늘 아침, 나는 그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며, 그가 하수구에 오줌을 누는 걸 보았다. 그는 수치스럽다는 기색도 없이 그렇게 했다.
“일할 게 필요한가요? 당신한테 줄 일거리는 많이 있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 손으로 컵을 잡고 커피를 마셨다.
“당신은 인생을 허비하고 있어요. 당신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에요. 당신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죠? 당신은 어떻게,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죠? 이해할 수 없군요.”
그건 사실이다.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묵인, 무관심, 소멸의 환영에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뭔가 나한테 충격적인 걸 했다. 그는 똑바로 나를 쳐다보면서,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 발 옆에 있는 콘크리트에 침을, 커피가 묻어 갈색이 된 진하고 노란 침을 칵 뱉었다. 그런 다음 그는 나한테 커피잔을 들이밀고 어슬렁거리며 가버렸다.
그 물질 자체 때문에 흔들리다니,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사이에 내놓인 그 물질 자체. 내 앞에 뱉은 게 아니고 내게 뱉은 침, 내가 그것을 볼 수 있고, 검사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도록 뱉어진 침. 그의 말, 그 자신의 입에서 나온, 그의 입을 떠날 당시에는 따뜻했을 그 나름의 말. 언어 이전의 언어에서 나온, 부정할 수 없는 말. 처음에는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뱉고. 어떤 눈길이었던? 자기 어머니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나이를 먹은 한 여자를, 존경심 없이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 여기 있소. 당신 커피 가져 가.
그는 지난밤에는 골목길에서 자지 않았다. 박스들도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막대기로 콕콕 찔러보니, 헛간에 프랑스 여객기 가방이 있다. 그는 목재와 장작단이 뒤엉켜 있는 곳을 헤쳐서 그 자리를 찾아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그가 돌아오리라는 걸 알게 된다.
벌써 여섯 페이지다. 네가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 남자에 대해서만 벌써 여섯 페이지를 썼다. 내가 왜 그에 대해서 글을 쓰느냐고? 왜냐하면 그는 나이고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나는 글로 기술될 수 있는 방식으로 내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쓰는 이 글은 한때는 높아졌다가 다른 때는 낮아지는 일종의 신음 소리밖에 더 되겠느냐? 나는 그에 대해서 쓰면서 내 자신에 대해서 쓴다. 나는 그의 개에 대해서 쓰면서 내 자신에 대해 쓴다. 나는 집에 대해서 쓰면서 내 자신에 대해서 쓴다. 남자, 집, 개, 그 단어가 무엇이든, 나는 그걸 통해 너를 향해 손을 뻗는다. 다른 세계에서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의 현관에 나타나, “그냥 들르러 왔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나는 너를 껴안고 껴안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그리고 이 시간에는, 나는 말을 통해 네게 닿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내 자신을 말로 바꿔 페이지에 사탕처럼 채워넣는다. 내 딸을 위한 사탕처럼, 내 딸의 생일을 위한, 혹은 내 딸이 태어난 날을 위한 사탕처럼. 내 딸이 언젠가 때가 되면 끌러서, 받아들이고 빨아들이고 흡수할, 내 몸에서 나온 말들, 내 자신의 방울들. 사람들이 젖병에 대해서 말하듯, 구식의 방울들, 나이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방울들,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채워진 방울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삼켜지도록 혹은 버려지도록 내어주는 사람들을 향해 느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사랑.
오후 내내 비가 끊임없이 내렸지만, 내가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조금 후에 개의 발이 베란다에 닿는 소리를 들은 것은 어두워지고 난 후였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장관들과 차관들의 부족 중의 한 사람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들이 연설할 때 늘 그랬듯이, 나는 서 있었다. 그것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사격부대가 앞에 있는데 누가 앉아 있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온스 베이흐 니 푸어르 드레이허멘터 니.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고 그런 연설 중의 하나.
내 뒤에 있는 커튼이 젖혀졌다. 나는 어느 순간, 그 남자가, 이름도 모르는 그 남자가 유리창을 통해 내 어깨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볼륨을 높였다. 말이 실제로 들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말의 리듬이라도, 땅에 기둥을 박는 데 사용되는 망치처럼, 쿵 하고 묵직하게 끝나는 느리고 공격적인 아프리칸스어의 리듬이라도 그에게 들릴 수 있도록 볼륨을 높였다. 우리는 쿵쿵 내리찍는 말을 같이 들었다. 그들 밑에서 살아가는 치욕적인 삶.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오줌발을 받는 것처럼,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그들 밑에서. 그들의 피둥피둥한 배와 그들의 꽉 찬 방광 밑에서. “당신들이 끝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나는 언젠가, 이제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그들에게,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내가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것은 가게에 가기 위해 차고 문을 열고 있을 때였다. 공격, 바로 그것이었다. 개처럼 달려들어 내 등을 이빨로 물어뜯는 듯한 고통. 나는 소리를 질렀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가, 이 남자가 나타나 나를 부축해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왼쪽 옆구리를 소파 위에 대고 누웠다. 그게 유일하게 편한 자세였다. 그는 기다렸다. 나는 말했다.
“앉아요.”
그는 앉았다. 고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암에 걸려 있어요. 암세포가 뼛속까지 퍼졌어요. 그래서 아픈 거예요.”
나는 그가 내 말을 이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긴 침묵. 그런 다음, 그가 말했다.
“이 집은 크군요. 이 집에서 하숙을 쳐도 되겠어요.”
나도 피곤하다는 몸짓을 했다.
그러나 그는 무자비하게 말을 계속했다.
“학생들에게 방을 세내줄 수도 있잖아요.”
나는 하품을 하다가, 약해진 이가 드러나는 게 느껴져,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옛날 같으면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아줌마가 있는데, 월말까지는 사람들을 방문하느라 멀리 가 있어요. 당신에게는 사람들이 있나요?”
