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기억 속의 하석주 선수......
글쓴이 김대영(cou0248) 조회수 696 작성일 2002-01-02 추천수 13 반대수 0
작년(벌써 작년이 되었네요...) 1월이었습니다.
주위의 아는 사람 몇명이 모여서 히딩크 호의 베스트 11을 뽑아 본적이 있습니다.
전 왼쪽 윙백자리에 주저없이 하석주 선수를 뽑았었지요...
저로서는 그 자리에 하석주 선수가 들어가야 한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이영표가 들어가야 한다 또는 2002까지 하석주가 뛸 수 있을까 하며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요...
그런 생각들도 있고 최근의 대표팀에서 하석주 선수를 볼 수 없기도 하고 해서...
솔직히 하석주 선수 많이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밑의 어느 분께서 말씀하신 KBS 에서 방영되었던 일요스페셜이었나요?
거기에서 하석주 선수의 인터뷰가 있었지요...
저도 그걸 봤습니다.
그리고 또 하석주 선수를 직접 봤습니다.
바로 상암동에서 있었던 FA컵 결승이었지요...
그 때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죠.
전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5000원을 주고 입장권을 샀습니다.
지금까지 상암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기를 관전하는구나(실제로는 크로아티아와의 개막전과 FA컵 결승 2경기밖에 안되지만 어찌됐던 지금까지는 전출이거든요^^) 라는 기쁜 맘으로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관중석이 이상했습니다.
상암구장의 북쪽(N석) 쪽으로 해서 들어갔습니다.(지하철 6호선에서 내리면 이 출입구로 들어가거든요)
이곳은 바로 골대 뒤쪽으로 연결되는 곳이지요.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A석이라고 할 만한 양쪽 사이드 라인의 1층이 텅 비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찬스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바로 그곳으로 뛰었지요.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곳에는 무슨 끈으로 철망(?)을 치고 경계 근무를 서는 축구협회에서 채용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그러더군요...
"이 곳은 초청장을 받은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이라고요..."
순간 어이가 없었습니다.
누구는 돈내고 들어와서 2층이나 골대 뒤에서 보라는 말이고 누구는 공짜로 들어와서 A석에서 보라는 말인가?????
하지만 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꽁짜표 막 뿌리고 그 사람들을 A석에 앉히는 높은 사람들의 잘못이지요...
경기 시작 30분 정도에 그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20%도 안됐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도 축구와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애기들 데리고 온 가족단위의 관람객들 또는 연인 사이처럼 보이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거기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전 그냥 포기하고 본부석 맞은 편 2층으로 올라가서 가장 앞자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경기 시작 10분 전...
여전히 A 석은 20%정도 찼습니다.
순간 반대편 본부석 쪽의 1층에서 사람들의 소요가 있더군요...
경기 시작 10분을 남기고 본부석 왼편을 지키고 있던 철조망이 인해전술로 무너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본부석 오른쪽, 본부석 맞은편 왼쪽, 오른쪽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지더군요...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 군중심리는 무섭더군요...
모두들 머리 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다가 한 쪽이 무너지니까 모두들 머리 속에 있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더군요...
뭐 아무튼 저도 재빨리 1층으로 내려가서 정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본부석 맞은 편 1층으로요...
정확히 위치를 말씀드리자면 크로아티아와 개막전 축하공연할 때 조영남 아저씨가 노래 불렀던 곳... 즉 때에 따라서 무대로도 쓰이는 곳...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이동이 가능하도록 바닥은 비록 철로 되어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보는 시각에서 왼쪽이 대전이고 오른쪽이 포항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축구 보는 실감이 나더군요.
근데 이게 웬 일입니까?
오른쪽에 포항진영이기 때문에 포항의 왼쪽 윙백을 보는 하석주 선수가 제 눈앞에서 공을 드리블하고 태클하고... 제 바로 앞에서 불과 10m도 되지 않는 곳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석주 선수...
전 이 선수의 플레이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 추운 날 다른 선수들이 긴팔을 입고 있는데 혼자서 반팔을 입고 경기에 열중하던 모습... 정말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흔히 하석주 선수를 왼발의 달인이라고 하지요...
