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주적 국통론과 현행 역사 정책의 헌법 위반성 고찰
: 1943년 3·1절 선언문의 역사주권 정신과 상고사 삭제 현실을 중심으로
국사찾기협의회 사무처장 임기추박사
Ⅰ. 서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함으로써, 국가의 역사적 정통성과 법적 근간이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교적·정치적 맥을 잇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임시정부가 일제의 침략에 맞서 피땀으로 수호하고 정립한 ‘역사주권’과 ‘자주사관’을 온전히 계승·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외교 현장과 독립운동의 기저에서 천명했던 주체적 국통론(國統論)은 오늘날 정부의 역사 정책과 주류 학계의 교육과정에서 심각하게 외면받고 있다. 특히 1943년 임시정부가 발표한 3·1절 선언문은 환국(桓國)으로부터 시작해 단군, 부여, 삼한, 삼국, 고려,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영속적인 국가주권의 계승을 선포하였으나, 현재 공교육과 국가 역사 정립 정책은 환국, 배달, 북부여 등으로 이어지는 7,166년의 상고사를 일제 식민사학의 프레임에 갇혀 ‘신화’ 혹은 ‘위서’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삭제·부정하고 있다.
본 논문은 1943년 임시정부 3·1절 선언문에 담긴 국통 맥락과 역사주권의 본질을 밝히고, 환국·배달·북부여의 상고사가 생략된 채 식민사관이 지속되는 현재 정부의 역사 정책이 왜 헌법 전문 및 제9조를 위반한 행위인지 논리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Ⅱ. 1943년 임시정부 3·1절 선언문의 역사적 성격과 국통론
1. 3·1절 선언문의 역사주권 선언과 체계
1943년 3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표한 선언문은 다가올 광복과 건국을 앞두고 한민족의 국가주권이 지닌 정통성을 대내외에 확고히 천명한 국가적 문서이다. 이 선언문에서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국통 체계로 정리하였다.
환국(桓國) ➔ 단군(檀君) ➔ 부여(扶餘) ➔ 삼한(三韓) ➔ 삼국(三國) ➔ 고려(高麗) ➔ 조선(朝鮮) ➔ 대한민국(大韓民國)
이는 한민족의 주권이 외세의 침략이나 단절 없이,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영속체로서 계승되어 왔음을 선언한 것이다. 임시정부는 영토와 조정(朝廷)은 일제에 의해 잠시 침탈당했을지언정, 국가의 근본인 ‘주권(Sovereignty)’ 자체는 우리 민족에게 고스란히 남아 임시정부로 이어졌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독립운동의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2. 식민사학에 대한 정면 대항마로서의 자주사관
일제 관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 등을 통해 한국사의 시원을 축소하고 타율성을 강조하는 식민사관을 구축하였다. 이들은 고조선을 신화로 조작하고,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이 존재했다는 논리를 폄으로써 한국사의 출발점을 외세의 식민지(낙랑군 등)로 규정하려 했다.
임시정부가 선언문에서 환국과 단군, 부여의 맥을 명시한 것은 일제의 이러한 역사 왜곡을 정면으로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 등 임시정부를 이끈 사상가들은 상고사의 강역과 전승 과정을 복원하는 것이 곧 영토를 되찾는 일만큼이나 시급한 역사주권의 수호라고 보았다. 즉, 1943년 선언문은 일제 사학에 맞서 민족의 자존을 지키고 건국의 역사적 이념을 확립한 ‘자주사관의 결정체’였다.
Ⅲ. 현행 역사 정책의 식민사관 지속과 상고사 삭제 현실
1. 환국·배달·북부여 7,166년 역사의 주류 학계 및 공교육 배제
현재 대한민국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 등 정부 역사 기관의 정책은 임시정부의 자주적 사관과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 임시정부가 국통의 시원으로 선언한 환국(桓國)과 배달(倍達)의 역사는 공교육 교과서에서 완전히 소거되었으며, 단군조선 역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 기술’이나 ‘청동기 시대의 막연한 부족 국가’ 수준으로 축소되어 있다.