사람들이 있느냐고? 이상한 표현이다. 나한테 사람들이 있는가? 네가 나의 사람들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플로렌스만이 사람들을 가질 자격이 있을 게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없다는 분위기가 그에게서 느껴진다. 아이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도 없었던 것 같다. 뼈만 앙상하고 쭈글쭈글한 피부의 얼굴. 늙어 보이지 않는 뱀의 머리를 상상할 수 없듯이, 그의 얼굴에서는 아이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 녹색 눈, 동물의 눈. 그런 눈을 가진 아이를 상상할 수 있을까?
“내 남편과 나는 오래전에 헤어졌어요. 그 사람은 지금 죽고 없어요. 나한테는 미국에 사는 딸이 하나 있어요. 그 애는 1976년에 떠난 후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미국 남자하고 결혼했는데, 두 아이를 두고 있어요.”
딸. 내 몸의 몸. 너.
그는 담뱃갑을 꺼냈다.
내가 말했다.
“집 안에서는 담배피지 마세요. 부탁해요. 당신한테는 무슨 장애가 있나요? 장애인 연금을 받는다고 했기에 묻는 거예요.”
그는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다른 손가락들은 손바닥 안으로 접혀지는데, 엄지와 검지는 그대로 있었다.
“두 손가락은 움직일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의 손을, 손톱에 때가 낀 세 개의 구부러진 손가락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일을 해서 못이 박인 손이라고는 할 수 없는 손이었다.
“사고로 그랬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나중에 책임질 필요가 없는 그런 종류의 끄덕임이었다.
내가 말했다.
“돈을 줄 테니 잔디를 깎아주세요.”
그는 한 시간 동안, 울타리의 가지를 치는 데 쓰는 큰 가위를 사용하여, 이제는 이곳저곳에 무릎 높이까지 커 올라온 잔디를 성의 없이 깎았다. 결국, 그는 몇 야드의 잔디를 깎았다. 그런 다음 그는 그만뒀다.
“이건 나한테 맞는 일은 아니군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일한 시간에 맞는 돈을 줬다. 그가 떠날 때, 고양이 밥그릇이 그의 몸에 닿아 엎어져버렸다. 거기에 담긴 고양이 밥이 베란다의 이곳저곳에 흩어졌다.
대체적으로, 그는 가치가 있는 것보다는 문제가 더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택한 건 아니었다. 그가 나를 택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단순히, 개가 없는 집을 택했을 수도 있다. 고양이들의 집.
고양이들은 새로 들어온 식구들 때문에 동요하고 있다. 고양이들이 밖으로 코를 내밀면, 개가 그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돌진한다. 그러면 그들은 언짢아하며 안으로 달려들어온다. 오늘은 먹지도 않으려고 했다. 나는 먹이가 냉장고에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그걸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생각해, 냄새 나는 먹이(도대체 이건 뭘로 만들어졌을까? 물개 고기? 고래 고기?)에 뜨거운 물을 약간 부어 저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꼬리 끝을 찰싹대며 접시 주변을 돌기만 할 뿐, 먹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접시를 밀치며 “먹어!” 하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그 중 큰 놈은 접시가 닿지 않도록 하려고 매끈한 앞발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걸 보고 이성을 잃었다. “그럼, 뒈져버려라!”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그들을 향해 난폭하게 포크를 던졌다. “너희들을 먹이는 게 지겨워 죽겠다!” 내 목소리에는 새로운 광기의 각이 서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의기양양해했다. 사람들에게 잘하는 건 할 만큼 했다. 고양이들한테 잘하는 건 할 만큼 했다! “지옥으로 꺼져라!”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리놀륨을 밟으며 부리나케 도망쳤다.
알 게 뭐야? 나는 이런 기분이 되면 빵을 써는 도마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두 번 다시 생각도 하지 않으며 토막을 낼 수도 있다. 나를 배반한 이 몸인데, 내가 알 게 뭐야? 나는 내 손을 바라본다. 그것은 그저 도구, 다른 물건들을 쥐기 위한 갈고리, 혹은 물건일 뿐이다. 두 다리는 꼴사납고 추한 지주支柱일 뿐이다. 내가 왜, 이런 것들을 어디나 끌고 다녀야 하지? 내가 왜, 밤이면 밤마다 이것들을 침대로 끌고 가서 시트를 덮어주고, 팔도 얼굴에 더 가까운 쪽에 두고, 혼란 속에서 잠도 못 자고 누워 있어야 하지? 끔찍하게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는 배도 마찬가지고, 발딱발딱 뛰는 심장도 마찬가지야. 왜? 그런 것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지?
우리는 죽기 전에 병에 걸린다. 우리가 우리의 몸에서 떨어지도록 말이다.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해줬던 젖도 점점 묽어지고 시어진다. 우리는 젖가슴으로부터 떨어져 돌아서며, 별도의 삶을 위해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삶, 지상에서의 삶, 지구의 몸 위에서의 삶,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혹은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우울함과 절망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
처음에는 멀리에서, 코르크 공기총처럼 희미하게, 머스켓총 소리가 들린다. 그런 다음, 막사와 더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성벽에서, 그 소리에 화답하여 축포를 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병영의 뜰을 우르르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들린다.
“야만인들이다!”
누군가가 소리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안다. 종 소리가 이러한 소란 위로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문틈에 귀를 갖다대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광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왁자지껄한 소리에서 아무 목소리도 분간할 수 없는 지속적인 함성으로 바뀐다. 수천의 시민들이 환희에 넘쳐 환영의 함성을 지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머스켓총으로 축포를 쏘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함성이 더 높이 올라가고 더 흥분감을 띠게 된다. 나팔에서 나오는 놋쇠 소리가 그 위로 희미하게 들린다.
마음이 너무 그쪽으로 끌린다. 하기야 내가 더 이상 잃을 게 뭐가 있는가? 나는 문의 자물쇠를 딴다. 눈이 너무 부시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가늘게 뜬다. 나는 뜰을 가로질러 문을 통과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뒤쪽으로 간다. 축포 소리와 박수 소리가 계속 터진다. 내 곁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나이든 여자가 중심을 잡기 위해 내 팔을 잡고 발돋움을 한다.
