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생의 떨기와 미련은 떨쳐버리고, 영원한 낙원에서 자유와 쉼을 누려라. 평생 이 가슴에 너를 묻으마. 흐흐흐흐.. 흐흐흐흐.. 흐흐흐흐.. 흐흐흐흐.."
밤을 맞았다. 거리는 조요하며, 평온한데.. 곳곳에 피어놓은 횃불만이 텅빈 하늘을 밝혔다. 그 거리를 지나 어느새 우리아의 집에 이르렀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느낄 수 없는데.. 스산한 바람만이 줄곧 고단한 흙먼지를 발할 뿐이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예 잠시만요."
하인 하나가 빼곡히 대문이 열렸다. "누구신지요." "나는 우리아 장군의 동료일세. 부인은 안에 계시는가!" "아 그렇습니까! 어서 들어오시지요." 어둑한 길을 하인을 뒤따랐다.
"나으리!" "셈! 참으로 오랜만일세. 그래 그간 평안하였고, 장군님 장례를 치른다고 수고가 많았지. 내 진작에 와보지도 못하고"
"아닙니다요. 이렇게 오신 것만으로도 마님께선 기뻐하실 겁니다."
이내 늙은 셈은 눈물에 젖고 말았다. 저이를 바라보니 죽은 우리아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저 장군님이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젠 이 늙은이의 덧없는 바램이 되었지만요." "자네 마음 잘 아네. 그러하기에 나도 괴롭다네. 자! 긴히 부인께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 왔으니 부인께 안내를 하게." "예 나으리!"...
셈을 따르지만 그녀를 피하고 싶었다. 숨고 싶은 것을..
"마님! 조세프 나으리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오셨다고요! 어서 안으로 뫼시세요."
흐릿한 불빛에 넋을 잃고 있던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잠시 후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데... 어두움 속에서 애잔한 눈빛과 마주쳤다.
"부인! 죄송합니다. 진작에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소인을 용서하소서."
"아닙니다. 장군님! 이렇게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아마 천국에 계신 그이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부인!"
눈물을 훔치며 셈은 조용히 물러갔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도 못하고."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부인께 긴한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 이처럼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막상 말은 꺼냈지만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가슴이 매이고, 아픈 것을.. 이제는 지난날 그녀에게서 느꼈던 푸르름도, 생명력도 없었다. 오직 쇠약해 가는 영혼만이 존재하는 것을..
"제게 하실 말씀이란 게 대체 뭔 지요!" "다름이 아니옵고, 폐하의 간청을 전하러 왔습니다."
순간 조세프는 그녀에게 일고 있는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그녀가 받았을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지니 차마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폐하의 간청을 가지고 오셨다 구요!" "예 부인! 폐하께서도 지금 깊은 상심에 잠겨 계십니다.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애도를 표하셨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이 없다. 그녀의 분노와 고통을 그렇게 참아내고 있음을..
"폐하께서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시며 부인을 왕궁으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폐하께서 부인을 돌볼 것이라 하였습니다. 설령 지금은 내키지 않더라도 폐하를 친정 오라버리로 생각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부인! 어떻게 하실는지요."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 말을 전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
"장군님! 폐하의 배려는 감사하오나 소녀는 이 집을 지킬 겁니다. 이제 무슨 낙이 있어 왕궁으로 가겠습니까! 그저 그이의 숨결과 지난 추억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이 집을 소녀 남은 평생 지킬 겁니다. 가셔서 그렇게 전해주세요."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찔린 듯 하다. 그녀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슬픔이 고스란히 그의 마음에 박히는 것을.. 여지껏 우리아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그녀가 그저 불쌍하다. 이윽고,
"부인! 차마 저를, 저를 용서하소서. 흐흐흐흐.. 흐흐흐흐.." "장군님! 용서라니요. 제게 무슨 용서를 비시는 건지 소녀는 모르겠습니다."
"부인! 용서하세요. 부디 이 가증한 놈을 말입니다. 소인은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폐하께서 부인을 어떻게 하셨는지를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늘이 무너진 듯 하다. 방안의 촛불도, 꽃잎도 아득한 절벽에, 천길 낭떠러지에 빠져 버린 것을.. 맥을 놓으며 그녀도 허물어졌다.
"부인! 그간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그간 얼마나 두려웠습니까! 왜 진작 소인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나요! 소인에게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어떻게, 어떻게 아셨나요! 폐하와 저만 아는 일이었는데 벌써 소문이 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닙니다. 소인도 우연하게 알게 된 일이고, 폐하와 부인과의 일을 옆 보았던 놈들의 입을 단단히 봉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부인 염려를 놓으세요."
