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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장

[스크랩] 내가 사랑하는 삶, 마쿠라노소시

작성자참기쁨|작성시간09.12.31|조회수279 목록 댓글 0
『마쿠라노소시』, 세이쇼나곤, 정순분 옮김, 갑인공방, 2004
『내가 사랑하는 삶 ― 幽夢影·幽夢續影』, 장조·주석수, 정민 옮김, 태학사, 2001

너무 좋은 것은 사람의 눈에 띄는데 내놓기 싫다. 혼자 간직하고 남들 없는 곳에서 그 정취를 만끽하고 싶다. 다른 사람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본디 내 성정이 쩨쩨한 탓인지, 나는 그렇다. 혼자 품에 끼고 남들 볼세라 몰래 킥킥거리며 읽는 책 두 권을 꺼내놓으려고 한다. 혼자 즐기던 것을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큰맘을 먹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이 요즘 지은 책도 아니요, 이땅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하나는 3백5십년 전에, 또 하나는 1천년 전에 씌어진 책이다. 앞의 책은 청나라 초기와 말기에 산 두 사람이 쓴 걸 합본한 것이고, 뒤에 것은 일본의 한 궁녀가 지은 책이다. 『내가 사랑하는 삶 ― 幽夢影·幽夢續影』과 『마쿠라노소시』가 그것이다. 가히 수필문학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이 책들을 읽는 내내 아름다운 우리말로 공들여 옮긴 두 번역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삶 ― 幽夢影·幽夢續影』은 저자가 두 사람이다. 청나라 초기의 문장가 장조(張潮)와 말기의 문장가 주석수(朱錫綏)가 그이들이다. 두 사람의 책을 한권에 합본한 이 책은 잠언 형식의 짧은 글들로 구성된 청언소품집(淸言小品集)이다. 장조는 꽃과 새와 산과 시내와 바람과 물에 대해서, 거문고와 바둑과 책과 시에 대해서, 그리고 미인과 달빛, 술과 친구에 대해서 쓴다. 이렇듯 주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취를 다루는데, 삶에 두루 통하는 이치를 추구하되 도락이 주는 기쁨을 외면하지 않는다. 균형과 조화를 꾀하며 나아가는 문장은 거침이 없으며 그렇다고 수다스럽지는 않다.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그 당시에 난만하게 퍼져있는 풍속의 지저분함을 비판하는데 통렬하고, 자연에서 심미감을 자극하는 걸 포착하는데 날렵하다. 입신양명을 꿈꾸고 오지랖 넓히며 세간의 일들에 대해 분주하게 간섭하기보다는 한걸음 물러나 앉은 자리에서 몸과 마음의 고요를 구하고 다독이는 자의 한정(閒靜)이 문장에 배어있다. 책 제목도 ‘숨어 사는 이의 꿈 그림자’라고 하지 않는가 !

꽃에 대해 품평할 때 지은이의 청신한 인격에서 뿜어 나오는 아취(雅趣)를 느낄 수 있다. 그의 문장은 자연스러워서 대숲에 바람이 이는 것과 같고, 계곡 물이 바위를 부딪히며 흘러가는 것과 같다. “매화는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난초는 사람을 그윽하게 하며, 국화는 사람을 소박하게 하고, 연꽃은 사람을 담백하게 한다. 봄 해당화는 사람을 요염하게 하고, 모란은 사람을 호방하게 하며, 파초와 대나무는 사람을 운치있게 하고, 가을 해당화는 사람을 어여쁘게 한다. 소나무는 사람을 빼어나게 하고, 오동은 사람을 해맑게 하며, 버들은 사람에게 느낌을 갖게끔 한다.” 읽는 이의 눌리고 접힌 마음을 펴주는 것은 그 문장이 삼[麻]에서 삼베[布]가 나오듯 어디 한 군데 옹색하거나 억지스러운 데가 없는 까닭이다. 널리 섭렵하여 두루 통하는 식견과 핵심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조화를 이루니, 사물의 요점을 새기는데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

