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중엔 여러 목사님들의 사역이야기, 삼손과 데릴라, 아가페 사랑, 태풍 샌디, 등등…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과 나눔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너무 빨리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 하며 화요 모임을 마쳤다.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고 먼저 호다로 들어가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나 보고 다보고 나면
바로 다음은 나의 취미인 리서치가 시작 된다… 오늘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성령님의 인도 하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요모임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아주 비슷하고 또한 구체적으로 적혀있는 내용이 있어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 갈망이 비결이다 지은이 : 정원 목사 주님의 마음, 주님의 임재 속으로 갈망은 삶의 중심입니다. 갈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의 삶의 중심입니다. 갈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인식하든 말든 사람의 중심에는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망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그 사람을 만들어내는 기본요소가 됩니다. 갈망이란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갈망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간절히 원하며 갈망한다고 합시다. 그는 술의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성을 사랑하는 갈망에 사로잡혔다고 합시다. 그는 연애의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아주 간절하게 갈망한다고 합시다. 그는 돈의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명예나 출세를 갈망한다고 합시다. 그는 명예와 성공의 사람입니다. 유명한 사역자가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 아내를 얻어야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랑보다 성공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 아내를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사랑에 대한 갈망보다 성공에 대한갈망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갈망은 그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의 삶을 만들며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가장 갈망한다면 그 사람은 돈을 위해 목숨을 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을 가장 갈망한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이나 명예를 갈망한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갈망한다면 그 사람은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그것이 가장 즐겁고 귀중한 것입니다. 돈에 속한 사람은 다른 이가 명예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성애에 빠진 사람은 명예를 위해서 갈망하고 삶을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이성애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갈망한다고 합시다. 그에게 죄에서의 해방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는 입으로 죄를 미워한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죄를 갈망하며 죄가 주는 쾌락을 기뻐합니다. 그는 잠시 기도하면서 죄를 대적하고 물러가라고 선포하지만 잠시 후에 다시 죄를 불러들입니다. 그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없습니다. 마귀는 그가 속에서 죄를 갈망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떠나지만 다시 돌아옵니다. 귀신은 다시 그에게 찾아와서 그에게 지옥을 심어줍니다. 그가 마음속으로 지옥을 끌어당기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지옥의 영들에게 잡히게 됩니다. 죄를 갈망하는 사람에게서 죄를 없애는 방법은 없습니다. 갈망은 강하게 그 대상을 끌어당깁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이 갈망하는 자에게 오게 됩니다. 그것은 아주 강한 자석과 같습니다. 그것은 영계의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이 입으로 주를 갈망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속으로는 주를 갈망하지 않으며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러할 경우 주님께서 그에게 임재하실까요? 일시적으로 잠시 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은 곧 소멸됩니다. 그의 중심은 주님을 원하지 않으며 주님과 반대되는 세상과 세상의 욕망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슬퍼하시면서 그를 떠나십니다. 입술로만 주를 존경하고 그 마음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깊이, 오래 거하실 수 없습니다. 갈망은 강하게 그 대상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이 오게 됩니다. 만약 갈망하는데 그것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삶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술을 아주 갈망하는 사람이 술을 마실 수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고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지옥과 같은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갈망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게 됩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든지 자기의 갈망을 이루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 마음의 중심에 들릴라를 갈망하였습니다. 그의 머리로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 여인과는 끝이라고, 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중심에는 그 여인에 대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사사로서의 사역과 쾌락에 대한 그의 갈망은 서로 부딪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원수들에게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그 쾌락에 대한 갈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명을 포기하고서라도 쾌락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생각했습니다. ‘이번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 그는 그러다가 결국 잡혀서 눈이 뽑히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갈망의 종말입니다. 하지만 삼손에게 있어서 그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눈이 뽑히자 드디어 그가 그렇게 원했던 해방이 오게 되었습니다. 삼손의 눈은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그의 심령은 괴로웠지만 눈은 그녀를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눈이 뽑히자 드디어 심령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가져다주는 쾌락이 끊어지자 심령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삼손의 마지막 순간은 사명을 감당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눈이 뽑혀도 죄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주님은 눈이 범죄하면 빼어버릴 것이며 손이 범죄하면 찍어서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불구자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마 5:29-30)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곤란한 것입니다. 주님은 죄의 무서움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고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육체의 손상을 입더라도 죄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면 그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건강하고 죄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보다 질병이 있더라도 그 질병으로 인하여 고난으로 인하여 죄에 대한 갈망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병이 있을 때는 주님과 천국을 사모하다가 병이 낫고 몸이 회복되면 다시 세상의 유혹과 죄를 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차라리 병이 낫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주님은 진정으로 주를 갈망하는 자에게 나타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주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말씀을 가르치시고 많은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명과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을 간절하게 사모하는 것이며 목숨보다 더 간절하게 주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주님은 자신을 나타내시며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갈망은 서로를 향해서 강력하게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썬다싱은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갈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죽으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가 결심하던 마지막 날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썬다싱은 그때 비로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참 신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그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썬다싱에게 죽음보다 더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을 만나지 못하면 죽으리라고 결심했었습니다. 