순간 그녀는 그날 내실 앞에서 마주쳤던 두 내관을 떠올렸다. 설마 하였던 것을, 두려웠던 것을.. 그녀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인! 대체,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요. 어서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부인의 마음을 다 이해합니다. 부인의 고통과 슬픔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아무런 말도, 변명이 없었다.
"부인! 저를 믿으세요. 제가 부인을 도울 겁니다." "장군님! 저의 마음을, 눈물을 아신다하셨나요. 이 가련한 마음을 말이에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소녀 지난 나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시나요. 지난 수치를, 죄 받은 몸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정녕 아시나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러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고통과 괴로움으로 아파했는지를요. 저, 저는 날마다 죽으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지만 죽을 수가 없었지요. 구차한 변명 같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도, 배속 아이를 위해서도 말입니다."
순간 조세프는 놀라고 말았다.
"방금 아이라, 아이라 하셨습니까! 그럼 장군님의 생명이옵니까!" 그녀는 못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럼 폐하의, 폐하의 생명이란 말입니까!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나요." "예 그렇습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힘없이 바닥에 고개를 묻었다. 몹시 허탈한 듯 조세프도 맥을 놓는 것을..
"그럼 지난 번 우리아 장군께서 오신 것도.. " "그래요. 다 폐하의 계략이었지요. 이 아이를 그이의 소생으로 하기 위한 페하의 계략이었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폐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소녀도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랍니다. 모든 것을요. 이 가증한 년은 여지껏 이생의 질긴 목숨을 차마 죽지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이어오고 말았답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어찌 죽어서 남편을 뵈올지, 어떻게 용서를 구하올지. 흐흐흐흐..흐흐흐흐"
조세프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 눈빛도 타오르고, 지난 일들이 뇌리에 확연하게 박히는 것을.. 예전과 다르게 우리아에게 베풀었던 환대도 다윗의 웃음도, 자신의 부하를 왜 그토록 처참하게 죽게 했던 지도 아직 우리아의 죽음이 다윗의 교활한 계략임을 모르고 있을 밧세바가 그저 불쌍하고, 가련하다. 차마 그것은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오직 자신만 아는 슬픔과 비극으로, 운명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을..
"장군님! 장군님은 소녀를 천한 계집이라 욕하겠지요. 어떻게 그런 수치와 죄를 받고도 이 가증한 목숨을 이어올 수 있냐 구요. 그래요. 이 천한 소생! 그 날 이후 여러 번 죽으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흐흐흐흐.. 흐흐흐흐.. 죽을 수가 없었지요. 장군님은, 장군님은 母情이 뭐라고 생각을 하세요! 母情을 말입니다. 어느 날 문뜩, 저의 몸에 한 생명이, 한 생명이 잉태되었다고 느꼈을 때, 차마 그 생명이 죄를 받아 잉태된 아이라면, 원수의 생명이라면 장군님은, 장군께서 저 같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 고통과 비통함을 장군님은 아시는지요. 차마 죽지 못하는 마음을요, 차마 어미 된 마음을요. 그 후론 죽을 수가 없었답니다. 비록 죄받은, 저주받은 아이지만 이 아이도 엄연히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축복과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날 아이이기에 소녀는, 이 천한 계집은 죽을 수가 없었지요. 저는 아이와 약속을 하였답니다.
아가! 아가! 내 사랑하는 아가! 이 어미 이 세상 모든 이들의 멸시와 천대, 그 비웃음에서 너를, 너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다. 소중한 아가! 너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축복과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날 아이란다. 이 어미는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 밝힌다 하여도 너를 언제까지나 지켜줄 것이다 라고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조세프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위로하고픈 것을.. 그녀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하다.
"장군님! 소녀는, 소녀는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싶었답니다. 그렇게라도 말입니다. 저는 수치와 분노를 무릅쓰며 폐하께 도움을 구했지요. 처음에 폐하로부터 남편과 동침하고 그 아이를 남편의 소생으로 하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차라리 죽고 싶었답니다. 평생에 지고 갈 죄악과 가책을 생각하자니 너무 고통스러웠지요. 하지만, 하지만 그 방법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답니다. 곧 배가 불러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의 의심을 받을 터. 자칫 지난 수치가 들어 나는 날에는 폐하와 저는 율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요. 폐하도 보위에서 쫓겨날 테고, 소녀도 죽어야 했답니다. 하지만, 하지만 소녀는 그이와의 지난 행복도, 이 아이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령 평생에 그 죄책이 남는다 하여도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지만 그 일도 수포로 돌아가고, 저는 이 목숨도, 아이의 생명도 체념하고 말았답니다. 다만 시간이 흘러가는 게 두려웠답니다. 이제는 남편마저 죽었으니 이 한 목숨 살아서 무슨 낙을 보겠다고.. 남은 평생 이 집에서, 혹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 아이를 바라보며 살 것입니다."
