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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금요 말씀

전도서 2 장 ; 세상의 쾌락과 부(富)도 헛되다(지혜자와 우매한 자의 일반 9-17)

작성자이완구목사|작성시간26.06.05|조회수1 목록 댓글 1

전도서 2 장 ; 세상의 쾌락과 부(富)도 헛되다(지혜자와 우매한 자의 일반 9-17)

 

 

 

 

 

 

 

 

 

 

9-17 지혜자와 우매한 자의 일반

 

2: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2: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9. 창성하여(가달, גָּדַל)는 문자적으로 성장하다, 크게되다, 커지다, 강해지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에서는 물질적으로 크게 번성한 것을 말씀한다. 이것은 다니엘 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위엄의 영광을 자랑할 때와 똑같은 생각으로 자신이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왕들보다 형통하여 창성했고 부요했으며 세계에서 제일가는 지혜와 지식을 가졌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솔로몬은 교만과 자만심으로 자신의 부와 지혜가 모든 선임자보다, 심지어는 아버지보다도 낫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솔로몬은 지나간 모든 왕들보다 훨씬 뛰어난 명성을 가진 왕이었었다.

그래서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다 보았으며 마음이 원하는 바를 막지 않고 다 해 보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까지 쓰고 가르쳤을 만큼의 지혜와 지식을 지녔음을 논한다. 열왕기 상 433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고 증거하는 말씀이다. 자신이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쾌락에 젖었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음을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말씀인 것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치세(治世)의 융성함을 나타낸다. 여기서 솔로몬은 교만과 자만심으로 자신의 부와 지혜가 모든 선임자보다, 심지어는 아버지보다도 낫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0. 이 구절에서는 마음을 대조하면서 솔로몬 자신이 체험한 외적 즐거움과 내적 즐거움을 말한다. 다시말해서 외적인 쾌락의 대상이나 내면적 만족감을 주는 것을 막론하고 모든 즐거움을 추구하여 얻었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아셰르 사알, אֲשֶׁר שָׁאַל)은 문자적으로 구걸했다, 요청했다.’라는 의미인데 솔로몬은 자신이 극단으로 행한 것과 그가 시험해 보지 않은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고 싶든지, 어떤 사람과 살아보고 싶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라고 말씀하는데 얻은 몫(헬레크, חֵלֶק)는 할당’, ‘등을 뜻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분깃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창 31:14, 민 18:20, 신 12:12 참조). 즉 노력을 해서 그렇게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솔로몬은 왕의 지위를 이용하여 권력으로 불로소득(不勞所得)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무엇인가 노력을 해서 얻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얻느라고 또 누리기 위해 수고만 하였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216-17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솔로몬은 일생동안 큰 사업을 벌이고 소유를 늘리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하는 일시적인 쾌락에 지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다음절 내용으로 볼 때, 솔로몬은 이러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기뻐하였을지라도 그것을 성취한 후에는 결국 동일한 허무감과 불만족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2: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이라는 것은 1-10절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행한 후를 말한다. 그래서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하며 아무 유익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하여 만족을 얻고, 진정한 웃음을 찾으려고 했던 모든 수고가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고백하는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다. 솔로몬이 인생을 경험하고 그 인생에서 느낀 허무함을 탄식하며 노래한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해 아래서 한 일은 다 허무한 것이고 하나님만이 참이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솔로몬의 기록이 전도서이다.

 

