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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금요 말씀

전도서 3 장 ; 세상 만사의 때(세상 범사는 때가 있고 변함 1-8)

작성자이완구목사|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1

전도서 3 장 ; 세상 만사의 때(세상 범사는 때가 있고 변함 1-8)

 

 

 

 

 

 

 

 

 

 

 

1. 1-8 세상 범사는 때가 있고 변함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1. 범사에 기한이 있고에서 범사(, כֹּל)는 문자적으로 전체, 모든 것, 각각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기한(제만, זְמָן)은 문자적으로정해진 때, 결정하다”, “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어근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기한은 단순히 어떤 편의적인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다. 또한 본 구절에서 천하 만사는 개역한글에서 목적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목적(헤페츠, חֵפֶץ)은 문자적으로 기쁨, 즐거움을 의미하는데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개역개정에서 천하 만사라고 번역하고 있다. 즉 범사에 기한이 있고 기쁨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기한이 있고 그 기한이 끝나면 다른 일이 전개된다. 따라서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성취하시고 소멸케 하시고 심판하시어 목적을 이루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게 탐욕으로 세워 놓은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때라는 것이 있는 줄을 모르고 나서다가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목적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 알맞은 때를 계획하시고 한 치으 오차도 없이 시행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이다.

 

2. 2-8절까지는 솔로몬이 “ ~ 라는 대구(對句)를 쓰면서 인생을 사는데 지혜를 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나타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이 실재(實在)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날 때, 죽을 때, 심을 때, 뽑을 때를 말씀하고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라며 솔로몬은 인생의 시작과 끝인 출생과 죽음을 언급함으로써 삶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하에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출생과 죽을 때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니까 때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또 자신이 스스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목적도 피조물에 있는 것이 아닌 창조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말씀한다. 즉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시간을 맘대로 할 수 없고,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그가 세상에서 떠나는 시간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는 것은 솔로몬이 나무나 식물의 삶을 죽음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날 때죽을 때라는 인간의 영역에서 자연의 영역으로 옮겨서 를 말하는데 식물이나 곡식을 심었으면 심은 것을 거둘 때 가 있고 나무를 심었으면 그 나무를 벨 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3. 여기에서는 죽일 때, 치료할 때헐 때, 세울 때를 대구(對句)하며 지혜를 주고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라는 것은 인생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죽음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다. 죽일 때(에트 하라크, הָרַג עֵת)는 솔로몬이 여기서 전쟁의 죽음에 대하여 8절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말을 하는지, 아니면 다른 상황을 말하는지에 대하여 주석가들은 의견이 엇갈린다. 여하튼 사람을 죽일 때가 있음은 자명(自明)하다. 누가 죽인다는 말인가? 이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 편에서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 가운데 집어넣으실 때도 있고 커다란 죽음의 질병을 허락하실 때도 있다. 그럴 때 사람 편에서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당하는 때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징벌에서 벗어날 때에는 치료할 때인 것이다. 욥기 518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했다. 나는 이번에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치료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치유로 인하여 회복되는 것을 말씀한다. 호세아 6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신대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 회복의 역사, 치료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라는 지혜를 준다. 병이 들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육체의 집이 헐리면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낙담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는 육체의 집을 고치고 치유하시어 세워주신다. 또 주거하고 있는 집을 헐 때가 있지만 세울 때도 있다. 즉 낡은 건물을 새롭게 세우기 위해 집을 헐 때에 다시 건설하여 세우게 된다. 물론 생애동안 가장 위대한 건축가였던 솔로몬은 아마도 성전 건축 등 자신이 이룩하였던 방대한 건축 사업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지혜를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헐고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시편 10216에서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4. 인간 세상사(世上事)는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이것은 장례식이나 비극적 상황에 처한 때의 상황과 결혼식이나 기타 잔치석상에서의 상황을 대조하며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918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고 한 말씀에서 환난이 올 것을 깨닫는 자가 지혜로운 부녀이고, 그 환난을 인하여 애곡하는 자가 진정으로 우는 자이다. 마음이 강퍅해서 울지 못하는 사람,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심판과 환난이 올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이다. 그리고 혼인식에는 많은 손님들이 와 기쁨을 더해 주므로 웃음꽃이 함박처럼 피워나게 된다. 따라서 인간 세상사(世上事)는 비애(悲哀)와 희락(喜樂)이 함께 하는 일상이다. 슬픔이 지나면 웃을 때가 온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실제로 사람이 살다 보면 슬플 때가 있다. 슬플 때 생각하면 항상 슬플 것 같고 그러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 견딜 수 없는 슬픈 일이 생기고 답답하고 우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혜자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슬플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지만 또 웃을 때도 있다는 말이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웃을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퍼할 때는 슬퍼해야 하지만 춤출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렵고 괴롭더라도 항상 울면서 살 것처럼 낙심하지 말라고 지혜를 주고 있다. 조금 있으면 춤을 출 때가 또 오기 때문이다. 슬프고 울 때는 곧 돌아올 웃을 때, 춤출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낙담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편 126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말씀하신대로 슬픔이 와서 울 때에 절망하거나 자포자기(自暴自棄) 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계속해 나가면 반드시 웃을 때가 온다. 슬퍼할 때가 지나면 앞으로 춤출 때가 온다. 이것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을 살 때 지혜롭게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고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라고 고린도 전서 930에서 말씀한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라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며 교훈하고 있으며 솔로몬도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지혜를 주고 있는 말씀인 것이다.

