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바다를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아비가 성난 파도에 맥없이 쓸려갔을 때도, 그에 저의 어미가 가슴을 치고 쥐어뜯다 회까닥 돌아 지아비를 따라갔어도 매일 해변으로 걸음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너는 내 어머니의 동생의 딸이었다. 내 어머니는 제 동생의 집안이 그리도 허망하게 박살난 것을 보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너를 데려다 길렀다.
또 여기 와 있냐, 이 미친년아.
그래, 또 왔다.
왜 자꾸 거지 발싸개같이 싸돌아다니니, 싸돌아다니길. 엄마가 부른다. 밥 먹잔다.
그래.
너는 내 야멸찬 말에도 한 번 대드는 일이 없었다. 그저 힘아리없이 고개 한 번을 주억이곤 털레털레 성난 내 뒤를 따르는 것이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난했어도 인정만큼은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나는 내 부모의 밥공기 속 은근히 줄어든 양을 보고 부아가 치밀곤 했다. 철없어 더욱 잔인할 수 있었던 나는 그런 너를 은근히 괴롭혔고, 너는 언제나 그렇듯 반항 한 번 않은채 내 못난 짓들을 받아내었다. 바다를 껴안아 비린내가 가득한 마을에서 빈곤을 입은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갈빗뼈 안쪽께에 울컥 치밀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득달같이 네게 달려가 비난을 퍼붓고 손찌검을 하곤 했다. 그러면 너는 언제나 달팽이같이 몸을 말고 구석에 웅크려 훌쩍였다. 붉게 달아오른 살갗에 좀 정신이 들면 나는 드러낼 수 없는 죄책감과 함께 집을 나갔고, 너 역시 또한 초라한 꼴로 방을 비웠다.
그 날은 유난히도 화딱지가 나던 날이었다. 그래도 계집애라는 인식은 있어 차마 발은 못 대던 마음이 완전히 뭉그러져 나는 네게 호된 발길질을 했다. 네 옆구리를 발가락을 있는대로 세워 질러댈때마다 너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복날 대차게 처맞은 개새끼마냥 자빠져 있는 꼴이 처연했던 지난 날과는 다르게 분노가 일었다. 이년아, 이 빌어먹을 년아. 왜 우리 집에 와서 지랄이냐! 나는 네 머리채를 사납게 휘어잡았다. 힘없이 딸려오는 고개를 단단히 잡고 따귀를 쳤다. 입안이 터졌던지 네 입술에 피가 비쳤다. 그 선연한 붉은 빛을 보고 나는 덜컥 겁이 나 내동댕이 치듯 너를 내버려두고 달아났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비슬비슬 고개를 들이민 내게 어머니가 너를 데려오라고 소리쳤다. 느리작 느리작 굼벵이인 양 걸어간 해변에는 어김없이 네가 있었다. 매일매일을 별 생각없이 지껄였던 욕설이 그 날같이 어려웠던 적이 없어 나는 너를 부르는 대신 어칠비칠 걸어가 조용히 네 옆에 앉았다. 퉁퉁 부은 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 얼른 시선을 돌리고 하릴 없이 바다만 쳐다보았다. 짭짤한 바람이 코끝을 훑었다.
많이 아프냐.
아니, 괜찮다.
미안하다.
괜찮다.
나지막히 돌아온 대답엔 원망도 설움도 묻어있질 않아 나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오늘의 죄책감은 유독 짙어 나는 다시 상냥한 투로 입을 열었다.
바다가 좋냐.
응.
이모랑 외삼촌이 보고 싶어서 그러니?
아니. 그런 거 아니다.
그래.
그냥, 그냥 좋은 거다. 우리 아부지는 만날 날 때렸어. 별로 아쉬울 것두 없다. 아빠랑 엄마 죽기 전에두 나는 맨날맨날 바다에 왔었다. 딱히 보고파 오는 게 아니야.
그래.
