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우주에서 가장 오해를
받고 있는 분 : 성령!
마크튜퐁
2010.01.14 저녁집회
제가 오늘 이 밤 마지막 시간을 통해서요. 여러분과 함께 이 전 우주를 통하여서 가장 오해되고 있는 그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그분은 성령님이라는 분이십니다. 모든 크리스찬들이 예수님을 잘 알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넘어서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이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 것이 그들에게 영생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많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님의 인격에 대해서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몸이 있으신데요.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잘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아버지가 삼위일체의 머리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저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어떠십니까? 그분이 권능으로 임하시고 또 기이한 일들을 일으키십니다.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람이십니까?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한켠으로 다 마음을 성령님께 주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다른 쪽으로 치우친 것이구요. 또 다른 쪽으로 치우쳤을 때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케르스맨틱(?)과 또 오순절 성도들에게는요. 성령님과 권능과 은사를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동일한 큰 실수를 합니다. 그들은 성령님을 권능으로 취급할 뿐이지 인격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아주 강력한 분이시지만 그분은 파워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께서는 우리 삶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성령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그리스도이고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신다고 나와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초대 교회로 바로 떠나버리셨어요. 그리고 사도들과 제자들을 그냥 떠나버리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들에게 유익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내가 떠나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에게 성령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 이 밤에는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이신 성령님에 대해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그분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요. 우리가 사역을 할 때 종교적으로 우리의 힘을 의지해서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어떤 프로그램이나 어떤 체계들이나 구조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영향력을 주지 못합니다. 스가랴가 이야기한 것처럼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운행하실 때 또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사람들 가운데 생명이 임하게 되고 영원한 영향력이 있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설교를 잘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머리에 있는 지식만을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성령님께 인도받는 것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가 성령님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가 알지 못합니다. 또한 많은 경배자들 중에서도요. 그들이 아주 좋은 사운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아주 또 좋은 노래들을 합니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음악가 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연주할 뿐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가운데 어떻게 흐르고 계시는가 또 자기의 삶 가운데 주님이 어떻게 임하고 계신가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자들은 진리로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가운데 여러분의 삶 가운데 교회 가운데 세계 가운데 아버지께서 행하시기 원하시는 것은 이 모든 것들에 성령님께서 관여를 하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종교적인 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제가 어젯밤에 여러분과 나누면서 이 세상의 처음 시작으로 저희가 돌아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의 형체와 구조들을 아직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보면 그곳 가운데 혼동이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떤 아무 형체가 없고 비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러한 상황 가운데 그 위에 운행하고 계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물론 이런 자연적인 빛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 명명이 임할 때 그곳에 있는 체계적인 빛들이 또한 그곳에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님께서 운행하시는대로 함께 일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인류의 처음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2000년 전에 3000년 이상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나타납니다. 이사야는 그 어느 선지자 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많은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아주 놀랄만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사인을 줄 것입니다.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아이의 이름이 임마누엘일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입니다. 남자를 가까이 한적도 없는데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입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왔을 때 그리고 이야기하기를 “당신이 메시아를 낳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야기하기를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가브리엘이 이야기하기를 “성령님이 당신 위에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권능이 당신을 덮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곳에서 새로운 것들이 탄생되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적이나 이적과 표적 가운데서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령님께 아주 민감한 마음들을 잘 계발해야 합니다.