제가 알기로는 하석주 선수는 91년인가 한 일 정기전을 통해 국가대표로 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아마 골을 넣었을 겁니다. 코너킥의 상황으로 기억되는데요... 코너킥 되어온 볼이 골키퍼 키를 넘겼는지 상대 헤딩을 넘겼는지 운 좋게 골 문 앞에 있던 하석주 선수에게 떨어졌고 하석주 선수는 거의 밀어 넣는 식으로 해서 골을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하석주 선수는 대표팀에 계속 뽑히게 되었고 김호 감독이 이끌었던 미국 월드컵 1차 예선인가에서는 5경기인가 연속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골게터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하석주 선수의 역할은 왼쪽 날개 또는 스트라이커 중의 한 명으로 인식되었지요. 그리고 왼발의 달인이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미국 월드컵에서는 솔직히 하석주 선수가 주전은 아니었지요...
그때는 왼쪽에 엄청난 고정운 선수가 있었고요...
그리고 왼쪽 윙백에는 신홍기 선수가 있었지요...
하석주 선수는 당시만 해도 고정운 선수의 자리를 대신할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왼쪽 윙에는 고정운 선수가 기용되었고 하석주 선수는 후반 교체 투입이 됩니다. 그것도 왼쪽 윙이 아니라 1-4-4-1에서 가운데 미드필더 또는 고정운과 자리바꿈을 하면서 윙 역할을 하는 위치로 기용이 되지요...
전에 하석주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하석주 선수에게 어떻게 해서 왼발의 달인이 되었냐고 질문을 했었지요...
그 때 하석주 선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94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의 실수가 나를 왼발의 달인으로 만들었다"라고요...
후반 로스타임 때일 겁니다.
중앙에 있던 선수가(기억이 나질 않네요) 황선홍 선수에게 스루패스를 넣어줍니다.(이 상황은 스페인 전 서정원 선수가 골 넣을 때 홍명보 선수가 황선홍 선수에게 넣어줬던 장면과 비슷합니다.) 황선홍 선수는 이 패스를 논스톱 힐 킥으로 뒤로 흘려주고 달려들던 하석주 선수는 골키퍼와 1:1 찬스르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 슛은 상대 골키퍼의 몸에 맞고 무산됩니다.
그 때 하석주 선수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었습니다. 얼굴에는 정말 찐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고 거의 울분을 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독일전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큰 활약 없이 하석주 선수는 월드컵을 끝냅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하석주 선수는 포지션 변화를 합니다.
바로 지금의 왼쪽 윙백 자리로 변경을 한 거지요...
당시 우리나라는 월드컵을 유치하려고 외국의 클럽들을 엄청나게 불러들여서 홍보전을 합니다. 그 때 우리나라의 왼쪽은 고정운, 하석주 라인이었지요... 전 정말 이 때의 왼쪽 라인을 잊지 못 합니다. 월드컵 때의 신홍기, 고정운 라인보다 기동력이 앞서고 둘 모두 왼발잡이이기 때문에 킥의 정확성이 훨씬 뛰어났습니다. 제가 볼 때는 이러한 두 선수의 조합이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어날 수만 있다면 정말 최고의 조합이 될 텐데요...
하석주 선수는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때...
비쇼베츠에 의해 황선홍, 이임생과 함께 와일드 카드로 선발이 됩니다.
그리고 첫 경기 가나와의 경기에 스타팅 멤버로 나서게 됩니다.
또 이 경기의 결승골이었던 페널티 킥을 만들어 냅니다.
왼쪽에서 치고 들어가다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공간으로 빠지는 황선홍에게 스루패스를 하고 가나 수비수가 황선홍에게 태클을 함으로써 페널티 킥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이 골이 윤정환에 의해서 결승골로 연결이 되고 우리나라는 승리를 하게 됩니다.
97년 하석주는 차범근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 왼쪽 윙백으로 다시 한 번 선발되고 월드컵 지역 예선에 출전합니다. 그리고 잠실벌에서 한 골을 터뜨립니다.
사우디와의 경기였나요?
최용수가 반칙성의 몸싸움으로 공간을 만들어 주고 하석주 선수는 왼발 슛을 통해 골을 뽑아 냅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때의 슛은 약간 빗맞은 듯 땅볼로 굴러갔는데 기가 막힌 코스로 굴러가 골이 됩니다.
그 골을 넣고 특유의 비행기 타는 듯한 골 세레모니를 합니다. 아직도 그 기억이 훤하군요...^^
98년 월드컵...
하석주 선수는 월드컵에서의 골이 모두 그와 관련이 있는 1골 1어시스트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실수 때문에 모든 비난을 한 몸에 받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베테랑 선수가 그 자리에서 그런 실수를 할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주심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는 순간 아니라고 손을 내젖는 모습이 기억나는 군요... 그 옆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고종수 선수 모습도 기억이 나고요...
