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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0207설교 / 마태복음7장6절 / 거룩한것을개에게주지말라

작성자최성헌|작성시간16.02.07|조회수3,43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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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지난 시간 비판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 71절 이하 5절의 말씀을 살폈지만,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한다고 해서 모든 판단과 분별을 금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비가 없는 비판, 용서가 없는 비판, 정죄만을 위한 비판에 대하여 금하고 계신다는 의미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으로 오시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얼핏 보면 지난주 내용과는 상반되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말씀입니다. 판단과 분별하는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판단과 분별을 통해 마치 자비가 없는 비판, 용서가 없는 비판, 정죄를 위한 비판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상반되게 말씀하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있는 듯 보이는 것 같지만 그 의미를 헤아려 본다면 결코 상반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란 것을 생각한다면 성경을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경우 지난주 말씀과 상반되게 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할 본문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 대한 칼빈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면서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주석에 보면 오늘 본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리고 이들을 통해 복음의 모든 교사들에게 하늘의 지혜인 이 보화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국한 시킬 것이요, 자격 없고 속된 하나님 멸시자들에게 팔아 넘기지 말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 10장이나 이후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난 뒤 승천하시기에 앞서(28) 열 두 사도들에게 명하시는 바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방금 확인한 칼빈의 주석 내용만 보자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이런 내용과 함께 칼빈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복음의 종들과 복음을 가르치도록 부름 받은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와 돼지를 구별할 수 없으므로 구원의 복음을 일괄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 제시하는 것만이 그들의 임무다. 비록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구부러져 있고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지만 이들이 모두 버려진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의 도리가 아니다.” 그러면서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개와 돼지라고 부르는 자들은 어떤 불결한 자들이거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거나 참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모욕하는 가운데 그들의 병세가 치료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그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개와 돼지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어떤 자들인가? “하나님에 대한 외람된 모략으로 전염되어 도저히 구제 불가능한 자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하늘의 지혜인 이 보화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국한 시킬 것으로 말했다고 해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전해져야 한다, 혹은 복음의 가르침을 유순하고 말 잘 듣는 자들에게만 국한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복음이 증거 될 때 그것을 악랄하게 거절하는 자들, 예를 들어 바울이 디도서 3 10절과 11에서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는 말씀에 속하는 사람들, 달리 말하면 그들 스스로가 말씀의 거울 앞에서 정죄 받아 버림받은 자로서 나타나는 자들을 개와 돼지로서 비유한 자들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칼빈은 그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의 치료책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개와 돼지에 속하는 자는 누구인가? 칼빈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에서 인간 본성의 타락, 값없는 칭의, 영원한 예정 등의 가르침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쾌락을 추구한다. 이런 자들은 마땅히 돼지로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가장 값진 천상의 교리를 거부하는 자들, 그들에 대하여 개와 돼지로 해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오늘 본문을 대할 때 주의해야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본문에 대하여 어떤 이유에서든지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니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복음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그렇게 해석한다든지, 아니면 복음을 들을만한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든지 해서 대상에 있어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을 매우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가지 이르러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에 와서야 비로소 증거 된 말씀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이미 예언된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나라 가운데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았지, 그들만 구원을 받게 될 그런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유대로부터 시작해서 땅 끝까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수가 차기까지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으로 있습니다.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한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그런 원수 중에서도 하나님의 권속이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요, 성도와는 한 지체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 성도는 진리의 내용을 전해주어야만 합니다. 디모데후서 4 2에서는 이렇게도 말씀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있어 대상을 제한되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주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와 돼지로 불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해석을 받는다고 할 때 천상의 교리를 거부하는 자들, 예를 들어 인간 본성의 타락을 거부한다든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거부한다든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과 같은 교리를 거부하는 자들, 그들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 빌립보서 3으로 가시겠습니다. 