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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

10월9일 주일오전 마16:13-20절 교회공동체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작성자하늘씨앗|작성시간17.01.13|조회수90 목록 댓글 0

2016109일 주일오전 마16:13-20

  

한 주간 예수 그리스도를 주심이 감사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셨습니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으셨겠죠? 여러분들을 야단치려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이 변하지 않으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단지 기록된 말씀일뿐 내게 적용되는 살아있는 말씀이 되지 않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 우리 인생 최고의 선물은 십자가입니다. 아들을 주신 사랑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저는 목사가 된 것보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더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최고의 감사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고문이었던 찰스 콜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이후에 그는 “Born again"이란 책을 써내고 교도소 선교회를 조직하여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들이 운영하는 휴매이타라는 교도소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교도소는 기독교적 원리(말씀)에 따라 운영되었습니다.

콜슨이 휴메이타를 방문했을 때, 재소자들은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고, 교도소 내에서 만났던 모든 재소자들의 표정에는 평온함이 가득했습니다. 깨끗한 환경과 낙서와 욕설 대신 시편과 잠언으로 가득한 벽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휴메이타 교도소의 특별함은 미국의 재범률이 75퍼센트나 되는데 반하여 휴메이타의 재범률은 4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콜슨을 안내하던 사람이 과거에 고문실로 사용되었던 형벌방을 보여 주었을 때 그는 해답을 발견했습니다. 고문실을 안내하는 사람은 지금 그곳에는 오직 한명의 죄수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콜슨은 그를 만나보고 싶었고, 안내자는 그를 긴 콘크리트 복도 끝 방으로 인도했습니다. 안내자가 육중한 옥문을 천천히 열었고, 콜슨은 그 형벌방에 갇혀 있는 죄수를 보았습니다. 그 죄수는 바로 휴메이타의 재소자들이 아름답게 조각한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안내자가 저 분이 우리를 대신해 지금 죄값을 치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피흘림으로 오늘 우리가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우리가 감사해야할 두 번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우리에게 감사의 이유가 될까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회를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18절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영어로는 church이자만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ekklesia)입니다. 에클레시아란 무리,회중 혹은 모임(gathering)이란 뜻입니다. 즉 교회란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이 교회의 정의에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으로부터/ 다른 하나는 거룩이란 단어입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지 않은 건축물을 교회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해 사도바울 성지를 순레하면서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가보았지만 그 어떤 교회도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의 건물로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교회의 터와 돌들이 잔뜩 쌓여있는 곳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꿈꾸시던 교회일까요?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교회일까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따라합시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어, 성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건물은 교회의 모임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건물이 주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건물이 아무리 크고 웅장해도, 그 안에 사람이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이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한 공동체가 있으면 그것은 완벽한 교회입니다. 1985,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만들어져 크게 사랑받은 노래가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Micheal Jackson)과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가 작사 작곡한 노래입니다. 그 노래의 제목 “We Are the World”입니다. 제목부터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세상지구를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이란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잘 살려면 지구도 잘 보전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사람들이 없다면 이 지구는 별 가운데 하나일뿐입니다. 이 노래의 제목을 패러디한다면, “We Are the Church”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이 모여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울 마포에 특별한 교회가 있습니다. 충정로 사거리에서 신촌 로타리 쪽으로 가다 보면, 좌측에 교회 건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의 입구에 붓글씨로 아현예배당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교회는 한국 교회가 낳은 성자 중 한 분으로 칭송받는 김현봉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분은 늘 기도와 말씀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성도들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영성의 목자였습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가 무슨 교회라고 하는데 그 교회는 아현예배당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목회철학, 사람이 교회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합니다. 아현예배당은 당시 서울 영락교회와 맞먹는 교세였지만 예배당 건축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배당이 비좁으면 지붕만 해서 임시로 늘렸고, 교회 재정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함께 모인 것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손으로 지은 건물은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값비싼 재료를 쓰고 웅장하게 지었어도 건물은 건물일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고 썩어지며 결국 언젠가는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룩하고 영원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릴 자격을 가진 것은 인간의 영혼뿐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을 때는 사람들은 건물을 교회라고 착각합니다. 교회를 위한 건물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는 잘사는 교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예배로 모이도록 집을 내어놓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의 시설도 깨끗하고 현대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건물에 모이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만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성장하고 서로 연합하여 거룩한 몸을 이루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건물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 교회는 결국 세상의 골칫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여러분에게 예신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지금 당신은 그 교회를 보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누군가 예신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를 보십시오. 제가 예신교회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대답할 자신이 있습니까? 아마 그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예신교회는 저와 여러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나의 성장이 예신교회의 성장이고, 나의 성숙이 예신교회의 성숙입니다.

