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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일반]<노자>를 보는 시각과 갈래들 - 김시천

작성자다리우스|작성시간03.10.08|조회수318 목록 댓글 3
<노자>를 보는 시각과 갈래들 - 김시천

타오이즘과 노마디즘 강의록 1 (2001. 12. 22)


철학 아카데미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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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보는 시각과 갈래들


1.1 『노자』의 수많은 얼굴‘들’

2,000여 년이라는 시공간을 거슬러 사상과 철학의 거장들을 온전하게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중국’ 이라는 문명의 성장과 진화 과정은 과거의 형태가 변화되고 바뀐 상태로 남아 있으며 종종 옛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경우도 있다. 노자는 결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하나의 얼굴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의 우리에게도 다양한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예를 들어 1973년의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굴된 『백서덕도경』(帛書德道經)이나 1993년에 발굴된 『곽점노자』(郭店老子) 더 나아가서 『한비자』(韓非子)의 ⌈해로⌋(解老) ⌈유로⌋(喩老) 등의 의미들은 우리로 하여금 『노자』를 어느 특정 사상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주춤하게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왕필노자주』(王弼老子注)나 『노자하상공장구』(老子河上公章句) 등에서 들려주는 ‘노자’에 관한 이야기는 시대마다 다른 ‘노자 읽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노자의 시대적 읽기’에 도전하는 모험을 해야 하며, 이것은 왕필과 하상공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원문에 대해 꼼꼼하게 읽어보게 될 때, 우리는 거기에서 ‘황로학’(黃老學)과 ‘현학’(玄學)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고, 이로부터 더 나아가 『노자』의 읽기에서도 유가적인 요소가 어떻게 스며들었으며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자』 읽기의 ‘해석적 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2 ‘도가’(道家와 ‘도교’(道敎) 그리고 ‘노장’(老莊)

춘추 전국 시대에 등장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하나―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는 바로 이러한 틀을 뛰어넘어야만 노자와 장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로써 ‘도가’(道家 혹은 道德家)는 서구에서는 Taoim, Religious Taoism, Philosophical Taoim, Hsien Taoism(仙道敎, Creel) 등 다양하고 복잡한 용어와 개념으로 규정되어 왔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두 가지 분류는 철학으로서의 ‘도가’와 종교로서의 ‘도교’를 구분하려는 입장과 양자를 모두 ‘도교’로 포함시키려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철학과 종교를 구분하려는 입장은 대개 ‘도가’를 ‘노장’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는데, 우리 나라의 분위기가 이에 해당한다. ‘한국도가철학회’의 공식 명칭은 바로 이런 함의를 갖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일찍이 ‘노학’(老學)과 ‘장학’(莊學)이란 구별이 가해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노장’이라는 말이 『회남자』(淮南子)라는 문헌에 와서야 성립되는 것으로써 그 이전에는 일정한 구분이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선진(先秦) 시대 사상사의 흐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한다. 이러한 용어들은 이제 세계적으로 수용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학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서 나타난다.

서구의 경우에는 우리 동아시아 세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Taoism’이란 독특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자체의 인식을 대변하는 도가와 도교의 분리라는 별도의 구분이 받아들여져 ‘Philosophical Taoism’과 ‘Religious Taoism’이란 구분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경우 갈수록 ‘Taoism’이라 묶어서 표현하려는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여기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의미상의 차이보다는 텍스트의 범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노장’이라는 말에는 『노자』 『장자』 『회남자』 『열자』가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달리 Harold D. Roth의 경우에는 『관자』(管子) ⌈사편⌋(四篇)에서 『노자』를 거쳐 『회남자』로 이어지는 구전적 신비주의 전통(oral tradition)을 의미하는 것이고, Norman J. Girordot와 같은 경우에는 『노자』 『장자』 『회남자』가 주요 문헌이지만 여기에는 『초사』(楚辭) 『산해경』(山海經)과 같은 중국의 고대 신화적 전통을 의미한다. 또한 H. G. Creel은 도교와 신선 전통을 구분하여 ‘Hsien Taoism’(仙道敎)를 구분하기도 하며 최근의 지도적 학자인 Livia Kohn은 ‘노장’이란 용어를 불교가 유입된 이후에 성립한 『노자』와 『장자』에 대한 주석적 전통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이의 대표적인 경우가 당대(唐代)의 성현영(成玄英)의 『노자소』(老子疏) 『장자소』(莊子疏)이다. 이것은 곧 서구에서의 ‘Taoist Studies’도 이제 그 독자성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 『노자』 해석의 갈래들

‘노자 사상’은 중국 역사 속에서 다양한 조류의 주석과 해석이 이루어져 왔다. 이 가운데 오늘날의 해석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표적인 저술은 『왕필노자주』이다. 마치 ‘노자’ 하면 ‘왕필’이 떠오르고 『노자』하면 『노자주』가 연상되는 것이 그 실례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이해는 실제 『노자』 텍스트에 다가가려 할 때 상당한 장애가 된다. 우리는 이를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노자하상공장구』라는 새로운 해석적 틀을 ‘비교하며’ 읽음으로써 새로운 독해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 그에 앞서 역사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노자 해석의 갈래들을 살펴보자.

