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샌더스 퍼스
미국 최고의 철학자로 추앙받는 찰스 퍼스는 1839년 매사추세츠 주 켐브리지의 한 훌륭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캠브리지는 하버드 대학 중심의 도시였다. 퍼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는 윌리엄제임스, 촌시라이트, 올리버 웬델 홈즈 주니어 등이 있다.
그러나 퍼스의 삶은 불행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퍼스는 자신의 ‘기호학‘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데 필요한 안정적인 학자로서의 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그의 청년기는 신경통으로 얼룩졌다. 이 신경통 때문에 퍼스는 심한 안면 통증으로 고생해야 했으며 억제할 수 없는 감정과 고통이 그를 더욱 괴롭혔다.
퍼스는 1867년 <새로운 범주 목록에 관하여>를 필두로 하여 삼원적 기호론을 확립하는데 남은 생애를 보냈다. 퍼스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퍼스는 3이라는 숫자에 유난히 집착했다. 하지만 아무도 퍼스 기호론의 이론적 완벽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쉬르의 기호가 기호 그자체로 충만한 이원적 모델인데 방해 퍼스는 기호가 삼원적 관계를 갖는다고 본 것이다.
(기호/표상체)-S/R
(해석체)-I
(대상체)- o
표상체(기호 그자체)는 대상체와 관계를 가지며 이 관계는 해석체를 함의한다.
간단히 말해 기호 혹은 표상체는 어떤 면이나 능력에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나타내는 그 어떤 것이다.
대상체는 기호/표상체가 나타내는 그 무엇이다. 사실 대상체에 대한 논의는 기호/표상체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대상체는
기호에 의해 표상되는 대상체인 직접적 대상체와 해당기호와 독립적으로 기호를 생산하는 역동적 대상체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해석체(interpretant)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까다롭다. 해석체는 해석자(interpreter)가 아니다. 해석체는 ‘주어진 기호로부터 촉발되는 의미효과’이다.
일반적으로 해석체는 ‘ 우리가 한 기호를 접하게 될 때 우리 관념 속에서 발생하는 기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우리가 해석체를 이해하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물론 해석체를 해당기호에 적합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설명이지만....가령 나는 하늘의 의미를 단순히 단어를 사용하여 명시할 수도 있지만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켜서 당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게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체가 생산된다.
그러나 해석체도 대상체처럼 한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 해석체- 직접적 해석체는 우리가 주어진 기호에 대해 정확히 이해했을 때 발생한다(예: 하늘을 보면서 옆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별을 주시하는 경우)
역동적 해석체- 역동적 해석체는 주어진 기호의 직접적인 결과이다.(예: 옆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에 대하니 반응으로 하늘을 보는 경우)
최종적 해석체 -최종적 해석체 또한 기호가 발생시키는 결과이지만 다른 해석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 해석체는 우리가 기호를 사용할 때 각각의 경우에서 기호작용이 완벽하게 구현된 결과이다.(예: 정확하게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보고 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별이 다름 아닌 프록시마 켄타우로스 별자리라는 것임을 깨닫는 경우)
소쉬르의 기호(기의/기표)는 기호의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 다른 기호들과 결합하여야 한다. 반면 퍼스에게서는 한 기호가 내적으로 충만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앞에서 해석체는 한층 발전된 기호 또는 ‘정신 내에 존재하는 기호’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해 보자. 시제로 해석체는 기호 삼각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석체로 정의되었던 것이 이번에는 보다 발전된 기호/표상체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 기호는 좀 더 발전된 대상체와 관계를 맺고 이 대상체는 새로운 해석체를 함의 한다. 그리고 이 해석체는 다시 기호/표상체가 되고 이 기호는 보다 발전된 또 다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과정이 무한하게 계속된다.
나중에 데리다와 기호학의 관계에 대해 설명할 때, 이러한 무한한 세미오시스(semiosis : 기호작용)의 잠재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해석체가 더욱 발전된 기호를 생산한다는 원칙에 대한 예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하나의 기호는 최초의 기호로부터 완전히 일탈한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기호들을 발생시킨다.
기호학에서는 이러한 세미오시스의 잠재성을-잠재성이라 부르는 이유는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는 끊임없이 기호를 생산하기보다는 이런 저런 일을 하거나, 또는 잠을 자는 등의 행위들로 인해 본질적으로 무한한 세미오시스를 중단하기 때문이다.- 종종 무한한 세미오시스라고 부른다.