“보여요?”
그녀가 묻는다.
“그렇소. 말을 탄 사람들이 보이는구려.”
내가 대답한다. 그러나 그녀는 듣고 있지 않다.
기병들의 기다란 행렬이 보인다. 그들은 깃발을 휘날리며 정문을 통과해 광장의 중앙으로 가 말에서 내린다. 광장에는 먼지가 자욱하다. 그래도 그들이 웃고 있는 모습은 보인다. 그들 중의 하나는 승리의 표시로 손을 들어올린 채 말을 타고 간다. 또 다른 사람은 화환을 흔든다. 그들은 천천히 나아간다. 사람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그들을 만지고, 꽃을 던지고, 손을 들어올리고 박수를 치며, 희열에 넘쳐 빙글빙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들의 영웅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내 옆을 지나 어른들의 다리 속으로 들어간다. 성벽에서는 축포 소리가 연이어 터진다. 환호하는 사람들이 그 밑으로 줄을 지어 서 있다.
기마대의 일부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다. 녹색과 금색으로 된 부대 깃발을 든 근엄한 얼굴의 상병이 맨 앞에 서 있다. 그들은 몰려 있는 사람들을 통과해 광장의 끝부분으로 가서 한 바퀴 돈다. 군중이 서서히 그쪽으로 몰려든다.
“야만인들이다!”
이 말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불길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나아갈 길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막대기를 휘두르는 남자가 깃발을 든 사람의 말을 끌고 있다. 그 뒤로 다른 기병이 밧줄을 끌고 간다. 밧줄의 끝에는 목과 목이 서로 줄줄이 묶인 야만인들이 있다. 완전히 발가벗은 그 야만인들은 모두, 이상한 모습으로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있다. 마치, 치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 같다. 나는 잠시, 그들이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앞 사람을 따라가는지 의아해 한다. 그러나 나는 쇠가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즉시 상황을 알아차린다. 철사줄이 모든 사람의 손바닥과 뺨에 꿰어져 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양처럼 순해진답니다. 그들은 아주 조용히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어떤 병사가 전에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역겨워진다. 이제 나는 내가 감방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말을 탄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행렬의 후미에서 다가오고 있는 두 사람이 나를 보지 못하도록 재빨리 몸을 돌린다. 처음으로 전투에 나가 승리를 한, 모자를 쓰지 않은 젊은 대위가 그 중 한 사람이고, 몇 달 간에 걸친 작전을 하느라고 더 마르고 새까매진 졸 대령이 또 다른 한 사람이다.
그들이 한 바퀴 돌자, 모든 사람들은 야만인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건 야만인들이 진짜로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제 군중은 큰 문이 있는 쪽으로 몰린다. 나도 마지못해 그들을 따른다. 그런데 그곳은 반원을 그린 병사들이 가로막고 있다. 사람들이 앞뒤로 가득 차서, 이제는 움직일 수도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나는 옆 사람에게 묻는다.
“모르겠어요.”
그가 말한다.
“내가 도와줄 테니 저 애를 올려봅시다.”
나는 그가 아이를 어깨 위로 들어올리는 걸 돕는다.
“보이니?”
그가 아이에게 묻는다.
“예.”
“무슨 일이니?”
“야만인들을 무릎 꿇게 하고 있네요. 어떻게 하려는 거죠?”
“모르겠다. 기다려보자.”
나는 천천히, 그러나 온 힘을 다해 강력하게, 몸을 돌려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더위 때문에 현기증이 나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손가락질하는 걸 본다.
나는 감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몸짓만 해서는 아무 효과도 없을 것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위해서, 나 혼자에 대한 몸짓으로라도, 서늘한 어둠 속으로 돌아가 문을 잠그고 열쇠를 구부려버리고, 피에 굶주린 애국심으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에 내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다시는 말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나는 동료 시민들에게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자기 귀에 들리지 않도록 콧노래를 부르며 구두에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부들은 부엌에서 콩껍질을 벗기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농부들은 지금도 조용히, 도랑을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그들을 모른다는 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지금 이 순간, 군중으로부터 큰 걸음으로 멀어지는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 건, 내가 막 일어나려고 하는 잔혹행위에 오염되지 않아야 하며, 또한 가해자들의 무기력한 증오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죄수들을 구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내 자신이라도 구하는 길을 택하자. 언젠가 누군가가 이것에 대해서 얘기하게 된다면, 그리고 먼 훗날 누군가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제국의 변방 오지에도, 마음속에서는 야만인이 아니었던 자가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다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는 막사 정문을 지나 감옥의 뜰로 간다. 나는 뜰의 중앙에 있는 여물통에서 빈 양동이를 집어들고 물을 가득 채운다. 나는 옆에서 물이 질질 새는 양동이를 들고, 사람들의 뒤쪽에 다시 다가선다.
“실례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며 사람들을 밀친다. 사람들이 욕을 하며 길을 비킨다. 양동이가 기우뚱하며 물이 넘친다.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1분도 되지 않아 갑자기, 군중의 맨 앞줄, 즉 그들 사이에 있는 막대기를 붙잡고 사람들이 그 모습을 잘 볼 수 있도록 그곳을 정리하며 서 있는 군인들의 등 뒤에까지 가 있다.
포로들 중 넷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다른 여섯은 아직도 로프에 묶인 채, 그들의 손을 뺨에 대고 벽이 드리운 그늘에 쪼그려 앉아 앞을 쳐다보고 있다.
