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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장

[스크랩] 방황하는 청춘의 노래

작성자참기쁨|작성시간10.01.03|조회수77 목록 댓글 0
만 열아홉 살의 어느 저녁이었다. 나는 소설 『대장 몬느』의 마지막 문장----그리고 나는 외투 속에 딸을 싸 가지고 딸과 함께 어둠 속으로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을 읽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시청 맞은편에 집이 있어 산책 코스는 인근에 없었지만 나는 황혼녘의 인파 속에 휩쓸렸다. 소도시의 거리는 하교시간이라 시끌벅적했다. 나는 거의 정신이 없는 상태로 인파 속을 헤매고 다녔다. 한 권의 책이 나를 몽환의 상태로 몰고 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이후에도 이런 경험은 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얼마나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던가!


……다시, 다시 한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나는 젊으니까,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그 누구도 내 혼을 결박할 수는 없어. 몬느, 나도 한때 너처럼 미지의 세계에서 헤매었단다. 내년이면 성년이 되니 더 이상 가출을 시도하진 않겠지만 너는 또 떠나라고 하는구나. 꿈과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로 자꾸만 떠나라고 하는구나. 오, 모든 고뇌하는 청춘이야말로 얼마나 순결한가. 방황하는 청춘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그 나이에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또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부터 네 차례나 가출을 시도해 성장기의 몇 해를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로 보내지 않았더라면, 감동은커녕 다소 지루함을 느껴 도중에 책을 덮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끊임없는 탈출에의 욕구로 나를 사로잡은 주인공이기에, 번역이 워낙 잘 되어 있었기에(김치수 역)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읽었고, 결과는 남달랐던 내 청춘의 바이블이 되었다. 『대장 몬느』는 10대의 마지막 해에 읽은 독서 체험의 한 이정표로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지드의 『좁은 문』, 헤세의 『데미안』과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그리고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훌륭한 성장소설이다. 나의 10대는 이러한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번민하였고, 『대장 몬느』로서 완결되었다. 그럼 '몬느'라는 주인공을 만들어내 방황하는 전세계의 젊은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작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일조각판 『불문학사』(김붕구 외 3인 공저)는 객관적인 문학사인데도 "알렝 푸르니에는 단 한 권의 소설을 남겼다. 그것이 불멸의 명작 『대장 몬느』이다"라고 운을 뗀 뒤, "그(작가)는 저 자신의 청소년기의 추억과 덧없는 사랑의 추억을 담아 사실적인 필치와 내적 체험에서 오는 서정이 조화를 이루며, 모험에의 유혹과 사랑의 불꽃, 그리고 소년기의 이상과 꿈이 현실에 부딪치는 환멸 등, 영원한 청춘의 기록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를 끌고 있다"고 열렬한 찬사를 바치고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 28세의 나이로 전사한 청년이 남긴 단 한 권의 소설을 가장 먼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규정한 사람은 불란서의 유명한 문학사가 티보데와 랑송이었다고 하니 나의 감동이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왜 이 작품은 이런 평가를 받고 있으며, 나는 그토록 감동했던 것일까. 줄거리는 별것이 없는데.


소설의 화자 프랑스와 쇠렐은 교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지방 학교의 학생이다. 이 학교에 오귀스땡 몬느라는 17세 정도의 모험심이 강하고 정신적으로 조숙한 학생(그래서 대장 몬느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이 전학을 온 뒤부터 쇠렐의 인생 여정은 일순간에 변모된다. 몬느의 추종자가 되어 그의 끝없는 모험을 동경함으로써. 몬느는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지명된 다른 학생에 앞서 쇠렐의 조부모님을 마중하려고 마차를 몰고 역에 나갔다가 길을 잃는다. 몬느가 빌려 타고 온 마차의 말은 처음 보는 마부가 방향 감각을 잃자 자기도 전혀 엉뚱한 곳으로 달려 몬느는 뜻하지 않게 낯선 성곽에 당도하게 된다. 몬느는 고색창연한 영지(우리 나라로 치면 청학동 정도가 될 듯)에 묵으면서 신비로운 가장 무도회(그 영지에서 행한 결혼식의 피로연)에 동참하며, 거기서 한 여인을 첫눈에 보고 사랑하게 된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 신비로운 무도회가 열렸던 그 영지를 다시 가보려 애를 쓰지만 마을 이름을 알아두지 않았던 터라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성인이 되어 그 마을을 찾아 첫눈에 반했던 갈레라는 여인과 결혼도 하게 된다. 그런데 갈레의 불행한 오빠를 찾아오려는 또 한 차례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다. 쇠렐은 또다시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날 젊은 날의 벗 몬느를 예감하는 것이다.