한 기호는 보다 발전된 기호들을 생산해낸다는 퍼스 기호학을 이해하게 되면 기호작용에 대한 퍼스의 논의가 얼마나 복잡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퍼스 기호학에 한 발 더 가까이 접근해 보자. 퍼스의 기호는 기호 그 자체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의 발현으로서 작동한다. 퍼스는 현상들의 범주를 일차성, 이차성, 삼차성으로 구분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일차성, 이차성, 삼차성
일차성의 영역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느낌‘이라는 용어로 이해된다. 일차성은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는 것, 즉 다른 것과의 대립을 통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단순한 가능성’일뿐이다. 음조, 모호한 맛, 색감 등이 일차성의 범주에 속한다.
이차성은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이 바로 이차성의 영역에 속한다.
이차성은 문을 닫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문을 닫을 때, 문은 진행방향으로 이동하다가 앞에 놓여진 장애물에 접촉하고 그 결과 문은 닫히게 된다. 바로 이문이 닫히는 순간의 경험이 이차성에 속하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계는 사물 그 자체와, 그 사물이 다른 사물들과 맺고 있는 공존관계를 통해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삼차성은 퍼스의 범주 구분에서 가장 핵심을 이룬다. 이 삼차성의 범주는 일반 법칙들의 영역이다.
이차성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의 범주인데 반해 삼차성은 우리의 관념과 관계된 범주이다.
퍼스는 삼차성을 통해서 일차성이 이차성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 들어온다고 보았다. 삼차성은 누군가에게 어떤 무엇을 주는 행위와 유사하다. 즉 A는 C에게 B를 주고 따라서 B는 A와 C를 관계 맺게 한다.
이제 이 범주들에 대한 논의를 종합하여 퍼스의 기호 삼각형에 적용시키면 다음과 같다.
R = 기호(Sign)/표상체(Representamen)
O =대상(Object)
I =해석체(Interpretant)
(F) = 일차성(Firstness)
(S) =이차성(Secondness)
(T) = 삼차성(Thirdness)
기호/표상체는 일차성, 대상체는 이차성, 해석체는 삼차성이다.
기호 삼각형은 퍼스 기호 모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실제 퍼스의 기호 모델은 무한한 세미오시스(기호 작용)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앞의 기호 삼각형이 무한하게 연결된다. 이 모델에서 해석체는 삼차성을 띤다. 그러나 최초의 기호 삼각형에서 한 단계 발전된 기호 삼각형에서는 이 해석체가 일차성을 띠게 된다.
해석체가 일차적인 것이 되면, 이 기호(혹은 표상체)는 삼차성으로 작용하여 대상체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해석체를 만들어 내거나 또는 ‘비효과적인 관계를 효과적인 관계’로 만든다.(이를 통해 타성 또는 일반 규칙이 확립되는데, 일반적으로 기호들은 이 타성 또는 일반 규칙에 따라 작용하게 된다.)
퍼스가 기호를 서로 다른 범주들로 유형화시킨 방법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왜 일차성, 이차성, 삼차성의 세 범주를 기호 삼각형의 삼원적요소인 표상체, 대상체, 해석체에 대응시키려 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참고: 여기서 우리는 퍼스와 소쉬르 기호 모델이 공유하는 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초기에 퍼스는 10개의 기호 유형들을 제시했다. 이후 퍼스는 이를 66개의 기호유형으로 확산시켰다. 퍼스의 기호 분류에 대한 정밀화 작업은 계속되어 결국 59,409개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다소 복잡한 기호 이론으로 발전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퍼스가 제시한 모든 기호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대신 각각의 기호 유형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만약 기호가 삼원적 관계(기호/표상체, 대상체, 해석체)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기호는 각각 일차성, 이차성, 삼차성의 세 가지 형식적인 측면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적 측면은 존재나 현상의 일반적 범주(일차성, 이차성,삼차성)와 관계를 맺게 된다.
기호의 형식적 측면과 존재적 측면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 작용은 다음과 같은 기호 발생 도표에서 관찰될 수 있다.
이 표의 가로줄에서는 기호 삼각형의 한 요소가 범주들(일차성, 이차성,삼차성)과 관계 맺고 있다.
이 표의 세로줄에서는 각각의 존재 범주(품질,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 일반적인 법칙들)과기호 삼각형의 요소들과 관계 맺는다.
|
품질 일차성 |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 이차성 |
법칙 삼차성 |
표상체 일차성 |
품질기호 |
개별기호 |
법칙 기호 |
대상체 이차성 |
도상 |
지표 |
상징 |
해석체 삼차성 |
해석 기호 |
발화기호 |
논항기호 |
기호/표상체의 단계(즉 일차성)에서 기호들은 다음과 같이 유형화된다.
