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재림의 과정 (4) - 요한계시록 : 마지막 때 주요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 (Time-lines)

작성자아브라함|작성시간21.02.07|조회수2,688 목록 댓글 0

4- 요한계시록 : 지막 때 주요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 (Time-lines)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때를 넘어서 최종적인 회복까지의 일들이 자세히 계시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모든 다른 부분들의 종합적인 결말로서의 계시가 나타나고 있는 성경의 마지막 책으로써, 창세기부터 나타나는 하나님의 예언적 약속들의 성취가, 하나의 드라마와 같이 웅장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보통 처음 주시는 예언의 계시는 "발아적(發芽的) 성격"을 띠고 있다. 살아 있으나 아직 유아적인 모습과 같다. 그러나 이제 점차 성장하면서 보다 뚜렷한 모양새를 보여 주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창세기로부터 시작하는 모세 오경은 계시의 유아적 단계를 띠고 있고, 점차 역사서와 시가서 등으로 가면서 계시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며, 선지서는 미래적인 회복에 대한 전반적인 전망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앞선 계시는 뒤따르는 계시의 기초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약의 말씀에 견고히 설 때에, 뒤따르는 신약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 원리를 붙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 전체는 신약 성경의 "기초"가 된다. 기초와 연결되지 않거나 그 연결 상태가 견고하지 않은 기둥들로 지어진 집은 쉽게 무너질 것이다. 사복음서는 "기둥들"이 되고, 서신서들은 "들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위에 덮여지는 "지붕"이 바로 계시의 최고봉으로서 요한계시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서 사용하고 있는 상징적 용어들이나 여러 사건들의 내용들은, 다른 성경의 내용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세히 살펴서 그 연결 관계를 깨닫게 되면, 성경적인 바른 해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요한계시록이 좀 더 깊이 있게 해석되면, 다른 성경의 예언의 말씀들도 보다 분명하게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 요한계시록의 연속적이고 동시적인 전개 방식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처음 도입 부분(계 1:1-8)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당부의 말씀(계 22:6-21)으로 마치게 되는데, 그 중간의 부분은 요한이 계시를 받고 기록하는 생생한 과정이 잘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계시록 1:19절은, 이 중간의 내용에 대해서 3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곧 "네가 본 것"(계 1:9-20)과 "지금 있는 일"(계 2~3장)과 "장차 될 일"(계 4:1-22:5)이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 1:19)"

 

여기서 세 번째 부분인 "장차 될 일"에 해당되는 계 4:1-22:5절의 내용들의 전반적인 흐름을 볼 때, 세 가지의 분명한 특징이 있음을 보게 된다.

 

첫째는, 이 부분의 계시의 전달자는 천사들이고, 계시의 수령자는 요한인데, 계시를 받는 순서대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몇 군데에 단락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용들이 시간순으로 혹은 연속적인 방식으로, 미래에 성취되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셋째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동시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순서적으로 미래에 성취되고 있다.

 

다만 두 가지 예외적인 부분이 있는데, 첫째는 계시의 전달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적인 대화나 행동 등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선지서들 중에도, 계시를 받는 처음 시점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된 책들이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처럼, 열린 환상(open vision)을 통해 계시가 전달된 경우들이 있는데, 에스겔서, 다니엘서, 스가랴서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계시는, 밧모 섬에 있던 요한이 성령 안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리고, 인자 같은 이에 대한 환성을 보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후에 몇 번에 걸쳐서 계시의 영역이 바뀌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때마다 계시의 전달자들과 계시의 수령자인 요한과의 의사소통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몇몇 선지서에도 계시가 전달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러한 내용들을 잘 이해할 때, 전달받은 계시의 내용들을 해석하는 데에, 더 많은 단서들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겔 3:14-15; 단 10:10-13; 슥 4:1-6).

 

둘째는 계시록의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더 온전한 이해를 위해, 추가되고 삽입되는 계시의 내용들이다. 이 부분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이 극심한 이유를 알게 하는 묵적과 또한 믿는 성도들의 미래적인 구원과 상급이 확고함을 보여 주는 목적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제 이 계시록 본문에서, 세 가지 특징들과 두 가지 예외적인 부분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그 근거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1. 하늘의 보좌에서 시작되는 마지막 때 일들 (계시록 4-5장)

 

"장차 될 일"은 계시록 4장에서 보좌로부터 시작된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마디로 충만한 영광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계시록 5장에서는 찬양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에 속한 장엄한 역사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일곱 인이 떼어질 때 땅에서는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계시록 4-5장의 내용이 미래의 시점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분명한 근거들을 보게 된다. 계 4:1절에서는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이란 표현을 통해서, 계 4:2절 이후의 내용이 미래적으로 성취될 사건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미래적인 사건들의 내용들은 땅의 일만이 아니라,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과 동시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인을 떼는 것, 나팔을 부는 것, 대접을 붓는 것 등은 모두 미래에 하늘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동시에 땅의 일들과 연결되어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울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 4:1)

 

더 나아가 일곱 인과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과 관련된 사건들은, 전체 내용에서 소위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보좌 앞에서부터 시작되는 사건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다만 계 5:4-5절에서 요한이 크게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요한이 계시를 받는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이 "이리로 올라오라"(계 4:1)는 말씀을 듣고,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의 보좌를 보게 되지만(계 4;2), 그가 미래의 하늘의 현장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요한이 들어간 곳은 계시의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써, 미래에 성취될 계시의 영역이다. 계시록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러한 상황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천사가 요한을 다른 차원의 계시적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내용들이다(계 17:1, 21:9-10).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5:4-5)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계 17:1)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 21:9-10)

 

한편 보좌 앞에서의 모든 상황 속에 참여하고 있는 장로들(계 4:4, 10, 5:6, 8, 11, 14) 중의 하나가 요한에게 직접 말하고 있기(계 5:4-5) 때문에, 계시록 4-5장에서 보좌 앞에서의 모든 일들이 요한이 살던 그 당시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잘 살펴본다면, 계시록 4~5장의 전반적인 내용들은 장로들이나 네 생물들을 포함해서, 미래적 시점에서 이루어질 계시인데, 다만 요한이 반응하는 현재적인 시점에 한 장로가 개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이처럼 미래적인 계시들을 보여 주던 천사가, 현재적인 소통을 위해, 요한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경우가 여러 번 나온다.

 

예를 들자면, 계 7:13-14절에서, 보좌 앞에 나아와 찬양하는, 자신의 옷을 어린 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한,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에 대해, 장로 중에 하나가 요한에게 말하는 장면, 또 계 10:8-11절과 11:1절에서, 힘 센 천사가 일곱째 나팔의 사건에 대해 선포한 후에, 요한에게 두루마리를 주어 먹게 하고, 성전을 측량하기 위해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는 장면, 계 14:13절에서 하늘의 음성이 요한에게 말하고 있고, 성령의 음성이 요한에게 현재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장면, 계 17:1절과 계 21:9-10절에서 일곱 대접을 부었던 천사들 중의 하나가, 요한에게 다른 차원에서 계시를 전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면, 계 19:10절과 계 22:8-9절에서 계시를 전하는 천사에게 요한이 경배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만 경배하라는 천사의 권고를 듣는 장면 등이다.