단호하게 그녀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이윽고 조세프도 고뇌에 빠지는 것을.. 자칫 우리아의 죽음을, 그 처참했던 죽음에 대해서 그녀가 알게 된다면 혹 배속의 아이와 함께 목숨을 끊을 터. 그런 비극과 가련한 운명만큼은 막아야 했다.
'이 일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찌 폐하께서, 그렇게 자애롭고 인자하던 분이 한 순간의 욕망을 위해서,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저 여인의 아름답던 사랑과 행복을 짓밟았단 말인가! 이제 여인은 일평생 지난 상처와 고통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데.. 어찌 폐하께서 자신의 용사중의 용사를 헛된 죽음으로 내몰았단 말인가! 그것도 그토록 처참하게 말이다. 아마 그랬을 테지. 자칫 부인과 있었던 부정함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이제 왕국의 번영도, 폐하의 보좌도 위태하였을 터. 폐하는 그렇게 파멸하고 싶지 않았겠지. 그 부정함으로 인해 폐하도 율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겠지. 이 모든 영화도, 영광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혹 그 일이 밝혀진다면 얼마나 많은 대적들이 폐하를 향해 비난할까! 도리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며, 지켜야할 분이 그런 부정을 저질렀으니 지난날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얼굴 가득 성령으로 충만하던 폐하를 따르던 백성들을 생각하자니 도리어 그들이 폐하를 향해 칼을 뽑고, 돌을 던질 것을 생각하지니 아마도 두려웠던 게야. 흐흐흐흐.. 흐흐흐흐..
불쌍한 우리아 장군님! 소인의 불찰을 용서하소서. 장군님! 이제 부인이 장군께서 폐하의 계략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또한 큰일이다. 그렇다 하여도 내 이 일을 아는 이상 어떻게 부인을 왕궁에서 머물라 할 수 있으랴! 왕궁에 말이다. 아마 이것도 폐하의 계략이겠지. 폐하의 계략 말이다. 어찌하든지 이 일을 숨기고 싶은 거야! 비록 폐하로 말미암아 이 지경까지 왔으나 아직은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이제 폐하께서 부인을 위로만 한다면 지난 잘못도 용서받고, 부인을 혹 왕비로 맞아들일 터. 그렇게 된다면 신하들은 폐하의 자애로움에 더욱 탄복할 것이고, 태어날 아이마저 폐하의 양자로 맞이한다면..’
어느새 조세프는 다윗의 마음을, 그 교활함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를 방치할 수도 없는 것을..
"죄송합니다. 장군님! 미천한 년이 속절없이 눈물과 괴념만 털어놓았군요." "아닙니다. 그 동안 부인의 그 애절한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자니 소인도 다만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부인에게 어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이 닥쳤는지. 그저 폐하가 원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부인!"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부인! 이제 폐하의, 페하의 간청을 따르십시오. 차마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큰 결례인 줄은 아나, 이제는 폐하의 아이까지 잉태를 하였으니 부인을 이 세상에서 보호해 줄 분은 오직 폐하 밖에 없습니다. 부인! 부끄러운 저의 입을 용서하소서. 소인은 차마 이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네요." "아닙니다. 소녀는 그이와의 사랑이 베여있는 이 집을 지킬 것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부인! 이제는 아이만, 이제는 태어날 아이만 생각하세요. 어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그들의 비웃음을 참으며 살려 하십니까! 설령 용납이 되지 않을 지언 폐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어쩜 그 길만이 부인과 그 아이의 생명을 위하는 길입니다. 아마 내일 날이 밝는 데로 왕궁에서 폐하의 마차가 부인을 맞으러 올 것입니다. 비록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폐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폐하의 어질고 자애로우심이 부인과 아이를 지켜드릴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소인은 이만 물러가옵니다. 부인! 부디 마음을 단단히 가지세요. 이 세상은, 이 세상은 부인께서 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험난한 길이옵니다. 부디 헤아리세요"
그녀의 오열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런 그녀를 남겨놓으며 방을 나서기가 못내 고통스러운 것을.. 지난 슬픔과 애잔한 운명을 가지며 살아야 될 여인이 너무 가련한 것을, 애처로운 것을..