그것은 신을 만나겠다는 갈망이 죽음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갈망하는 자는 주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각 사람이 갈망하는 수준만큼 그에게 임하실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구한다면 주님은 표면적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중심으로 깊이 갈망한다면 주님은 그에게 중심까지 깊이 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고 간절하게 구하면 주님은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망하고 또 갈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얻을 것이며 주님의 나타나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갈망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당신은 참 좋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으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부럽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러워하지 말고 당신도 구하고 갈망하면 됩니다. 목숨을 거십시오. 주님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거십시오. 주님을 알기 위하여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하겠으며 아무 것도 아까워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간절하게 부르짖고 울면서 뜨겁게 기도하면 그가 신앙이 좋으며 주님을 갈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것은 주님께 대한 갈망일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강렬하게 부르짖고 구하지만 그것은 주님 자신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한 갈망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과의 아름다운 친교에 들어가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없고 문제가 없는 편안한 삶을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능력을 얻기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갈망일 수도 있지만 또한 능력 받고 권능을 얻어 유명해지고 인기를 끌며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남편이 구원을 받게 해달라고 간절하고 뜨겁게 기도합니다. 그것은 남편의 영혼에 대한 간절한 갈망일 수도 있지만 또한 핍박이 없는 행복한 가정생활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습니다. 이기심이 무조건 다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근원 자체에 대한 갈망과 부수적인 것에 대한 갈망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뜨겁게 부르짖는다고 해서 그것이 다 주님께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부르짖고 뜨겁게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유익에 민감하고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주님께 대하여는 관심이 없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진정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주님 자신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을 알기 위하여 갈망하는 것입니다. 일보다 성공보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나 복보다 주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어떤 사역자들은 사람들의 평판을 얻는 것이나 안락한 삶을 주님 자신을 가까이 아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이들은 주님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충성된 종이기는 하지만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보다 일 자체에 더 열심인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주님을 가까이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을 닮으며 삶의 변화와 자유를 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많이 기도하고 간절히 기도하지만 항상 물질에 대해서 기도하고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며 자녀들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데만 몰두하며 현실의 문제를 위해서만 기도하고 주를 구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도 주님을 가까이 알지 못하며 주님의 마음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응답은 받지만 오래 믿어도 영계의 낮은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여전히 화를 내고 남을 판단하며 죄를 짓고도 죄책의 느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도무지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자신에 대한 순수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갈망이 있는 영혼은 너무나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제왕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갈망이 없는 이들은 죽은 영혼입니다. 그들에게는 복이 없습니다. 그에게 주님이 오실 수 없습니다. 주님을 알기는 알지만 피상적으로 알며 주님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 자기의 고통 해소에만 관심이 있는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이익만을 얻으려 하는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이들은 다이아몬드를 옆에 놔두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영혼에 대한 갈망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려야 합니다. 당신은 복음을 전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며 바보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이 삶에서 고통을 경험하고 자기 한계에 부딪쳐 절망할 때까지, 그리하여 주님과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길 때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왜 주님께 대한 갈망이 없는 것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일까요? 그들에게는 갈망 자체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안에 다른 갈망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안에 주님이 들어갈 자리를 다른 존재가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갈망, 자아에 대한 사랑, 편안한 삶에 대한 갈망, 세상의 욕망에 대한 갈망, 성공에 대한 집착, 갈망..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갈망, 영계에 대한 갈망, 주님에 대한 갈망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시인하면서도 이와 같은 헛된 갈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하지만 마음속에 세상과 자아에 대한 사랑과 갈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형식적인 신자들이며 천국의 진정한 기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갈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갈망의 종류는 많지만 사실 그것은 종합하여 단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주를 향한 갈망, 그리고 자기애와 세상을 향한 갈망입니다. 그것은 곧 천국을 향한 갈망과 지옥을 향한 갈망으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삶은 천국을 갈망하는 삶과 지옥을 갈망하는 삶, 단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애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자기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동시에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나 시기, 질투와 같은 대부분의 악들이 자기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초월한 사람만이 자유롭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은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주의 이름을 불러도 자기를 채우기 위하여 주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주님을 대적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주님이 자기 욕망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시면 주님을 찬양하지만 응답하지 않으시면 주님께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그는 주님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주지 않으면 주님을 미워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면 화를 내지만 사람들이 주님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을 때 몹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높여도 그는 별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애의 사람이며 곧 지옥의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복음은 이 자기애를 높여주고 세워줍니다. 