솔로몬은 반복된 경험을 통하여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허무하고 무익한 일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의 낙(樂)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참으로 헛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적 생명이나 영적 위로나 평안이 없고 참된 즐거움과 만족이 없다. 오히려 거기에 도취가 된 것만큼 하나님과 멀어지고 자기 할 일을 못하고 시간과 정력만 소모하고 몸만 쇠해진다. 세상의 것을 잘 해놓고 낙을 누리며 잘살아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올 때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불러갈 때 어떻게 되겠는가(눅 12:16-21 참조). 그것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전하는 이것은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지혜이다. 아직도 그것들(세상의 쾌락, 명예, 권력, 부귀 등)이 대단한 줄로 알고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미련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으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누려보려고 애쓰다가 , 나의 인생이 결국은 다 헛된 것이란 말인가하면서 인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전도서를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12. 내가 돌이켜는 10절까지의 모든 물질생활에서 참 웃음과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을 뒤돌아 보았음을 말한다. 결국 해 아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상대적 우월함조차 죽음을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허무를 극복하게 할 수 없음을 뒤돌아보니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라고 지혜와 어리석음에 관하여 말씀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이 이 세상에 항상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일을 하는 과정과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는 지혜를 많이 얻는다할지라도 헛되고 어리석은 것이고, 어리석은 자는 모르면서 무조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열심을 내는 자를 보았다는 말씀인 것이다.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는 것은 솔로몬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자도 솔로몬이 추구했던 바 그 이상을 하지는 못하고 결국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전도서 19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지혜도 전에 있었고 망령된 일도 전에 다 있었고 또 어리석은 일도 전에 다 있었는데 그것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지혜자와 망령된 자와 어리석은 자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해 아래에서 허무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악된 세상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원하는 행복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범죄를 행하면 죽음이라는 심판을 받게 되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중요한 인생의 삶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2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2: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3. 내가 보니라는 것은 인생에서의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우쭐대는 자들을 향하는 것으로 솔로몬 왕은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체험하고 알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117절에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임에 헛되며, 118에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다고 하면서 세상 지혜의 허무함을 말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지혜가 어느 정도는 상대적으로 우월함을 말씀하고 있다. 특히 본 절에서 전도자가 지혜를 빛에, 우매를 어둠에 비유한 것은 그 특성상 빛이 사물의 면들을 어둠에서 밝혀주어 질서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갈 길을 보여 주는 반면 이 어둠은 사물의 실상을 감추고 혼돈과 무질서를 야기시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의 가치가, 어리석고 우매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인간적인 지혜가 인간의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넘어설 만한 능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14. 그러므로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man’s eyes are in his head, KJV, NASB, has his eyes in his head, RSV)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혜자의 안목이 열렸음을 뜻한다. 마태복음 622-23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즉 사물이나 상황을 옳게 보고 바른 길을 가는 현명함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리한 통찰력과 판단력,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 등이 뛰어남을 뜻한다(Deane). 그리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의 의미는 잠1724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는 말씀처럼 어둠과 죄악이 많은 불확실한 길을 더듬거리며 걸려 넘어지는 우매함을 말한다.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라며 솔로몬은 세상 지혜에 대해 다시 한번 한계가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모두가 당하는 일이라는 것은 죽음을 말씀하는 것인데 인간은 지혜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죽음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임에 모두 같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지혜자나 우매자들이 한결같이 같은 운명, 죽음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고 세상 지혜의 한계와 헛됨을 통감한 것이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할 것없이 때때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불행한 일들을 당하며 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해 아래 삶을 사는 모든 인간이 벗어날수 없는 절대적인 한계성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2: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2: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2: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15. 이 구절은 14절에 대한 결과의 말씀이다.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라며 솔로몬은 왕으로서 온갖 부귀와 명예를 소유했고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지혜로웠던 자신도 죽음이라는 인간의 절대적인 한계 앞에서는 우매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는데 즉 지혜와 지식이 죽음 앞에서는 헛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며 죽음이라는 절명적인 한계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과 허무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헛되도다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16.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는 지혜자나 우매자가 다같이 자신들을 아는 인간들에게서 오래지 않아 잊혀질 것을 말씀한다. 이 세상에 관한 한 이 말은 참(진실, truth)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예수님과 동행하며 거룩한 지혜로 잘 보존하고 정리한 사람은 영원히 기억되고(시 112:6; 잠 10:7 참조), 그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는 확신을 가지고 기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죽게 되면 죽은 후에는 잊어버리더라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는 사람들이 이름도 기억해 주고 의미있게 느껴지지만, 그가 죽고 나서는 그에 대한 말도 없어지고 그런 사람이 과연 존재했었는가 할 정도로 다 잊어버린다. 지혜롭게 산 것이나 어리석게 산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라고 이야기한다.

 

17.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는 우매자와 똑같이 인생의 종말인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서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솔로몬이 이처럼 인생을 미워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삶이 견디기 힘들만큼 수고로운 것이며 아울러 그렇게 수고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헛된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일은 괴로움뿐이고 모두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사는 일, 즉 많은 것을 소유하고 향락을 누렸어도 남는 것은 수고와 괴로움뿐임을 한탄한 것이다. 그러나 짧은 인생을 한탄하는 소극적 삶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축복으로 여기고 예수님과 함께 선을 추구하는 적극적 삶으로 전환할 때에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3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무엇을 하든지 헛되고 괴로움 뿐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헛된 인생에 대해서 그분이 직접 영감을 내리시어 말씀하시지 않고 솔로몬 같은 지혜와 부귀의 왕을 들어서 체험케 한 후에 간증식으로 말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성경 중 하나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직접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지식도 쾌락도 부귀도 다 헛된 것이니 그런 줄 알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솔로몬을 들어서 말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전도자를 사용하시어 사람들로 인생의 결국과 허무를 알게 하도록 도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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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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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방수 | 작성시간 26.06.05 아멘!!!
    고맙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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