“다정한 사람은 반드시 여색을 좋아하지만,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모두 다정한 것은 아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은 반드시 운명이 기박한데, 운명이 기박한 사람이 전부 얼굴이 예쁜 것은 아니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옳거니, 다정한 인격이 여색을 탐하는 허물도 가려주는가 보다, 라고 무릎을 치는 것이다. 그 옛날에도 가족은 지극한 사랑의 대상이면서 또한 떨쳐낼 수 없는 사슬이었나 보다. 지은이는 “아내와 자식은 자못 사람을 얽매이게 하기에 족하다. 그래서 나는 화정 임포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 삼았다는 매처학자(梅妻鶴子)의 이야기를 선망한다.”고 적고 있다. 가족을 위해 제 꿈과 이상을 접어야 하는 오늘의 가장이나 옛가장은 그 매인 삶의 부자유와 고달픈 처지에서 다를 바가 없다.

어느 쪽을 펴고 읽어도 금과옥조가 아닌 데가 없다. 글이 막히고 생각이 정체될 때 나는 이 책을 펴들고 읽는다. 벌써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먼저 글쓴이들의 청신한(요즘 말로 하면 쿨하다 !) 인격에 편벽된 내 인격은 일격을 당하고, 붉은 꽃과 같은 단심(丹心)이 내비치는 그 문장의 신묘함에 기가 죽는다. 얼마나 더 쓰는 일에 정진해야 한 경지에 오를까 ?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달이 연못 밑바닥을 뚫어도 물은 흔적이 없다 한다. 내 문장은 빗자루만 들어도 먼지가 사방에 날리고 연못 근처에만 갔을 뿐인데, 맑은 물이 소용돌이쳐 흙탕물이 되고 만다.

‘마쿠라노소시’는 침초자(枕草子), 즉 ‘베갯머리 서책’이란 뜻이다. 11세기 초기에 일본 궁중에서 상궁을 지낸 세이쇼나곤이 지은 책이다. 일본 고전수필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마쿠라노소시』는 『겐지이야기』와 더불어 헤이안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세이쇼나곤은 지방 수령의 딸로 태어나 17세때 혼인해서 아이를 하나 낳은 뒤 10년쯤 뒤에 이혼을 한다. 그 무렵 천황비인 데이시의 상궁으로 궁에 들어가 993년부터 1000년까지 7년간 가까이에서 보필한다. 그 7년 동안 데이시 중궁의 후궁에서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궁중에서 보고 겪은 것을 글로 옮겼다. 지은이는 “앞날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오로지 남편만을 바라보며 가정을 지키는 것을 행복으로 꿈꾸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적는데, 이미 1천 년 전에 여성에게 전문직을 가질 것을 권면할 정도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여성이다. 중궁이 죽자 이듬해 궁에서 나와 한 지방 수령과 결혼을 하고, 만년에는 비구니가 되어 지내다가 생을 마감한다.

글의 소재는 주로 궁궐에서 일어난 궁중 행사나 귀족 사회의 이모저모, 풍류적인 것들, 그리고 자연이다. 문장에는 시적 정취가 물씬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탐미적인 데가 있지만, 한편으로 매우 날카롭게 타인의 버릇과 취향의 품격을 논하고, 세속의 풍물에 대한 비판에도 거침이 없다. 글쓴이의 성정(性情)이 맑고 양명하며 의식이 눌리거나 비뚫어진 데가 없이 곧고 바르다. ‘새벽에 헤어지는 법’은 새벽녘 여자네 집에서 돌아가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남의 눈을 피해 밤에만 만나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은 불륜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돌아가는 남자가 “너무 복장을 단정히 하고 에보시 끈을 꽉 묶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적는다. 남자는 정말 헤어지기 싫다는 듯 느릿느릿 일어나고 여자의 재촉을 받은 뒤에야 깊은 한숨을 내쉬고 못내 아쉬운 듯 마지못한 듯 나와야 한다. 여운을 남기는 게 예(禮)고 정(情)이다. 그런데 대개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각난 듯 남자들은 서둘러 일어나 부산스럽게 옷매무새를 챙기고 도망치듯 나온다. 밤을 보낸 여자네 집에서 새벽에 나올 때 여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지 못하고 허둥대는 남자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