또한 고대 조선과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주권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북부여(北扶餘)’의 역사 역시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낙랑군과 대방군 등 한사군 중심의 위만정권 멸망 이후 한반도 북부 지배론에 밀려 지워져 있다. 결과적으로 환국, 배달, 북부여로 이어지는 약 7,166년의 방대한 상고사가 한국사 체계에서 난도질당하고 삭제된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2. 식민사학 논리의 무비판적 답습과 방조
정부의 역사 정책을 주도하는 국책 연구기관들과 교과서 집필진은 문헌고증과 실증주의라는 학문적 객관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쓰다 소키치나 이마니시 류 등 일제 관학자들이 설정해 놓은 역사적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기반으로 고대 국가의 형성 시기를 일부러 늦추어 잡거나, 중국의 동북공정 및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 상고사의 주체적 기록들을 ‘재야사학의 위서론’으로 몰아세우며 연구 자체를 가로막는 태도는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의 유산이 국가 정책 내부에서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Ⅳ. 역사 정책의 식민사관 지속에 대한 헌법 위반성 논증
정부가 환국·배달·북부여 등 상고사 영역을 영구히 배제하고 식민사학적 기조를 방치하는 역사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역사적 과오를 넘어 명백한 **헌법 위반(憲法 違反)**에 해당한다. 그 법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헌법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 계승' 명령 위반
헌법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 계승'은 법치국가의 최고 원리이자, 국가 기관이 모든 정책을 수립할 때 준수해야 할 헌법적 가이드라인이다. 임시정부는 국가의 국통을 환국과 단군, 부여로 이어지는 맥락으로 선포하였고 이를 수호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따라서 광복된 독립국가의 정부가 임시정부가 규정한 국통론의 핵심인 상고사를 스스로 부정하고, 오히려 임시정부가 타도하고자 했던 일제 총독부 사관의 잔재를 정설(定說)로 인정하여 공교육에 주입하는 행위는 헌법 전문이 명령한 ‘법통 계승’의 책무를 정면으로 배반한 불이행 상태이다.
2. 헌법 제9조 '민족문화 창달 및 전통문화 계승' 의무 위반
헌법 제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역사는 전통문화와 민족문화의 가장 뿌리 깊은 토대이자 정체성의 원천이다. 국가가 주체적 연구를 통해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가려진 환국, 배달, 북부여의 역사를 복원하고 확립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헌법 제9조가 부여한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오히려 민족사의 시원을 축소하고 영토적·시간적 강역을 스스로 제한하는 사학을 묵인·지원하는 것은 민족문화의 창달이 아닌 ‘민족문화의 거세 및 위축’을 조장하는 행위이므로 헌법적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3. 국민의 알 권리 및 역사주권 침해
국가는 국민이 올바른 민족적 자긍심과 주체적 역사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다. 임시정부가 선언한 주권 계승의 역사를 감추고 식민지적 시각에서 재단된 역사만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교육 정책은,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의 역사적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나아가 대외적인 동북공정이나 역사 침탈에 방어 기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역사주권의 포기 행위와 다름없다.
Ⅴ. 결론 및 제언
194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3·1절 선언문은 우리 민족이 지켜내야 할 ‘역사적 독립 선언서’였다. 임시정부는 나라를 잃은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환국으로부터 대한민국에 이르는 반만년 이상의 당당한 국통 체계를 세워 민족의 뿌리를 지켰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역사 정책은 식민사학의 카르텔을 깨지 못하고 환국·배달·북부여의 상고사를 지워버림으로써, 헌법 전문에 명시된 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원칙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논쟁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헌법적 가치와 역사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1943년 임시정부 선언문의 자주 정신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는 식민사학적 관성에서 벗어나 환국, 배달, 북부여로 이어지는 상고사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복원하여 교과서에 반영해야 한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내고 주체적 국통을 확립하는 것만이, 헌법 정신을 완수하고 진정한 역사적 독립을 이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