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십자가의 삶이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인데 이는 낮아짐을 말합니다.
예수님처럼 다 비우고, 다 버리고, 가장 작은 자가 되고, 가장 낮은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 면전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을 뵈옵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 26:37-39)
“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마 26:37-39)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이처럼 비움과 낮아짐과 섬김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과 악한 영은 이렇게 서로 존재양식이 다릅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원리와 방법은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악한 영을 이기는 이치는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그래서 악한 영을 이기려면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면 악한 영의 공격이 절대로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 털끝만큼 "이라도 자신을 높이려는 생각과 마음을 가지는 자는
결코 악한 영의 공격을 피해가지 못하며 하나님 편에 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작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지 못하듯이 낮아짐과 높아짐은 같이 있지 못합니다.
악한 영을 이기는 힘은 악한 영을 제압하는 무슨 신비한 능력을 받아서 이겨내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기만 하면, 가장 작은 자가 되어 섬기기만 하면 악한 영은 감히 접근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악한 영을 제압하는 초자연적인권세는 낮아짐과
섬김에서 나옵니다.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며 알리려 하는 자는 악한 영의 종노릇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렇듯 사단의 존재원리는 높아짐에 있고 성령님의 존재원리는 낮아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악한 영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 속임수 " 입니다.
이 속임수가 무서운 이유는 마지막 때에는 짐승의 우두머리인 “용”이 그 권세를 주었기 때문에
그 속임수를 간파하기가 사람으로서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 (계 13:2)
그러므로 악한 영의 속임수를 헤아리는 지혜는 하나님처럼 낮아지고 작아지고 섬기는 데에서
나옵니다.
스스로가 낮아지고 비워져 있지 않고서는 악한 영의 속임수를 명확히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해 집니다.
세상일에서도 가짜는 진짜보다 더 좋아 보이는 이치와 같습니다.
더구나 영적인 일에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능력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질 때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악한 영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악한 영의 속임수가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영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고후 11:14)
특히 영적인 어떤 현상이나 체험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절대로 혼자서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앞서간 이들에게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다시 반복하건대 절대로 쉽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초보자가 악한 영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것을 철칙으로 지켜야 합니다.
자기 혼자 악한 영의 속임수를 간파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그 생각 자체가 벌써 악한 영에 속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악한 영이 영적인 현상들로 현혹을 시킬 때는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확신"과
"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는 확신 "을 심어주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합니다.
악한 영은 특별한 것을 좋아합니다.
‘ 특별한 은혜 ’, ‘ 특별한 은사’ ‘특별한 능력’ ‘특별한 사명’ ‘특별한 사랑’ 등의 특별한 마음을
심어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자신이 " 특별한 죄인 "이라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나 악한 영의 현혹에 넘어간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옳다는 확신에 빠져서
남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은 자신의 거짓 확신에 넘어간 사람들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들고 늘어집니다.
그러기에 무서운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 특히 영적인 현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이 물음을 물어야 합니다.
" 나는 지금 악한 영에게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 ? "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 이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그만큼 무서운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악한 영은 어김없이 파고듭니다.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벧전 5:8)
마지막으로 악한 영의 속성과 타락한 인간의 죄성(싸륵스)은 서로 일치하며 악한 영의 권세는
죄의 권세입니다.
악한 영이 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약 1:15)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약 1:15)
죄성의 정화가 되지 않은 사람이 악한 영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자신이
아직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캄캄한 어두움에 있는 사람이 얼굴에 묻은 얼룩을 알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묻은 조그마한 티를 알아내려면 먼저 밝은 빛 가운데로 나와야 합니다.
타고난 인간성 자체가 타락한 죄성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죄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죄의 화신인 악한 영의 지배 가운데 있는 셈입니다.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롬 5:12)
악한 영의 지배를 받으면서 악한 영의 세밀한 일들을 간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편적인 인간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생각과 감정의 변화와 마음들이 아직 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 마음, 감정의 변화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의 속임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이란 나의 밖에 있는 어떤 존재와의 싸움이 아니라 내 속에 들어있는
죄성(육:싸륵스) 즉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많은 이들이 악한 영의 존재를 자기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악한 영의 존재가 실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악한 영은 내 속에 있는 타락한 죄성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악한 영과의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여겨지던 악한 영은 정화가 진행되어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면서 자신의 죄성과 악한 영의 속성이 일치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수련이 여기까지 진행되면 가장 중요한 큰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은 자신 속에 들어있는 죄성과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악한 영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악한 영의 존재와 악한 영의 공격을 느끼고 있는 사람만이 악한 영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악한 영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믿음생활이 끝날 때 까지 사실은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모두는 죄 즉 악한 영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우리 모두 날마다 나는 죽고 오직 주님만이 살아나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원한 영생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깨어있는 집으로 글쓴이 ;흰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