2.1 ‘제왕지술’(帝王之術) 혹은 정치 사상적 해석

문헌적으로 볼 때에는 가장 이른 해석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대표는 『한비자』 ⌈해로⌋와 ⌈유로⌋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도’(道)와 ‘덕’(德) 그리고 ‘무위’(無爲)인데, 이 모두가 제왕의 통치술을 위한 근거로 이해된다. 만약 도가 이론이라면 덕은 그 실천이고, 도가 원리라면 덕이란 그 원리의 적용에 의해 획득되는 효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의 정치적 작동 방식이 ‘무위’로 나타나는데 이 때의 무위란 제왕무위(帝王無爲)-신하유위(臣下有爲)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노자』에 나타나는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爲無爲, 則無不治. 3장)이나 “성인은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 없는 명령을 내린다”(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2장) 등은 이를 잘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특히 최근 발굴된 『황제사경』(黃帝四經)과 같은 문헌은 노자 사상과 법가 사상이 얼마나 가까운 관계에 있던 것인가 달리 말한다면 당시 사상에서 얼마나 널리 기초 이론으로 작동하였는가를 잘 알게 해 주는데, 이 『황제사경』의 첫 구절은 “인간 사회의 제도와 법률은 현상 세계의 대원리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道生法. 『經法』 ⌈道法⌋)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노자』를 이러한 사상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었는데, 우리 학계의 경우 도가와 법가를 완전히 다른 사상 계통으로 보는 시각이 특히 강력하게 자리잡아 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리 학계가 잘 소개가 되어있는 H. G. Creel은 바로 도법적 사유의 친화성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2 ‘황로학’(黃老學) 혹은 ‘도교적’(道敎的) 해석

어쩌면 이러한 해석 방식은 이미 『장자』로부터 더 나아가서는 『관자』로부터 유구하게 진행된 오래된 구분할 수 없는 『노자』적 전통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이 성립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므로 여기서는 이를 구별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의 대표적인 문헌이 『노자하상공장구』와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이다. 대개 일반적으로는 한대 이후 발전하게 되는 도교의 주류적 해석 방식으로써,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보존하고 기름으로써 신체적 불멸에 도달할 수 있다는 도교적 신념의 철학적 근거로써 해석하는 시각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이것은 후한 이루 도교 교단의 성립과 더불어 다양한 분파와 이론으로 분기하는 것을 포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도는 우주적 생명 원리로 덕은 생명력으로 이해된다. 그 결과가 장생불사(長生不死)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해석의 시각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장생(長生)을 추구하는 양생론(養生論)과 불사(不死)를 추구하는 신선술(神仙術)의 차이, 황로학과 도교의 차이 등이 심각한 논제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해석은 정확한 의미에서 ‘도교적’ 해석의 차원으로 치부되면서 ‘노자 해석의 역사’에서 배제되어 왔고, 철학과 종교의 구분 속에서 서로 단절되어 왔었다. 이를 구분하지 않고 이해할 때 그것은 상당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일본의 학자들이 교단 도교의 성립을 불교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맥락과도 다른 시각에서 황로학과 신선술을 구분할 것이며 황로학과 교단 도교 또한 구분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노자하상공장구』를 읽어가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 아직은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

2.3 ‘현학’(玄學) 혹은 ‘형이상학적’(metaphysical) 해석

유무(有無)가 논의의 중심 개념으로 등장한다. 특히 위진(魏晉) 시대에 사회 제도의 철학적 근거를 재정초하기 위한 논쟁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위진 시대의 청담(淸談) 사조와 연관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써 유무(有無) 논쟁과 명교-자연(名敎-自然) 논쟁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는데, 여기서 중심이 되는 텍스트들이 『노자』 『장자』 『주역』 이른바 ‘삼현경’(三玄經)이며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자』 『장자』 그리고 『주역』의 현행 판본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대는 『노자』 해석에 있어서 여러모로 중요한 시대인데, 실제로 이 시대의 주류 사조인 ‘현학’에 대한 해석은 20세기 중국 철학사 서술에서 가장 곡절이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이 때 ‘불교’(佛敎)가 유입된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학적 해석의 끝자락에 우리의 시각이 놓여 있다. 현대적인 노자 해석의 시각에는 이렇게 현학과 불학의 교직에 의해 성립된 것이다.