 

따라서 계시록 전체적으로 미래적 계시의 내용에 나타나는 존재들이, 요한 당시에 현재적으로 다가와서 대화하거나 계시를 전하는 장면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기에, 계시록 5장의 요한이 울고 장로가 말하게 되는 사건(계 5:4-5)도, 계시를 받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 일곱 인의 적용 범위 (계시록 6-7장)

 

일곱 인을 떼는 사건이 연속적이고 동시적인 성격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의견의 핵심은, 일곱 인을 뗄 때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사건들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따라서 일곱 인의 내용들 전체가 일곱 나팔의 사건들 이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계시록 본문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서, 계시록의 전개 방식에 대한 적절한 이해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먼저 첫째부터 넷째 인까지를 본다면, 어린 양이 인을 떼시고, 그 때에 네 생물이 각각 "오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데, 이 두 가지 행위들은 모두 하늘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 직후에 땅에서도 네 가지의 색깔의 말과 그 탄 자들이 각각 나타나게 되고, 또 각각에 해당되는 땅의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심지어 셋째 인의 사건에서는 검은 말이 나온 직후에, 네 생물 사이에서 계시적인 음성이 들리는 장면이 나온다(계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헤치지 말라하더라" (계 6:6)

 

이러한 패턴을 볼 때, 인을 떼는 일은 현재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고, 땅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미래에 성취될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 사이에 네 생물들이 각각 "오라"라고 외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네 생물들은 계시록 4-5장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었고, 계시록 6장 이후에도 보좌 앞에서 일어나는 미래적 사건들에 계속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7:11, 14:3, 15:7, 19:4). 따라서 첫째부터 넷째 인의 사건들은, 미래의 시점에 연속적인 시간 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또한 하늘과 땅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의 사건은 그 내용 안에서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섯째 인은 순교자의 호소가 나오고, 또 더 많은 자들이 이후에 죽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렇게 주의 백성들이 죽임 당하는 일은 재앙이 아니라 환난(마 24:15-21)이며, 이 일은 계 7:14절에서 "큰 환난"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인의 사건 이후에 이어지는 여섯째 인의 사건에서 모든 천체의 진동과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의 나타남은, 그 수가 채워진(계 6:11) 하나님의 종들의 죽임 당함에 대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반응이며, 따라서 여섯째 인의 사건은 다섯째 인의 사건들 직후에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계 7:14절은 땅에서 큰 환난을 당한 자들이, 후에 하늘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 모습을 보여 준다. 따라서 다섯째와 여섯째 인의 사건들도 시간적으로 연속적이면서, 땅과 하늘에서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7:13-14)

 

또한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이 연결된다는 근거 구절이 계 7:1-3절인데, 사방의 바람을 붙들어서 땅과 바다와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고, 또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들이 나오고 있다. 이 일들은 첫째부터 넷째 나팔이 불어질 때에 나타날 일들과 연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계 8:7-13).

 

그렇다면 계 7:1-3절과 연이어 일어나는 144,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인침을 받는 사건은, 일곱 나팔 이전에 사건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44,000명의 인침 받은 사건 후에 허다한 무리가 보좌 앞에서 찬양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데,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계 7:9-14). 여기서 언급되는 큰 환난은 다섯째 인의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한편, 계 7:15-17절의 내용은, 장로가 요한에게 말하는 것으로써, 그 이후로부터 있게 되는 영원한 삶의 모습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 8:1절에서 일곱째 인이 떼어지는 사건은, 계 7:15-17절의 내용에서 연결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 7:14절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계 8:1절에서 일곱째 인을 떼시기까지, 첫째부터 여섯째 인의 사건이 순서적이면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3. 일곱 나팔과 삽입된 계시의 내용들 (계시록 8~14장)

 

계 8:1절에서 일곱째 인이 떼어지고 반시간의 고요함이 있게 되면서, 일곱 인의 사건들이 마무리 되며, 계 8:2절에서 곧바로 일곱 나팔이 일곱 천사들에게 주어진다는 언급이 나오고 있다. 이와같이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사건이 곧바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 모든 내용들이 순서대로 연결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연속성과 동시성이 계시록 6-9장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는데, 계 7:1-3절이 계시록 8장에서 첫째부터 넷째 나팔의 사건들로 연결되고 있는 것을 통해. 연속성과 동시성이 증명되고 있음을 이미 언급하였다.

 

또한 계 9:4절에 보면,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 다섯째 인의 사건에서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계 7:4-8절에서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인침을 받는 사건이, 9장에 나오는 다섯째 나팔 사건과 연결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계시록은 이전의 사건이 이후의 사건과 연결되어 진행되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시록 자체 내에서 연속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여섯째 나팔 사건 이후에 나오는 계시록 10장의 힘 센 천사가 선포하는 내용은, 계시록 11장에 나오는 일곱째 나팔의 사건에 대한 의미를 강력하게 선언해 주고 있다. 또한 이어지는 계시록 11장의 성전과 예루살렘의 짓밟힘 그리고 두 증인의 사역에 대한 내용들은, 계 11:15절의 선포와 계 11:17-18절의 경외하는 자들에게 보상이 있을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제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 11:15)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 소시다 하더라" (계 11:17-18)

 

계시록 12-13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그 주요 원인이 되는 큰 용과 짐승의 세력들의 활동에 대해 계시하고 있다. 이 내용들은 삽입되는 내용인데, 사탄의 반역 초기부터의 내용과 짐승의 활동 초기에서부터 언급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왜 그렇게 극심한지, 또 그 악의 세력들이 어떤 박해를 성도들에게 가해 왔는지, 또 앞으로 가하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심판은 불가피하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들의 활동에 대해 기간을 정해 놓으셨음을 언급하고 있음을 통해서, 이들이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계 14:1-5절에서는, 144,000명이 첫 열매요, 하나님께 속한 자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구원의 반열에서 본보기가 되는 자들로서, 계 14:14-16절에 나오는 곡식의 추수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다음에 계 14:6-12절에 나오는 세 천사들의 선포들은, 계 14:17-20절에 나타나는 최종적인 심판에 대해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계시록 14장의 뒷부분에 나오는 "곡식의 추수"와 "포도송이의 추수"는, 각각 성도의 부활과 휴거의 사건, 그리고 대적하는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 12-13장과는 달리, 계시록 14장의 내용들은 일곱째 나팔이 불어진 후에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의 부활과 휴거가 있게 되는 시기는 일곱 대접의 재앙 이전인데, 반면 계 14:17-20절의 사건은, 시간적으로 볼 때 일곱 대접의 심판 이후에 있는 계시록 19장의 주의 날에 있을 전쟁의 심판을 보여주는 계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계 14:20절이 "성 밖에서 심판의 포도주 틀에 밟힌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나오고 있기 때문인데, 주의 날에 예루살렘을 쳐들어오는 이방의 군대들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심판의 재앙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욜 3:2).

 

 

4. 일곱 대접과 바벨론의 멸망 (계시록 15-18장)

 

일곱 인에서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으로 갈수록, 나타나는 재앙의 정도가 더욱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곱 인의 사건들의 경우, 환난으로 인한 죽임 당함과 그에 대한 천체의 진동과 어린 양의 진노의 계시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단계는 아직 직접적인 시행의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넷째 인에서 땅의 4분의 1의 영역에서 죽음이 나타난다고 했고, 여섯째 인에서 천체의 징조는 두렵지만 직접적인 피해가 있지는 않으며, 아직은 하나님의 진노가 실제적으로 표출괴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곱 나팔의 사건에서는, 더욱 강력한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땅과 바다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타격을 받는다. 다섯째 나팔에서 사람들이 죽지는 않지만 전갈이 사람을 쏠 때와 같은 괴롭힘을 받으며, 여섯째 나팔에서는 3분의 1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일시에 죽임을 당한다. 다만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지고, 커다란 피해가 있으나 이것도 주로 3분의 1에 해당되는 제한되는 수준에서 일어난다.

