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
김진길
아는 길, 모르는 길
번번이 허탕친 뒤
길눈이 어둡다고 자책이라도 하는 날엔
캄캄한 적막 앞에서 나는 적막이 되지
쩡, 하고 깨질 만큼
내 슬픔이 여물기도 전
매일 뜨는 해의 길도 저녁이면 엎드린다며
축 처진 어깻죽지를 왜바람이 툭툭 치지
풀죽은 이불솜이 두드리면 일어나듯
늘어졌다 팽팽해지는
고무줄 같은 나의 길,
날렵한 학꽁치 떼가 그 길에서 캉캉 뛰놀지
비릿한 삶의 비늘,
잔뼈까지 털고 나면
허방을 연신 짚던 탁한 눈은 맑아지고
단단한 적막의 벽에 실금을 내며 나는 걷지
김진길 시집,『간빙기』,시와소금, 2026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