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독자로부터 메일을 통해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사랑의 하나님은 왜 지옥을 만드셨는가? 그렇게 더럽고 잔인무도한 지옥을 만들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질문 자체도 우스웠지만 지옥을 완전히 하나님의 책임으로 이해하는 것이 놀라웠다. 이미 공격적인 자세로 하나님을 정죄하면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지옥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원리와 법칙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뿌리고 거두는 법칙과 같은 것이다. 어떤 이가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어떤 이가 미움을 심으면 미움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지옥을 창조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각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천국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수록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며 천국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지옥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움이다. 우리는 서로 미워할수록 주님과 멀어지며 지옥과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영접하는 고백을 하면 그 순간 천국행 티켓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옥과 자기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주님은 천국에서 그를 따른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많이 말씀하셨다. 천국에 가는 것은 몇 마디 말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중심과 삶의 중심에 달려있는 것이다.
어떤 이가 주님을 표면적으로 사모한다고 하자. 하지만 그는 날마다 남을 비난하며 자기만이 옳다고 한다.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며 남들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화를 낸다.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미워한다. 자기와 체질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 그의 영혼은 천국에 속해 있는가? 그것은 심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누리고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의 육체는 물리적인 이 땅에 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영계에 속해 있으며 영계로부터 영적 에너지를 얻으며 생각과 감정을 수신하게 된다. 그러므로 육체는 이 땅에 속하지만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속해있는 것이다.
우리가 수신하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인가? 그리움인가? 애정이나 용서나 넓고 너그러운 마음인가? 그것은 천국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분노와 미움과 정죄가 계속 수신된다면? 그 생각과 감정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천국에서 오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지옥에서 온다. 그렇다면 그 지옥으로부터 계속 영향을 받고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천국에 속한 사람인가? 그것은 오해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날마다 천국에 가까워지든지 지옥에 가까워진다. 그 영혼이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든지 아니면 지옥을 향하여 떨어진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렇게 평생을 산후에 그 사람의 평균치가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이 되는 것이며 영원한 삶에서의 위치와 역할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많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 풍성한 사랑의 수준을 경험한 이들은 많은 고을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천국은 사랑의 통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에 살면서 아주 적은 사랑만을 경험한 이들은 비교적 빛이 적은 곳에서 적은 사역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중심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당신이 천국과 가까운가, 지옥에 가까운가를 구분 짓는 것은 당신의 마음에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한지, 긍휼과 아름다움과 용서와 축복의 영이 가득한지 아니면 억울함과 분노와 미움과 판단이 가득한지 거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볼 때 어떻게 느끼는가? 사람들이 당신을 그리워하며 자주 가까이 오기 위해서 애를 쓰는가? 사람들은 당신의 곁에 있으면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신을 꺼려하는가? 당신과 같이 있기 싫어하는가? 당신은 다른 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거운가? 아니면 혼자가 좋은가?
만일 지금 혼자 있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면 사후에는 영원히 혼자 있게 될 가능성이 많다. 영계는 이 땅처럼 혈연이나 육체에 의해서 위치나 일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의 상태에 따라서 결정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마음 속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그는 아주 화가 나 있다. 그는 자식을 키워봤자 다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잘 해주어봤자 다 배반하며 은혜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저 밑의 어둠을 향해서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옥이다.
주님은 가르치셨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미며 너희들의 마음 속에 있다고. 또한 지옥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역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무슨 마음인가? 미워하는 마음이다. 모든 미움은 지옥에서 온다.
자. 억울하고 속상하고 다 꼴보기 싫다는 마음이 지옥에서 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당신은 그러한 음성이 천사가 들려주는 음성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런 음성은 악한 영들이 하는 말들이다. 어두움의 영들이 그런 속상하고 화나고 좌절하고 하는 생각을 넣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당신이 그러한 음성을 아주 잘 흡수하여 그것을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일 때 당신은 서서히 지옥의 사람화 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옥의 에너지, 지옥의 기운이 당신의 안에 점령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영원을 지금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미워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당신이 내가 당한 것의 반의 반 만이라도 당했으면 내 마음이 어떤지 알 것이라고 말한다. 나 같으니 이 정도지 당신 같으면 말도 못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러한 논리는 오해이다.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동일하게 가난해도 그 가난을 통해서 아주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있고 아주 악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돈 밖에 모르는 지독한 수전노가 된다. 어떤 이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사랑하는 도구가 된다.