 

반면, 계시록 16장에서 일곱 대접의 사건으로 들어가면, 악한 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심판의 형태로 재앙이 온다. 지역적으로도 모든 곳을 망라해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그리고 모든 열방에서 군대가 모여 온다. 그리고 바벨론을 비롯한 모든 민족들의 성들이 무너진다. 각 섬과 산들도 다만 옮겨지는 정도(계 6:14)가 아니라, 없어져 버린다(계 16:20). 큰 우박이 떨어지는 것도 제한된 지역이 아니다. 그야말로 모든 지역에 모든 사람들이 다 고통을 받게 되는 수준의 재앙인 것이다.

 

그리고나서 계 19:11-21절에 나오는 심판은, 주께서 이 땅에 내려와서 그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을 통해 대적들을 죽이고, 심판의 시행이 완전하게 나타나는 수준의 재앙이다. 이렇게 주의 영광의 임재로부터 나오는 심판의 시행은 가장 크고 두려운 것이기에, 이 날을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욜 2:31, 말 4:5, 행 2:17).

 

이렇게 재앙의 정도가 커진다는 것도, 연속성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계 15:1절에서 일곱 대접을 위한 준비가 갖추어지고, 계 15:2절부터는 짐승과 그 우상과 그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이 구원받고 찬양 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계시록 13장에서 나오는 박해의 내용이 연결되어 나타나게 되는 결과이며,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구원과 보상을 받게 되는 장면인 것이다.

 

계 15:6-7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각 대접에 담겨지고, 진노의 대접을 땅에 쏟아버리는 일이 온전히 준비되어지면서, 모든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계 16:1절에서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각 대접들이 연속적으로 부어지고 각각의 사건들이 땅에 나타나게 된다.

 

계 16:12-15절에 나오는 여섯째 대접의 사건은, 계 19:11-2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땅에 임하심 직후의 심판을 위하여 일어나는 내용이다. 그것은 계 16:14절에서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계시록의 내용은 연속적인 사건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계 16:17-21절의 일곱째 대접의 사건에는,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는 일이 나온다. 이 내용은 계시록 17-18장에서, 그 이유와 상세한 전개 과정이 설명되고 있다.

 

계시록 17-18장은 요한에게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내용들과 계시록 16장을 이어서 미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내용이 교차되고 있다.

 

계시록 17장은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중에 하나가 요한에게 말하면서, 보여 주고 들려주는 내용이다. 반면 이어지는 계시록 18장은 "이 일후에"라는 접속어와 함께 시작되는데, 이는 계 16:19절에 나타나는 바벨론이 무너지는 사건과 연결되어 이어진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계 18:1-3절의 내용은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힘찬 음성으로 바벨론이 무너졌음을 선포하고, 그가 심판받는 이유를 선언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계 18:21-24절의 내용도, 바벨론이 멸망당한 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넣는 사건이다. 이 사건도 바로 전에 천사가 선포했던 일(계 18:1-3)에 이어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계 18:4-20절까지는, 하늘로부터 나오는 다른 음성이 말하는 내용이다. 이 부분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러 곳에서 “미래형 시제”를 사용하고 있어서, 요한에게 직접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계 19:1-2절에서는, 바벨론으로 지칭되는 음녀의 멸망이 참되고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선포하는 찬양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일곱 나팔이나 일곱 대접의 심판이 그처럼 극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짐승과 바벨론의 세력의 사악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 주의 날과 그리스도의 통치와 새 예루살렘 (계시록 19-22장)

 

연속적인 재앙들을 통해 바벨론의 멸망까지 이르렀고, 이제 백마를 타고 붉은 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심판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으로 나타난다. 계 19:20절에는, 계시록 13장에서 거짓 선지자가 행했던,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게 사람들을 표적으로 미혹했던 일들을 다시 언급하면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멸망 당하는 이유를 보여 주고 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계 19:20)

 

그리고 계 20:4절에는 이러한 일들을 이기고 죽음 당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도 계시록 13장의 내용을 연결해서, 성도들의 상급이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후에 계 20:7-10절에서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일어나고, 계 20:11-15절에서 크고 흰 보좌 심판 때에 모든 자들이 다시 살아나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계 21:9절부터 22:2절까지는, 새 예루살렘의 회복된 모습이 나온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가운데 멸망당한 것과 대조적으로 새 예루살렘은 영광이 가득하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회복될 영원한 성도의 부르심의 성취가 나오는데, 계 22:3-5절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섬기며, 그 분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과 어린 양의 이름이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는 영원히 영광의 빛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종들이 세세토록 왕노릇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장면들은, 바로 이 최종적인 회복을 향해 전개되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내용들이 마지막까지 연속적인 시간 순으로 기록되어지고 있고, 땅과 하늘이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2] 상징적 해석의 적용 범위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문자적인 내용 자체가 일반적인 인간적 심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느껴지면, 이를 실제적인 성취가 아닌 다만 상징적으로만 성취된다고 해석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하게 붙잡아야 할 점은, 하늘과 땅은 없어질 수 있더라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실제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특히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의 재림의 과정에 있어서, 크게 네 가지 차원에서 엄청난 재앙들이 있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곧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백마 탄 그리스도의 심판의 전쟁" 등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모든 사건들을 단지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또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통치"하는 것과 그 사이 "사탄이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 잠시 풀려나서 만국을 미혹하게 되는 것", 그리고 "크고 흰 보좌의 심판" 등, 이 모두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들인가?

 

성경 안에서 직접적으로 선포된 사건 중 어느 한 가지 내용이라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성취되는 것이요, 실제적으로는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요, 우리의 믿음의 기초를 흔드는 차원인 것이다. 또 요한계시록은 이 예언의 말씀의 한 부분을 빼거나 더할 때, 어떤 심판이 이루어지는지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최악의 수준을 의미한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왜 그럴까? 이 요한계시록의 한 부분의 의미를 약화시킨다면, 성경의 다른 부분들의 말씀도 변화시켜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로서 서로 한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리의 속성을 분명히 알게 된다면,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되고, 결국 모든 진실을 바꾸어야 거짓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의 예언된 한 사건을 문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적용은 모든 다른 성경적 사건들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며, 결국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을 상징적인 의미로 바꾸어 버려야 할 것이다.

 

한편 성경의 예언의 말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곳에서 상징적인 표현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이 그 성경 본문 자체 안에서 적절한 해석을 해주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성경을 통해서 그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계 1:20절에서 요한이 본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요,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임을 주님이 직접 해석해 주고 계신다. 요한이 본 것은 하늘로부터 온 환상의 내용인데, 그것들은 이 땅의 언어로 해석되어 전달될 필요가 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 1:20)

 

구약의 선지서에도 이와 같이 환상들을 보여 주시고 나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해석해 주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 주시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고 해석해 주신다(렘 1:11-12). 또한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지는 끓는 가마를 보이시고 나서, 북방에서 오는 재앙이 있어서 북방 왕국들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올 것이라고 해석해 주신다(렘 1:13-15).