그러나 이 복음은 잘못된 복음입니다. 자기애를 버리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그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마 16:24)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자아의 사랑과 기쁨을 버리고 주님의 기쁨을 구해야 하며 주님 자신을 구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자기애에서 벗어나고 해방되는 길입니다. 자기애를 버리지 않으면 끊임없이 다른 이들에게서 사랑을 갈구하며 인정받기를 구하며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판단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마음의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상처받고 조종하고 파당이 생기며 결국은 주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싸우고 갈라지고 깨어지는 것도 다 자기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랑이 소멸되고 주님 사랑이 가득해야 그 모임은 안전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치게 됩니다. 자기를 초월한 사람만이 진정 주님을 갈망할 수 있으며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이용해서 무엇을 얻으려 하지 않고 그분 자신을 구하는 이는 복 받은 것입니다. 그는 그분이 무한한 복의 근원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은총의 근원이십니다. 그분은 무한한 빛이십니다. 사랑이십니다. 평안이십니다. 영광이고 기쁨이십니다. 누가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누가 참된 기쁨을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원천은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는 무한한 빛의 통로와 연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자는 오직 주님을 갈망합니다. 그는 오직 주를 갈망합니다. 우리 안에 갈망이 있는 것이 왜 복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갈망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일으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망은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미가 코끼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새우가 고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정과 끌림은 동류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아담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지만 그들에게 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와를 그에게 데리고 왔을 때 그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그의 살과 뼈였으며 그와 동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망은 복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갈망이 있는 이는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갈망이 있는 것은 이미 주님께서 임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갈망을 주시고 그 갈망의 분량이 차도록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분량이 차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갈망은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적은 갈망으로는 주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보다 더 주를 갈망해야 합니다. 갈망이 없는 이들은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내게 사모함을 달라고, 내게 주께 대한 갈망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분의 가치를 알고 구하는 분에게 갈망을 주시며 갈망이 커질 때 임하십니다. 부디 이 갈망을 구하십시오. 항상 주를 구하십시오. 잠을 자면서 주를 부를 것이며 자다가 깨어도 주를 구하십시오. 하루 종일 주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주님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주님이 없으면 죽는 것이 낫겠다고 구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주님은 채우실 것입니다. 주님을 구하는 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가장 진기한 보화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 여기에서 보화는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사나 선물이 아니라 주님 자신입니다. 그 주님의 가치가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밭에 감추어졌다는 것은 주님이 오늘날 감추어지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도 주님의 가치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기도하고 구하는 이들은 많이 있지만 주님을 구하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작농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별로 소득을 얻기가 쉽지 않을 텐데 더구나 그가 농사하는 땅은 자기 땅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밭을 샀던 것입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땅을 사기 위해서도 그는 전 재산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서는 무력하고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천국에 대해서 열려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으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 주님 당시에 영리하고 학벌이 있고 똑똑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단순한 사람들은 주님을 좇았습니다. 그들은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나는 당신도 그 보화를 구하기 바랍니다. 진정 주님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의 임재와 얼굴을 구하십니까? 오직 갈망하십시오. 미칠 것 같이 갈망하십시오. 그 갈망을 구하십시오.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 최고의 복입니다. 그것은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교양 있게 점잖게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향하여 미치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감기에 걸리신 것이 아닙니다. 피부병에 걸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을 위하여 찢기셨으며 살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죽으셨습니다. 그러한 사랑에 적당히 믿고 적당히 사랑하는 것으로 갚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당신도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랑은 주님의 그 사랑과 구애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갈망하십시오. 갈망을 구하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보화입니다. 주님이 보화입니다. 주님이 천국의 문이며 천국의 보화입니다. 주님을 구하는, 갈망하는 것이 천국의 보화입니다. 갈망함으로 끊임없이 주를 부르십시오. 길을 가면서도, 차를 타고서도, 잠을 자면서도 계속 주를 부르십시오. 꿈속에서도 주를 구하십시오. 당신의 중심을 아시는 그분이 가까이 임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마음, 주님의 임재, 주님의 얼굴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천국을 얻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 하나님.. 주님.. 간절히 기도하고 구합니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우리에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목숨보다 주님을 갈망합니다. 주님..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얼굴과 마음을 보이시옵소서.. 주님의 이름과 그 영광을 찬양합니다. 오, 주님. 할렐루야..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ApostlePaul 작성시간 12.10.31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죽겠다고 결심한 썬다싱,
죽음보다 더한 갈망을 가지고 주님으로 미치라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살을 찢고 목숨을 내놓으신 것처럼,
나를 사랑해서 눈이 멀고 미친 사랑을 한 예수님처럼, 나도 주만 바라보고 미친 사랑으로 달려가요
아가페사랑에 이어 화요모임의 은혜를 나누어주신 사랑하는 형제님, 감사해요 -
작성자믿음 작성시간 12.10.31 할렐루야~~아멘^^
나는 없습니다 ...
주님만을 갈망 하는 저가 되길를 갈망합니다... -
작성자보아스A 작성시간 12.10.31 갈망은 자석과 같은것, 끌어당기는것,목숨보다 더 간절히,
나는 무슨기도에 갈망하는가.. 주님의 이름을 얼마나 갈망하는가...
자기애,잘못된복음...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안에 자기애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고 하셨나부다
오직 주님만을 갈망하리~
내영혼아~
주님만을 바라보자~
주님만이 나의 전부되도록~
깊은 말씀 감사해요~
축복해요~ -
작성자미스헤븐 아비가일 작성시간 12.12.15 감사합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