무릎을 꿇고 있는 포로들은 길고 무거운 막대기 위에 나란히 몸을 구부리고 있다. 끈이 첫 번째 남자의 입에 꿰인 철사고리를 통과했다가 막대기에 감기고, 다시 그 끈이 두 번째 남자의 고리에 꿰어졌다가 막대기에 감기고, 다시 그 끈이 세 번째 남자의 고리에 꿰어졌다가 막대기에 감기고, 다시 그 끈이 네 번째 남자의 고리에 꿰어져 있다. 그때, 한 병사가 천천히 그 끈을 잡아당겨 바짝 조이자, 포로들은 무릎을 꿇고 그들의 얼굴이 막대기에 닿을 때까지 몸을 더 구부린다. 포로 중의 하나가 고통을 못 이겨 어깨로 몸부림을 치며 신음 소리를 낸다. 다른 포로들은 조용하다. 그들은 고리에 살이 떨어지지 않도록, 끈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데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손을 약간 움직이는 것으로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졸 대령이다. 나는 수천 명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그의 눈은 전처럼 가려져 있지만, 나는 캐묻는 듯한 얼굴로 그를 아주 심하게 노려본다. 즉시 나는 그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내 뒤에서 치안판사라는 말이 들리는 걸 분명히 듣는다. 내가 상상을 하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조금씩 나한테서 멀어지고 있는 걸까?
대령이 앞으로 나온다. 그는 번갈아가며 포로들 위에 몸을 굽히고 그들의 벌거벗은 등에 한줌의 먼지를 문지르고, 숯으로 그 위에 무슨 말인가를 쓴다. 나는 그 단어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읽는다. 적… 적… 적… 적. 그는 뒤로 물러서서 손을 맞잡는다. 스무 발자국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그와 나는 서로를 응시한다.
그런 다음, 채찍질이 시작된다. 병사들은 단단한 초록색 등나무 회초리를 사용한다. 회초리로 내리칠 때마다, 빨래주걱이 무겁게 철썩대는 소리가 나고, 포로들의 등과 엉덩이에 붉은 채찍자국이 난다. 신음을 하다가 이제는 맞을 때마다 헐떡거리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포로들은 배를 땅에 대고 납작하게 엎드릴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리를 뻗는다.
검은 숯과 황토색 먼지가 땀과 피에 섞여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지금 보니, 그들의 등에 쓰인 글씨가 깨끗이 없어질 때까지 때릴 작정인 모양이다.
나는 엄마의 옷을 움켜쥐고 맨 앞줄에 서 있는 작은 소녀의 얼굴을 본다. 그 애는 눈이 동그랗고 입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있다. 아이는 공포에 떨면서도 호기심 많은 얼굴로 몸집이 큰 남자들이 벌거벗은 채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표정을 띠고 있다. 웃고 있는 사람들조차 말이다. 그건 증오나 피에 굶주린 욕망이 아니라 너무나 강렬한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너무 강렬해져 그들의 몸이 그것에 의해 고갈되고, 눈만 살아 있는 것 같다. 새롭고도 탐욕스러운 욕망의 기관인 눈만이 말이다.
채찍질을 하던 군인들이 지친다. 그 중 한 사람이 엉덩이에 손을 대고 헐떡거리며 미소를 짓더니 사람들에게 손짓을 한다. 대령이 무슨 말인가를 한다. 네 사람은 채찍질을 멈추고 앞으로 나와 그들의 회초리를 사람들에게 건넨다.
낄낄거리며 얼굴을 가린 한 젊은 여자가 친구들에게 등을 떠밀린다.
“겁내지 말고 한번 해봐!”
그들이 그녀를 부추긴다. 병사가 회초리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그녀를 데리고 간다.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고 당황스러워하며 서 있다. 환성과 농담과 음탕한 말이 그녀에게 쏟아진다. 그녀는 회초리를 들어올려 잽싸게 포로의 엉덩이에 내리치더니 그것을 놓고는 환호하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 속으로 부리나케 숨는다.
회초리를 잡으려고 너도 나도 아우성이다. 군인들이 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람들이 앞으로 몰린다. 그들도 해보기 위해서다. 아니면 더 가까운 곳에서 채찍질을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그 와중에, 땅 위에 있는 포로들은 나의 시야에서 가려지고 없다.
그런 다음, 채찍질이 끝나고, 군인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사람들은 뒤로 허둥지둥 물러난다. 전보다 더 좁아지긴 했지만, 자리가 다시 확보된다.
졸 대령은 망치를 머리 위로 들어올려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텐트의 말뚝을 박는 데 사용되는 평범한 4파운드짜리 망치다. 다시 한 번, 그의 눈길과 나의 눈길이 만난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라앉는다.
“안 돼!”
나는 녹슨 듯도 하고, 충분히 크지도 않은 첫 말이 내 목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안 돼!”
다시 그 말이 들린다. 이번에는 그 말이 가슴속에서 울리는 벨 소리처럼 들린다. 내 길을 막던 병사가 옆으로 비틀거린다. 나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두 손을 든다.
“안 돼! 안 돼! 안 돼!”
나는 졸 대령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는 팔짱을 끼고, 나에게서 다섯 발자국도 되지 않는 거리에 서 있다. 나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너 말이야!”
내가 소리친다. 그래, 할 말은 다 해버리자. 저 사람에게 분노가 쏟아지게 하자.
“너는 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어!”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대꾸조차 안 한다.
“너 말이야!”
나는 총을 겨누듯 손가락으로 그를 겨눈다. 내 목소리가 광장에 가득 찬다. 완벽한 고요함이 깃든다. 어쩌면 내가 너무 흥분해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뭔가가 내 등을 친다. 나는 먼지 속으로 나자빠져 헐떡거린다. 전에 아프던 등이 다시 아파오는 걸 느낀다. 막대기가 내 몸 위로 떨어진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손을 뻗다가, 손에 정통으로 얻어맞는다.
고통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나는 일어서서 나를 때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쳐다본다. 그는 채찍질하는 걸 도와주던, 하사관 계급장을 단 땅딸막한 병사다. 그는 무릎을 구부리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자세로 다시 한 번 때리려고 막대기를 들고 있다.
“잠깐!”
나는 축 늘어진 손을 내밀며 헐떡거린다.
“넌 이미 내 손을 부러뜨렸잖아!”