제가 2년 전에 남아공화국에 있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하셔서 네가지의 다른 암들을 고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는데 세가지 종류의 암을 가진 사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혈액과 관련된 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에 관련된 사람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임이 끝났구요. 그런데 한 여자분께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혈액과 관련된 암으로 인해서 목사님께 다가온 사람이 누가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도 없습니다.” “제 친구 중에 하나가 지금 병원에 있는데 혈액에 관련된 암으로 인해서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기를 요한네스버그 지역에 있는 어떤 병원 가운데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병원에 자주 가봤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계신 병원이 어디에 있죠?”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얘기하시기를 “제 친구는 영국에 있는 병원에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곳은 남아공화국에서 10,000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저에게 안수해주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암이 치유를 받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제 친구에게 전화상으로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약 당신에게 믿음이 있다면 함께 해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에게 기도하면서 “주님, 주님의 치유의 권능이 이분의 친구분에게 임하게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밤에 그분이 자기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전화상에 불러놓고 기도하고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도 더 연약해져서 더 이상 살수가 없는 정도였습니다. 거의 죽음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야기하기를 “제가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일년동안이나 이렇게 좋아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서 그 여자분에게 아주 큰 변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분에게 혈액에 관련된 모든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의 결과가 왔을 때 그 차트를 보고 “우리에게 잘못된 차트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이 차트에는 암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분은 암이 100% 다 낳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났습니까? 어떻게 남아공화국에 있는 사람이 아일랜드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로 기도를 했는데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성령님의 권능으로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혼돈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의 빛이 주님의 창조하시는 빛이 그곳에 있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을 수 있겠습니까?” 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면 성령님이 당신께 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몸된 교회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지금 그분의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714년 전으로 가게 되면 이사야가 이렇게 예언 했습니다. 한 젊은 여인이 성령님이 그를 만짐으로 말미암아서 그런데 또 30년 후로 가게 되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태어나셔서 자라납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부르심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고 치유하시고 귀신들을 내어쫒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치유 가운데서 또한 주님의 권능 가운데서 행하기를 원하신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다음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저희는 사복음서를 읽습니다. 그것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봅니다. 저희들이 생각하기를 ‘아, 물론 당연하지 예수님이셨으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런게 쉬우셨겠지.’ 저희가 사도행전에 나와있는 사도들의 모든 기적들을 보게 되면 “당연하지 뭐 사도들이었으니까” 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권능으로 사역을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동일하게 연약함을 가지고 사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제가 손을 내밀어서 기도할 때 “마크의 이름으로 나을 지어다”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할 수 있긴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힘을 권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권능을 가지고서 그것을 옆에다가 놓았습니다. 그리고 기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권능으로 사역하셨다고 나와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있는 전지의 능력도 때로는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동일한 제한을 몸에 지니고 사셨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들이 하는 이 일을 너희들도 행하기를 원한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하는 일 그것보다 더 큰 일을 너희들이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성령님의 권능으로 사역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도들이 사역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서 매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성전 바깥에서 매일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알았습니다. 그가 그 성전 문가에서 계속해서 구걸을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아마 그 사람 곁으로 50번 이상 60번이나 지나갔었을 겁니다. 예수님도 또한 그 곁을 적어도 한 6번 정도는 지나가셨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구걸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야기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을 너에게 주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날지어다” 그 사람이 즉각적으로 일어나게 되었고 전 도시에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이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이 사람 곁으로 많이 지나갔었어요. 예수님도 그 곁을 많이 지나가셨습니다.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그 날에 성령님께서 무엇인가 일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이가 30살이 되셨을 때 세례요한의 현장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해서 회개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에게 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를 공경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적인 사역을 위한 열쇠가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권세를 가지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권세를 존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 그 권세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세례요한에게 주신 권세를 존중했을 때입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셨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례요한에게 주신 그 권세 아래 거하였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때 세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로 하늘이 열렸습니다. 또한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많은 자유함이 주어졌습니다. 두 번째로 아버지께서 아버지로 인정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는가 확인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성령님께서 예수님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본 것이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임하여서 그 위에 계속해서 남아있었다.”라고 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사역이 처음 시작했을 때 어떤 사역을 바라보면 그리고 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를 보면 그곳에 치유가 있고 기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몇 년이 지난 다음에 사역과 교회가 자라게 되면 그곳에 치유와 기적들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곳에 있었던 은사가 그들을 위해 아직까지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주님의 임재하심과 인격이신 성령님을 좇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를 ‘아, 이제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하는지 안다. 어떻게 사역하는지 알고 사역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성령님을 좇기를 멈추게 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30년 그 이전쯤에서부터 병든자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제 자신에게 도전했어요. ‘너는 너의 평생동안 네가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으로서 계속해서 머물러있어야 한다.’ 제가 여러분에게도 도전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평생을 통하여서 성령님께 가르침을 받는 학생으로 계속해서 남아있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마치 하나님께서 이제는 무엇을 행하시기를 원하는가 또 그것을 어떻게 행하시기를 원하는가 이것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 이르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으로 우리를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누가복음 4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가득하였다라는 가득참이라는 단어는 아주 특별한 단어입니다. 여러분 물잔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아시죠? 