환상적인 마을(혹은 성곽) 찾기의 구조로 되어 있는 소설이라 [브리가둔]이나 [잃어버린 지평선], [나의 청춘 마리안느] 같은 영화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잃어버린 지평선]은 제임스 힐튼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 아무튼 나를 감동시킨 것은 몬느의 끝없는 현실 이탈욕,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열망,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 등이었다.



생각해보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현실'이라는 사슬에 묶여 끌려다니다가 생애를 마감하지 않는가. 어렸을 때는 부모 혹은 학업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는 식솔 혹은 직업 때문에. 젊은 한때 불굴의 의지로 바람의 친구가 되는 사람은, 그 생애의 끝이 바람이 되는 것일지라도 얼마나 황홀한가.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기에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상태로 성장기의 5년을 보냈지만 이런 아웃사이더들 덕분에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다. 비록 소설이지만 나와 조금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물을 만나면 옛 전우라도 만난 듯 반가운 법인데, 몬느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코울필드와 더불어 내 방황의 길에 동행해준 고마운 두 친구이다. 몬느의 절규를 나는 임종을 앞둔 그 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쇠렐! 쌩뜨 아가뜨에서의 내 이상한 모험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너는 알지? 그것은 내가 희망을 갖는 이유였고 내가 사는 이유였어. 그 희망을 잃어버리고서 내가 무엇이 될 수 있겠나? 모든 사람과 같은 방법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 한번 파라다이스에 가본 사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같은 생활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시 [축제를 찾아서]는 나 또한 푸르니에처럼 방황하는 청춘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 '대장 몬느와 함께'라는 부제를 붙여 써본 것이다.



다시 떠나자구, 친구
묶인 혼을 풀어 우리가 가 닿아야 할 곳은
지금도 춤과 노래의 나날일 거다
항구 도시 길모퉁이, 의자 삐걱대는 술집에서
그녀가 너한테 따라준 맑은 술 몇 잔
혀끝에서 전신으로 퍼지던 몽상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면
지겨운 장소의 한심한 친구들도 문득 아름답게 생각되고
그날 너를 사랑한다고 했던 많이 취한 그녀의
눈물 글썽이던 커다란 눈이 너를 또 달뜨게 할 거다

자, 이제 쓸데없는 번민의 심연에서 부상하자구
일단 네 에미와 애비를 버려
효도라는 그 질긴 끈은 끊어버리든지 팔아버리든지
묶인 혼, 늘 묶여 있던
늘 묶인 채 끌려다니던 너와 나의 혼이 아니었던가 말야
희망은 부풀고, 몸은 날이 갈수록 가벼워져
시간의 잔해 속에서 우리 무엇을 건져올릴 수 있을까?

너는 이 도시의 그림자 짙은 빌딩 숲 속에서
숨어 살았지 안주(安住)는 너를 자꾸만 불안하게 하지 않든?
지도와 시간표로는 계산할 수 없는 낯선 도시 낯선 거리
낯선 집들에 사는 낯선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어디서 왔냐고 제발 묻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
짙게 배어 나오는 젊은 날의 피를 난들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혈연이 준 상처의 한 끝을 동여매고
다시 가출하자구(출가도 좋지), 친구
네 계절의 바람이 기억하는 항구도시 길모퉁이 술집에서의 축제
만남이란 미지의 기적을 위하여! 위하여!



문예출판사에서 문고판으로 낸 이 책은 제목을 '대장 몬느'로 하자 워낙 팔리지 않아 '방황하는 청춘'으로 했으나 역자의 요청으로 다시 원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나가지 않아 제목이 다시 '방황하는 청춘'이 되었다고 한다. 방황하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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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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