반대로 내가 잘못살면 예신교회의 수준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곧 교회라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내신 사람들 곧 우리가 교회입니다. 세상속에서 교회로 살아는 것이 우리를 교회로 삼으신 주님의 뜻입니다.

 

왜 우리는 교회를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하는가?

교회는 예수님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유산을 남기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유산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지만 사실 가치있고 소중한 유산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물질의 유산말고 믿음의 유산을 깨닫고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짐 스토벌이 지은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레드 스미스라는 부자가 죽으면서 해밀턴 변호사에게 유언장을 맡겼습니다. 모든 자손들이 유산을 받았는데 조카손자 제이슨 스티븐슨에게는 지금은 한 푼의 유산도 상속되지 않았지만 한달에 한번씩 할아버지의 명령을 바르게 지켜 행하면 1년뒤에 유산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유산을 못받아 불평하던 제이슨은 한달에 한번 변호사 사무실에 들러 주어진 과제를 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과제는 목장에서 일하는 것, 둘째달에는 1,500달러를 다섯사람에게 유용하게 사용할 것등이었습니다. 이렇게 1년간 제이슨은 할아버지가 요구하는 12가지 과제를 완수하였습니다. 제이슨은 할아버지가 남긴 과제를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일과 우정, 배움, 고난, 가족, 웃음, , 감사 등이었습니다. 1년동안 제이슨은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12가지 유산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유산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도울 것입니다. 이제야 하나님이 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알았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목표를 찾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해밀턴 변호사는 제이슨을 불러 할아버지의 유언장을 읽어 주었습니다. "과제를 마친 조카 손자 제이슨에게 레드 스티븐슨 고아원, 레드 스티븐슨 도서관 그리고 몇몇 장학재단과 병원 등 기타 기관들의 기금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긴다." 제이슨 스티븐스는 10억 달러가 넘는 재단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물려주기 보다는 유산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인격과 삶의 가치관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부모에게 혹은 조상들에게 받는 가장 귀한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치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들입니다. 세상에서 불러낸 거룩한 사람들이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이 짧은 문장이 갖고 있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대부분 세상에서 잘되기 위해서 아버지와 형도 속이는 야곱처럼 살아갑니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축복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축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신앙심이 좋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이 너무나 잘되서 몇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절로 교회생활을 게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청년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못하는 이유들을 변명하면서 그가 하고 있는 사업체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주일성수와 온전한 십일조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하고 그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에게 너무 많은 사업을 주셨습니다. 존은 너무 성실했습니다. 사랑의 주님! 그의 영혼을 위하여 상점 몇 개를 불태워 주시고 상점 몇 개를 문을 닫게 해 주셔서 존으로 하여금 그렇게도 당신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하던 옛날의 사람으로 되돌아 오도록 그의 사업의 얼마를 빼앗아가 주시옵소서그렇게 기도하는 목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영혼을 지키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자신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16장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것은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 고백위에 주님의 교회(가정, 직장,내 삶)가 세워집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이 대답을 기뻐하신 이유가 정답이기 때문이 아니라 베드로의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을 잘 모릅니다. 안개속에서 보는 것처럼 희미합니다. 이 고백뒤에 베드로는 십자가의 고난을 말리다가 순식간에 사단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사는 것 같다가 한순간에 사단이 됩니다. 어느 때에는 예수님이 손에 잡힐 듯 분명한데 어떤 때는 멀리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계신 분 같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정답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담긴 고백입니다. 주님은 그 고백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기적입니다. 멋진 대리석이나 강한 철이 아니라 내 연약하고 부족한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신앙고백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만난 예수님이 다 다르고, 우리의 믿음의 경험도 다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동일한 것은 우리가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살기를 결심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기 위해 주신 주님의 공동체입니다. 저는 우리가 교회의 소중한 가치를 알고 살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워나가는 주님의 동역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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