"차라리 내가, 내가 죽어야 했음인데.. 내가 말이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당신 그리 허무하게 가셨나요. 지난 사랑과 그 행복했던 순간을 어히 잊으라 하십니까!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염없이 눈물을 토해냈다. 그 눈물샘과 설움이 다한다 하더라도, 이 밤이 이생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하여도.. 여인의 사랑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젠 모든 것이 체념이 되고, 아픔이 되었다. 지난 수치도, 아련했던 순간도 고스란히 그녀의 몫인 것을.. 자신에게서 소중한 사랑과 행복을 빼앗아 버린 원수에게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이 못내 그녀로 하여금 수치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젠 남편마저 이생을 떠나버렸고, 곧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의 출생에 관해서 모든 사람의 의심과 손가락질을 받을 게 자명한 터. 자신은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아이의 가련한 운명을 생각하자니 모정(母情)은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아이에게만큼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젠 그녀가 의지할 곳이라곤 수치를 무릅쓰고라도 다윗을 따라야 했다. 그가 바로 아이의,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여보! 부디 이 천한 년을, 이 천한 년을 용서하세요. 이제 이 수치를 무릅쓰고라도 아이를,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당신과의 지난 행복을 빼앗은 폐하께 모든 것을 맡기려 하옵니다. 부디 저를, 이 천한 년을 용서하세요. 이제는 하나님의 낙원에서, 그 영원한 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이 천한 계집이랑 잊으시고, 이생의 슬픔도, 지난 세월도 모두 함께 잊으시고 말입니다. 편히 쉬세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흐흐흐흐.."
상처 입은 여인은 그렇게 아픔과 절망을 울고 말았다. 가슴속에 단단한 못을 박으면서, 슬픔을 박으면서.. 저 하늘에 애틋한 눈물이 있었다면 그녀의 눈물을 받아 이생을 채울 것을, 저 하늘의 빗물이 그리움이라면 그녀의 슬픔은 애절한 비가(悲歌)처럼 흐를 것을.. 새벽을 맞도록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밤이, 그 적막함이 서늘한 바람이 되어 그의 코끝을 스쳤다. 밤하늘을 보아도, 저 하늘의 달빛과 뭇별을 보아도 모두가 아득한 그리움인 것을.. 천년을 다하여도 그치지 않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밤 새벽을 맞도록 그녀의 슬픔과 눈물을 감싸주어야 했는데.. 그저 모질게 떠나온 것 같아 가슴이 매어질 뿐이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조세프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분노를, 그 혼돈을 겪고 말았다. 지난날 다윗을 위해 모든 열정과 충성을 바쳤음에도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다윗을 향한 분노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한 여인의 순결과 정조를, 행복을 그리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그녀의 사랑하는 이마저 교활한 욕심을 위해서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게 했던 다윗이 차마 믿기 지가 않았다. 차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을..
비록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그토록 불의를 행하였다 한들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다윗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차마 아이마저, 차마 배속의 아이마저 다윗의 씨가 분명한 지라 이제는 우리아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그 계략을 그녀에겐 영원히 비밀로 해야 했다. 그것이 조세프로 하여금 더 깊은 상심과 분노로 빠뜨렸던 것이다. 이대로 그녀를 방치해 두어 혹 아버지 없는 아이가 태어난다면 큰 낭패가 될 것이 자명한 터.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의 출생에 대해 의심을 할 것이 분명하다면 그녀도, 아이도 율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자칫 다윗마저도 파멸의 길로 갈 것이 분명하였던 것이다. 지난날 그의 모습을, 그 영광스런 모습을 기억하던 많은 백성들, 다윗에게 충성과 존경을 표했던 그 백성들이 이제야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축복이 가득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던 그들이 이젠 실망을 하며, 분노할 것이 뻔한 사실임을..
힘없이 고삐를 쥐었다. 다시 돌아 가야할 왕궁도, 다윗도 가증스럽기만 한 것을.. 이 모진 운명과 질고를 지며, 일평생 지난 비밀을 묻고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차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오랜 지기의 원통함을 생각하자니 차마 다윗을 떠나고 싶다. 이제는 가련한 운명을 지며 살아야할 그녀를 생각하지니 연신 목이 메는 것을.. 이내 두 눈을 감아버렸다.
'장군님!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장군의 원통함을 값아 드려야 하지만, 장군님! 소인 곧 장군님을 따르겠습니다. 다시 뵈올 때까지 저 슬픔도, 눈물도 없는 천국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소서. 이생의 모든 기억도 잊으시고, 인연도 잊으시고.. 오직 이 길만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되옵니다. 부디 장군님! 이후에라도 소인을 욕하지 마소서. 그저 지난날처럼 웃음을 보여주소서. 장군님의 선한 눈빛과 사랑도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길이 참으로 멀기만 하다. 바람을 따라며, 먼지를 따르며 조세프는 슬픈 悲歌를 저 하늘에 흘렸다.