그가 때린다. 나는 팔뚝을 맞는다. 나는 팔을 감추고 머리를 숙인 자세로, 그를 향해 엉거주춤 나아가 그를 붙잡으려고 한다. 내 머리와 어깨에 몽둥이질이 가해진다.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일단 시작했으니만큼, 하던 말을 마저 끝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의 제복 상의를 잡고 그를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는 나와 실랑이를 벌이지만 막대기를 쓸 수가 없는 상태다.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다시 한 번 소리친다.
“그건 안 돼!”
나는 소리친다. 망치는 팔짱을 낀 대령의 팔에 걸쳐 있다.
“짐승에게도 망치는 사용해서는 안 돼!”
분노가 무섭게 솟구친다. 나는 하사관을 향해 몸을 돌리고 그를 밀쳐버린다. 나한테는 신과 같은 힘이 있다. 그것은 금세 지나가버릴 것이다. 그것이 내게 있는 동안, 잘 사용해보자!
“이봐!”
내가 소리친다. 나는 네 명의 포로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들은 입술을 막대기에 대고, 원숭이 앞발처럼 손으로 얼굴을 쥐고, 망치에 대해서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 채 유순한 자세로 땅 위에 앉아 있다. 그들은 그들의 등에 쓰여 있던 글씨가 매를 맞는 과정에서 없어졌다는 데 안도감을 느끼며, 이제는 벌받는 게 끝났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부러진 손을 하늘 쪽으로 치켜든다.
“이것 보라고!”
내가 소리친다.
“우리는 위대한 생명의 기적이야! 그러나 이 기적적인 몸조차도 어떤 것으로 맞으면 회복하는 게 불가능할 수 있단 말이야. 어떻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저 사람들을 보라고!”
나는 말을 다시 시작한다.
“저 사람들 말이야!”
목을 길게 빼어 포로들을 바라보고, 피가 흘러내리는 채찍자국에 내려앉기 시작하는 파리들을 바라보는 군중 속에 있는 저 사람들.
나는 몽둥이가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몸을 돌린다. 그것은 내 얼굴 전체에 떨어진다.
“눈이 안 보여!”
나는 순간적으로 내리닥친 어둠 속으로 뒷걸음치며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피를 삼킨다. 뭔가가 내 얼굴에 번진다. 그것은 처음에는 따뜻하더니 나중에는 활활 타는 듯 쓰리다. 나는 발을 구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지르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한 바퀴 돈다.
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창조의 기적, 어쩌고 하면서 뭔가를 말하려고 했을 테지만, 그것은 한줌의 연기처럼 손에 잡혀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딱정벌레와 지렁이, 바퀴벌레와 개미 같은 벌레들도 그들 나름의 다양한 방식으로 태어나는 창조의 신비일 텐데, 우리는 그들을 발로 짓이기며 사는 것 같다.
나는 눈에서 손을 뗀다. 뿌연 세상이 눈물 속에 헤엄을 치면서 다시 나타난다. 나는 그것이 너무 고마워 고통마저 잊는다. 그들이 나를 양쪽에서 끼고 감옥으로 데려간다. 군중이 웅성거린다. 나는 미소를 짓기까지 한다.
기쁨이 갑작스럽게 분출된 그 미소는 혼란스러운 앙금을 뒤에 남긴다. 나는 그들이 나를 그 자리에서 그렇게 취급함으로써 잘못을 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웅변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내가 하려고 하던 말을 계속하도록 놔뒀다면 내가 무슨 얘기를 했을 것인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발이 늘어지도록 두들겨패는 것이 더 나쁘다는 얘기를 했을까? 여자애한테 채찍질을 하게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을까? 잔인한 걸 보여주면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도 타락한다는 얘기를 했을까? 그들이 못하게 했던 말은 사실, 소동을 일으킬 만한 말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결국, 잡혀온 적들을 신사적으로 대하라는 케케묵은 규범 외에 내가 편드는 게 뭐란 말인가? 결국, 혼란스럽고 치욕스러운 눈길을 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새로운 형태의 타락상을 제외하면, 내가 반대하는 게 뭐란 말인가? 엉덩이를 쳐들고 있는 이 야만인들을 법대로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군중에게 내가 감히 뭘 요구할 수 있을까? 정의라는 말을 한번 입 밖에 내면, 그 끝이 어디일 것인가? 아니야! 하고 소리치는 게 더 쉽다. 맞아죽어 순교자가 되는 게 더 쉽다. 야만인들을 위해 정의를 달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단두대에 머리를 대는 것이 더 쉽다. 그런 주장은 결국, 우리가 무기를 내려놓고 우리에게 땅을 강탈당한 사람들에게 성곽 문을 개방하라는 말밖에 더 되는가? 치안판사직을 역임했던 사람에게도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회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을 수호하던 덕목 높은 옛 치안판사에게도, 국가의 적이 되어 폭행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옛 치안판사인 나에게도 나름대로 회의의 실타래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코가 부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몽둥이에 맞아 살이 찢어진 광대뼈도 어쩌면 부러졌을 것이다. 왼쪽 눈은 부어올라 앞을 볼 수조차 없다.