 

또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이 언급되는 구절들이 많은데, 그 어린 양은 일찍 죽임을 당하신 분이요, 유다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로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계시해 주고 있다(계 5:5-6).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계 5;5-6)

 

다만 요한계시록 자체에서 그 어린 양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다른 성경의 내용들과 연결하여 볼 때, 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신약 성경에서 어린 양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구절들이 많이 있으며(요 1:29, 36; 행 8:32; 벧전 1:19), 구약에서의 유월절에 관한 말씀이나 제사와 관련된 모든 말씀 안에서 희생 제물이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상징적인 표현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의 기초 위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36)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행 8:32)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9)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상징의 표현들은, 예언의 말씀의 실제적 성취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제시하고 온전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적 환상이나 말씀들은 반드시 실제적으로 일어날 사건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일이 너무도 엄청난 사건일지라도,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광대하고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이 행하실 구원과 회복의 일이 크고 놀라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멘!

 

 

​[3]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주요 사건들과 그 시기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 및 "일곱 대접"의 사건들을 핵심적인 구조로 하여, 전체적인 시간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고, 그 중간에 다른 사건들이나 설명을 위한 내용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내용들이 완벽하게 시간적 순서를 따라 기록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대부분은 시간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인의 "흰 말"과 "그 탄 자"는 "거짓과 미혹"을 의미하고, 둘째 인의 "붉은 말"과 "그 탄 자"는 전쟁과 큰 학살을 의미하며, 셋째 인의 "검은 말"과 "그 탄 자"는 커다란 기근을 의미하며, 넷째 인의 "청황색 말"과 "그 탄 자"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 내용들은 마 24:8절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진통(재난)의 시작"의 일들과 동시대적인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인이 떼어질 때, "흰 말과 그 탄 자" 곧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세계적인 커다란 거짓과 미혹이 있게 될 것인데, 그것이 공공연하게 나타나는 시점은 단 9:27절에 나오는 "한 이레의 언약"을 견고하게 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때는 적그리스도가 한 이레 언약에서 주도권을 잡고, 국제적인 지도자로 부상되는 그 시점인데, 그것은 첫째 인과 관련된 흰 말과 그 탄 자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때이며, 이때로부터 "국제적인 커다란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한 이레의 언약"이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한 이레의 중간인 "후 3년 반"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볼 때, 이미 성전이 지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 24:15)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이 언약을 왜곡시키고 무너뜨리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다니엘서 11장에 "거룩한 언약"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기록하고 있는(단 11:28, 30) 것이 이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다니엘서를 다룰 때 좀 더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또한 다니엘서 9장에 나타나는 "칠십 이레"는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을 위하여 정한 기간"이라는 성격이 담겨 있으므로(단 9:24), "한 이레"도 동일하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과 관련된 기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회복되었다는 의미는, 그 백성들의 "고토 귀환"(알리야)과 "성전 건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니엘 당시에도 그 백성들의 고토 귀환과 성전 건축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요건이었음을 볼 때(에스라 1:1-4), 마지막 때에도 이 두 가지 요건이 성취되는 것이 핵심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단 9:24)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에스라 1:3)

 

따라서 성경 안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을지라도, 이러한 단서들을 보면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성전 건축이 이루어지는 시점이 "한 이레 언약의 시작점"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큰 환난이 시작되는 시점은 계 6장에 나오는 "일곱 인의 사건들" 중에서 언제쯤으로 봐야 할 것인가?

 

첫째 인의 사건은, 큰 환난이 일어나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흰색'이 상징하는 것은 "미혹과 거짓 평화"이고, "활과 면류관을 받았다"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어떠한 "국제적인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음모와 계략을 통해 세계 정복을 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는 "한 이레 언약"이 시작되는 "전 3년 반"에 해당되며, 큰 환난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둘째 인과 관련된 붉은 말과 그 탄 자는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하고 큰 칼을 받았는데, 이것은 국제적인 조약들이 무너지고 국내적인 대학살이나 국제적인 전쟁 및 테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 당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들은 아직 예루살렘에서부터 일어나는 큰 환난은 아니며, 마 24:8절에 나타나는 "진통의 시작"과 관련된 사건이다.

 

셋째 인의 검은 말의 사건은, 큰 기근과 경제적 파탄을 말해 주는 것으로써, 커다란 전쟁과 학살 이후에 대체로 이러한 큰 기근이 찾아온다. 이 일들도 마 24:8절에 나타나는 "진통의 시작"과 관련된 사건이다.

 

넷째 인의 청황색 말의 사건은 전쟁과 기근 후에 일어날 내전들과 테러, 농경지의 황폐함으로 인한 흉년, 전염병의 창궐, 야생동물들로 인한 피해의 증가 등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써 이 또한 마 24:8절에 나오는 "진통의 시작"과 관련된 사건들에 해당된다.

 

다섯째 인에서 순교자들의 호소가 있고, 그 직후에 수많은 순교의 일들이 더 있게 될 것을 언급하고 있음을 볼 때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과 믿는 자들이 죽임 당하는 "큰 환난"의 때가 바로 그 때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환난의 시기를 지나 마지막 시점에 가서야 악인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 있게 될 것이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 6:9-11)

 

우리가 공관 복음서를 통해서 예루살렘에 큰 환난이 시작되는 모습을 볼 때(마 24:15-22; 눅 21:20-24), 큰 환난의 초기에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군대로 인해 학살 당하게 되고 노략질 당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계 7:14절에서 "큰 환난에서 나오는" 구원받은 큰 무리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서, 이 구절은 그 이전에 큰 환난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7:14)

 

마 24:15절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일"이 있고, 21절에서 "큰 환난"이 있을 것을 언급한 후에, 마 24:29절에서 "그 날(들의) 환난 후에 즉시" 천체의 징조가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천체의 징조가 나타나는 여섯째 인의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는, "큰 환난"으로부터 임시적으로 회복되는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천체의 징조가 나타나는 때가 후 3년 반의 마지막 시점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를 지난 다음에도, 다시금 "박해와 환난"가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후 3년 반"을 통상적으로 "대 환난의 기간"으로 알고 있고, 또 "큰 환난"이라고 나오는 모든 성경 구절들을 그렇게 적용하면서, 이 성경 본문(마 24:21)에 나오는 "큰 환난"의 기간이 무조건 3년 반이라고 보기 때문에, 본문 이해에 큰 오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한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고, "큰 환난"(마 24:15, 21) 있다가, 3년 반이 지나고 "환난 후 즉시" 모든 것이 신속히 이루어져서, "천체의 징조"와 "인자의 징조"와 "모든 족속의 통곡"과 "휴거 사건" 등이 즉각적이고 급속하게 일어나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도착하여 심판하시는 주의 날"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속한 모습으로 이루어져야만, 이 본문에 나오는 "큰 환난"이 "3년 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나 다른 선지서들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볼 때, 각각의 주요 사건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마 24:21절에 나오는 "큰 환난"은 "천체의 징조"가 있는 시기에 임시적으로 중단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섯째 인이 떼어지는 사건은 하나의 "커다란 분수령"이 되는 사건인데, 이 때에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하늘과 땅에 커다란 움직임이 있게 되고(계 6:12-14),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를 보면서, 땅의 많은 사람들이 그 영광에서 숨기 위해 피할 곳을 찾게 되는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계 6:15-16, 사 3:10, 19-21). 그리고 이후에 일곱째 인이 떼어진 후에 일곱 나팔이 불어지는 사건이 이어지게 되고, 특히 "일곱째 나팔"은 "휴거"와 관련된 사건으로 볼 수 있으며, 그 후로 "일곱 진노의 대접"과 관련된 사건들을 넘어,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사건과 "천 년 간의 그분의 지상 통치"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큰 미혹과 거짓"으로부터 시작되어 최종적으로 "주의 임하심"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멸망"의 때까지 "한 이레"에 해당되는 7년의 기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았다(단 7:25, 12:7). 특히 "후 3년 반"의 기간 동안은 큰 환난과 함께 여러 가지 커다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에 단지 "환난과 박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에 대한 "재앙과 심판"이 있게 될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과 열방에서 "대 부흥"과 "대 추수"가 있게 되는 영광스러운 기간이 될 것이다.