2절과 3을 보시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여기 보면 2절에서 개들을 삼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개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같은 2절에 보면 개들과 동급으로 행악하는 자, 그리고 몸을 상해하는 일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전에 빌립보서 설교를 통해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몸을 상해하는 일로 번역하고 있지만,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손할례당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하자면 katatomhv(카타토메), 즉 잘라내기란 뜻인데, 박윤선 주석에 의하면 직역으로 훼상당’(毁傷黨)이라고 합니다. 몸을 상하는 할례를 자랑하는 당파! 쉽게 말하자면 할례 받는 것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 그들을 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자들을 이렇게까지 부르고 있는가? 저들은 할례를 받아야지만 진정한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면, 저들은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할례가 있어야 한다. 특히 바울이 저들에 대하여 주의를 요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가르침이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저들은 오늘날 목사와 같은 가르치는 직분을 받은 자들로서 참된 교리, 천상의 교리가 아닌 거짓된 교리, 지상의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각성은 구원의 교리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를 굉장히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에 그들과는 교제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개들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그들에 대하여 삼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 18절과 19에서는 그들에 대하여 어떻게까지 말하느냐?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물론 거짓된 교리를 전한다고 해서 참된 교리로 돌아오는 자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긴 몰라도 오늘날 목회자들 가운데서는 무지로 말미암아 거짓된 교리를 전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지로 말미암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으냐? 그런 뜻은 결코 아닙니다. 무지로 행하는 것도 분명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무지로 말미암아 행했지만 그것도 죄라는 것입니다. 다만 고의성을 가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냐? 그들의 교리가 진리인 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것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자들이며,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라고 분명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좀 유순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끝까지 그것을 고집한다면, 참된 교리를 거부하고 끝까지 거짓된 교리를 붙잡고 있다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도 보시겠습니다. 1을 보시면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여기 보면 거짓 선지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말씀 사역자들, 그것도 거짓된 교리로서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런 자들이 과거에 일어났었다는 것이고, 지금도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느냐? 멸망하게 할 이단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로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의 경우 거기에 빠진 자들에 대한 표현이지만 결국 거짓 선지자들, 거짓 선생들 역시 이런 표현의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절과 3도 보시면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어떤 면에서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거짓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러한 가르침을 따른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는다고까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보면 실제로 교회 안에 그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 경험은 아니지만 어느 목사님의 경우 예전 부교역자로 있을 때 그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어떤 말까지 들었느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설교 좀 그만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영광을 말해야 합니까? 아니면 무엇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 그리고 중생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어떻게 인간에 대하여 좋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인간을 하나님의 역사로서 구원하시고 또한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좀 더 정확하게 하나님 홀로 그 모든 일을 이끌어 가시는 주체로 계신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 입에서 하나님의 영광 좀 그만 말해라!”고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후서 2장에서 저들이 거짓 교리를 전하는 이유가 뭔가 했을 때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득을 삼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탐심은 당연히 세상적인 탐심이고, 그런 탐심 때문에 지어낸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위해 현혹시키는가? 자기 이득을 위해서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도 어떤 말이 있었느냐? 그들의 신은 배라고 표현이 있었습니다. 자기 배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거짓 선지자들, 거짓 선생들은 누구를 위해서 그러한 가르침을 가르치느냐?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하여 12절 이하 14절에서는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고 말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멸망 가운데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14절 마지막에 가서 저주의 자식이라는 표현까지 하게 되는데, 이런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뭐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자가 된 것처럼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처럼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베드로후서 2 21절과 22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오늘 본문에 나오는 개와 돼지라는 표현이 여기서도 나오고 있는데, 그들은 어떤 자들인가? 참된 교리를 받았지만 그것을 저버린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이라 하더라도 무지 때문에 그러한 길을 걷는 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무지한 자들도 있지만, 참된 교리를 접한 자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의 도를 버린 자들은 무엇과 같은가? 개 혹은 돼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말씀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 했는데 복음을 받지 않으면 개와 돼지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가망성도 없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참된 교리가 들려지지만 고의성을 가지고 그것을 대적하는 자들, 혹은 무지로서 끝까지 거짓된 교리를 고수하는 자들, 바로 그들에게 가장 거룩한 것, 아니 절대적인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가장 귀한 천상의 교리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개와 돼지는 그것을 거룩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또한 가치 있게 여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을 주면 존중히 여겨야 되는데, 그리고 귀한 것을 주면 가치 있게 여겨야 되는데 개와 돼지는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개와 돼지가 거룩하고 귀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발로 밟듯 그렇게 밟을 뿐입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은 어디까지를 말씀하시느냐?