 

3: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3: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3: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5. 여기에서는 돌 거둘 때 돌 던질 때, 그리고 안을 때 멀리 할 때를 말씀하는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라는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을 하는 주석가들이 많다. 그 중에 밭이나 포도원 등에 돌을 던져 못쓰게 하거나 그 돌을 치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열왕기 하 325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새로 건축하기 위해 허물어 버리는 돌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사야 6210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는 말씀을 근거로 군사적 정복을 위해 침투하기 위한 길을 만들기 위하여 돌을 던져버리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는 밭이나 포도원을 경작하기 위해 돌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농사짓는 데 방해가 되는 돌들을 밭에서 치워 밭과 포도원의 옹벽을 쌓는 데 사용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는 돌 뿐만 아니라 물건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던져버릴 때가 있다. 던져야 할 때는 던져야 하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은 돌을 거둬야 할 때 오히려 던져버린다. 버려야 할 때인데 거두는 사람도 있다. 이와같이 사람도 못쓰겠다고 내버린 사람도 때가 되면 필요하여 부를 때가 있다. 모세도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배척했으나 필요하게 되니까 그를 다시 불러 지도자로 세웠다. 또 사사 가운데 입다도 처음에는 기생의 아들이라고 내 버렸으나 전쟁이 났을 때 다시 불러서 썼다(삿 11:1-6 참조). 마가도 바울이 처음에는 버렸으나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하며 다시 불러 썼다.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버렸으나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되셨다.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라는 것은 사랑하는 남녀 관계를 말씀하는 것으로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사랑할 때에 사람을 안아 주지만 인간의 사랑은 때를 따라 변하기 쉬운 것이다. 또 아무리 안으려해도 안을 수 없는 환경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릴 때는 안아서 키우지만 장성하면 멀리한다. 이삭이 야곱에 대해서,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 대해서 그리했다. 이것도 다 사실은 지혜에 속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안아야 할 때 안고 멀리 해야 할 때는 멀리 한다. 이러한 때를 아는 것이 지혜라는 말이다. 이렇듯 솔로몬은 사소하게 보이는 일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는 예외없이 작용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6. 6절에서는 찾을 때, 잃을 때, 지킬 때 버릴 때에 대한 말씀이다. 찾을 때와 잃을 때에 대한 것은 물질이나 개인적인 재산에 대한 말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물질과 재산에 대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할 때가 있지만 그것이 없어질 때에는 그에 대한 지나친 애착(물질 우상 숭배자처럼)을 가지지 말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지혜를 소유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 중에서 합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재산을 포기해야하는 상황도 종종 닥쳐오게 된다. 그래서 얻을 때가 있고 그것을 잃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렸을 때에는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지혜의 말씀인 것이다. 이 구절을 사역자들의 현장에 적용할 수도 있다. 즉 성도들 중에 잃어버린 자들이 있을 때 지나치게 열심히 설득하는 압력을 가하면 가까이 있는 가족들로부터 불쾌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은 항상 주님께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말씀에 따라 행하여야 할 것이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라는 것은 중요한 일과 포기해야 할 일에 대한 지혜이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걸고 믿음과 진리를 지켜야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보다 더 귀하게 보일지라도 믿음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버릴 줄을 알아야 하는 지혜를 지녀야 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도록 요구받을 때,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버려야 할 바로 그때 버리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행동의 모습이 현명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7. 여기에서는 꿰맬 때, 찢을 때, 말할 때, 잠잠할 때을 말씀한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에서 찢을(카라, קָרַע)때는 문자적으로 찢다, 잡아 째다, 찢어서 조각을 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옷이나 그와 유사한 물건을 찢는 것에 관하여 사용되는 단어이다. 에스더 41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라는 것을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를 할 때에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 쓰는 관습을 반영하여 슬픈 일이나 고난의 상황에 처했을 때에 입던 옷을 찢어 애통함을 표현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관계에서도 찢어지는 때가 있다. 즉 나누어지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할지라도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언젠가는 이별이라는 찢어지는 아픔을 겪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찢어지면 그 상태로 계속이어지는가? 꿰맬 때가 있다는 것이다. 찢어질 때에 지혜로움으로 행하였다면 이렇게 찢어지지만 언젠가 또 꿰매어질 때가 있겠지요라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하게 된다. 그래서 범사에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는 것을 아는 지혜를 지니라는 전도서이다.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는 말에 대한 지혜이다.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때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말하게 되면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마땅히 말을 해야 할 때는 말을 해야 한다. 이와같은 것을 지키면서 말하는 것이 지혜자의 모습이다. 따라서 때와 장소에 따라 잠잠할 때와 말을 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영분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잠잠하다고 해서 늘 잠잠할 줄 알고 무관심하면 안 된다. 잠잠하던 사람들이 반드시 말할 때가 온다.