 

 

[4] "후 3년 반"에 해당하는 표현들과 그 해석

 

이제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에서 후 3년 반에 해당하는 기간에 대한 표현들을 통해서, 마지막 때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시간적 분석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계 12:14)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것은 곧 다니엘서와 연결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다니엘서에서 이 표현이 갖는 의미는, "성도가 적그리스도의 압제 아래 있게 되는 기간"(단 7:25)이요, 또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의 기간"(단 12:7)이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계 12:14)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단 7:25)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단 12:7)

 

여기서 "두 때"라고 번역한 단어는, 단순히 복수형으로 기록된 것으로써, 원칙적인 번역은 "때들"(times)이라고 해야 되지만, 이것을 "두(two) 때"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다니엘서 본문에서 "한 때"를 "한 해(year)"로 언급하고 있으며(단 11:13), 그렇게 볼 때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기간이 "후 3년 반"의 연수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어구의 의미가 다니엘 9:27절에 나오는 "후 3년 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단 9:27절을 분석해 본다면, "한 이레"는 7년이요, 그 중간 지점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사건"이 일어나며, 그 시점부터 언약을 견고케 한 왕(단 9:26b-27) 즉 적그리스도가 멸망케 되는 시점까지가 "7년의 절반" 즉 "3년 반"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후 3년 반"이 끝나는 시점과 "한 때 두 때 반 때"의 기간이 끝나는 시점(단 7:25; 12:7)이 똑같이 "적그리스도가 최후"를 맞이하는 시점인 것을 볼 때, 이 두 표현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첨탑; 카나프) 의지하여(위에; 알)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단 9:27)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외에, 이 "후 3년 반"의 기간을 의미하는 다른 표현들을 볼 수 있다.

 

계 11:2절에서는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42개월은 곧 3년 반이다.

 

또 계 11:3절에서는 두 증인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예언하는 기간이 "천이백육십 일"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1,260일은 곧 3년 반이다.

 

계 12:6절에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이를 낳은 여인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로 도망하여 지내는 기간을 "천이백육십 일"(1,260일) 즉 3년 반이라고 언급한다.

 

​계 13:5절에서는 적그리스도인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하는 입을 받아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마흔두 달"(42개월)즉 3년 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이 기간이 "후 3년 반"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단 7:25; 12:7).

 

이렇게 모든 기간에 대한 표현들이 "3년 반"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았지만, 과연 그것들이 똑같이 단 9:27절의 "후 3년 반"에 해당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두 증인의 사역 기간

 

먼저 계 11:2절의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42개월과, "두 증인이 예언하는" 기간인 1,260일이 같은 기간을 가리키는 근거들을 알아보자.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그리고)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 11:2-3)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1-2절에 성전이 그 배경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예루살렘이 짓밟힌다"는 표현은 눅 21:20, 24절에서 분명하게 나오고 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0)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눅 21:24)

 

눅 21:20-24절에서는 예루살렘이 "짓밟힌다"는 표현 뿐 아니라, 또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고",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간다"는 표현이 나온다. 슥 12:2절에는 같은 사건의 흐름에서 예루살렘이 이방 민족들에게 "에워싸일" 것을 말하고 있으며, 다니엘 11:31절에서도 "군대가 성소(거룩한 곳)를 더럽힐" 것을 언급하고 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슥 12:2)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단 11:31)

 

우리는 이미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세워지는 사건"과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 의해 에워싸이는 사건"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확증했었다. 따라서 거룩한 성이 짓밟히는 42개월은 "후 3년 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의 바로 다음에 오는 계 11:3절의 1,260일은,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사건"(계 11:2)과 연이어 언급되고 있으며, 이 두 사건은 동일한 배경과 상황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는데, 몇 가지 근거들을 제시해 본다.

 

첫째, 두 증인이 예언할 때, "굵은 베 옷을 입었다"는 것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연관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욜 1:13-14)

 

요엘서는 전체적으로 "여호와의 날"이 임박한 시기에 관한 내용으로서, 큰 위기와 환난 가운데 제사장이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울며 부르짖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이 "후 3년 반" 기간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점은 나중에 요엘서를 다룰 때 보다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계 11:3절에서 두 증인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있는 배경은,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들이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 11:4)라는 것은 성전과 관련된 자들이라는 의미인데, 왜냐하면 이 표현은 스가랴 4장에 보면 이 두 가지가 성전과 관련된 것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계 11:4)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슥 4:3)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슥 4:14)

 

"두 감람나무"는 성전의 내소 즉 지성소 안에 있는 "두 그룹"을 의미하며, "두 촛대"는 외소 즉 성소에 있는 "금 촛대"(메노라)를 의미한다. 두 감람나무가 지성소의 두 그룹을 의미한다고 보는 근거는, 솔로몬 성전에서 두 그룹을 감람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왕상 6:23).

 

"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왕상 6:23)

 

두 증인은 성전 안의 두 그룹과 등잔대가 가리키는 영적인 실체의 능력을 부여 받은 자들이다. 즉 등잔대는 일곱 영이요, 두 감람나무는 그룹들이다. 그룹들은 땅에 임하신 주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인데(겔 1:5, 10:1), 반면 하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은 "스랍"이다(사 6:2; 계 4:6),

 

셋째, 두 증인의 시체가 "큰 성 길 가"에 있겠다고 했는데, 그 큰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큰 성은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며 "소돔"이나 "애굽"이라는 표현은 그 시기의 예루살렘의 영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계 11:8)

 

넷째, 성전의 "바깥 마당"이 이방인들에게 내어 준 바 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42개월 간 이방인들에게 "짓밟힌다"는 것은 큰 환난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증인이 "굵은 베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당연한 반응인 것을 알 수 있다.

 

계 11:1-2절에서, 성전과 제단과 경배자들은 측량할 가치가 있으나, 바깥 마당은 이방인들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바깥마당 외에 제단이 있는  안마당과 성전 건물은 이방인들이 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소에 세워진다고 할 때, 성소를 가리키는 원문의 단어는 '미크다쉬'이며, 이는 바깥 마당을 포함하는 모든 성전 구역을 말한다(단 8:11; 9:27; 겔 44:7, 9, 16).

