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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심화 강의

마르코

작성자사랑평화|작성시간26.06.05|조회수18 목록 댓글 0


2026. 6.4(목) 오후 8시

마르코
히에라폴리스 주교, 파비아스(130년)는 마르코가 베드로의 통역. 베드로의 예수님 말씀과 행적을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충실하게 기록하였다(에우세비오, 교회사 3,39, 15).
신약성경에서 요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10번,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 그리스의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종종 예루살렘에 왔을 때, 어느 집에 묵었을까?

예루살렘의 마르코의 집
마르코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고, 그의 집에 주님의 제자들이 모이곤 하였다(사도 12,12).

성령강림 때의 장소도 그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최후만찬의 집도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을 준비할 때, 제자들이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도성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신다.’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마르 14,12-16).

바르나바와 마르코와 예수님
마르코가 소년 때에 그의 집에서 예수님과 제자 일행을 만났을 것.
마르코의 사촌. 어머니와 친척인 바르나바도 함께 알고 있었을 것.

어머니도 해외게 유다인으로 키프로스, 레위인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키프로스 출신이고 바르나바도 그렇다면 마르코는 해외계 유다인으로 그리스어, 문화 친숙하고 그의 친척들도 있고, 소아시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소통, 선교 동역 가능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붙잡히자, 알몸으로 달아난 젊은이(마르 14,52).
초대 교회-마르코의 집
예수님 승천하신 후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사도 1,12), 그들이 묵고 있고 위층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모두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1,14).
그곳에서 마티아가 사도로 뽑히고(1,26),
오순절 그곳에 마리아와 주님의 제자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을 때 성령께서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첫 신자 공동체도 그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베드로와 요한도 갈릴래아 사람으로서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성전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마르코의 집에서 거처했을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모태에서부터 앉은 이로 태어난 이를 치유 이후,
최고 회의에서 증언하고 풀려나서 돌아와서 기도한 곳도 마르코의 집으로 여겨진다(사도 4,23).

베드로가 풀려나 마르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집으로(사도 12,12).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투옥되고 천사에 의해서 감옥에 나온 뒤에 베드로는 마르코라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는데, 그곳에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베드로가 바깥 문을 두드렸을 때 로데라는 하녀가 나와서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들었고, 베드로가 문을 계속 두드리자 사람들이 문을 열어 주었다(사도 12,12.16).


마르코의 집은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의 선교 중심지

바오로 바르나바 베드로와 마르코의 선교 여행

1차 선교 여행(45-49년)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따라(사도 12,25), 1차 선교 여행 때 동행했는데(사도 13,5), 키프로스까지는 동행했으나 소아시아 선교 여행을 포기하고 팜필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사도 13,13).

2차 선교 여행
바오로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50-52년 2차 선교여행 때 거부하자, 마르코는 사촌인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가서 선교하였다(콜로 4,10;사도15,37-39).

3차 선교 여행
53-58년 3차 선교 여행 때에, 바오로가 에페소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는 바오로의 곁에 있어 주어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콜로 4,10;필레 1, 24).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아리스타르코스, 그리고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 마르코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이미 지시를 받았으니, 그가 여러분에게 가거든 잘 받아들이십시오”(콜로 4,10).

3차, 4차 선교 여행
마르코는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 때만 바오로와 함께 있지않았을 뿐, 3차 여행부터 바오로가 순교할 때까지 그와 함께 선교 동반하거나 함께 일하였다.

베드로 사도 선교
베드로의 편지에서 마르코는 베드로의 일행으로 일했으며, 베드로는 마르코를 ‘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베드로와 선교 동역을 하였다(1베드 5,13).

“나는 성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바누스의 손을 빌려 여러분에게 간략히 이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격려하고 또 하느님의 참된 은총임을 증언하려는 것입니다. 그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1베드 5,12-13).

4차 선교 여행
마지막으로 바오로가 로마에 투옥되었을 때, 티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하였다(2티모 4,11).

로마에서 마르코는 바오로의 큰 협력자였다(57-58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필레몬서의 끝인사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에파프라스, 나의 협력자들인 마르코와 아리스타르코스와 데마스와 루카가 그대에게 인사합니다(필레 23-24).

소아시아 히에라 폴리스 주교 파비아스와 신약성경의 나오는 말씀에 따라 마르코는 바오로의 협조자이고, 베드로의 통역으로 전한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 주교를 역임하였고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마르코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서간에서 기록된다.
사도 12,12.25; 13,5.13;15,37-39; 필레 24; 콜로 4,10; 2티모 4,11; 1베드 5,13


바르나바와 마르코
바르나바는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사도들이 안티오키아 신자들을 위해서 예루살렘 사도들이 그를 그곳에 파견하였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르나바는 그곳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 11,24). 그리고 교회 성장과 열매를 위해 타르수스에서 사울을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사도 11,26).

바르나바는 키프로스 태생이고 레위인이다. 그는 이미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의 별명으로 바르나바란 이름을 받았다. 사람들을 위로할 뿐 아니라, 교회의 위로의 길을 걸었다.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였다. 교회를 위해서 자기 소유한 밭을 팔아 그돈을 사도들 발 앞에 가져다 놓았다(사도 4,37).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 교회의 교사요 예언자였다.

바르나바와 마르코와의 사촌
바오로가 로마에 갇혀 있을 때, 바오로는 콜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와 함께 있는 마르코를 소개한다. 여기서 바오로는 마르코가 바르나바의 사촌이라고 소개하였다.

마르코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리아“(사도12,12)이며, 바르나바와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서로 친척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바르나바는 키프로스 레위인 유다인으로 예루살렘에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 기도,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여러 경로로 베드로와 주님의 제자들을 만났을 것이다. 사도들의 발 앞에 교회에 봉헌하고..

바르나바는 바오로와 마르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45-49년)을 떠났고, 마르코는 1차 선교 여행 중에 키프로스까지 동행하였지만, 팜필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45년).
바오로 2차 선교 여행(50-52년)에서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가려고 하였지만, 바오로가 반대하자, 바르나바는 바오로와 함께 2차 선교 여행을 가지 않고, 마르코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다(50년,사도 15,39).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53-58년)에서 에페소에서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52-57년 사이,에페소)바르나바에 관해서 언급한다.

바오로 자신이 다른 이들에는 사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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