멍한 느낌이 사라지자, 고통이 2-`3분에 걸쳐 발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너무 심해서 더 이상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다. 경련이 너무 심해지면, 나는 개처럼 낑낑거리며, 얼굴을 부여잡고 방 안을 뛰어다닌다. 고통이 사그라드는 중간중간에,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내 자신을 진정시키고, 너무 수치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광장에 있는 군중들이 내는 함성 소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나는 그 함성이 단순히 내 귀에서 나는 환청이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들은 나에게 저녁식사를 들여보내지만 나는 먹을 수가 없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나는 고함을 지르지 않기 위해 옷을 찢고, 살을 쥐어뜯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이 하는 무슨 짓이든 하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거나 앉아서 몸을 들썩거린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찢어진 살에 닿으니 고통스럽다. 나는 말을 타고 가는 사람과 곱향나무에 관한 옛 노래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나는 그 의미가 없어진 다음에도 머릿 속에 떠오르는 노랫말에 집착한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숫자를 센다. 나는 오늘밤만 견디는 것으로도 대단한 일일 거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른 아침 시간이 되자, 몸이 너무 기진맥진해져 현기증이 난다. 서 있는 몸이 비틀거린다. 결국 나는 무너져내리며 아이처럼 하염없이 흐느낀다. 나는 벽에 몸을 기대고 방구석에 앉아 흐느낀다. 욱신욱신 쑤시는 것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이러한 자세로 앉아 있는 내게 벼락처럼 잠이 내리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희미한 잿빛으로 날이 밝는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내가 정신이 든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욱신욱신 쑤시는 고통이 아직도 느껴지지만, 나는 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걸 견딜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물감도 사라지고 없다. 어쩌면 머지않아, 그것은 숨결만큼이나 내 몸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몸을 벽에 대고 조용히 누워, 아픈 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두 번째로 잠에 빠진다. 이런저런 형상들이 꿈속에 나타난다. 나는 나를 향해 잎사귀처럼 날아오는 다른 형상들을 옆으로 물리치며 특정한 형상을 찾는다. 그것은 여자의 형상이다. 그녀는 눈으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모래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만든 성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내게는 그녀의 등만이 보인다. 그녀는 짙은 청색 옷을 입고 있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자, 그녀가 성의 안쪽을 파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나를 의식하고 돌아선다. 내가 착각했다. 그녀가 만든 건 성이 아니라 진흙 오븐이다. 뒤쪽에 있는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그녀는 손을 뻗쳐 뭔가를 내게 내민다. 나는 마지못해, 형체가 없는 덩어리를 안개 속에서 자세히 바라본다. 머리를 흔들어보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금색으로 수를 놓은 둥근 모자를 쓰고 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두툼하게 땋아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있다. 금색 실이 땋은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가 있다. “왜 너는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거니?” 나는 얘기하고 싶다. “나는 네가 이처럼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녀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인가, 얼마나 맑은 까만 눈인가! 이제야 나는 그녀가 나한테 내민 것이 한 덩어리의 빵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빵은 아직도 따뜻하다. 갈라진 껍질 사이로 거친 김이 모락모락 난다. 고마움의 물결이 내 몸 속에 솟는다. “너 같은 아이가 이 사막에서 그렇게도 빵을 잘 굽는 법을 어디서 배웠더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그녀를 껴안아주기 위해 팔을 벌리다가, 눈물이 뺨 위에 난 상처를 건드려 쓰리는 바람에 정신이 든다. 나는 금세 잠 속으로 다시 빠져들지만, 그 꿈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군침이 돌게 하던 빵 맛도 볼 수 없다.
추 락
테레사는 그녀의 하얀 실내복을 입고 침실 창문에 서 있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다. 밤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그녀는 바람이 스치고, 황소개구리들이 울어대는 밤에, 깊게 숨을 내쉰다.
그녀는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이 거대한 고독은 무슨 말을 하려는가? 내 자신은 무엇인가?Che vuol dir, Che vuol dir questa solitudine immensa? Ed io, che sono?”
침묵. 거대한 고독은 아무 말이 없다. 구석에 있는 삼중주마저 산쥐처럼 조용하다.
그녀가 속삭인다.
“오세요! 제발 내게로 오세요, 나의 바이론이여!”
그녀는 팔을 크게 벌려 어둠을 껴안고, 그것이 가져올 것을 껴안는다.
그녀는 그가 바람을 타고 와서 그녀를 감싸주고, 그녀의 젖가슴의 우묵한 곳에 얼굴을 묻기를 바란다. 어떤 때는 그녀는 그가 새벽을 타고 와서, 그녀에게 따뜻한 열기를 주는 태양신처럼, 지평선 위에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다시 갖기를 원한다.
그는 개들이 있는 뒤뜰 탁자에 앉아, 테레사가 어둠을 바라보면서 애원하는 구슬프고도 너무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테레사에게는 지금이 그 달 중 좋지 않은 시간이다. 그녀는 몸이 쑤시고, 한 숨도 자지 못하고, 기다림에 지쳐 초췌해져 있다. 그녀는 고통으로부터, 여름 더위로부터, 감바 빌라로부터, 그녀 아버지의 못된 성깔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구출되기를 바란다.
그녀는 만돌린을 의자에서 집어든다. 그녀는 어린애처럼 그것을 어루만지며, 창가로 간다. 만돌린이 그녀의 팔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깨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띠릉 따릉 소리를 낸다. 아프리카의 황량한 뜰에서 반죠가 띠릉 따릉 소리를 낸다.
그저 장난삼아서 해보는 거야. 그는 로잘린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거짓말. 오페라는 취미가 아니다. 더 이상은 그게 아니다. 그것은 밤낮으로 그를 사로잡는다.
이따금 좋은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이탈리아에서의 바이론」은 아무런 진척이 없다. 행동도 없고, 발전도 없다. 테레사가 텅 빈 허공에 대고 쏟아내는 길고 떠듬거리는 칸틸레나가 있을 뿐이다. 그 소리는 이따금, 무대 밖에서 들리는 바이론의 신음과 한숨 소리에 중단된다. 남편과 연적인 정부는 잊혀지고,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안에 있는 서정적인 충동은 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몇십 년 동안 굶주려 있다 보니, 위축되고 발육이 안 되고 으깨진 상태로 동굴에서 기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는 「이탈리아에서의 바이론」을 단조로운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음악적인 기략도, 풍부한 에너지도 없다. 그것은 몽유병환자나 씀 직한 종류의 작품이 되어 있다.
그는 한숨을 쉰다. 독특한 실내오페라의 작곡가로서 사회에 개선하는 것은 괜찮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희망은 더 온건한 것이어야 한다. 그는 혼란스러운 소리들 중 어딘가에서, 불멸의 염원을 담고 있는 진정한 음조가 한 마리의 새처럼 날아올랐으면 하고 바란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미래의 학자들에게 남겨둘 것이다. 그때도 여전히 학자들이 있다면 말이다. 그 음조가 나올 때는, 만약 그것이 나온다면, 그는 그것을 직접 듣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걸 기대하기에는 예술과 예술의 방식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루시가 그녀의 생전에 그걸 듣고 그를 조금 더 좋게 생각하면 좋을 테지만.