나는 얌전히 네 말에 동의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나란히 앉아 바다만 쳐다보다 하늘이 껌껌해져 별이 총총 뜰 때야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이 났음은 물론이다.
그 모질었던 날 이후로 나는 너에게 매질하지 않았다. 대신 널 따라 매일 바다에 갔다. 나는 너처럼 그 거대한 물을 사랑하지 못해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하품을 쩍쩍 하기도, 신발 축으로 살살 모래바닥을 긁기도 하며 장난질을 했으나 네 주위를 떠나지는 않았다. 하냥 모래성을 쌓는 것도 질리고 조개껍데기를 모으는 것도 재미가 없어지면 나는 조용히 네 옆에 앉아 너를 구경했다. 네 눈은 꼭 바다를 닮았었다. 그 알 수 없이 아득하기만 한 꺼먼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네가 종일 바다를 보고도 질리지 않는 이유를 조금쯤은 알 것도 같았다. 이제 가자. 응. 밥 때가 되어 가자는 말을 하면 너는 한 번의 애원도, 한 줌의 아쉬움도 없이 느릿하게 일어나 탈탈 네 엉덩이를 털었다. 너를 따라 나선 이후 내 하루는 네 발 끝에 매달린 그림자같이 길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맹세코 단 한 순간도, 그것을 후회한 적 없다.
유난히 바람이 매섭던 날, 여느 날과 같이 바다를 보고 온 너는 그 날로 앓아누웠다. 열이 펄펄 끓어 얼굴이 벌갰다.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짜내며 네 이마의 땀을 훔치고 죽을 끓였다. 허망하게 간 어머니 당신의 동생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의원이 지어준 약도 소용없이 네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멋모르는 하룻강아지라도 네 죽음을 예감할 수 있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모두가 지쳐 잠든 밤, 나는 몰래 집을 나서 바다로 달려갔다. 손에는 수건 한 장을 단단히 쥔 채로 해변까지 한달음에 도착한 나는 냅다 바다로 뛰어들어 바닷물에 수건을 흠뻑 적시고 꼼꼼히 짜내었다. 몇번을 적시고 짜내고를 반복한 나는 또 다시 헐레벌떡 뛰어 네 손에 수건을 쥐어주었다. 찬 기운에 네가 슬며시 눈을 떴다. 벌겋게 충혈된 눈과 마른 밭같이 이리저리 갈라진 입술이 그간의 아픔을 짐작하게 했다.
바다다.
네가 씨익 웃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수건을 얼굴에 갖다댄 네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해쓱해진 얼굴에 걸린 희미한 미소를 보고서야 나는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빨리 나아라. 그래. 쉰 목소리로도 착실히 네가 대답했다. 그제서야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네 옆에 고꾸라지듯 누워 눈을 감았다.
다음날, 네가 죽었다. 어머니는 통곡을 하다 그대로 까무러쳤다. 나 또한 삐질삐질 새나오는 눈물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인부들이 볼품없이 아무렇게나 짠 관에 네 가느다란 몸뚱이를 넣고 못질을 하려는 순간 볼품없이 말라붙은 네 머리칼이 눈에 띄었다. 잠깐만요! 허겁지겁 부엌으로 달려가 가위를 가지고 온 나는 네 머리칼 한 뭉텅이를 숭덩 잘라냈다. 덕분에 꽤나 우스운 꼴이 되었지만 워낙에 멋부리기를 모르던 너였으니 그것으로 나를 타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요상히 보는 주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나는 그것을 들고 네가 매일 앉아있던 바다로 뛰었다. 언제나같이 소금기가 묻어 짭짤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곧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첨벙 꼭 네게 바다를 가져다주던 그 날처럼 망설임없이 뛰어든 나는 조심스레 그 때까지 꽉 쥐고 있던 네 머리칼을 놓아주었다. 잘 가라. 잔잔히 이는 물살에 네 머리칼이 둥둥 점차 멀어져갔다. 코끝이 시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