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천유민

20170615 질문학습

작성자유민상|작성시간17.06.15|조회수52 목록 댓글 0

조선 전기의 정치 발전 (2) (조선의 중앙 통치 체제)

 

조선의 중앙 정치 제도

왕과 의정부와 6조가 있다. 무엇이 왕권 강화와 견제 기구인지가 포인트다. 왕권 강화 기구는 승정원과 의금부다. 승정원의 장을 도승지라고 한다. 의금부는 오늘날의 국가 정보원이다. 간첩 혹은 역적, 모반을 꾀하는 자들을 잡아내는, 왕명에만 움직이는 곳이다. 왕권 견제 기구는 의정부가 있다.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이 있다. 이들의 힘이 너무 강하면 왕권을 넘볼수 있기 때문에, 태종과 세조는 6조직계제를 실시한다. 삼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다. 사헌부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곳이다. 오늘날 감사원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백성의 억울한 일을 들어준다. 사간원은 간쟁을 하는 곳이다. 홍문관은 왕의 자문을 대비하는 곳이다. 조선 시대 서경권은 5품 이하 관리의 임명 거부권만 시행할 수 있다. 이것은 청요직이라고도 불렀다. 6조 직계제는 왕의 명령을 받고 의정부 서사제는 의정부의 명령을 받는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6조다. 이조의 요직은 이조판서다. 모든 무인의 인사권은 병조에 있었다. 한성부는 서울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조선의 지방 행정

조선은 강력한 중앙 집권과 일원적 행정 구조였다. 모든 군과 현 단위의 관리를 중앙에서 파견한다. 강력한 중앙 집권이 이뤄지면 속국, 속현을 파견하며 향, 부곡, 소가 소멸된다. 조선 시대에는 모든 고을에 관리가 파견되었다. 조선 시대의 향리는 세력이 약화되었다. 토지도 못받고 봉급도 받지 못했다. 수령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관리들을 감시하기 위해 암행어사가 생겨났다. 유향소는 노인들이 수령을 보좌하는 곳이다. 또한 향리 규찰하고 풍기를 단속한다. 세조 때 이시애의 난으로 인해 유향소가 사라지고 성종이 유향소를 다시 부활시킨다. 유향소를 견제하기 위해 경재소가 세워졌다. 향약이란 덕스러운 일은 서로 권하고 예로써 서로 교류하며 환난당한 사람은 도와주며 잘못한 사람은 상호규찰하자는 유교적 약속이다. 조광조의 주장으로 시작되었다. 향약의 장을 도약정이라고 한다.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의 자제들인 재지사족이 백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 향약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서원은 백운동 서원이다. 최초로 간판을 내린 사액 서원이다. 간판을 받으면 책과 노비와 토지를 무료로 받는다. 교육과 제사와 학문을 배우라는 취지에서 말이다. 이것이 후기에 전국적으로 1000개가 만들어진다. 조선 후기 서원은 붕당 정치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자 대원군 때 47개로 줄어든다. 양인 이상은 군역을 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양반은 군역을 지지 않았다. 농민은 16살에서 60살까지 농사를 짓지 않을 때 군사 훈련을 받았다. 잡색군은 조선 전기의 예비군이다. 노비와 천민으로 이루어진 군대다. 중앙군과 지방군의 구분이 나누어진 것은 통일 신라 때부터 였다. 중앙은 5위이며 지방은 영, 진군이었다. 봉화를 태워서 적이 오는 것을 알리는 봉화는 비가 오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파발마를 사용했다. 조선 시대에는 음서의 혜택이 축소되었다. 조선은 능력 본위의 사회였다는 것이었다. 문과는 첩의 자식이나 재가녀의 자손은 볼 수 없었다. 무과 혹은 잡과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승과는 없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