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2 장 ; 세상의 쾌락과 부(富)도 헛되다(해 아래서 수고의 부(富)함도 헛되다 18-26)
3. 18-26 해 아래서 수고의 부(富)함도 헛되다.
| 2: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2: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
18.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에서 “미워하노니”(샤네, שָׂנֵא)는 문자적으로 ‘미워하다, 싫어하다, 혐오(증오)하다’를 뜻한다. 자신이 일생동안 이루어 놓은 모든 수고, 즉 솔로몬은 자신이 건축한 모든 건물과 이루어 놓은 큰 사업들을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차이가 없는 것은 첫째로는 다 죽으며 나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다는 것이다. 아무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둘째는 그렇게 일생토록 수고한 것이 다 남의 것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의 말속에는 솔로몬이 이루어 놓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부강함은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의 실정으로 인해 허물어졌으며 그에 반발해서 일어난 여로보암에게 북쪽의 열지파를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지는 등 솔로몬의 우려가 그대로 적중되었다(왕상 12:6-24 참조). 따라서 솔로몬이 추구하고 또 얻었던 것들을 후예에게 물려주어야만 한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는 그토록 피땀흘려 얻은 것들을 정작 자신은 오래도록 누릴 수 없다고 하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 “그 사람”은 18절에서 언급한 “내 뒤를 이을 이”를 가리킨다.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얄랴마는”(야다, יָדַע)는 ‘알다, 이해하다’라는 의미인데 의심을 표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솔로몬 왕이 헛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유업을 이을 자가 그 가치를 알고 그것들을 관리할 만한 자격이 있는 자일지, 없을지의 여부를 그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그 문제에 도무지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솔로몬이 자신의 후계자인 르호보암에 대한 걱정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관리하리니”(샬라트, שָׁלַט)는 ‘권세를 부리다, 압제하다, 지배하다’라는 의미로 솔로몬 왕은 자신이 모든 사물과 이루어 놓은 것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평생토록 수고한 결과를 어떤 후계자가 다 탕진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장 괴로운 생각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는 것이다. 즉 솔로몬이 지혜롭게 관리해서 모아 놓은 많은 재물과 모든 것을 엉뚱한 사람에게 다 주게 되니 이것이 완전히 허무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다 관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 2: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
20. “이러므로”라고 시작하는 것은 18-19절에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자신이 해 아래에서 노력하여 수고하였던 것이 자신의 마음에서 실망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은 누리지 못하고 솔로몬 왕의 뒤를 이을 자에게 물려준다는 사실에 실망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실망했다”(야아쉬, יָאַשׁ)는 ‘절망하다, 소망이 없다’는 의미인데 자기가 기대하던 일에 대해 모든 소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 남의 것이 되어버리는데 그렇게 열심히 가꾸어놓고 키워놓고 만들어놓아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해 아래에서 행하였던 모든 수고는 헛되지만 해 위에서 행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영원히 자기의 것이요 후회가 없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21. “어떤 사람”(아담, אָדָם)은 ‘인류, 인간’이라는 뜻인데 이 명사는 ‘아담’(첫사람)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인류 혹은 총칭적인 인간, 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으로서의 ‘사람들’, 또는 ‘어떤 이’(부정대명사)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솔로몬 왕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든지 자신의 노력과 수고로 얻은 것을 다른 사람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헛되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인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지혜자에게 돌아간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게 할 것이만, 우매자의 차지가 될 경우 잘못 사용하거나 상실해 버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즉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재주로 수고해 놓은 것이 수고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가니 그 수고한 것이 본인에게는 해로운 것뿐임을 한탄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쓰고 지혜를 써서 많은 일을 해도 자기는 얼마 누리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죽고 후대 사람에게 넘겨주고 마는 것이다. 후대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쓸지 모른다. 잘 유지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다. 흔히 ‘누구는 고생하고 살만하니 죽더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자식은 부모가 수고하여 얻은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 죽은 자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젊은 시절에 일찍 들었다면 앞으로 그런 헛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 헛된 꿈을 꿀 필요가 없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무엇이든지 욕심으로 하지 말고 작은 발걸음 한 걸음씩 순종하며 가면 된다. 지나고 나면 다 헛되기 때문이다.