벤치로 나오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이 클로즈 업이 됩니다.
그 때의 표정은 미국 월드컵 때 볼리비아 전의 모습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눈에서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하석주 선수가 국가대표팀에서 정말 경기다운 경기를 마지막으로 한 것이 한일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물론 히딩크 사단에서도 경기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그의 모습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잠실벌에서 윤정환의 패스를 받아 왼발 중거리 슛을 쏜 후 특유의 비행기 세레모니를 하며 운동장을 휘젓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석주 선수...
전 이 선수를 통해서 한국 축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 77년입니다.
워낙에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86월드컵(국민학교 3학년)때도 엄마한테 얘기해서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축구 경기를 보았습니다. 90, 94 때는 당연히 보았고요... 98때는 제가 훈련소에 있던 때에 월드컵이 열려서 생방송으로 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녹화한 테잎으로 모두 보았습니다.
하석주 선수가 국가대표로 데뷰한 91년에 전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축구를 보아왔지만 그 때는 정말 단기적인 관점으로만 축구를 보았지요...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선수가 후보로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누가 주전으로 나오느냐에만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의 계보를 있고 있는 선수들...
차범근... 86년 월드컵 때 3경기 본 것이 전부입니다.
최순호... 86, 90월드컵 때 보았지만 그저 경기만 보았지 선수를 본 것이 아닙니다.
김주성... 제가 축구에 눈을 떴을 때는 독일에 있었습니다.
황선홍, 홍명보... 이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데뷔했을 때의 모습 솔직히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석주...
전 이 선수가 국가대표 데뷰할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90년대를 풍미했던 국가대표 선수로 자신 있게 추천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90년대 하석주 선수의 축구 역사가 곧 한국 축구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하석주 선수...
선수로서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선수로서의 열정을 한국 K 리그에 쏟아 붙고 있습니다.
비록 2002 월드컵 때 그의 왼발을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전 이 선수를 영원히 기억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축구 선수로 베스트 11을 꼽으라고 해도
전 주저 없이 왼쪽 윙백에 하석주 선수를 꼽을 것입니다.
하석주 선수의 마지막 불꽃을 기대합니다.
글쓴이 김대영(cou0248) 조회수 696 작성일 2002-01-02 추천수 13 반대수 0
작년(벌써 작년이 되었네요...) 1월이었습니다.
주위의 아는 사람 몇명이 모여서 히딩크 호의 베스트 11을 뽑아 본적이 있습니다.
전 왼쪽 윙백자리에 주저없이 하석주 선수를 뽑았었지요...
저로서는 그 자리에 하석주 선수가 들어가야 한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이영표가 들어가야 한다 또는 2002까지 하석주가 뛸 수 있을까 하며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요...
그런 생각들도 있고 최근의 대표팀에서 하석주 선수를 볼 수 없기도 하고 해서...
솔직히 하석주 선수 많이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밑의 어느 분께서 말씀하신 KBS 에서 방영되었던 일요스페셜이었나요?
거기에서 하석주 선수의 인터뷰가 있었지요...
저도 그걸 봤습니다.
그리고 또 하석주 선수를 직접 봤습니다.
바로 상암동에서 있었던 FA컵 결승이었지요...
그 때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죠.
전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5000원을 주고 입장권을 샀습니다.
지금까지 상암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기를 관전하는구나(실제로는 크로아티아와의 개막전과 FA컵 결승 2경기밖에 안되지만 어찌됐던 지금까지는 전출이거든요^^) 라는 기쁜 맘으로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관중석이 이상했습니다.
상암구장의 북쪽(N석) 쪽으로 해서 들어갔습니다.(지하철 6호선에서 내리면 이 출입구로 들어가거든요)
이곳은 바로 골대 뒤쪽으로 연결되는 곳이지요.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A석이라고 할 만한 양쪽 사이드 라인의 1층이 텅 비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찬스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바로 그곳으로 뛰었지요.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곳에는 무슨 끈으로 철망(?)을 치고 경계 근무를 서는 축구협회에서 채용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그러더군요...
"이 곳은 초청장을 받은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이라고요..."
순간 어이가 없었습니다.
누구는 돈내고 들어와서 2층이나 골대 뒤에서 보라는 말이고 누구는 공짜로 들어와서 A석에서 보라는 말인가?????