 

또한 단 9:27절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카나프(히) 위에 선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보통 복수로 쓰일 때에는 '날개'라는 의미를 갖지만, 이 본문에서와 같이 단수로 쓰일 때에는 '첨탑'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흔히 멸망의 가증한 것이 날개 위에 선다고 해석해서, "지성소에 있는 그룹의 날개 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본문에서 단수로 쓰인 '첨탑'이란 의미를 가질 때, 그것이 바깥 마당에 첨탑을 세우고 그 위에 세워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 증인은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서, 후 3년 반 동안 제단이 있는 안 마당과 성전 안에 있으면서, 예언의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두 증인이 원수들과 싸우고 대항하는 내용들이 나타나고 있는데(계 11:5-7), 만약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짓밟기 이전((以前), 즉 전 3년 반의 시기라면, 그들이 그와 같이 부딪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반론에 대해서 자세한 논증이 필요한데, 그것은 적그리스도인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두 증인과 전쟁하여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게 하는 시기"에 대한 문제이다. 반론의 내용은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시점"과 "두 증인을 죽이는 시점"이 곧바로 연결된다고 하면서,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는 시기"가 "큰 환난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전 3년 반의 끝 무렵에 올라오게 되고, 두 증인의 사역 기간은 전 3년 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아나바이오)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포이에오) 그들을 이기고(니카오) 그들을 죽일(아포크테이노) 터인즉" (계 11:7)

 

이 논증에 대해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사용한 동사들의 시제를 살펴봄으로써 정확한 해석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원문으로나 영어 성경의 이 본문을 살펴보면, "(짐승이) 올라오다"(아나바이오)는 "현재형""이고, "(전쟁을) 일으키다"(포이에오), "이기다"(니카오), "죽이다"(아포크테이노)에 해당되는 단어들은 모두 "미래형"으로 쓰여 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올라오는 시점과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는 시점은 반드시 동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라는 표현이 또 나타나고 있는 계 17:8절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계 17:8)

 

이 구절에서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에서 올라온 이후에, "땅에 사는 자들로부터 놀랍게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표현이 계 13:3절에서 똑같이 나오고 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계 13:3)

 

계 13장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의 활동의 단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계 13:3절에 나타나고 있는 그의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낫고 "온 땅이 놀랍게 여기는" 사건은, 그가 땅의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후에 일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그가 그 동안 해왔던 활동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계 13:1-2; 단 11:21-30).

 

이 일 후에 적그리스도는 사탄(용)으로부터 "과장되고 신성 모독하는 입"을 받고 "42개월을 일할 권세"를 부여받는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 13:5)

 

그가 이 권세를 받은 것은, 그 다음 단계에서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루살렘과 그분의 백성들을 짓밟는 일"을 위해서이다.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계 13:6-7)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에서 막 올라오는 시점"(계 13:1)과 그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시점(계 13:6-7)은,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는 두 증인과 부딪칠 것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이후 상당한 기간이 흐른 뒤에, 예루살렘을 공격하면서 서로 부딪치게 될 것인데,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 계 11:5-6절에 나오는 것처럼, 두 증인이 원수들과 대항하여 불이 나오고, 그 입에서 나오는 예언으로 땅을 치는 사건 등이다.

 

따라서 "후 3년 반의 시작점"에서 두 증인과의 전쟁을 시작하여 "후 3년 반의 끝에" 비로소 두 증인을 죽게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따라서 두 증인의 활동 기간인 1,260일도 "후 3년 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박해받는 기간

 

계 12:6절의 "천 이백 육십 일"과 14절의 "한 때 두 때 반 때"는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같은 사건의 기간을 가리키고 있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환난을 당하여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지내게 되는" 기간으로써 "후 3년 반"의 기간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렇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본문의 동사들의 시제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계 12장에 나오는 "여자"는 바로 그리스도를 낳은 자로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12:5)

 

6절에서 여자가 광야로 "도망한 시점"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양육 받는 시점"은 시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본문에서 "도망하다"(휴고)는 ‘부정과거형’이요, "양육 받다"(트렙호)는 동사는 ‘현재형’으로써 '히나'라는 접속사 뒤에 나와서, "~ 하기 위하여"(영어로 말한다면, "so that ~ might +현재형 동사" 용법과 같은 뜻)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그 여자가 1,260일 동안 "양육을 받는" 것은, "도망한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망하다"(휴고)가 기준이 되어, 본문에서 같은 시간대에 해당되는 "다른 동사들"과 연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6)

 

어떤 동사들이 같은 시간대로 연결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그 다음 구절에 나오는 하늘의 전쟁은, 그 여인이 광야에서 양육 받은 시점이 아니라, "도망한"(휴고) 시점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늘의 전쟁"은 용과 미가엘이 "싸우는"(플레메오-부정과거형) 일로 시작하여(계 12:7), 용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쫓기는"(발로-부정과거형) 일로 마무리되며(계 12:9), 그리고 연이어 용이 남자를 낳은 여인을 "박해하는"(디오코-부정과거형) 일로 이어진다(계 12:13). 같은 "부정과거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동사들은 같은 시점의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계 12:7)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 12:9)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계 12:13)

 

따라서 6절에서 그 여인이 도망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7~12절을 기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땅으로 "내쫓긴"(발로-부정과거형) 용이 그 여인을 "박해하기"(디오코) 때문에, 그 여인이 광야로 "도망가게"(휴고)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인이 광야로 "도망가는"(휴고) 것과 용이 하늘에서 "쫓겨나는"(발로) 것과 용이 여인을 "박해하는"(디오코) 것이 같은 시점(부정과거형)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싸우다"(플레메오), "쫓겨나다(발로), "박해하다(디오코), "도망하다"(휴고) 부정과거형그 당시의 사건들
"양육 받다"(트렙호) '히나'(ἵνα) 접속사+현재형 그 당시로 볼 때, 미래적인 사건

 

그리고나서 그 다음 단락에서, 용이 어떻게 박해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계 12:14절의 헬라어 원문을 자세히 보면, 여자가 "두 날개를 받는데"(디도미, 부정 과거형), 그 다음에 '히나'(접속사)라는 단어가 나오고, 광야로 자기의 곳으로 "날아가서"(페로마이ι, 가정법 현재형), 뱀의 낯으로부터 (피하여) 한때 두 때 반 때를 "양육 받는다"(트렙호, 직설법 현재형)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두 날개를 받는 것"은 앞서 일어나는 사건이요, "날아가는 것"과 "양육 받는 일"은 그 다음 시기에 일어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단락에서는 "날개를 받는다"(디도미)는 동사가 시간적으로 기준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계 12:14)

(두 날개를) "받다"(디도미)부정과거형그 당시의 사건들
"날아가다"(페로마) : 가정법 현재형  
"양육 받다"(트렙호) : 직설법 현재형
''히나'(접속사)그 당시로 볼 때, 미래적인 사건

 

이어지는 계 12:15-16절은 "뱀의 박해"를 "좀 더 자세히 묘사"하는 내용이다. 15절에서 뱀이 "물을 토하는"(발로, 부정과거형) 것 뒤에 '히나'(접속사)가 나오고 "물에 떠내려가게 하다"(포이에오, 현재형)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도, "물을 토해내다"(발로)는 동사가 기준 시점이 되서, "날개를 받는"(디도미) 시점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계 12:15)

 

그 다음 계 12:16절에서, 여자가 "구출 받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땅이 여자를 "도와"(보에데오, 부정 과거형) 입을 "벌려"(아노이고, 부정 과거형) 강물을 "삼켜 버렸다"(카타피노, 부정 과거형). 이 구절은 앞에서 물을 "토해내는"(발로) 시점과 연결되어 일어나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계 12:16)

(물을) "토하다"(발로), "돕다"(보에데오),
(입을) "벌리다"(아노이고,), (물을) "삼키다"(카타피노)
부정과거형그 당시의 사건들
(물에 떠내려가게) "하다"(포이에오):'히나' 접속사 + 가정법 부정과거형일어나지 않은 미래적 의도

 

따라서 이 상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용이 그 여인을 "박해할 때"(13절), 그 여인이 도망가려고 한다(6절). 그 때 하나님이 "두 날개를 주셨다"(14a절). 그러나 "미쳐 날기 전에", 뱀이 뒤에서 "물을 토해내서" 도망가려 하는 그 여자를 "죽이려 했다"(15절). 그 때에 땅이 "입을 벌려" 그 강물을 "삼켜 버려서" 그 여자를 "도왔다"(16절). 바로 다음 순간 그 여자는 두 날개를 통해서 "광야로 날아가서", 거기서 1,260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양육을 받게" 된다(6절, 14b절).

