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렐 차페크, 『도룡뇽과의 전쟁』 중에서
카렐 차페크, 『도룡뇽과의 전쟁』 중에서
따라서 문제는 이것이다. 인간에게 과거에나 지금에나 행복의 능력이 있었던가? 분명히 개별 인간에게는 있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인류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인간의 모든 비극은 그들이 강제로 인류가 되었다는 사실. 아니 그보다는 너무 늦게, 국가, 인종, 신앙, 신분, 계급으로, 빈자와 부자로, 지식인과 비지식인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돌이킬 수 없이 갈라져 버린 후에 인류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말들을, 늑대들을, 양들과 고양이들을, 여우들과 사슴들, 곰들과 염소들을, 한데 몰아 하나의 우리 안에 가두고 당신이 소위 <사회적 질서>라 부르는 엉터리 같은 군중 속에서 억지로 함께 살게 한 다음 삶을 지배하는 공통된 법칙을 관찰해 보라. 그들은 불행하고 불만에 찬, 치명적으로 분열된 무리가 될 것이다.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 중 어느 하나 평온할 수 없는 그런 무리 말이다. 이는 소위 <인류>라는 이름의 거대하고 절망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다소 정확한 묘사다. 국가니, 신분이니, 계급이니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서로를 밀치고 앞을 가로막지 않고는 공존이 불가능하다. 영원히 서로를 격리시키고 살거나 – 세계가 인류에 비해 여전히 넓을 때는 그것도 가능했다 – 생사를 건 투쟁 속에서 서로 싸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종, 국가, 계급과 같은 생물학적 인간 본질들로 말하자면, 동질성과 온전한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각자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든가 타자를 모두 절멸시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인류는 바로 그 과업을 제때에 수행해 내지 못했다. 오늘날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신조들과 의무들을 만들어 <타자>를 제거하는 대신 보호하게 되었다. 윤리적 강령, 인권, 조약, 법, 평등, 인간성 따위의 개념을 무수히 고안해 냈다. 우리는 우리와 <타자>를 관념적인 상위의 본질로 묶는 인류라는 허구를 창출했다. 이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인가! 우리는 윤리적 법을 생물학적 법보다 상위에 두었다. 우리는 모든 공동 사회의 존재에 선행하는 위대한 자연적 전제 조건, 즉 동질적인 사회만이 행복한 사회라는 법칙을 위반해 버렸다. 이처럼 획득 가능한 행복을 희생한 대가로 우리는 위대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꾸었다. 모든 민족, 국가, 계급, 계층에서 단 하나의 인류, 단 하나의 질서를 창출하겠다는 꿈 말이다. 이것은 참으로 배포 큰 어리석음이었다.
작가_ 카렐 차페크 –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 189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생. 극작, 동화, 소설, 동화,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집필했고 언론인, 반파시즘 활동가로도 활약했음. 지은 책으로 소설『절대성의 공장』『호르두발』『별똥별』『크라카티트』희곡 『곤충의 생활』,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어머니』등이 있음.
낭독_ 이창수 – 배우. 연극 <밤의 연극>, <농담>, <지상의 모든 밤들>등에 출연.
배달하며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 작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1936년에 나온 작품인데 말입니다. 최근에 우연히 읽었고, 감탄했으며, 몰랐던 게 부끄러웠습니다. 먼저 영미권 소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언어의 너스레’가 전혀 없습니다(체코 작가이기는 합니다). 감각과 논리가 깔끔하게 섞여있는데다 한 사람이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변화를 감행하면서도 모든 에피소드가 필요한 위치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좋은 음악처럼 좋은 책도 참으로 한정 없습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출전_ 『도롱뇽과의 전쟁』(열린책들)
음악_ Backtraxx – corporateindustrial2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양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