가엾은 테레사! 가슴앓이를 하는 가엾은 여자! 그는 무덤에서 그녀를 데려오면서, 그녀에게 다른 삶을 약속했다. 그런데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를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그는 우리에 갇힌 개들 중에서, 한 마리를 특별히 좋아하게 된다. 오그라든 왼쪽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새끼 수캐다. 그는 그 개가 본래 그렇게 태어났는지 어쩐지 모른다. 은총의 시기는 거의 끝이 났다. 곧 주사바늘에 굴복해야 할 것이다.
그는 때때로, 어떤 걸 읽거나 쓰는 동안, 그 개를 우리에서 풀어줘 그것 나름의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뜰 주변을 뛰어다니게 하거나 그의 발 옆을 기웃거리게 놔둔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아도 ‘그의 것’이 아니다. 베브 쇼는 그 개를 세 다리Drie poot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그 개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개에게서 그를 향해 흘러나오는 너그러운 애정을 감지할 수 있다. 제멋대로, 무조건적으로, 그가 선택되었다. 그는 그 개가 그를 위해 죽으라면 죽을 거라는 걸 안다.
그 개는 반죠의 소리에 매혹되어 있다. 그가 줄을 튕기면, 그 개는 앉아서, 머리를 쳐들고, 그 소리를 듣는다. 그가 테레사의 가락을 흥얼거리고, 그 흥얼거림 속에 감정―이런 때는 그의 후두가 부푸는 것 같고, 목에서 피가 쿵쿵 뛰는 게 느껴진다―이 부풀어오르면, 그 개 역시 입맛을 다시며 노래를 하거나 울부짖을 것처럼 보인다.
그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개를 노래 안으로 끌어들여, 사랑에 번민하는 테레사의 노래들 사이에서, 하늘에 대고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게 할 수 있을까? 왜 안 돼? 결코 공연이 되지 못할 작품이라면, 어떤 걸 해도 좋은 게 아닐까?
그는 토요일 아침, 약속에 따라, 루시의 노점을 도우려고 동킨 스퀘어에 간다. 그는 일이 끝난 후, 그녀를 데리고 점심을 사주러 간다.
루시는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다. 그녀는 평온해 보이고 자기 생각에 열중한 표정이다. 그녀는 임신한 표시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런 표시들을 보게 되면, 독수리눈을 한 그래함스타운의 여자들이 그런 것들을 보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그가 묻는다.
“페트루스는 어떻게 지내니?”
“집은 완공되었어요. 천장과 배관을 제외하면 모두. 지금 입주하는 중이에요.”
“그들의 아이는? 애가 태어날 때 되지 않았니?”
“다음 주래요. 모든 게 때에 아주 잘 맞아요.”
“페트루스가 무슨 제안을 더 하더냐?”
“제안이라고요?”
“너에 대해서, 네 위치에 대해서 말이다.”
“아뇨.”
“어쩌면 아이가―”
그는 그의 딸을 향해, 그녀의 몸을 향해, 아주 희미한 몸짓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질지 모른다. 결국 그 아이는 이 땅의 아이일 것이니. 그들은 그걸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 오랜 침묵이 흐른다.
“넌 아이를 사랑하니?”
그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그것이 그를 놀라게 한다.
“아이요? 아뇨,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럴 거예요. 사랑이 싹틀 거예요. 그것에 관한 한, 모성을 믿어야지요. 아버지,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작정이에요. 좋은 엄마이자 좋은 사람이 되겠어요. 아버지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보세요.”
“그건 나한테는 너무 늦은 것 같구나. 나는 형기를 채우고 있는 늙은 죄수일 뿐이다. 하지만 넌 앞으로 나가거라. 네가 가는 길은 괜찮겠지.”
좋은 사람. 그건 어두운 시대에, 그리 나쁜 결정은 아니다.
그는 무언의 합의에 따라, 당분간 그의 딸의 농장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주중의 어느 날, 그는 켄튼가를 따라 차를 몰고 가서, 차를 분기점에 세워두고, 소로가 아니라 초원을 가로질러 나머지 길을 걸어간다.
마지막 구릉에 서자, 농장이 그 앞에 펼쳐진다. 예전처럼 견고한 옛날 집, 마구간, 페트루스의 새 집, 오리임에 틀림없을 댐 위의 반점들, 야생 거위임에 틀림없을 더 큰 반점들, 멀리서 루시를 찾아온 손님들.
이렇게 떨어져서 보니까 화단은 자홍색, 홍옥색, 회청색 등의 색깔이 블록을 이루고 있다. 꽃이 피는 계절. 꿀벌들은 일곱 번째 천국에서 사는 게 틀림없다.
페트루스는 흔적도 없다. 그의 아내도 그렇고, 그들과 함께 사는 자칼 같은 사내애도 그렇다. 하지만 루시는 꽃 사이에서 일을 하고 있다. 기슭을 내려가자 불독도 보인다. 그녀 곁의 길 위에 있는 한조각의 황갈색.