 

이어서 계 12:17절에서, 용은 그 여자에게 "분노하고"(오르기조-부정과거형),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기 위해 "돌아갔다"(아펠코마이-부정과거형). 그리고 계 13:2절에서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짐승에게 주면서, 남은 자손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 12:17)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계 13:2)

 

전체적인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이 본문에 나오는 1,260일과 "한 때 두 때 반 때"의 기간은, "용의 박해"가 가해지는 시점 즉 "큰 환난"이 일어나는 시점으로부터, "광야에서 양육을 받는 기간" 즉 주의 백성이 "보호되는 기간"까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남자를 낳은 그 여자"는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그 남자아이"는 바로 이스라엘로부터 나신 "그리스도"이시며,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들 중에 믿는 자들 곧 "교회"를 의미한다(롬 9:24-29).

 

따라서 그 여자가 "광야에서 양육을 받는다"는 것 즉 "보호받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칼의 환난"(렘 30:7)을 당하지만, 광야로 흩어진 후에 다시 은혜를 입고 돌아오게 될 것을 말한다(렘 31:2). 그들은 연단을 받아 희게 되고 정결케 될 것이다(단 11:35; 슥 13:1, 9).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렘 30:7)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렘 31:2)

 

또한 이 기간 중에, 용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남은 자손들과 싸우는(계 12:17) 일과,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받아서 성도들을 이기게 되는(계 13:5) 일이 있을 것이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 13:5)

 

결론적으로 "한 때 두 때 반 때"를 포함하여 "3년 반"에 해당하는 모든 표현들은 "후 3년 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에서 "후 3년 반"을 가리키는 기간들을 강조하는 것을 볼 때, 이 기간은 마지막 때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는 것이다.

 

 

[5] 일곱째 나팔과 휴거 사건의 시기

 

요한계시록에는 휴거 사건이 "추수하다"의 의미로 언급되고 있다(계 14:14-16; 마 24:30). "구름 위에 앉은 인자 같은 이"는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마 24:30; 계 1:7).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도중에 휴거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마 24:31; 살전 4:16-17).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계 14:14-16)

 

인자 같은 이가 많은 곡식을 거두는 휴거 사건 후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위한 추수"가 있을 것이다(계 14:17-20). 이것은 주의 날에 대적자들을 큰 포도주 틀에 내던지는 심판을 말한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계 14:19)

 

휴거 사건에 대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나팔을 분다는 것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나팔"이 불어지는 사건들이 나온다(계 8-11장).

 

휴거 사건과 연결되는 나팔에 대해서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면, '큰 나팔 소리'(마 24:31), '하나님의 나팔소리'(살전 4:16), '마지막 나팔'(고전 15:51) 등의 표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세 가지 특성들은 요한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의 모습과 동일하다는 근거들이 있다.

 

첫째, 일단 모든 일곱 나팔은 하나님께서 일곱 천사들에게 부여한 나팔이란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팔"이라고 할 수 있다(계 8: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계 8:2)

 

​또한 계 10:7절에 "천사의 소리"(voice)와 계 11:15절의 "하늘의 큰 음성들(voices)"은 살전 4:16절에 나오는 "호령(shout)"과 "천사장의 소리(voice)"와 동일한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일곱째 나팔 외에 다른 여섯 나팔이 불어질 때에는 이러한 큰 소리와 음성이 동반되지 않는데, 유독 일곱째 나팔만이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곱째 나팔이 불어지는 사건은 살전 4:16-17절과 동일한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6)

 

둘째, 일곱째 나팔은 다른 나팔들보다 더 많이 강조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그 나팔이 불어지기 전에, 한 힘센 천사의 증거의 내용을 통해서 이를 엿볼 수 있다(계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 10:7)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하신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약속이요,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비밀이다. 그렇다면 그 성취될 약속과 비밀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봐야 할까?

 

​이 일곱째 천사의 나팔이 불어질 때, 선포된 내용을 보면, 큰 무게를 느끼게 하며,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먼저, 세상 왕국들이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음(계 11:15)과, 그 다음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이 상을 받을 것이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멸망 받게 된다(계 11:18)는 내용이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계 11:15-18)

 

​이 내용들을 살펴볼 때에, 이 선포된 말씀은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와 믿는 자들에 대한 "구원"과 멸망 받을 자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것으로써, 이 내용들이 곧 하나님의 복음의 약속이요, 비밀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일은 나팔이 불어진 직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일곱째 나팔"이 "불어지는 날"이 강조된 것을 볼 때, 바로 그것이 "큰 나팔"이라고 보기에 충분할 것이다.

 

셋째로, 고전 15:51절에서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라고 말씀하실 때에, 일곱 나팔 중에서 "마지막" 나팔인 "일곱째 나팔"이 과연 그 "마지막 나팔"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린도전서 15:51절에서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마지막 나팔"이라고 기록하도록 감동하신 분이 성령님이심이 분명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일곱째 나팔이 불어지기(계 11:15) 이전에, 큰 천사를 통해서 그 의미를 미리 선포하게(계 10:7) 하신 분도 성령님이시다. 또 이 두 구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주께서 강림하시는 과정에서 있게 되는 것으로서, 시기적으로 매우 근접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일곱 나팔 중에 "일곱 번째 나팔"을 가리켜 "마지막 나팔"이라고 기록하게 하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공관복음서의 재림의 과정들에 대한 언급들과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의 과정을 비교하고 해석해 볼 뿐 아니라, 다른 성경의 말씀들도 참조해 볼 때, 그 순서들의 윤곽을 자세히 발견할 수 있는데, 이렇게 성경적인 맥락을 볼 때, "여섯 째 인의 사건-천체의 징조""백마 탄 그리스도의 임하심의 사건-주의 날" 사이에, "일곱 째 나팔-휴거 사건"이 있게 되는 구도는 매우 분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다시금 설명하고 가야 할 부분은, "일곱째 나팔"과 큰 전쟁이 있는 "주의 날" 사이에, "진노의 일곱 대접"이 부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휴거 사건"과 "주의 날"의 시점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여섯째 대접"이 부어질 때에는 천하만국의 군대들이 소집되고 아마겟돈으로 모이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야 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계 16:12-16).

