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 서울호다스케치-십자가죽음은 역사적사건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

작성자썩은밀알|작성시간12.10.17|조회수159 목록 댓글 2

 

말씀을 볼 때 그 현장에 있거나 그 현장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더 좋다고

파수꾼형제님이 말씀해 주시면서 예수님의 붙잡히심과 죽음에 대한

마태복음 27장에 대해 나누었다.

 

예수님을 잡아 빌라도 총독에게 고소해서 정식재판으로 죽음에 빠뜨리려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 대해 나오고 그걸 보는 유다가 나온다.

유다는 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뉘우치는 것으로 끝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개와 뉘우치는 것은 차이가 있는가? 뉘우치는 것은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만 느꼈다.

진정한 회개가 있었다면 평안함과 자신의 죄 사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한 사람들을 보며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있지 않은지를 비춰봐야 한다.

내 안에 있는 것이나 그들 안에 있는 것이나 비슷한데,

유다의 죽음에 대해 성경에 쓰신 목적은 하나님은 이걸 통해

돌이키고 회개하고 버리는 과감한 결단을 원하신다.

9절을 보면 이미 예레미아서에서 예언되었던 것을 이뤄가신 것이다.

그리고 가룟유다에게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22:3)나오는데 왜 그랬을까요?

틈이 있었다. 평상시에 가룟유다는 돈을 너무 사랑해서 사단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상태였다.

돈으로 유혹이 왔을 때 덥석 잡은 것이다.

아시다시피 유혹이 가장 쉽고 가장 크게 오는 것이 돈, 경제적인 것이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을 때도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처럼 포장을 했지만 너무 아까워한 것이다.

 

11절부터 예수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질문에 대해 반응하시기도 하고 반응하지 않으시기도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셨다.

참소나 고발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으셨다.

진리에 대해서는 반응을 해야 하지만 그밖에 것에는 해명하거나 옳고 그름을 밝히려고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것을 배울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오해들이 풀려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얼마 만에 죽으셨나?

이 땅에서 가장 잔인한 처벌 법이 십자가형이라고 하는데

서서히 죽임으로 2~3일 정도 고통을 최대한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당하신지 불과 몇시간(6시간) 만에 돌아가셨다.

그들이 원했던 처형 목적대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고

예수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곁에 머물지 않으면 여기에 사단에게 이용당한 사람들처럼 될 수도 있다.

 

45절부터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극에 달한 고통의 신음소리를 보게 된다.

그 고통이 나의 고통인데 예수님이 대신 당하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고통을 통해 엘리아가 와서 기적과 이적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이 한 순간에 회복되는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성소의 휘장은 무엇인가?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았던 것인데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딱 한번 모든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들어간 곳이다.

이 휘장을 찢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막혔던 담을 허시고

성소에 있던 모든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대면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61절에 예수님의 돌아가시고 나서 한 부류의 여자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살아나실 것을 알고 그랬을까? 슬픈 마음으로 그랬을까?

아마 그리움과 극심한 슬픔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여인들은 죽은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려고 하였다(24:1, 16:1)고 나와있다.

 

62-66절에 보면 다른 부류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예언하셨던 말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이루지 못하도록 열심히 꾀를 내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승리한 것인데 많은 설교에서

십자가의 죽음이 슬픔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사셨기 때문에 우린 자유하고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우리가 여전히 어둠가운데 있으면 안된다.

뒤돌아보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순종kim

최근에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빨리 죽음을 맞이하게 하신 것들을 보면서 역사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이루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은혜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예사사

구약에 성막을 보면 번제단까지는 죄인들이 들어가서 네 죄가 사해졌다라고 했다.

그런데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자신 죄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백성의 죄를 위해

동물에게 모든 죄를 이양하고 번제단 앞에서 죄 사함을 받고 물두멍에서 씻고

세마포로 갈아 입고 성소를 지나 지성소에서 모든 죄는 없다라고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번제단에서 죄를 사함받은 것이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 우편에 가셨다는 것은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 이였기 때문에 우리 죄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신다는 것을 이루신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라는 것이 우리가 뭘 해서가 아니라 100% 은혜라는 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편에 서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사하신 곳까지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까지도

중보해서 갈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여기까지 가야된다는 생각이 든다.

 

대비자매님

모든 사람을 창조했다고 하는데 믿는 사람만 선택한 것인가?

예수님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의 죄를 사하신 것인가?

라고 불신자들이 묻는 경우가 있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난감했는데 어느 날 성막의 대제사장이 되어보면서 깨닫게 된 건

예수님이 전 인류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과 땅의 성막 휘장을 찢으실 이유가 없으셨다.

질문을 한 불신자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죄까지도 다 짊어지고 가셨는데

예수님을 못 믿는 것은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사사형제님

결국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 이걸 믿느냐 완악해서 안 믿느냐의 차이다.     

 

파수꾼형제님

이것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사역할 수 있다.

지금 믿는 사람만 선택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믿을 사람도 모두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그 날까지 구원의 문은 다 열어놓으셨다.

하나님의 선택은 광범위하고 당신(불신자)이 오길 예수님은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해야 한다.

 

신포도주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신포도주에 몰약이나 쓸개즙을 섞어서 그 당시 마취제와 진통제로 사용되었는데

그걸 드시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당할 고통을 온전히 다 당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풍성하고 깊이 있는 영적인 누림을 위해서 28장을 미리 준비해 오실 것을 당부하시며

말씀 나눔을 마쳤다.

 

요즘 호다에서 나누는 성경말씀이 그냥 목사님을 통해 받는 말씀과는 다르게

더 깊이있게 생각하게 되고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알아가게 되어서

이 나눔의 시간이 너무 좋다~

 

특히 이번에는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선택이셨다는 것과

(그렇게 짧은 시간에 돌아가신지 몰랐다) 성막의 휘장이 찢겨나간 것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고

신포도주를 드시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된 귀한 시간이였다.

 

그리고 최근에 서로의 근황과 나날이 좋아지는 자매님(샤론의 꽃)의 모습도 칭찬하며

나눔을 마치고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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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ApostlePaul | 작성시간 12.10.19 예수님께 붙어있어서 악한 영이 들어올 틈은 막고
    설령 넘어졌어도 회개하고 바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웁니다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면 입을 열어도
    나를 위한 해명이나 변명은 zip~ 잘 정리해주어 고마와요 자매님
  • 작성자가나안입성 | 작성시간 12.10.22 진리에 대해서는 반응을 해야 하지만 그밖에 것에는 해명하거나 옳고 그름을 밝히려고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것을 배울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오해들이 풀려간다.
    사건의, 오해의 많은 것들을 다 해명해야 직성이 풀렸던 지난날,,, 세상은 해명하다가 정작
    중요한 일은 다 건너 뛰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내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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