밤을 맞았다. 거리는 조요하며, 평온한데.. 곳곳에 피어놓은 횃불만이 텅빈 하늘을 밝혔다. 그 거리를 지나 어느새 우리아의 집에 이르렀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느낄 수 없는데.. 스산한 바람만이 줄곧 고단한 흙먼지를 발할 뿐이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예 잠시만요."
하인 하나가 빼곡히 대문이 열렸다. "누구신지요." "나는 우리아 장군의 동료일세. 부인은 안에 계시는가!" "아 그렇습니까! 어서 들어오시지요." 어둑한 길을 하인을 뒤따랐다.
"나으리!" "셈! 참으로 오랜만일세. 그래 그간 평안하였고, 장군님 장례를 치른다고 수고가 많았지. 내 진작에 와보지도 못하고"
"아닙니다요. 이렇게 오신 것만으로도 마님께선 기뻐하실 겁니다."
이내 늙은 셈은 눈물에 젖고 말았다. 저이를 바라보니 죽은 우리아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저 장군님이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젠 이 늙은이의 덧없는 바램이 되었지만요." "자네 마음 잘 아네. 그러하기에 나도 괴롭다네. 자! 긴히 부인께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 왔으니 부인께 안내를 하게." "예 나으리!"...
셈을 따르지만 그녀를 피하고 싶었다. 숨고 싶은 것을..
"마님! 조세프 나으리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오셨다고요! 어서 안으로 뫼시세요."
흐릿한 불빛에 넋을 잃고 있던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잠시 후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데... 어두움 속에서 애잔한 눈빛과 마주쳤다.
"부인! 죄송합니다. 진작에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소인을 용서하소서."
"아닙니다. 장군님! 이렇게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아마 천국에 계신 그이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부인!"
눈물을 훔치며 셈은 조용히 물러갔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도 못하고."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부인께 긴한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 이처럼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막상 말은 꺼냈지만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가슴이 매이고, 아픈 것을.. 이제는 지난날 그녀에게서 느꼈던 푸르름도, 생명력도 없었다. 오직 쇠약해 가는 영혼만이 존재하는 것을..
"제게 하실 말씀이란 게 대체 뭔 지요!" "다름이 아니옵고, 폐하의 간청을 전하러 왔습니다."
순간 조세프는 그녀에게 일고 있는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그녀가 받았을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지니 차마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폐하의 간청을 가지고 오셨다 구요!" "예 부인! 폐하께서도 지금 깊은 상심에 잠겨 계십니다.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애도를 표하셨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이 없다. 그녀의 분노와 고통을 그렇게 참아내고 있음을..
"폐하께서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시며 부인을 왕궁으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폐하께서 부인을 돌볼 것이라 하였습니다. 설령 지금은 내키지 않더라도 폐하를 친정 오라버리로 생각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부인! 어떻게 하실는지요."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 말을 전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
"장군님! 폐하의 배려는 감사하오나 소녀는 이 집을 지킬 겁니다. 이제 무슨 낙이 있어 왕궁으로 가겠습니까! 그저 그이의 숨결과 지난 추억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이 집을 소녀 남은 평생 지킬 겁니다. 가셔서 그렇게 전해주세요."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찔린 듯 하다. 그녀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슬픔이 고스란히 그의 마음에 박히는 것을.. 여지껏 우리아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그녀가 그저 불쌍하다. 이윽고,
"부인! 차마 저를, 저를 용서하소서. 흐흐흐흐.. 흐흐흐흐.." "장군님! 용서라니요. 제게 무슨 용서를 비시는 건지 소녀는 모르겠습니다."
"부인! 용서하세요. 부디 이 가증한 놈을 말입니다. 소인은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폐하께서 부인을 어떻게 하셨는지를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늘이 무너진 듯 하다. 방안의 촛불도, 꽃잎도 아득한 절벽에, 천길 낭떠러지에 빠져 버린 것을.. 맥을 놓으며 그녀도 허물어졌다.
"부인! 그간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그간 얼마나 두려웠습니까! 왜 진작 소인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나요! 소인에게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어떻게, 어떻게 아셨나요! 폐하와 저만 아는 일이었는데 벌써 소문이 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닙니다. 소인도 우연하게 알게 된 일이고, 폐하와 부인과의 일을 옆 보았던 놈들의 입을 단단히 봉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부인 염려를 놓으세요."
순간 그녀는 그날 내실 앞에서 마주쳤던 두 내관을 떠올렸다. 설마 하였던 것을, 두려웠던 것을.. 그녀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인! 대체,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요. 어서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부인의 마음을 다 이해합니다. 부인의 고통과 슬픔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아무런 말도, 변명이 없었다.