지독한 학대를 당하고 자란 사람들이 항상 똑같은 결과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잔인하고 비뚤어진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학대를 당하면 당할수록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고통 당한 이들을 치유하는 도구로 쓰여진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각 자의 삶의 중심, 영혼의 중심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고백은 진리에 속한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아픔을 겪었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다 자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천국과 지옥의 어느 한 쪽으로 자신을 가깝게 이끌어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는 너무나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아픔을 준 사람에 대해서 분노를 표출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이 행복한가? 그의 말은 다 옳다. 틀린 말이 아니며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행복한가?
행복할 리가 없다. 지금 그의 영혼은 지옥의 밑바닥으로 열심히 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심령이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 때문인가? 아니다. 지금 그가 미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사람은 천국의 빛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무리 자기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고 어디서 뭘 배웠고 뭘 체험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마음에 사랑의 온기가 없다면 그는 천국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영혼에는 행복감이 오지 않는다. 그는 오직 허무하고 비참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슬플 뿐이다.
나는 몇 년 전에 <묻지 않는 자에게 해답을 던지지 말라>는 잠언 시집을 낸 바 있다. 감사하게도 이 책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책의 제목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깨달음은 나에게 정말 놀라운 해방과 자유를 준 것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가르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간절하게 사모하고 추구하는 이들이 아닌 한 사람들에게 영성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깨달았을 때 나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서 밤에 자다 말고 깨어 일어나 울었다. 웃음을 터뜨렸고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나 혼자만의 세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영성의 원리를 추구하고 감추어진 진리에 목마른 이들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자유를 주었고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렇다. 묻지 않는 자에게는 해답을 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구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진리를 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묻지 않는 자들에게도 구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사랑은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사랑을 구하지 않는 자들은 없었다. 인간은 사랑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사랑을 배우기 위하여 이 땅에 왔으며 사랑이란 영혼의 중심이자 생명의 특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천국은 무엇인가? 바로 사랑하는 삶이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가고 그분께 우리의 삶을 바치고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지배를 받기 원할 때, 즉 우리가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기 시작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가장 일반적인 특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랑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랑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용서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리움에 빠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싶고 사랑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을 축복해주고 싶다. 모두를 어루만지며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느껴가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국의 빛에 우리가 가까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온다. 미워하기 때문에 온다. 모든 고통의 시작은 미움이다. 그것은 지옥의 핵심 원리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증오한다. 우리가 같이 미워하면 우리는 같은 지옥에 있는 것이다. 같은 지옥에서 그 사람과 영원히 같이 살게 될 것이다. 영적 발전 수준이 비슷하니까 말이다.
우리가 같이 미워한다면 우리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게 될 것이다. 가슴이 아릴 것이다. 우리는 같은 증오의 영계에 속해 있으며 재앙의 에너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지옥의 에너지를 받지 않게 된다. 오히려 천국으로부터 빛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행복과 기쁨과 영광 속에서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천사들과 빛과 주의 은총을 우리에게 끌어다준다. 결국 사람들이 겪고 있는 대부분의 고통은 미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지옥을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과거도, 지난 날의 아픔도, 그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지금의 아픔도 지나가면 그리움이 된다. 삶은 아름답고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지옥은 하나님이 만드셨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지옥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그것은 당신이 오랫동안 지옥의 법칙을 따라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라도 당신의 방향을 바꾸라.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어렵게 된다.
미움을 받을수록 사랑하라.
억울한 일을 겪을수록 사랑하라.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것은 모든 재앙과 저주를 끊고
우리의 영혼을 하늘 높이 날아가게 하는
놀라운 방법이고 비결인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라. 모든 고통은 미움에서 온다.
당신이 사랑하기로 작정할 때 천국은 가까이 오기 시작한다.
부디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을 선택하라.
주님은 가까이 임하실 것이며
천국의 빛과 영광은 당신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게 될 것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그리스도인 2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