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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구약성경신학

성막 : 하나님의 임재(출 35 - 40장)

작성자이완구목사|작성시간26.06.22|조회수2 목록 댓글 1

성막 : 하나님의 임재(출 35 - 40장)

 

 

 

 

 

 

 

 

 

 

성막 : 하나님의 임재(출 35 - 40장)

 

구 절 : 출 35:-40:

 

우리는 출 35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반복되는 성막 건축 양식이 지루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보고

자세히 살펴보지 아니하고 그냥 넘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이 부분은 설교자들도 거의 설교하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막 건축에 대하여 이처럼 자세하게 언급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막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지성소와 성소로 나누어집니다.

그 사이에는 두께가 거의 30cm나 되는 두꺼운 휘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그 위에 금으로 만든 그룹(천사의 이름)이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1년에 1차씩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가 온 이스라엘 을 속죄하는 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성소에는 떡을 놓아두는 떡상과 일곱 등잔이 있는 촛대와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는 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 뜰에는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물두멍과 번제를 드리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이 각각의 부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생략합니다.

왜냐하면 왜 성막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고, 성막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지성소의 모양은 마치 하나님이 거하시는 궁궐과 같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수 많은 천사들이 지성소 안 벽에 수 놓아져 있는 것을 본다면 그곳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은소인 것을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히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1년에 한 번씩 몸을 성결케 한 대제사장만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동물의 피로써 이스라엘의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피를 통해서만 이스라엘을 속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속죄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 인류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다는 것을 예표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시적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둘째, 성막은 거룩한 곳입니다.

 

성막은 특별히 성막을 위해 구별된 레위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막 주위에는 12지파가 둘러싸고 있었으며, 12지파와 성막 사이에는 레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정한 자들이 함부로 성막에 접근하여 성막을 더럽히지 못하게 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막은 정결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성막은 정결하게 구별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셋째, 성막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주는 교

제의 장소였습니다.

성막을 회막(the tent of meeting)이라고 부르는 것(출 40:2)을 보아

서도 성막이 단순히 제사를 위한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만나주

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회중의 한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

들과 교제하고 계심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

막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의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치유해 주는 곳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금송아지 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패역된 모습을 성막건축 바로 앞에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 이유 때문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절의 위기에 놓여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론 모세의 중보 기도로 인하여 형벌이 잠시 유예되었으나 근본적으로 그들의 죄가 사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구원받은 우리 성도가 죄를 범했을 경우 우리는 이미 구원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형벌은 면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지은 죄의 형벌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회개하도록 함으로써 죄용서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나아와 속죄제를 드리게 함으로써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주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이며, 부정해진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는 치유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상을 살펴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그곳에서 하나님의뜻을 제사장들에게 알려 그의 백성과 교제하시며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리심을 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성막 안에 거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막 위에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있었던 이유와 구름기둥이 떠올랐을 때

이스라엘이 진행을 하고, 멈추었을 때 그곳에 장막을 쳐야했던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40:34-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40:38)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의 왕되신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보는 듯합니다.

 

비로소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로서 그 면모를 확실히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나라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곧 그 나라의 헌법이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그 나라의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왕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이끌고

그 땅을 정복하려 친히 진군하시며 지휘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정비하고 군대로서 정돈하고 계심을 우리는 민수기 1-2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군대를 계수하시고 그 진군 방향과 순서 그리고 동서남북에 각각 진을 치도록 하는 모습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성막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만이 진정한 평화(샬롬; ; shalom)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나라를 우리는 대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등장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바로 그 나라는 새 예루살렘(계 21:10)으로서 우리가 바라는 나라요 참 평화가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성막의 건설에 대하여 자세하게 언급하며 출애굽기가 성막의 완공으로 끝난다는 것은

우리의 최종의 구원의 완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은 사단의 세력 아래 있던

그의 백성을 이끌어 내신 것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만방에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막을 통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에로 인도하기 위함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아 구속사의 최후 종점은 새 예루살렘으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지 성막의 의미에서 레위기를 보아야 합니다.

레위기는 읽어나가기에 좀 힘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깊은 의미와 감명을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까를

가르쳐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즉, 출애굽기에서 완성된 성막을 중심으로 앞으로 살아가야할 규례와 법도를 레위기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즉, 레위기는 출애굽기의 연속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구원의 초기 단계에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출애굽기는 우리가 구원 받은 초기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레위기는 이제 구원의 완성단계에 있는 성도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를 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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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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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방수 | 작성시간 26.06.22 new 아멘!!!
    고맙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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