바로 위까지 채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컵에 보면 컵의 양끝부분보다 컵의 가운데부분이 수면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바로 그 상태를 가득찬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욱더 가득찬 상태였습니다. 헬라어로 가득찼다는 단어가 플레이웨이스라는 단어입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너무나도 꽉 가득찼기 때문에 마치 예수님에게서 성령님이 터져나오듯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손대는 모든 사람이 다 나음을 입었다고 나와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함으로 가득차서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한량없이 주었다는 것입니다. 3년정도가 지나게 되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말씀을 선포하시고 치유하시고 사람들에게 축사사역을 하시고 또한 사람들에게 먹여오셨습니다. 그리고 곧 얼마안가면 예수님께서 체포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또한 매를 맞으실 것입니다. 또한 그의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곧 너희를 떠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6절에 “내가 이 말을 너희에게 함으로 너희에게 근심이 가득하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이 “실상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들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예수님께서 16장 13절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저희가 오후 시간 세 번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과 친구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였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이 하나님의 벗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예비하신 것에 대해서 그것을 향하여서 지도해 가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성령님이 권능이 임하지 않고는 우리 개인의 삶과 우리 도시의 삶 가운데 영원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 일을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빨리 성경에 나와있는 세가지의 이야기를 알려드리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들은 아주 중요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나타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는 세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인 베드로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또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입니다. 그리고 이 세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만나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아직도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이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들이 모든 밤을 새었지만 아무 고기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물가로 배를 몰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이들아 너희들에게 잡은 것이 있느냐?” 그런데 그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배의 다른쪽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분이 예수님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들 가운데 있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그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든 그물에 고기가 터질 정도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이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에게 “베드로, 주님이시다!” 그리고 베드로가 물위로 뛰어 들어가서 예수님께로 헤엄쳐 갔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제자가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부활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또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또한 비어있는 무덤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길가에 있을 때 오셔서 그들에게 합류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저희들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슨일이냐?” 그들이 발을 멈추어서 이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말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아주 잘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1절부터 읽기 시작하겠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나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어떻게 막달라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었죠? 어떻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여러분 여기 보시죠. 무엇인가가 변화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동일한 모습이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로 말미암아서 또 그들은 예수님이 육신 가운데 있는 시대에서 예수님이 영으로 가는 시대 가운데로 전환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놓여져 있는 시대는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이성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는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잠언서 3장 5절에 “너희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너희 온 맘을 다해서 신뢰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이성적인 머리로 생각해 볼 때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이치에 닿지 않는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가 있습니다.
켈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1986년에 저와 저의 두 친구가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6년 동안을 거쳐서 많은 아주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또 치유를 받고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운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1992년에 들어서 저희들이 드디어 저희 소유의 건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정적인 기적을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시의 담당자가 저에게 허가를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에서 또한 아주 놀랄만한 찬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매주마다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네가 다른곳으로 옮기기를 원한다.” 199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 집회를 인도했었는데요 근데 그 교회의 목사님과 좋은 친구가 되었는데 그 교회는 100명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 “당신의 사역을 토론토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 한번 기도해 보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부인이 샌디에고를 떠나서 캐나다 토론토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 한번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계속해서 전세계로 다니면서 여행을 하십시오. 하지만 저희들이 이곳에서 예언사역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오셔서 예언사역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토로토 캐나다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긴 너무 추워요. 거기는 샌디에고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 없습니다. 샌디에고에 있는 좋은 식당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샌디에고에 아주 좋은 교회를 지었는데요. 그런데 토론토에 있는 조그만 교회가라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거기로 가기를 원한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저희 친구들이 “도데체 뭐하는거야?”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아주 좋은 사역을 다 설립하셨는데 왜 토론토에 간단 말이야? 거기는 추운데.” 그래도 저희는 토론토로 이사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한 첫 번째 주에 제가 한 예언집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도시 가운데 쏟아져 부어내리는 것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토론토에서 한번도 행하지 않았던 그 일을 이제 행할 것이다. 나의 영을 부을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를 “진짜요? 왜 사람들이 여기로 오죠? 이 교회는 한 100명 정도밖에 안되는데.” 그런데 주님께서 1993년 말과 1994년 초에 그렇게 행하시겠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994년 1월에 아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서 아주 놀라운 일을 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가서 8년 내에 전세계로부터 800만명의 사람들이 이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기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가 그곳으로 이주한 이후에 이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 가운데 또 소명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적인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명철을 내어버리고 우리의 온맘을 다해서 하나님을 신뢰할 때 이런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본 여러 교회들은 그들은 성령님께서 행하시고자 하시는 일들을 놓치고 맙니다. 