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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와 시 이야기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5학년 임의연 양의 시조관

작성자홍성란|작성시간10.07.08|조회수136 목록 댓글 0

이 글은 성균관대학교 학부생이 한 학기 동안 시조에 대해 공부한 결과 가지게 된 시조관을 2010년 6월 기말시험답안으로 강의실에서 작성한 내용입니다. 

 

 

초장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더냐

중장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테여

종장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소음보        과음보              평음보        소음보

 

   이 시조에서 볼 수 있듯, 시조는 3장 6구 12마디의 정형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듯 '음수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음절과 정음(1음절 만큼 쉬는 것)과 장음(1음절만큼 길게 빼는 것)을 고려한 'mora'라는 단위로, 음량률로 율격을 보아야 한다. 초장의 첫 마디의 '어져'는 2음절 '어져  +   -(장음)   +   v(정음)'  으로 4mora를 가진다. 4mora를 기준으로 평음보라 하고 이보다 모자라면 소음보, 더 크면 과음보라고 한다.

   종장 첫 마디는 3음절로 정해놓고 있는데, 이는 시조의 '묘처'라 할 수 있다. 초장, 중장은 반복의 미학을 보이고 종장에서는 형식과 의미, 내용의 전환을 보인다. 시조에서 그 의미의 무게가 가장 큰 것은 종장이라고 보는 것이다. 시조는 4음보격 율격체제를 바탕으로 한 자율적 정형시라고 볼 수 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변별점은 노래로 불리는지, 안 불리는지 하는 점이다. 고시조는 고려말에 시작(백제 가요 정읍사 기원설, 고려속요 기원설)되어 조선시대를 풍미한, 우리의 전통과 경험이 구체적 형식에 담긴 전통시가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소퇴의 기미가 보이다가, 우리의 전통을 잇고 민족적 의식의 고취를 위한 시조부흥운동이 일어나 현대시조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대시조는 눈으로 읽는 시 텍스트이다. 고시조가 시노래, 시조음악이었다면 현대시조는 노래시, 시조문학이다. 그 기점이 되는 것은 1906년 7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사동우 대구여사의 '혈죽가'이다. 충정공 민영환이 자결한 자리에서 피묻은 대나무가 솟았으니 한일합병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고 민족적 단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현대시조는 우리의 역사의식과 함께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대시조(정형시)와 자유시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시조는 우리의 역사와 같이 성장했으며, 우리 민족에 맞는 시형식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새로움은 그 전의 역사나 질서에서 태어나는 것이지 無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형시가 창조를 얽어매는 속박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의 얼을 잇는 형식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유시를 쓰더라도 우리의 뿌리, 즉 시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새로움'은 올바른 새로움이 될 수 없으며, 대중의 마음을 담지 못하면 대중에게 멀어져 그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소월, 영랑, 목월의 시가 사랑받는 것은 시조의 형식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시와 시조는 그 뿌리가 같으며, 절제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시조라고 하겠다. 자유시 또한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다듬질에 의한 적확한 시어 사용으로 시적 긴장이 남아 있어야 하며, 이 내용은 자유시와 시조가 역시 공통되는 것이다.  

   끝으로, 현대시조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한 학기 동안 많은 시조를 읽고 배우고 써 보면서 시조의 장점을 찾았다. 음량률에 의한 율격체계는 우리의 입에 '착 달라붙어  이 형식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리듬감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을 통해 다듬어지고 정해진 것으로 우리의 언어와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래 시노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장점을  대다수가 잘 모르고 있고 이 점이 정말 안타까웠다. 새로운 소재와 참신한 발상, 우리의 일상을 소재로 한 다양한 시조들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 제도교육에서도 현대시조를 비중있게 다루어서 친근하게 느끼고 여러 홍보행사를 통해 시조가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아름다운 노래시인 것을 모두가 알면 좋겠다.

   20세기의 위대한 근대 건축가는 이런 말을 했다. 'Less is More'. 이는 시조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오랜 시간의 면밀한 탐구와 통찰에서 나온 시어가 가장 정확한 자리에 자리잡는 것. 나의 관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담아내는 것 - 배워서 시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시를 쓰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강의 중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생명이 아닌 것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모두의 가치와 사회문화, 그 시대의 사회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시는 몹시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그 자체가 전승되려면 스스로가 생명력을 가져야 하고, 따라서 현대시조는 이 시대를 반영하여 읽는 감상자에게 영원을 느낄 찰나를 선사해야 한다. 그리하여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혀에 감겨 항상 맴돌고 사유할 기회를 준다면, 그것이 진정한 현대시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근대를 거치며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것을 스스로 부정했다. 식민시기, 기독교, 해방후 미국문화. 새로운 것이 뿌리내리려면 기존의 것, 우리가 가진 것은 그보다 좋지 않고 부끄러운 것이 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열등감은 우리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이제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경제가 모든 것에 앞서는 가치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또한 월드컵의 축구를 보며, 주눅들지 않는 우리를 보며 모두는 변화를 실감한다. 근대는 고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는 우리의 고전,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기억으로부터 올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현대시조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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