하지만 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꽁짜표 막 뿌리고 그 사람들을 A석에 앉히는 높은 사람들의 잘못이지요...
경기 시작 30분 정도에 그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20%도 안됐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도 축구와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애기들 데리고 온 가족단위의 관람객들 또는 연인 사이처럼 보이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거기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전 그냥 포기하고 본부석 맞은 편 2층으로 올라가서 가장 앞자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경기 시작 10분 전...
여전히 A 석은 20%정도 찼습니다.
순간 반대편 본부석 쪽의 1층에서 사람들의 소요가 있더군요...
경기 시작 10분을 남기고 본부석 왼편을 지키고 있던 철조망이 인해전술로 무너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본부석 오른쪽, 본부석 맞은편 왼쪽, 오른쪽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지더군요...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 군중심리는 무섭더군요...
모두들 머리 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다가 한 쪽이 무너지니까 모두들 머리 속에 있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더군요...
뭐 아무튼 저도 재빨리 1층으로 내려가서 정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본부석 맞은 편 1층으로요...
정확히 위치를 말씀드리자면 크로아티아와 개막전 축하공연할 때 조영남 아저씨가 노래 불렀던 곳... 즉 때에 따라서 무대로도 쓰이는 곳...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이동이 가능하도록 바닥은 비록 철로 되어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보는 시각에서 왼쪽이 대전이고 오른쪽이 포항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축구 보는 실감이 나더군요.
근데 이게 웬 일입니까?
오른쪽에 포항진영이기 때문에 포항의 왼쪽 윙백을 보는 하석주 선수가 제 눈앞에서 공을 드리블하고 태클하고... 제 바로 앞에서 불과 10m도 되지 않는 곳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석주 선수...
전 이 선수의 플레이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 추운 날 다른 선수들이 긴팔을 입고 있는데 혼자서 반팔을 입고 경기에 열중하던 모습... 정말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흔히 하석주 선수를 왼발의 달인이라고 하지요...
제가 알기로는 하석주 선수는 91년인가 한 일 정기전을 통해 국가대표로 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아마 골을 넣었을 겁니다. 코너킥의 상황으로 기억되는데요... 코너킥 되어온 볼이 골키퍼 키를 넘겼는지 상대 헤딩을 넘겼는지 운 좋게 골 문 앞에 있던 하석주 선수에게 떨어졌고 하석주 선수는 거의 밀어 넣는 식으로 해서 골을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하석주 선수는 대표팀에 계속 뽑히게 되었고 김호 감독이 이끌었던 미국 월드컵 1차 예선인가에서는 5경기인가 연속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골게터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하석주 선수의 역할은 왼쪽 날개 또는 스트라이커 중의 한 명으로 인식되었지요. 그리고 왼발의 달인이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미국 월드컵에서는 솔직히 하석주 선수가 주전은 아니었지요...
그때는 왼쪽에 엄청난 고정운 선수가 있었고요...
그리고 왼쪽 윙백에는 신홍기 선수가 있었지요...
하석주 선수는 당시만 해도 고정운 선수의 자리를 대신할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왼쪽 윙에는 고정운 선수가 기용되었고 하석주 선수는 후반 교체 투입이 됩니다. 그것도 왼쪽 윙이 아니라 1-4-4-1에서 가운데 미드필더 또는 고정운과 자리바꿈을 하면서 윙 역할을 하는 위치로 기용이 되지요...
전에 하석주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하석주 선수에게 어떻게 해서 왼발의 달인이 되었냐고 질문을 했었지요...
그 때 하석주 선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94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의 실수가 나를 왼발의 달인으로 만들었다"라고요...
후반 로스타임 때일 겁니다.
중앙에 있던 선수가(기억이 나질 않네요) 황선홍 선수에게 스루패스를 넣어줍니다.(이 상황은 스페인 전 서정원 선수가 골 넣을 때 홍명보 선수가 황선홍 선수에게 넣어줬던 장면과 비슷합니다.) 황선홍 선수는 이 패스를 논스톱 힐 킥으로 뒤로 흘려주고 달려들던 하석주 선수는 골키퍼와 1:1 찬스르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 슛은 상대 골키퍼의 몸에 맞고 무산됩니다.
그 때 하석주 선수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었습니다. 얼굴에는 정말 찐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고 거의 울분을 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독일전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큰 활약 없이 하석주 선수는 월드컵을 끝냅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하석주 선수는 포지션 변화를 합니다.
바로 지금의 왼쪽 윙백 자리로 변경을 한 거지요...