"부인! 저를 믿으세요. 제가 부인을 도울 겁니다." "장군님! 저의 마음을, 눈물을 아신다하셨나요. 이 가련한 마음을 말이에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소녀 지난 나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시나요. 지난 수치를, 죄 받은 몸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정녕 아시나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러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고통과 괴로움으로 아파했는지를요. 저, 저는 날마다 죽으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지만 죽을 수가 없었지요. 구차한 변명 같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도, 배속 아이를 위해서도 말입니다."
순간 조세프는 놀라고 말았다.
"방금 아이라, 아이라 하셨습니까! 그럼 장군님의 생명이옵니까!" 그녀는 못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럼 폐하의, 폐하의 생명이란 말입니까!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나요." "예 그렇습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힘없이 바닥에 고개를 묻었다. 몹시 허탈한 듯 조세프도 맥을 놓는 것을..
"그럼 지난 번 우리아 장군께서 오신 것도.. " "그래요. 다 폐하의 계략이었지요. 이 아이를 그이의 소생으로 하기 위한 페하의 계략이었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폐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소녀도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랍니다. 모든 것을요. 이 가증한 년은 여지껏 이생의 질긴 목숨을 차마 죽지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이어오고 말았답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어찌 죽어서 남편을 뵈올지, 어떻게 용서를 구하올지. 흐흐흐흐..흐흐흐흐"
조세프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 눈빛도 타오르고, 지난 일들이 뇌리에 확연하게 박히는 것을.. 예전과 다르게 우리아에게 베풀었던 환대도 다윗의 웃음도, 자신의 부하를 왜 그토록 처참하게 죽게 했던 지도 아직 우리아의 죽음이 다윗의 교활한 계략임을 모르고 있을 밧세바가 그저 불쌍하고, 가련하다. 차마 그것은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오직 자신만 아는 슬픔과 비극으로, 운명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을..
"장군님! 장군님은 소녀를 천한 계집이라 욕하겠지요. 어떻게 그런 수치와 죄를 받고도 이 가증한 목숨을 이어올 수 있냐 구요. 그래요. 이 천한 소생! 그 날 이후 여러 번 죽으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흐흐흐흐.. 흐흐흐흐.. 죽을 수가 없었지요. 장군님은, 장군님은 母情이 뭐라고 생각을 하세요! 母情을 말입니다. 어느 날 문뜩, 저의 몸에 한 생명이, 한 생명이 잉태되었다고 느꼈을 때, 차마 그 생명이 죄를 받아 잉태된 아이라면, 원수의 생명이라면 장군님은, 장군께서 저 같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 고통과 비통함을 장군님은 아시는지요. 차마 죽지 못하는 마음을요, 차마 어미 된 마음을요. 그 후론 죽을 수가 없었답니다. 비록 죄받은, 저주받은 아이지만 이 아이도 엄연히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축복과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날 아이이기에 소녀는, 이 천한 계집은 죽을 수가 없었지요. 저는 아이와 약속을 하였답니다.
아가! 아가! 내 사랑하는 아가! 이 어미 이 세상 모든 이들의 멸시와 천대, 그 비웃음에서 너를, 너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다. 소중한 아가! 너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축복과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날 아이란다. 이 어미는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 밝힌다 하여도 너를 언제까지나 지켜줄 것이다 라고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조세프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위로하고픈 것을.. 그녀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하다.
"장군님! 소녀는, 소녀는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싶었답니다. 그렇게라도 말입니다. 저는 수치와 분노를 무릅쓰며 폐하께 도움을 구했지요. 처음에 폐하로부터 남편과 동침하고 그 아이를 남편의 소생으로 하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차라리 죽고 싶었답니다. 평생에 지고 갈 죄악과 가책을 생각하자니 너무 고통스러웠지요. 하지만, 하지만 그 방법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답니다. 곧 배가 불러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의 의심을 받을 터. 자칫 지난 수치가 들어 나는 날에는 폐하와 저는 율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요. 폐하도 보위에서 쫓겨날 테고, 소녀도 죽어야 했답니다. 하지만, 하지만 소녀는 그이와의 지난 행복도, 이 아이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령 평생에 그 죄책이 남는다 하여도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지만 그 일도 수포로 돌아가고, 저는 이 목숨도, 아이의 생명도 체념하고 말았답니다. 다만 시간이 흘러가는 게 두려웠답니다. 이제는 남편마저 죽었으니 이 한 목숨 살아서 무슨 낙을 보겠다고.. 남은 평생 이 집에서, 혹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 아이를 바라보며 살 것입니다."