그는 울타리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춘다.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그녀는 아직 그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얇은 여름 드레스를 입고 장화를 신고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다. 그녀가 자르고 전지하고 묶기 위해 몸을 굽힐 때, 푸른 혈관이 드러나는 우윳빛 피부와 그녀의 무릎 뒤쪽에 있는 크고 약한 힘줄이 보인다. 여자의 몸 중 가장 아름답지 못하고, 가장 표현적이지 못하고, 어쩌면 그래서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
루시는 일어서서 몸을 폈다가 다시 숙인다. 들일, 태고적 농부들의 일. 그의 딸은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그를 의식하지 못한다. 집 지키는 개는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한때, 자기 어머니의 몸속의 작은 올챙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확실하게, 그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더 확실하게, 살고 있다. 그녀는 운이 좋으면 오랫동안, 그보다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운이 좋으면, 그가 죽었을 때도 이 화단에서 평범한 일을 하며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녀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견고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존재의 선은 이어질 것이다. 그가 거기에서 맡았던 역할이 속절없이 희미해지다가 결국 잊혀질 때까지, 그 선은 이어질 것이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 누가 그걸 생각했으랴! 할아버지와 같이 자자고 하면 어떤 예쁜 여자애가 따라올까?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루시!”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되는 덴 뭐가 필요할까?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버지로서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할아버지로서도 평균 이하의 점수를 맞을 것이다. 그에게는 침착함과 인정과 관용 등 나이든 사람들이 갖게 되는 미덕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다른 미덕들이 사라지면서, 예를 들어 정열의 미덕과 같은 게 사라지면서, 다른 미덕들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할아버지에 관한 대표적 시인, 빅토르 위고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울 게 있을지 모른다.
바람이 잔다.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고 싶은 완벽한 정적이 깃든 순간이다. 부드러운 태양, 오후의 정적, 꽃밭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벌들, 밀짚모자를 쓰고 약간 배가 부른, 그림의 한가운데에 있는 젊은 여인. 영원한 여인`das ewig Weibliche. 사르젠트나 보나르드를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듯한 장면. 그와 같은 도시 사람들. 하지만 도시 사람들조차 아름다움을 보면 알아보고, 입이 벌어질 수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는 워즈워드를 그렇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생활에 별로 눈을 주지 않았다. 하기야 예쁜 여자들을 제외하면 아무것에도 별로 눈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서 그를 움켜쥐었을까? 지금은 눈을 교화시키기에는 너무 늦은 걸까?
그는 목청을 가다듬는다.
그는 더 크게 부른다.
“루시.”
마법이 깨진다. 루시는 몸을 반듯이 세우고 반쯤 돌아서서 웃는다.
그녀가 말한다.
“오셨어요. 못 들었어요.”
케이티는 머리를 들고, 그가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쪽을 바라본다.
그는 울타리를 통과한다. 케이티는 그에게 어렵게 다가와서 그의 구두 냄새를 맡는다.
루시가 묻는다.
“트럭은 어디 있어요?”
그녀는 일을 해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 약간 햇볕에 그을어 있기도 하다. 갑자기 그녀가 건강해 보인다.
“차를 세워놓고 걸어왔다.”
“들어와서 차 드실래요?”
그녀는 그가 손님인 것처럼 그렇게 제의한다. 좋다. 손님의 신분, 방문, 새로운 발판, 새로운 출발.
다시 일요일이 돌아온다. 그와 베브 쇼는 하나를 처리하고 있다. 그는 하나씩 하나씩 고양이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그런 다음에는 개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늙고, 앞을 못 보고, 절뚝거리고, 불구가 된 것들. 그 중에는 어리고 건강한 것들도 있다. 기한이 다 찬 존재들. 베브는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만져주고, 그들에게 얘기하고, 그들을 달래고, 그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물러나서, 그가 검은 플라스틱 수의로 시체를 봉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와 베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에게서, 그들이 죽이는 동물에게 모든 관심을 쏟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데 더 이상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어떤 것을 그 동물에게 주는 법을 배웠다.
그는 마지막 자루를 묶어 문으로 가져간다. 스물셋. 이제 한 마리만이 남아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개. 기회가 반만 주어졌어도, 자기 동료들의 뒤를 따라 벌써 병원 건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가, 생전에 만나지 못했던 자들의 것을 포함한 강한 냄새들과 뒤섞여 아직도 어른거리는, 소멸의 냄새와 방출된 영혼의 부드럽고 짧은 냄새가 아직도 어른거리는, 아연을 입힌 탁자가 있는 현장으로 들어갔을 그 개.
그 개가 헤아리지 못할 것은, (오랫동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의 코가 그에게 얘기해주지 않을 것은, 평범한 방처럼 보이는 그곳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서 다시 나갈 수 없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이 방에서 일어난다. 여기에서 영혼이 몸으로부터 쫓겨난다. 그것은 꼬이고 비틀려 잠시 공중에 떠돈다. 그런 다음 그것은 빨아들여지고 사라진다. 그것은 그의 한계 밖일 것이다. 방이 아니라 한 존재가 존재 밖으로 새어나가버리는 구멍.
항상 더 어려워져요. 베브 쇼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더 어려워지지만 더 쉬워지기도 한다. 사람은 어려워져가는 것들에 익숙해진다. 너무너무 어렵던 것이 아직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데,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그는 그가 원한다면 또 한 주일 동안 그 어린 개를 살려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 개를 베브 쇼의 수술실로 데려가고 (어쩌면 그는 그 개를 팔로 들고 갈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 개를 위해 그렇게 할 것이다.) 그 개를 껴안고 바늘이 혈관을 찾을 수 있도록 털을 빗겨주고, 그 개에게 속삭여주고, 그 개의 다리가 후들거릴 때 받쳐주고, 그런 다음 영혼이 나가면 그 개를 접어서 자루에 넣어 싸고, 다음 날에는 자루를 불길에 밀어넣고, 그 개가 타고, 그 개가 다 타버리는 것을 보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그건 피할 길이 없다.) 그건 너무 작은 것일 것이다. 작은 것보다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는 수술실을 가로지른다.
베브 쇼가 묻는다.
“그게 마지막이었나요?”
“하나 더 있소.”
그는 우리 문을 연다.
그는 몸을 숙이고 팔을 벌리며 말한다.
“이리 와.”
개는 불구가 된 뒷몸을 흔들고, 그의 얼굴에 코를 대고, 그의 볼과 그의 입술과 그의 귀를 핥는다. 그는 그것을 제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리 와.”
그는 한 마리의 양처럼 개를 팔에 안고, 수술실로 다시 들어간다.
베브 쇼가 말한다.
“당신이 한 주 더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개를 단념하시는 건가요.”
“그래요, 단념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