흔히 현학은 현대신유가에 의해서는 신도가(Neo-Taoism, Fung Yu-lan)로 혹은 형이상학파(Metaphysical School, Wing Tsit-Chan)으로 불리워져 왔다. 대륙 학계의 주류―탕일개(湯一介)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명제가 바로 “세상의 모든 존재자들은 존재(Being)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 존재는 비존재(Non-Being)에서 나온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40장)라는 구절이다. 이것은 이미 당시에 유입되어 있던 불교 『반야경』의 ‘본체’(空)와 ‘현상’(色)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기에, 당시 현학이란 다분히 형이상학적이며 존재론적이라는 성격 규정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규정은 당시의 사상계를 들여다 볼 때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게 된다. 사실 이러한 왜곡은 중국 형이상학 역사의 복원(Fung Yu-lan)이라는 사명감이 빚어낸 것이다.

2.4 ‘처세술’(處世術) 혹은 ‘권모술수’(權謀術數)로서의 이해

송명(宋明)의 신유학자(新儒學者)들에 의한 해석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송대 이후 도교와 불교는 흔히 ‘노불’(老佛) 혹은 ‘석로’(釋老)라 하여 사기꾼 혹은 협잡꾼 혹은 도덕의 배반자라는 강한 혐오감이 배어 있는 말로 통칭되었는데, 이 때 『노자』는 주로 이단적 사유 방식으로써 의리와 명분을 저버리고 모략과 권모술수를 조장하는 정치적 처세술 혹은 권력의 이론적 장치로 이해되거나 불사의 단약을 팔아치우려는 사기꾼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특히 이러한 말을 할 때의 대상은 『장자』보다는 『노자』이다. 정치 사상적 해석과 비슷한 의미 맥락을 갖지만 여기서는 극히 부정적 비판적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 본래 당대(唐代)의 한유(韓愈)이다.

하지만 송명(宋明) 리학(理學)이 성립한 이후에는 다시 성리학의 테두리에서 새롭게 해석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42장)과 같은 구절은 주돈이(周敦頤)의 “무극이면서 태극이로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이 음양의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낳는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二氣交感, 化生萬物. 『太極圖說』)는 이론으로 해석되어 성리학 체계 안에 수용되기도 한다. 조선의 율곡(栗谷) 또한 이와 비슷한 해석을 가하는데 사실 왕필의 해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 사조가 갖는 특징은 정치적인 측면은 전면 배제하고 형이상학적 측면만이 소화됨으로써, ‘도가’의 정치적 성격이 탈색되어 버린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의식은 지금에와서까지 면면히 이어진다.

2.5 ‘신과학’(新科學) 혹은 ‘신비주의적’(神秘主義的) 해석

현대 물리학이나 환경론, 페미니즘 등과 관련하여 최근에 등장한 서구적 해석 경향을 지칭한다. 이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니담, 프리초프 카프라, 홈즈 웰치 등 수많은 연구자들로써 대체로 철학 전공자들이 아닌 과학이나 기타 다른 영역의 전공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의 선도적인 저작이 『현대 물리학과 동양 상상』(프리초프 카프라)이고 대표적인 저술이 『도가를 찾아가는 과학자들』(예문서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신과학 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조셉 니이담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해당한다. 이러한 해석은 도가적 ‘자연주의’에 현대 과학이 발견한 여러 이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중요한 통찰들이 많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태도는 ‘신비주의’로 보는 것이지 과학적 이론 체계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2.6 ‘문화사적’(文化史的) 혹은 ‘종교사적’(宗敎史的) 해석

이러한 해석의 조류는 아직 단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해석을 견지하는 학자들의 다수가 종교사 전공자 혹은 그와 유사한 연구 경향을 지니는 것으로 보아 이렇게 잠정적으로 지칭할 수 있다. 이들은 ‘노장’(老莊)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 신화학, 민족학, 종교학 등의 다양한 연관 분야의 이론과 성과를 이용하면서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접근한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저작으로는 중국학자 소병(蕭兵)의 『노자와 성』이나 오강남의 『노자』와 『장자』 풀이가 이에 해당한다. 더욱이 유영모 등의 해석 또한 이런 범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해석 방식 또한 서구에서의 연구는 다분히 ‘신비주의적’ 이해를 띠고 있지만 신과학적 이해와는 시각이 다르며 참신하고, 보다 대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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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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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게바라 | 작성시간 03.10.11 노자..신학을 공부할때 노자의 가장 첫페이지를 읽고 숨이 멎을듯 한 경험. 그 장을 성경의 창세기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셨는지.. 박은희역과 오강남교수역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오강남교수의 손을 들어줄수 없다는 판단.
  • 작성자다리우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3.10.14 역본 소개에 감사하면서 노자뿐 아니라 중국유교사상들 안에서 전 요한복음과 비슷한 부분들을 또 게바라님 말씀대로 창세기 부분들과 합치하는 부분들을 발견 그 기이한 유사성에 의아해한적있음..한때는 거기서 공자의 제의(제사)의례에 대해 카톨릭사제가 연구한 논문을 발견한적도 있습니다..시간만 있다면 연구해볼만~
  • 작성자creep | 작성시간 03.10.14 맘 잡고 다 읽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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