단호하게 그녀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이윽고 조세프도 고뇌에 빠지는 것을.. 자칫 우리아의 죽음을, 그 처참했던 죽음에 대해서 그녀가 알게 된다면 혹 배속의 아이와 함께 목숨을 끊을 터. 그런 비극과 가련한 운명만큼은 막아야 했다.
'이 일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찌 폐하께서, 그렇게 자애롭고 인자하던 분이 한 순간의 욕망을 위해서,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저 여인의 아름답던 사랑과 행복을 짓밟았단 말인가! 이제 여인은 일평생 지난 상처와 고통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데.. 어찌 폐하께서 자신의 용사중의 용사를 헛된 죽음으로 내몰았단 말인가! 그것도 그토록 처참하게 말이다. 아마 그랬을 테지. 자칫 부인과 있었던 부정함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이제 왕국의 번영도, 폐하의 보좌도 위태하였을 터. 폐하는 그렇게 파멸하고 싶지 않았겠지. 그 부정함으로 인해 폐하도 율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겠지. 이 모든 영화도, 영광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혹 그 일이 밝혀진다면 얼마나 많은 대적들이 폐하를 향해 비난할까! 도리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며, 지켜야할 분이 그런 부정을 저질렀으니 지난날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얼굴 가득 성령으로 충만하던 폐하를 따르던 백성들을 생각하자니 도리어 그들이 폐하를 향해 칼을 뽑고, 돌을 던질 것을 생각하지니 아마도 두려웠던 게야. 흐흐흐흐.. 흐흐흐흐..
불쌍한 우리아 장군님! 소인의 불찰을 용서하소서. 장군님! 이제 부인이 장군께서 폐하의 계략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또한 큰일이다. 그렇다 하여도 내 이 일을 아는 이상 어떻게 부인을 왕궁에서 머물라 할 수 있으랴! 왕궁에 말이다. 아마 이것도 폐하의 계략이겠지. 폐하의 계략 말이다. 어찌하든지 이 일을 숨기고 싶은 거야! 비록 폐하로 말미암아 이 지경까지 왔으나 아직은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이제 폐하께서 부인을 위로만 한다면 지난 잘못도 용서받고, 부인을 혹 왕비로 맞아들일 터. 그렇게 된다면 신하들은 폐하의 자애로움에 더욱 탄복할 것이고, 태어날 아이마저 폐하의 양자로 맞이한다면..’
어느새 조세프는 다윗의 마음을, 그 교활함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를 방치할 수도 없는 것을..
"죄송합니다. 장군님! 미천한 년이 속절없이 눈물과 괴념만 털어놓았군요." "아닙니다. 그 동안 부인의 그 애절한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자니 소인도 다만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부인에게 어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이 닥쳤는지. 그저 폐하가 원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부인!"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부인! 이제 폐하의, 페하의 간청을 따르십시오. 차마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큰 결례인 줄은 아나, 이제는 폐하의 아이까지 잉태를 하였으니 부인을 이 세상에서 보호해 줄 분은 오직 폐하 밖에 없습니다. 부인! 부끄러운 저의 입을 용서하소서. 소인은 차마 이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네요." "아닙니다. 소녀는 그이와의 사랑이 베여있는 이 집을 지킬 것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부인! 이제는 아이만, 이제는 태어날 아이만 생각하세요. 어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그들의 비웃음을 참으며 살려 하십니까! 설령 용납이 되지 않을 지언 폐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어쩜 그 길만이 부인과 그 아이의 생명을 위하는 길입니다. 아마 내일 날이 밝는 데로 왕궁에서 폐하의 마차가 부인을 맞으러 올 것입니다. 비록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폐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폐하의 어질고 자애로우심이 부인과 아이를 지켜드릴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소인은 이만 물러가옵니다. 부인! 부디 마음을 단단히 가지세요. 이 세상은, 이 세상은 부인께서 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험난한 길이옵니다. 부디 헤아리세요"
그녀의 오열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런 그녀를 남겨놓으며 방을 나서기가 못내 고통스러운 것을.. 지난 슬픔과 애잔한 운명을 가지며 살아야 될 여인이 너무 가련한 것을, 애처로운 것을..
"차라리 내가, 내가 죽어야 했음인데.. 내가 말이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당신 그리 허무하게 가셨나요. 지난 사랑과 그 행복했던 순간을 어히 잊으라 하십니까! 흐흐흐흐.. 흐흐흐흐.."
