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안 / 김주대
시골 계신 엄마에게 아침 일찍 전화가 온다
집에 있나?
응 엄마
쌀 떨어졌을 낀데 오늘 부친다
응 쌀 떨어진 걸 우째 알았지?
머리도 덥수룩하게 하고 있지 말고 깎아라
내 머리가 보여?
(300km도 더 떨어진 곳에서 내 머리카락 상태를 알다니)
속옷도 자주 갈아입고
아이고 속옷도 보여?
전기밥통에 밥 오래 놔두지 말고 조금씩 해서 먹거라
거침 신기하네 밥통 속도 보여?
(자식 놈은 코앞에 와서도 머리카락 상태를 모르고 속옷 상태를 모르고 밥통에 100시간 된 밥도 잘만 처먹던데)
책상 정리도 좀 해 놓고 일하거라 이불도 얇은 걸로 바꾸고
책상도 이불도 다 보여?
엄만께
전화를 끊고 쌓인 술병들 순식간에 치우고
번개처럼 속옷도 갈아입었다 엄마가 어디서 보니까
김주대,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걷는사람 , 2026년, 16~17쪽
큰딸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취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얻기 전에도 오래 자취를 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자취를 했었지만. 고등학교에서도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집을 떠난 기간을 다 합하면, 7년이 넘습니다. 큰딸에게 집에 오라오라 하면, 한 달에 한 번 간신히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갑니다. 저도 대학을 다니면서 자취를 했었습니다. 집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 그때에는 그리 좋을 수 없었습니다. 간섭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 생활을 제 큰딸이 하고 있습니다.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김주대2026걷는사람
허리가 아프기 전에는 딸의 집에 자주 갔었습니다. 해줄 것이 참 많습니다. 집 청소부터 빨래, 반찬까지도. 한 번씩 가서 집을 들었나 놔야만, 속이 후련합니다. 요즘 딸 집을 못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많습니다. 생활은 잘하고 있을까. 집이 집 꼴로 잘 남아있을까.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반찬은 없을까. 빨래는 잘하고 다니나. 건조기에서 꺼내지 않아서,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천리안을 발동해 봅니다. 천리안을 발동할수록 불안하고 불안합니다. 당장이라도 딸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 걱정이 오지랖입니까. 아마도 여러분들은 이렇게 댓글을 다실 것 같습니다. ‘그냥 놔두시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합니다’라고요. 맞습니다.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요, 그게 잘 안 됩니다. 대학도 졸업한 다 큰 딸인데, 왜 물가에 내 논 아이같이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 부모는 자식 걱정한다고요. 자식 걱정은 끝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자식이 많은 어미는 걱정이 끝이 없다’라고요. 이 말도 맞습니다. 제가 딸이 셋입니다. 잘하는 놈도 있고 못 하는 놈도 있습니다. 다 잘할 때도 있고, 다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도 걱정을 안 하다가, 어떨 때는 셋의 걱정이 몰려옵니다. 얼마 전에는 막내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첫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을 가져왔는데요…. 말 안해도 아시겠죠. 막내 딸아이에게서는 처음 본 점수였습니다. 물론 저는 자주 보던 점수입니다. 첫째와 둘째가 예체능을 하던 아이들이라서, 원래 그 점수보다 낮았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이번에 고1 학생을 둔 부모님이라면, 저와 비슷한 고민과 걱정을 하실 것입니다. ‘얘가 이 점수로 대학을 갈 수나 있는 거야’라고요.
김주대 시인 어머니의 걱정도 제 걱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 하나, 시인의 나이가 저보다 여덟 살이 많습니다. 6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앞서 제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 부모는 자식 걱정을 한다고요. 그래도 저는 딸에게 청소나 밥 얘기는 해도, 빤스 얘기는 안 합니다. 웬만하면 싫어하는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전화해서 이런저런 잔소리 하는 것이 딸에게는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그래서요, 요즘은 꾹 참고 또 참습니다. 전화하지 않으려고 노력노력 합니다. 대신, 이렇게 전화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빠에게 전화해' 라고요. 그래서요, 가끔 전화 옵니다. 전화 올 때마다 묻습니다. 일은 잘하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고 있는지.
김주대 시인의 시집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저와 비슷하지 않으신가요. 미국의 부모처럼 어느 정도의 방목도 필요하다고 저도 알고 느끼지만, 잘 안되는 것은 제 오지랖 때문일까요. 딸들이 좀 더 나이를 먹어, 시집을 가면, 이 걱정이 줄어들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놈 만나서 시집은 잘 갈까요. 가기나 할 수 있을까요. 걱정이 산 넘어 산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 시인 이력 (출판사 제공)
- 김주대 시인
1991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 『그리움의 넓이』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