왜냐면 그들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생각들로 ‘우리가 이것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것을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성적인 머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제 행하려고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관하여서는 성령님께 특이할 만한 두가지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위에 임하시는 성령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역을 하기 위해서 주시는 권능과 도구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한복음 20장 19절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가 그 전에는 읽어보지 못했던 그 어떤 것을 행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을 향하여서 숨을 내쉬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이 “성령을 받으라” 성경 전체를 걸쳐서 이 구절이 가장 놀라운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상 4000년 동안에 어떤 사람들은 그들 위에 성령님이 임하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선지자들에게 성령님이 그들 위에 임하여서 그들이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왕들은 이 기름부으심으로 말미암아서 지도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용사들은 주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서 하나님을 위해서 싸울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주의 성령님이 임하여서 그들 안에 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경험했던 기름부으심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 다윗조차도 시편 51편에 그가 그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였을 때 그가 고백하기를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왜냐면 다윗은 성령이 그의 위에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안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도 그들은 하나님과 만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이 그들 가운데 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십자가의 권능으로 말미암아서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가 주어졌고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깨끗해지고 용서를 받게 된 것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보실 때 마치 예수님처럼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아버지의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드리셨을 때 성전에서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일년에 한번만 대제사장이 지성소 가운데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을 포기하셨을 때 휘장이 다시 나누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마다 바로 그 주님의 지성소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과 인자와 자비를 받을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숨을 내쉬셨을 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예언하셨습니다. “네가 다시 거듭나야 될 것이다.” 그래서 니고데모가 묻기를 “사람이 어떻게 다시 거듭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성령시대,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시대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위에 임하는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여러분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희가 성령님의 은사가 9가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계시의 은사가 있고, 권능의 은사와 사람들을 치유하는 믿음의 은사가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한 것과 관련된 은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9가지 은사는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주님의 일을 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서 생겨나는 성령님의 열매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이곳에서도 밤에 모임을 마쳤을 때 저희가 변목사님의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아주 아름답게 과일이 놓여져 있는 접시가 나옵니다. 그렇게 다양한 과일들을 제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권능과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를 원합니다. 저희가 오후시간에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아주 높은 고층 빌딩인 높은 병원 건물 이것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깊숙한 곳에 기초가 놓여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물이 서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향한 사역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면 너희 속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측면에 있어서 성령님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7절에 보면 “너희들이 이곳에서 기다리면서 너희들이 권능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파리에서 한 10일 정도 주님 앞에 기도하고 경배하고 금식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령님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권능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인하여서 담대함이 그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숨을 내쉬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히브리어로 성령님이라는 것은 “루아”로 그것이 생명의 바람입니다. 이곳에 성령님의 바람이 찾아옵니다. 그곳에 있었던 120명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임할 핍박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120명의 사람들이 이제는 완전하게 담대한 사람들로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날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을 때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초대교회의 시초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오순절이 단 한번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그곳에 다시 모여서 기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구하기를 “주님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사 복음을 알리게 하옵시며”라고 구했습니다. “이적과 기사가 주님의 종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있었던 장소가 다시한번 흔들리고 하나님의 바람이 그들에게 불어왔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그런 놀라운 경외감으로 우리가 가득차서 넘쳐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저희들이 이제 말씀을 마치고 사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가 성령님께서 말씀드린 것과 관련하여서 두가지 더 지적해드리기 원합니다. 첫 번째는 성령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제가 너무 많은 사역들 가운데서 이런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너무 많은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인격에 초점을 맞추지 못해서 그들에게 죄가 임합니다. 그들의 생각 가운데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임합니다. 이것이 교만일 수도 있고 돈과 관련된 돈을 취하는 죄일 수도 있고 그것은 성적인 죄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수 있다고 나옵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 필요한 새로운 계시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성령님이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믿는 자들의 삶 가운데서 죄가 계속되고 있는데 “괜찮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제가 여러분에게 성경적인 은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권능입니다. 이 권능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런 사람들로 변할 수 있게 되는 그런 권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성숙하시기 원하시는 그 부분까지 우리를 일으키시는 그 권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아무것이나 다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아무런 죄도 받지 않는 것 그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그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님께로 내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그분에 대한 순전함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역들이 그들에게 있는 성적인 죄로 말미암아서 황폐케 됩니다. 그리고 또 제가 보는 많은 교회들은 세상에 죄가 관영한 만큼 교회 안에도 죄가 관영해 있습니다. 성령님의 열매 중 하나는 절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주님의 도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어떻게 동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가 “네”라고 대답해야 할 부분에서 “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아니오”라고 이야기해야할 부분에서 “아니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제가 두 번째를 말씀드리고 사역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동행하면서 도전이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허리나 무릎이 잘못된 것들로 인해서 기도하면서 그것에 자신감을 얻게 되면 바로 그 시점에 이르러서 하나님은 그때부터 귀가 먹은 것과 눈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먹은 귀와 눈을 치유하는 것에 우리가 익숙해지는 그때쯤에 주님께서는 그때는 에이즈가 있는 사람과 간염이 있는 사람들을 고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이 역사 가운데서 영향력을 미치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세대에 있는 문화들을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서 영향력을 미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시면서 또 하나님과 함께 성장해 가시면서 도전이 점점 더 커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것들이 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비밀인데요. 우리가 성령님과 계속해서 걸어 나가면서 우리가 점점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권능에 대해서 더욱더 확신이 서게 되고 또한 그분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더욱더 민감해 지게 됩니다.