 

따라서 "휴거 이후에도" 여전히 "극심한 재앙"(계 16장)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해서 남은 자들에 대한 "환난과 박해"(렘 31:2; 욜 3:1; 슥 14:1-2)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휴거 사건은 큰 환난 전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휴거 후에 큰 재앙과 환난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도 맞는 것이며, 따라서 휴거된 자들은 진노의 일곱 대접의 심판은 면하게 되는 것이다.

 

 

[6] 주의 날에 있을 심판의 전쟁

 

요한계시록 19:11-21절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시는 심판으로서의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계 19:11-16절과 계 19:17-21절이 구분되는 내용인 것을 알 수 있다. 앞 단락은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이방인들의 땅에 가서 행하시는 심판이며, 뒷 부분은 예루살렘 근처에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방 군대들을 파하시는 내용이다.

 

뒷부분의 전쟁은 이미 여섯째 진노의 대접이 부어진 사건에서 미리 언급되었듯이, 천하의 왕들이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이다(계 16:14). 그들은 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아마겟돈으로 모여 올 것이다(계 16:16).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14)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계 16:16)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심판의 전쟁을 위해, 공개적인 위엄과 영광 안에서 이 땅에 오셔서 심판하실 것인데, 계 19:11절은 그가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심판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 19:11)

 

예수께서는, 그의 재림의 날에 인자가 은밀하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오실 것이라(눅 17:24)고 말씀하셨고, 그 때 제자들은 "주여, 어디오니이까?"(눅 17:37)라고 질문하는데, 이는 "주의 강림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고자 묻는 질문이라고 보여 진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라는 모호한 것 같은 대답을 하셨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눅 17:37)

 

이 뜻이 무엇일까? 먼저 이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다른 성경에서 병행구절을 찾아본다면, 욥기서 39:30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욥 39:30)

 

​우리는 성경에서 다른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원리를 알 필요가 있는데, 다만 그 한 구절만을 뽑아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절 전후로 하여 내용 전체를 가져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욥기서 인용 구절 전후의 내용을 살펴보면, "독수리의 속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욥 39:27-30)

 

여기서 예수님이 이 구절을 인용하신 것은 또 다른 구절과도 연결하여 그 뜻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생각되는데, 욥기의 이 구절들과 같은 표현들이 예레미야서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서 49:7-22절을 보면, "에서의 재난"에 대한 내용으로써, 에돔과 보스라, 데만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16절과 22절에서 욥기서 39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수리의 속성"에 대한 표현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49:16)

 

"보라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그의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펴는 그 날에 에돔 용사의 마음이 진통하는 여인 같이 되리라 하시니라" (렘 49:22)

 

위 성경의 구절들은 "에돔의 멸망"에 대한 내용들로써,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 들 듯이, 자신의 백성들을 대적하고 있는 원수들에게 빠르게 오신다는 암시를 주고 계시며, 그곳은 바로 "에돔 땅"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성경에 보면 에돔의 심판에 대한 많은 구절들이 나오는데, 다른 민족보다 특별하게 강조해서 그 멸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사야서 34장에서도 "여호와의 보복의 날과 신원의 해"를 언급하시면서 "에돔과 보스라"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을 예언하셨다(사 34:5-6). 에스겔 25:12-14절에서도 에돔에 "황폐함과 칼에 엎드림"이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요엘 3:19절에서도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겠다"고 하셨고, 아모스 1:11-12절에서도 "에돔에 대한 심판"을 강하게 선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바댜서는 전반적으로 에돔의 죄와 심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레미야 49장의 구절들과 병행구절도 나타나고 있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옵 1:3-4)

 

이와같이 선지서를 살펴볼 때, 다른 민족들보다 에돔의 심판에 대한 언급들이 보다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선지서에서 주의 날에 메시야가 "에돔 지역으로부터 오시는 이"로 묘사되어 있는 구절들이 있다.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사 63:1)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합 3:3)

 

데만은 에돔의 도시이다. 위의 본문에서 에돔에서 그리고 데만에서부터 오는 자는 "주의 날에 임하실 메시야"이심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문맥 안에서 그분이 그분의 백성들을 압제하는 원수인 에돔을 치시고, 큰 영광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 63:2-3).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사 63:2-3)

 

메시야께서 강림하시면서 에돔으로 가시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에돔에는 많은 주의 백성들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암 1:6, 9, 11-12; 9:12). 그래서 그들을 건지시기 위해서 우리의 주께서는 그곳에 먼저 임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암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암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11-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9:12)

 

에돔 지역은 현재 요르단의 페트라 지역으로써, 큰 환난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져 갈 때 주로 이곳으로 피난하게 될 것인데, 여기서 에돔 족속들이 그들을 사로잡아 압제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며 또 다른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 에돔으로 넘길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암 1:6, 9, 11-12; 9:12). 따라서 메시야가 이곳으로 먼저 가서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기 위하여 이방의 군대들을 파하실 것이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던 여정과 같이, 네게브 지역을 지나 요단강을 건너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재림하신 메시야는 흩어져 있는 수많은 이스라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욜 3:1).

 

"왜냐하면(키;For) 보라 그(들의) 날(들에) 곧 그 때에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리라" (욜 3:1)

 

이사야 63:1-6절에서는 "에돔과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가 "붉은 옷을 입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을 때" "선혈이 그 옷에 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사 63:1-3).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에돔 지역에서 많은 이방 민족들을 치시는 과정에서, 심판하시는 그 분의 옷이 붉게 되었으며, 앞뒤 문맥을 통해서 볼 때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사 63:2)

 

우리는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같은 상황에 대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백마를 탄 자(합 3:8)로 묘사되는 재림하신 그리스도는,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고(계 19:11), 그는 피뿌린 옷을 입었으며(계 19:13),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신다(계 19:15). 우리는 이사야 63장과 계시록 19장의 두 내용들을 비교할 때, 같은 상황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 19:11)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계 19:13)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 19:15)

 

계 19:11-16절에서는 단지 많은 이방인들을 치신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는데, 17-21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포함한 이방의 군대들을 치시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앞부분은 예루살렘까지 오는 여정 가운데, 에돔 지역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의 포로들을 자유케 하시는 전쟁을 의미하며, 뒷부분은 예루살렘 인근에서 있을 "주의 날의 심판의 전쟁"을 말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주의 날의 심판의 전쟁"에 대해서는 요엘서 3장과 스가랴서 14장에 자세히 나타나고 있다. 요엘서 3:1절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은, 에돔 및 여러 지역에서 그 사로잡힌 자들이 구출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요엘서 3:2절에서는 그 후에 모든 민족을 모아서 "여호사밧 골짜기" 곧 예루살렘 근처에서 심판의 전쟁을 수행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키;For) 보라 그(들의) 날(들에) 곧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리라“ (욜 3:1)

 

"그리고(바브; and)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욜 3:2)

 

따라서 우리는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의 근거 구절들을 살펴 볼 때,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강림하여 오실 때, 먼저 에돔 지역으로 오셔서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실 것이며, 주의 발이 땅에 착지하셔서 서시는 곳은, 감람산이 첫 장소가 되신다고 볼 수 있다(슥 14:4). 그리고 거기서부터 예루살렘 근방으로 그들을 데려가서 결정적인 전투가 있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그리스도께서 천하의 왕으로서 그의 "지상 통치"를 시작하실 것이다(슥 14:9; 계 20:4-6).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슥 14:9)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성도들과 함께 천 년 간 통치하신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 성도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다(계 20:4-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