하염없이 눈물을 토해냈다. 그 눈물샘과 설움이 다한다 하더라도, 이 밤이 이생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하여도.. 여인의 사랑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젠 모든 것이 체념이 되고, 아픔이 되었다. 지난 수치도, 아련했던 순간도 고스란히 그녀의 몫인 것을.. 자신에게서 소중한 사랑과 행복을 빼앗아 버린 원수에게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이 못내 그녀로 하여금 수치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젠 남편마저 이생을 떠나버렸고, 곧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의 출생에 관해서 모든 사람의 의심과 손가락질을 받을 게 자명한 터. 자신은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아이의 가련한 운명을 생각하자니 모정(母情)은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아이에게만큼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젠 그녀가 의지할 곳이라곤 수치를 무릅쓰고라도 다윗을 따라야 했다. 그가 바로 아이의,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여보! 부디 이 천한 년을, 이 천한 년을 용서하세요. 이제 이 수치를 무릅쓰고라도 아이를,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당신과의 지난 행복을 빼앗은 폐하께 모든 것을 맡기려 하옵니다. 부디 저를, 이 천한 년을 용서하세요. 이제는 하나님의 낙원에서, 그 영원한 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이 천한 계집이랑 잊으시고, 이생의 슬픔도, 지난 세월도 모두 함께 잊으시고 말입니다. 편히 쉬세요. 흐흐흐흐.. 흐흐흐흐.. 흐흐흐흐.."
상처 입은 여인은 그렇게 아픔과 절망을 울고 말았다. 가슴속에 단단한 못을 박으면서, 슬픔을 박으면서.. 저 하늘에 애틋한 눈물이 있었다면 그녀의 눈물을 받아 이생을 채울 것을, 저 하늘의 빗물이 그리움이라면 그녀의 슬픔은 애절한 비가(悲歌)처럼 흐를 것을.. 새벽을 맞도록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밤이, 그 적막함이 서늘한 바람이 되어 그의 코끝을 스쳤다. 밤하늘을 보아도, 저 하늘의 달빛과 뭇별을 보아도 모두가 아득한 그리움인 것을.. 천년을 다하여도 그치지 않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밤 새벽을 맞도록 그녀의 슬픔과 눈물을 감싸주어야 했는데.. 그저 모질게 떠나온 것 같아 가슴이 매어질 뿐이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조세프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분노를, 그 혼돈을 겪고 말았다. 지난날 다윗을 위해 모든 열정과 충성을 바쳤음에도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다윗을 향한 분노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한 여인의 순결과 정조를, 행복을 그리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그녀의 사랑하는 이마저 교활한 욕심을 위해서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게 했던 다윗이 차마 믿기 지가 않았다. 차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을..
비록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그토록 불의를 행하였다 한들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다윗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차마 아이마저, 차마 배속의 아이마저 다윗의 씨가 분명한 지라 이제는 우리아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그 계략을 그녀에겐 영원히 비밀로 해야 했다. 그것이 조세프로 하여금 더 깊은 상심과 분노로 빠뜨렸던 것이다. 이대로 그녀를 방치해 두어 혹 아버지 없는 아이가 태어난다면 큰 낭패가 될 것이 자명한 터.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의 출생에 대해 의심을 할 것이 분명하다면 그녀도, 아이도 율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자칫 다윗마저도 파멸의 길로 갈 것이 분명하였던 것이다. 지난날 그의 모습을, 그 영광스런 모습을 기억하던 많은 백성들, 다윗에게 충성과 존경을 표했던 그 백성들이 이제야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축복이 가득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던 그들이 이젠 실망을 하며, 분노할 것이 뻔한 사실임을..
힘없이 고삐를 쥐었다. 다시 돌아 가야할 왕궁도, 다윗도 가증스럽기만 한 것을.. 이 모진 운명과 질고를 지며, 일평생 지난 비밀을 묻고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차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오랜 지기의 원통함을 생각하자니 차마 다윗을 떠나고 싶다. 이제는 가련한 운명을 지며 살아야할 그녀를 생각하지니 연신 목이 메는 것을.. 이내 두 눈을 감아버렸다.
'장군님!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장군의 원통함을 값아 드려야 하지만, 장군님! 소인 곧 장군님을 따르겠습니다. 다시 뵈올 때까지 저 슬픔도, 눈물도 없는 천국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소서. 이생의 모든 기억도 잊으시고, 인연도 잊으시고.. 오직 이 길만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되옵니다. 부디 장군님! 이후에라도 소인을 욕하지 마소서. 그저 지난날처럼 웃음을 보여주소서. 장군님의 선한 눈빛과 사랑도 말입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길이 참으로 멀기만 하다. 바람을 따라며, 먼지를 따르며 조세프는 슬픈 悲歌를 저 하늘에 흘렸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