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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인의 <꼭지>

작성자이종암|작성시간09.10.06|조회수216 목록 댓글 1

꼭지


-문인수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러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生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 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 가랴

주전자 꼭다리처럼 떨어져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문인수 시집『배꼽』(창비,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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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무소 가서 붉은 목도장 꾹꾹 눌러주고 교통비며 쌀 살 돈을 얻어오는 독거노인 저 할머니 이름이 꼭지다. 꼭지, 붙들이, 말숙이, 끝순이… 같은 이름들에는 60년대 보릿고개의 가난과 배고픔이 묻어있고, 여자라는 까닭 없는 멸시가 배어 있어 웬지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부모 복 없이 이 세상에 온 꼭지들은 하나같이 남편 복, 자식 복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서민들의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요즘의 길거리에는 이런 꼭지 할머니들이 눈에 띄게 많아 보인다. 이 시는 가족의 보살핌 속에 공양 받으며 편안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데, 동사무소 고갯길을 참 애 터지게 느리게 걸어가는, 낡은 유모차에 종이박스를 가득 싣고 비탈진 골목길을 위태롭게 올라가는 우리 시대의 꼭지들에게 보내는 헌시(獻詩)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 년의 꼭지야”라는 언술처럼 젖은 감정을 확 걷어내고 담담하게 전개해 가는 시의 어법 때문에 독자의 감정은 더욱 젖어든다. 아, 저 꼭지들은 모두 우리들의 문제다. 이 문제가 점차적으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꼭지들이 하늘 꼭대기 넘어갈 때, 즉 이승의 삶을 끝낼 때 맺힌 한(恨) 없이 가는 게 좋다. 그게 아름다운 끝이다.

-이종암(시인)

 

<경북매일신문> 10월 6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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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권영희 | 작성시간 09.10.06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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