제가 이 원리들에 대한 세가지 성경적인 그림을 보여드리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예수님과 만났던 장면 중 하나입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가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고기를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나를 배에 태우고 같이 나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태우고 물가에서 떠나갔는데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배에서 사람들에게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더 깊은 곳으로 가라.” 그래서 더 깊은 곳으로 함께 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게 있는 것에서 우리가 더 깊이 들어간 것에 대한 그림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내가 이제 이야기 하기를 바로 지금 그물을 던져라.” 바로 그랬을 때 그물이 터질 정도로 가득차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곳에 얼마나 많은 생선이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두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21장의 사건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이 밤새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과 동행했던 3년 이후에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 그들이 민감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서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뭔가 다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깊은 곳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제는 배에 다른 쪽으로 그물을 던져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이 사람들이 이미 깊은 물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적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상황 가운데로 여러분을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재정적인 기적일 수 있고, 또한 이러한 관계들을 만질 수 있는 기적일 수 있고, 아니면 신체적인 치유와 관계된 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그 부분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도전은 무엇이냐면 우리의 심령보다 우리의 머리가 더 커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는 모세와 그 히브리 백성이 광야 가운데서 물이 없는 곳에 두 번이나 이르게 됩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모세야 너의 지팡이를 취하라” 그리고서 “그 바위를 치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했고 거기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한 모세가 그 바위를 치게되는 모세의 힘도 관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두 번째 경우였습니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모세는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임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주님께서 “모세야 다시 바위에게 명하기만 해라 네가 이것을 칠 필요는 없고 단지 말만 해라” 제가 30년쯤에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치유가 임하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이것이 너무 큰 일처럼 보였습니다. 무릎이나 허리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도 크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간략한 말들만 합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 5년 전쯤에 제가 한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두 번째 밤이 되었을 때 “제가 병든자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두 번째 밤에 그렇게 했을 때 한 사람이 다른 교회 침례교였는데요 그곳에 다니는 사람이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야기하기를 “제가 제 동생을 기도받게 하기위해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암으로 인해서 폐가 거의 손상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수술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차에 앉아있습니다. 너무나도 통증이 심했기 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가 집회 장소까지 걸어 들어올 수 있는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차안에서 3시간 동안 있었습니다. 근데 대신 손수건 위에 기도를 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그 사람의 목사님 그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목사님을 모셔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 손수건을 가지고 제게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함께 손수건에 손을 얹었습니다. “주님, 주님의 기적적인 권능이 이것에 풀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사람과 그 목사님께서 함께 나가서 그 남자분의 가슴위에 손수건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분이 완전히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저는 이런 것들이 사도행전에서 일어났던 것을 봅니다. 한 어린 아이가 간질이 있었는데 손수건을 통해서 낫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간질이 있었던 것이 몇년동안 지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아이가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손수건 위에 기도했을 때 근데 그것은 그 아이의 어머니의 스웨터였습니다. 그 스웨터를 어머니가 집으로 가지고 가서 그리고 자고 있는 아이를 부부가 함께 데리고서 이 아이는 근육의 통제를 잃었고 뇌도 온전히 초점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다 여전히 스웨터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기적의 권능이 이곳에 풀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서 이 아이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한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상황들이 여러분들에게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선교 봉사활동을 나가라고 부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그렇게 다 돈을 지불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6개월 동안 계속해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돈이 그때 또 들어옵니다. 그런데 5년 후에 주님께서 “네가 또 다시 선교 봉사활동에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더 비싼 것입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면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일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기름부으심과 함께 바위를 치는 것에서부터 이제는 단지 명하기만 하는 그런 단계로 이르게 됩니다.