품질기호- 품질로 이루어진 표상체 예)녹색
개별 기호 -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
예)돌 위에 서있는 도로표지판
법칙기호 - 법칙으로 이루어진 표상체.
예) 축구 경기에서 심판의 후루라기 소리
대상체의 단계(즉, 이차성)에서 기호들은 다음과 같이 유형화된다.
도상: 기호가 어떤 닮음을 통해 대상체와 관계 맺는 경우. 예) 사진
지표: 기호가 인과성을 통해 대상체와 관계 맺는 경우. 예) 풍향계, 의학적 증상
상징: 기호가 오직관습에 의해서만 대상체와 관계 맺는 경우
해석체의 단계(즉, 삼차성)에서 기호들은 다음과 같이 유형화된다.
해석기호: 기호가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해석체를 표상하는 경우. 예) 개념
발화기호: 기호가 하나의 사실로서 해석체를 표상하는 경우. 예) 사실에 대한 진술.
논항기호: 기호가 하나의 추론으로서 해석체를 표상하는 경우. 예) 명제
지금까지 살펴본 이 추상적인 기호 유형들은 보다 확장된 기호학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
이 확장된 기호학에서는 추상적인 기호 유형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된다. 바로 이점이 퍼스의 기호 유형 분류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된다.
이제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축구 경기 중에 심판이 고의적으로 비신사적인 파울을 범한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내보인다. 레드카드는 규칙(고의적인 파울은 규칙에 어긋나고 가해자에게 제재 조치가 취해진다.)을 통해 존재하므로, 이 레드카드는 논항기호이다. 또한 이 레드카드는 상징기호(레드카드는 관습적으로 고의적인 파울을 의미한다.) 이며 따라서 법칙기호(일반법칙)도 된다.
한편 레드카드는 이전부터 심판들이 사용해 온 것이고 선수들은 이를 매우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심판이 파울을 범한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꺼내 보이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발화 지시적인 개별기호(심판이 취한 행동은 축구규칙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에 대한 진술행위이다.)이다.
따라서 발화 지시적 개별기호는 논항- 상징- 법칙 기호의 복제물이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 기호학은 크게 두 가지 전통으로 나뉘어발전하게 되는데 두 전통은 각각 퍼스와 소쉬르에게서 출발한다. 그러나 퍼스의 기호학과 소쉬르의 기호학이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퍼스와 소쉬르의 이론의 토대가 되는 이전 사상가들을 살펴보면 퍼스와 소쉬르의 공유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쉬르의 모든 기호 연구는 언어의 구조(랑그)에서 출발한다.
또 퍼스가 구상하는 기호학은 모든 종류의 ‘자연적‘ 기호와 ’관습적 기호를 아우른다.
즉 퍼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중세시대 철학자들, 토마스 홉즈, 존 로크, 토마스 라이드, 한편 소쉬르는 존 로크, 윌리머 오캄, 성 아구스티누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퍼스와 소쉬르가 각각 선행 사상가들의 이론에 기반하고 있는 것처럼, 퍼스와 소쉬르의 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사람들이 있다.
즉 인간기호와 담론‘의 측면에서는 크리스테바, 보드리야르, 푸코, 레비스트로스, 바르트 등이 소쉬르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기호로 가득 찬 우주‘의 측면에서는 리처즈, 모리스, 오그든, 피쉬, 시벅 등이 퍼스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양대 진영을 통합 계승하여 야콥슨과 에코가 바톤을 이어가고 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creep 작성시간 03.10.03 윽..살아계셨구나..씨니피앙, 씨니피에..불문과를 나왔어도 맨날 헷갈려서 별곡님 말마따나 범벅을 치르던..이 시대의 모든 롤랑 바르트 만세^^ 건강하시죠?
-
작성자다리우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3.10.05 롤랑 바르트가 환영받아서 기쁩니다...새벽이 추운 이즘 감기조심하며살고 있습죠...^ ^
-
작성자creep 작성시간 03.10.06 이런..저는 롤랑 바르트의 넘겨짚은 것 같으면서도 늘 옳은 기가막힌 언어들을 아주 좋아합니다..끼니를 잘 챙겨드세요..
-
작성자creep 작성시간 03.10.14 이것은 내일 다시 한번 읽기로 미뤄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