 

8. 8절에서는 사랑할 때, 미워할 때, 평화할 때, 전쟁할 때를 말씀한다. 사랑은 가장 따뜻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이다. 또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자 마음의 움직임이다. 가슴을 가진 사람, 그리고 영성(靈性)을 갖춘 사람이 서로 유대 또는 사귐을 갖는 것이고, 그것들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그 사랑이 지속될 때가 있고, 미움으로 변할 때가 있다. 그래서 믿음 가운데서 예수님 안에서 사랑을 한다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육적인 사랑이면 거기에는 미더움, 미쁨이 따르게 마련이고, 도덕심 또는 윤리의식도 수반되게 마련이다. 마음씨의 고움, 이쁨, 착함이며, 훈기까지도 사랑의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예수님 안에서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며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은 두 영혼이 하나가 되는 사랑이며 황홀한 사랑은 두 육체가 하나가 되는 사랑이다. 그래서 깨끗한 사랑은 부부끼리 나누는 사랑이고 용기 있는 사랑은 사랑하고픈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므로 변치 않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워해야 할 때도 있다. 누가복음 1426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심에 믿음을 위해서는 미워해야 할 마음을 지니라는 것이다. 미워해야 할 때는 마땅히 미워해야 한다. 미워해야 할 때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하는데 미워한다면 그것은 다 지혜가 없는 것이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는 것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말씀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전쟁은 없다. 전쟁 후에는 다시 평화가 오게 된다. 전쟁할 때는 서로 죽이지만 전쟁이 끝나면 평화하는 날이 오게 된다. 반대로 평화할 때가 지나면 전쟁할 때가 오는 것이 세상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것이 세상이다. 꽃은 피었다 떨어지고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때가 되면 죽는다. 돈을 버는 날이 있고 돈이 없어지는 날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질 것을 전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의와 영적 생명이 자라난 것은 영원히 남아 있다. 2-8절에서 14가지의 대구(對句)의 형식으로 지혜를 주는 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며,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대적하는 세상의 쾌락과 재물만을 의지하는 수고는 헛된 인생의 결말을 가져오게 된다는 지혜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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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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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방수 | 작성시간 26.06.19 아멘!!!
    고맙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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