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건너간다
박노해
가을볕이 좋은 공원에
휠체어를 탄 창백한 할아버지와
유모차를 탄 뽀이얀 손녀가
나란히 나란히 굴러간다
낙엽은 보도블럭 위를 굴러가고
구름은 푸른 하늘을 흘러가고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가 벙그레
유모차를 탄 손녀에게 마른 손을 내밀어
말랑한 볼을 쓰다듬는다
고사리 손이 앙상한 손을 꼬옥 잡는다
한 생의 가을 햇살이
또 한 생의 봄 햇살로
가만히 건너간다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02년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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