때로는 제가 어떤 사역 가운데서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무거운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여러분은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임하는 힘인지 아니면 사람에게로부터 임한 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계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바닥에다 눕히려고 원하실 때는 하나님이 혼자서도 이것을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강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바닥에 눕히시려고 한다면 손쉽게 혼자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시죠? 우리가 바닥에 넘어지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닥에 누워있든지 서게시든지 이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서로를 향해서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은총이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지막 이야기인데요 다윗에 관한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블레셋이 큰 무기를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전략을 주십니다. “앞으로 나아가서 그들을 공격해라”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의 능력도 있었지만 또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서 그들이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이번에는 두 번째로 또 큰 대군을 보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이번에는 다른 전략을 주십니다. 밤에 그들 뒤쪽으로 가서 주님께서 또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데 큰 숲이 두 군대를 가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공격하지 말아라. 너희는 이 나무 위에서 군대가 행진하는 것을 들을 때까지 공격하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갑작스럽게 공격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근데 그들이 그렇게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낮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곧 발견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계속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 영으로 그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의 군대가 나무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공격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이것은 첫 번째 보다도 더 손쉬웠습니다. 왜냐면 그곳에 천사들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짊어지라. 나로부터 배우라. 나의 짐은 가볍고 지기 쉽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인류라는 짐을 짊어지고 계시면서 그런 얘기를 하실 수 있으십니까? 어떻게 나의 짐은 쉽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왜냐면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으시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행하신 것을 본 그것만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권능으로 사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을 부르셔서 어떤 새로운 것을 하라고 할 때 이것이 새로운 사역이거나 암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거나 하나님께서 아주 어려워 보이는 어떤 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여러분 괜찮습니다. 마음 편히 가지십시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 되지 않고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밤에 저희들의 멍에가 우리에게 풀려나오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를 누르고 있는 걱정이나 두려움의 멍에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에게 증가하게 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을 더 받기 원하신 분 손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엇이냐면 주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한량없이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을 이렇게 흔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것을 느끼십니까? 저는 성령님의 권능이 이곳에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저희들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은 우리가 오늘 아주 좋은 시간을 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몇 가지를 행하기 원합니다. 다같이 일어나시겠습니다. 이곳에 많은 회중이 있는데요. 그리고 제 발목이 다친 것으로부터 회복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에게 안수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서 여러분을 덮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부탁드리는데요. 눈을 감으시고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지우세요. 아주 놀라운 주님의 임재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시한번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삶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의 삶이 제사로 드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눈을 감으시구요 여러분의 삶 가운데 성적인 유혹으로 인해서 싸우고 있다면 여러분이 계속해서 성적인 죄를 범하고 있다면 성적인 유혹과 싸우는데 여러분이 힘겨우시다면 모든 분들 눈을 감으시구요. 여러분 주님께로 손을 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제 모두 다같이 큰 소리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 우리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의 삶이 주님을 위한 산 제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생각이 저의 몸이 주님의 성령님을 위한 거룩한 처소가 되기 원합니다. 아버지 저의 죄에 대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제가 성령님을 근심시키고 성령님을 시험들게 했던 그런 순간들로 인해서 저를 용서해주시옵소서. 타협한 것으로 인해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무시한 것으로 인해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습니다. 이 시간 주님 저를 채워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자제력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그래서 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될 부분에서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네라고 대답해야 할 부분에서 네라고 대답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저의 눈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립니다. 제가 사람들을 성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을 순전함으로 내어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고백합니다. 저의 몸은 주님의 영광에 속한 것입니다. 제가 이 용서함을 받습니다. 제가 부끄러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떨쳐버립니다. 주님의 권능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의의길로 행하기 원합니다.” 성령님이 여러분들 위에 임하도록 계속해서 머물러 있으십시오. 성령님이 여러분을 씻으시고 정결케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계속 하도록 내어드리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끄러움과 죄책감의 본능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파쇄하노라. 내가 이 시간 죄에 대한 용서를 선포하노라. 여러분의 양심이 성령님으로 인해서 씻겨지기를 축복합니다. 부끄러움의 수치감의 짐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파쇄될지어다. 피를 타고 가계에 흐르는 성적인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습니다. 제가 이제 선포합니다. 이제 새로운 날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채울 것입니다. 그대로 머물러 있으세요. 아버지 성령님으로 채워주시옵소서. 함께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주님을 경배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