당시 우리나라는 월드컵을 유치하려고 외국의 클럽들을 엄청나게 불러들여서 홍보전을 합니다. 그 때 우리나라의 왼쪽은 고정운, 하석주 라인이었지요... 전 정말 이 때의 왼쪽 라인을 잊지 못 합니다. 월드컵 때의 신홍기, 고정운 라인보다 기동력이 앞서고 둘 모두 왼발잡이이기 때문에 킥의 정확성이 훨씬 뛰어났습니다. 제가 볼 때는 이러한 두 선수의 조합이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어날 수만 있다면 정말 최고의 조합이 될 텐데요...
하석주 선수는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때...
비쇼베츠에 의해 황선홍, 이임생과 함께 와일드 카드로 선발이 됩니다.
그리고 첫 경기 가나와의 경기에 스타팅 멤버로 나서게 됩니다.
또 이 경기의 결승골이었던 페널티 킥을 만들어 냅니다.
왼쪽에서 치고 들어가다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공간으로 빠지는 황선홍에게 스루패스를 하고 가나 수비수가 황선홍에게 태클을 함으로써 페널티 킥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이 골이 윤정환에 의해서 결승골로 연결이 되고 우리나라는 승리를 하게 됩니다.
97년 하석주는 차범근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 왼쪽 윙백으로 다시 한 번 선발되고 월드컵 지역 예선에 출전합니다. 그리고 잠실벌에서 한 골을 터뜨립니다.
사우디와의 경기였나요?
최용수가 반칙성의 몸싸움으로 공간을 만들어 주고 하석주 선수는 왼발 슛을 통해 골을 뽑아 냅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때의 슛은 약간 빗맞은 듯 땅볼로 굴러갔는데 기가 막힌 코스로 굴러가 골이 됩니다.
그 골을 넣고 특유의 비행기 타는 듯한 골 세레모니를 합니다. 아직도 그 기억이 훤하군요...^^
98년 월드컵...
하석주 선수는 월드컵에서의 골이 모두 그와 관련이 있는 1골 1어시스트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실수 때문에 모든 비난을 한 몸에 받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베테랑 선수가 그 자리에서 그런 실수를 할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주심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는 순간 아니라고 손을 내젖는 모습이 기억나는 군요... 그 옆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고종수 선수 모습도 기억이 나고요...
벤치로 나오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이 클로즈 업이 됩니다.
그 때의 표정은 미국 월드컵 때 볼리비아 전의 모습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눈에서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하석주 선수가 국가대표팀에서 정말 경기다운 경기를 마지막으로 한 것이 한일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물론 히딩크 사단에서도 경기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그의 모습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잠실벌에서 윤정환의 패스를 받아 왼발 중거리 슛을 쏜 후 특유의 비행기 세레모니를 하며 운동장을 휘젓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석주 선수...
전 이 선수를 통해서 한국 축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 77년입니다.
워낙에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86월드컵(국민학교 3학년)때도 엄마한테 얘기해서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축구 경기를 보았습니다. 90, 94 때는 당연히 보았고요... 98때는 제가 훈련소에 있던 때에 월드컵이 열려서 생방송으로 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녹화한 테잎으로 모두 보았습니다.
하석주 선수가 국가대표로 데뷰한 91년에 전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축구를 보아왔지만 그 때는 정말 단기적인 관점으로만 축구를 보았지요...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선수가 후보로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누가 주전으로 나오느냐에만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의 계보를 있고 있는 선수들...
차범근... 86년 월드컵 때 3경기 본 것이 전부입니다.
최순호... 86, 90월드컵 때 보았지만 그저 경기만 보았지 선수를 본 것이 아닙니다.
김주성... 제가 축구에 눈을 떴을 때는 독일에 있었습니다.
황선홍, 홍명보... 이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데뷔했을 때의 모습 솔직히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석주...
전 이 선수가 국가대표 데뷰할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90년대를 풍미했던 국가대표 선수로 자신 있게 추천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90년대 하석주 선수의 축구 역사가 곧 한국 축구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하석주 선수...
선수로서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선수로서의 열정을 한국 K 리그에 쏟아 붙고 있습니다.
비록 2002 월드컵 때 그의 왼발을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전 이 선수를 영원히 기억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축구 선수로 베스트 11을 꼽으라고 해도
전 주저 없이 왼쪽 윙백에 하석주 선수를 꼽을 것입니다.
하석주 선수의 마지막 불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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