전도서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다. 일찍 들으면 들을수록 여러분은 인생을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훗날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말씀은 다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에는 매우 값진 교훈, 인생의 문제의 해결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2: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22. 이 구절은 17-21절까지 언급한 것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얻은 마음과 생각으로 “무슨 소득이 있으랴”라고 말씀하는데 소유해야 할 만한 영구적인 결과나 보상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즉 삶 속에서 만족과 쾌락을 위하여 시도한 모든 수고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좀더 넓게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행하는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허무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마음에 애쓰고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해놓았어도 남는 것이 없고 고생과 슬픔만 남는다고 23절에서 언급한다.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에서 “일평생”(욤콜, יוֹם כֹּל)은 ‘낮동안’이라는 의미이다. “밤”과 대조되는 말이다. 일하는 시간들은 활동으로 메워지고 밤에는 낮에 하던 일들을 생각하며 자지 못했다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영역본 KJV, RSV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all his days are sorrows, and his travail grief, KJV, all his days are full of pain, and his work is a vexation, RSV. 따라서 솔로몬왕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등지는 인생, 즉 해 아래 인생은 수고에 합당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쉴만한 시간으로 주어진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고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루지 못하여 절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해 혹은 세상적인 명예와 부귀를 위해 온 열성을 다하는 삶의 허망한 결과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일평생 밤에도 쉬지 못하며 수고해서 이루어 놓은 것도 후대에 어떤 사람이 차지할는지, 또 다 없어지겠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을 깨닫고 보니 슬픔뿐이라는 것이다.
|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라고 하며 솔로몬은 해 아래 인생이 겪는 허무함에서 벗어나 영혼이 좋은 것을 취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한다. 사람이 영혼으로 낙을 누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에서 “마음”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נֶפֶשׁ’인데 ‘영혼, 생명’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으로 인한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을 말씀한다. 궁극적으로는 물질적인 재산이나 세상에서 취하는 즐거움과 쾌락은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없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세상의 것, 육신의 것은 다 지나가는 것뿐이므로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은 실패가 없고 영원히 소유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분복인 것이다.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며 주를 위해 일하면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즉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영혼(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셔야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만이 참 기쁨이다. 결국 인생의 참다운 가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행할 때에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의 결과로 인한 근심(23절)을 물리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감사기도를 하게 되며 감사하는 마음과 심령이 되어 ‘주님, 이렇게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라며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이 낮아진 곳, 비워진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누림이 되시고 기쁨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할 때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기뻐하고 낙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을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다.
25. “먹고 즐거워하는 일”은 인간들이 겪는 일상적인 생활을 말씀하는 것인데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노력하는 일의 즐거움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나보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이 겪은 것을 표현한 것인데 ‘나보다’를 ‘밈멘니’으로 보느냐 ‘밈멘누’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르나, 영역본 KJV는 전자를 위하여 한글 개역 성경처럼 ‘나보다 더’(more than I)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NIV, RSV, NASB등은 후자를 취하여 ‘그를(하나님을)떠나서는’(without him, NIV, NASB, apart from him, RSV)으로 번역하여 본 절 전체를 ‘누가 그를 떠나서 먹을 수 있으며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70인역(LXX)도 본 절을 ‘파레크스 아우토’(그를 떠나서)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주석가들 중 많은 사람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Delitzsch, M.A. Eaton, Lange). 만약 후자가 옳다면 본 절은 24절 후반부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참된 축복과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만 말미암음을 나타낸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솔로몬보다 누가 더 잘 먹고 잘 살고 낙을 누려 보았겠는가? 그러나 솔로몬은 말년에 그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임을 알았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한 일임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솔로몬의 고백이다.
26.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24절)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선 자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기뻐하시는 자”(아담 쉐토브 레파나, a man that is good in his sight, KJV)는 문자적으로 ‘그(하나님) 앞에 선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니면서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그 마음이 오직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섬기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죄인”(하타, חָטָא)은 범죄자를 뜻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반항하는 사람으로 세상의 많은 것을 건설하기 위해 수고하게 하나 그 노고의 결과는 자기가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바로 쓰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욥기 27장16-17절에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악인들의 수고한 열매가 의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이와같이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원천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된다. 참으로 그렇다. 그러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서 쌓게 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