‘썰렁 그 자체’라는 글에서 흥 깨는 여러 경우들을 두루 언급하는 가운데 “약속한 남자를 기다릴 때, 밤이 이슥해지고 가만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시종에게 이름을 묻게 했는데 전혀 뜻하지도 않은 남자가 찾아온 것이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실망스”러운 경우와, “다 큰 자식이 여럿 있고 잘하면 손자까지 있을 만한 부부가 낮에 동침하는 것. 옆에 있는 자식들 마음에도 부모가 낮에 동침하면 허망하고도 흥이 깨”지는 것을 함께 언급한다. ‘설렘’에서는 “약속한 남자를 기다리는 밤은 빗소리나 바람 소리에도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쓰고, ‘밉살스러움’에서는 “다른 사람 몰래 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눈치 없이 짖는 개도 얄밉다.... 남의 눈을 피한답시고 허둥지둥 들어오다가 물건에 부딪혀서 소리를 내는 사람도 얄밉다.”고 쓴다. 사랑에 대해 거침이 없고 솔직한 걸 보면 주관이 뚜렷한 오늘의 진보적인 여성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주변을 두루 감싸는 너그러움과 순간마다 발휘되는 재치와 익살스러움도 돋보인다. 이를테면 ‘남을 험담하는 즐거움’에서 “다른 사람이 자기를 험담한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정말 몰상식한 사람이다. 어떻게 남의 험담을 안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자기 일은 제쳐두고 남의 결점을 늘어놓으며 마구 비난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라고 쓴다. 글들을 읽으며 먼저 글쓴이의 솔직한 인품에 매혹되어 자꾸 책속으로 빨려든다.

봄은 동틀 무렵. 산 능선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그 위로 보랏빛 구름이 가늘게 떠 있는 풍경이 멋있다.
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은 보기 좋다. 반딧불이가 달랑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밤도 좋다.
가을은 해질녘. 석양이 비추고 산봉우리가 가깝게 보일 때 까마귀가 둥지를 향해 세 마리나 네 마리, 아니면 두 마리씩 떼 지어 날아가는 광경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러기가 줄지어 저 멀리로 날아가는 광경은 한층 더 정취있다. 해가 진 후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기분 좋다.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재로 변해버려 좋지 않다.

이렇듯 글들은 더할 수 없이 투명한데, 그 투명함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적 투명함이며 사리분별의 투명함이다. 아울러 그 투명함은 섬세한 관찰과 감각적인 표현들, 격조높은 품격에 두루 통용된다. 세이쇼나곤은 소나무, 가을 들녘, 산골 마을, 산길은 실물보다 그림이 나은 것으로 분류한다. ‘한물간 것’으로는 “보라색 직물이 색 바랜 것. 호색한이 나이 먹어 기운 없어진 것. 근사한 집 뜰의 나무들이 다 타버린 것.” 등을 든다. “피부가 검고 못생겼으며 가발 쓴 여자와 수염투성이에 말라빠진 남자가 낮에 같이 동침하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도대체 무슨 볼 것이 있다고 대낮에 동침을 할까.” ‘꼴불견’이란 글의 한 구절이다. 본래의 글에 깊은 맛이 있는데다 번역도 뛰어나고 책의 편집이나 장정도 훌륭한 책이라 펼칠 때마다 기분이 좋다. 옆에 두고 여러 번 읽고 난 뒤 그 향기가 오래가서 몇 권을 더 사서 아는 이들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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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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