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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일반]포스트 구조주의의 입장들..(상호 텍스트성,의미의 비결정성,이항대립,반복강압,해체)

작성자다리우스|작성시간04.05.21|조회수375 목록 댓글 0

포스트 구조주의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은 가장 대표적인 포스트 구조주의의 비평 방법에 들어간다.
 
해체주의를 비롯한 포스트 구조주의의 핵심개념은 상호 텍스트성과 의미의 비결정성으로 요약할수 있다.

의미의 비결정성
캐서린 벨 지에 따르면 저자가 작품에서 의도한 의미는 텍스트가 태어난 바로 그 순간에 죽어버린다. 그리하여 밸지는 비평이나 해석은 단지 시니피앙에 주목하는 행위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의미는 항상 복수적이고 가변적인가 하면 불완전하다. 고로 문학작품에서 객관적 의미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텍스트의 비결정성 문제를 이해키 위해 바르트의 텍스트 이론을 살펴보자.
텍스트의 의미를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 보는 태도는 해체주의에 이르러 극한점에 달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서구 형이상학을 뿌리째 뒤흔들어놓았다는 점에서 해체주의는 가히 g혁명적이다.
이항대립의 문제는 그것이 이항의 어느 한쪽에 더 큰 가치를 둔다는 점이다. 이 수직적 관계는 곧 폭력성이다.


의미는 항상 이항대립에서만 생겨난다고 보는 구조주의자들은 바로 이 대립에 기초하여 이론을 만들어내려 하였다. 구조주의적 작업은 바로 모든 현상에서 이러한 이항대립을 찾아내는 일과 다름없다. 해체주의는 바로 이 이항대립의 폭력적 계급조직을 해체시키려 한다.
구조주의는 텍스트 안에서 이항대립을 찾아내는 일에 만족하지만 포스트 구조주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바로 이항대립의 그릇된 논리를 밝혀내는 일을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항대립은 말과 글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지금까지 서양은 문자를 빌려 적는 글보다는 음성으로 직접 표현하는 말을 한결 더 높여와KT다.
요한복음서두처럼 말은 곧 진리로 통했던 것이다.
이렇게 글보다 말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데리다는 음성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전통적으로 정신분석 문학이론은 흔히 텍스트를 특정한 저자의 증후로 분석하는 데에 그친다. 가령 이 분야의 고전적 저서로 흔히 평가받는 마리 보나파르트의 "에드거 포"는 주로 무의식적 환상의 관점에서 포의 작품을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그녀에 따르면 포의 작품에는 일찍 사망한 어머니에 대한 가학적인 사간에 대한 욕망이 되풀이되어 나타난다. 그러니까 보나파르트는 작가의 무의식적 환상의 내용, 곧 시니피에에만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특정한 작가의 증후로 보는 보나파르트와는 달리 라캉은 오히려 거꾸로 특정한 작가를 문학작품의 증후로 본다.

 

욕망의 내용보다는 욕망의 형식, 곧 시니피에보다는 시니피앙에 주의를 기울이려는 것이다. 라캉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의미작용의 쇠사슬을 통해 집요하게 나타나는 시니피앙의 상징적 전이이다. 그는 편지가 작중인물들에게 이른바 "주체위치"를 만들어 줌으로써 일종의 시니피앙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도둑맞은 s편지는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지닐 뿐 거기에 적힌 내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라캉은 이 작품에서 편지의 내용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편지를 무의식의 상징이나 무의식의 시니피앙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비평에서 중요한 것은 시니피에의 분석이 아니라 시니피앙의 분석이다. 편지의 숨겨진 내용을 읽는 것보다는 오히려 의미의 쇠사슬에서의 편지가 지니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평가가 작품에서 읽어야 할 것은 의미보다는 의미의 부재, 독해성보다는 불독해성이나 불독해성의 효과이다.

 

포의 작품 분석을 통해 라캉이 도달하는 결론은 쇼섀너 펠먼의 지적대로 많다.


1) "반복 강압"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동일성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차별성에 대한 해석이다. 구조상 의미는 오직 차별성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
2) 비평가는 전기 비평 방법보다는 텍스트비평방법이나 텍스트성의 이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학텍스트를 작가의 자서전으로 분석하는 일은 적지 않은 한계를 지닌다.
3) 비평가와 저자는 상전과 시녀의 관계나 의사와 환자처럼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등한 수평적 관계를 맺는다. 이 둘 사이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쌍방적 관계,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 관계가 성립한다.
4) 정신분석이론은 단순히 문학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문학도 정신분석 이론에 이바지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상호의존적 관계에 놓여있다.

 

 

반복강압- 정신질환자들에 있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과거 경험을 반복하려는 욕구-옛날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 욕망과 깊이 관련됨
옛날의 상태란 궁극적으로는 무기체의 상태인 만큼 반복 강압은 결국 죽음 본능에서 생겨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무질서하고 혼돈 스러운 것으로 본 반면 라캉은 그것을 아주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그에 의하면 "무의식은 마치 언어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언어의 구성이나 구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라캉은 소쉬르에 크게 기댄다. 소쉬르처럼 그는 언어를 아주 핵심적인 범주로 간주한다. 그러나 데리다가 그러하듯 라캉은 언어를 안정적인 것으로 보는 소쉬르의 정초주의적 태도를 못마땅히 여긴다. 데리다나 라캉의 관점에서 언어는 본질적으로 수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의미가 가변적이고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라캉은 인간의 무의식이란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운 유희를 즐기는 불안정한 시니피앙과 같다고 말한다.
 
라캉의 이론가운데 문학 연구 방법론과 관련, 눈을 끄는 것은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논문이다. 쇼섀너 펠먼은 이를 흔히 "혁명적인 독서 이론"으로 꼽는다. 펠먼을 비롯, 데리다와 바바라 존슨과 같은 여러 해체주의자들이 그 동안 그 글을 분석하고 해체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리하여 이 논문은 마침내 "포>라캉>데리다>존슨"이라는 해석의 쇠사슬을 만들어낸다.

 

의미의 다원성이나 비결정성을 강조키 위해 해체주의 비평가들은 종래의 비평가들과는 달리 전혀 다르게 텍스트를 읽어내려 한다. 텍스트의 심오한 객관적 의미를 찾아내는 일보다 오히려 텍스트 안에 억압되어 있거나 숨겨져 있는 의미, 곧 "무한한 의미의 자유로운 유희"를 드러내는 일에 한층 관심을 보인다. 그들은 텍스트에서 얼핏 대수롭지 않은 부분에 눈을 돌린다. 예일 학파의 한 멤버인 힐리스 밀러의 지적대로 해체주의비평가들은 신비평주의자들처럼 텍스트를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텍스트의 귀중한 보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으려고 한다.

 

해석의 한 유형으로서의 해체는 어느 한 텍스트의 구조를 붕괴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가 이미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데 있다.


해체 비평가들은 텍스트의 의식보다는 무의식, 곧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모순, 틈, 부재 따위에 고나심을 갖는다. 아포리아, 곧 텍스트의 "막다른 골목"을 찾아냄으로써 텍스트가 얼마나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가를 밝히려 한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방법은 텍스트의 징후를 밝히는 일과 크게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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