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에서 돌아서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즉 진리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완전히 돌아올 수 없다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안에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부르시기 때문에 혹 이단에 속해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을 가르치는 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택자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진리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빠졌다고 해서 그들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때문에 빌립보서나 베드로후서의 내용 속에서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다, 그들은 저주의 자식이라고 할 때 너무 성급하게 지금 모든 이단의 가르침 아래 있는 자들은 지옥 백성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무엇인가? 거짓 복음과 거짓된 교리에서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다면 멸망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지금 바울이나 베드로가 계시된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대상은 교회입니다. 유형교회로서 그 안에 알곡뿐만 아니라 가라지도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런 이단적인 가르침을 경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는 그러한 가르침 아래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혹 그러한 가르침 아래 들어간다면 너희도 멸망과 저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말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무지나 혹은 고의적으로 대적하는 자들, 진리를 존중하지도 않고 또 귀하다고 여기지 않는 자들, 오히려 진리 앞에서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저들로 하여금 구원의 문을 완전히 닫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무지함과 완악함을 드러내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훼방 받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서 디도서 3 10절과 11 말씀을 언급했는데, 다시금 말씀드리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대하여 복음을 전할 때 받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좀 과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개와 돼지로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만약 그러한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일 앞에서 차분하게, 그리고 긍휼의 마음으로, 또 매우 지혜롭게 그리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내용을 접하면서도 진리가 아닌 거짓된 교리를 내세우며, 그것이 옳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이미 그들의 교리 자체가 진리를 훼방하는 것으로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거룩한 것, 진주를 주는 것은 오히려 주는 자 쪽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때문에 디도서 말씀처럼 한두 번 훈계할 수는 있으나 멀리해야 하는 것이 거짓 교리 앞에서 교회와 성도의 자세여야 합니다.

 

그럼 이런 전체적인 의미 가운데 교회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당연히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거룩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한 진주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칼빈의 해석대로 하자면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인정해야 하고, 또 그런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나아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예정의 내용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한 마디로 천상의 교리를 갖추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만 성도를 먹이고 입히는 것,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보면 이런 부분에 있어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곳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가르치며,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은혜와 더불어 인간의 공로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며,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부류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자들에 대하여 분별하고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가톨릭이나 감리교와 같은 곳은 이미 외적으로 나타나 있는 교리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분별하기 쉬울 수 있지만, 소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정신이 없는 교회들도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주의하고 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인정한다고 말하며, 인간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면서도, 나아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예정의 내용을 받는다고 외적으로는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러한 내용과 상관없이 가르치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매우 주의를 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개혁교회를 지향한다고 할 때 두 가지를 염두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개혁교회는 이미개혁된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우리가 신앙고백서들에 대한 존중이 있는가? 그것들은 다 성경해석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신앙고백서를 존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주의 역사 안에서 성경을 통해 정당하게 해석한 결과물들만을 존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교회정치, 예배모범, 그리고 벨직 신앙고백서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도르트 신조와 같은 내용들이 그것입니다. 그런 내용들은 이단 혹은 어떤 문제들이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의 대표로서 모인 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씨름하여 내 놓은 결과물들인데, 거기에는 성경의 정신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거절하고 있고 또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백해 놓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미 개혁된 내용을 받는 것이 개혁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고백서와 같은 것들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성경해석의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만큼 말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때로는 점과 흠이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경 해석의 결과물 속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주 우리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0장 유효적인 부르심에 관한 부분을 고백하고서 오후 시간에 3항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주의를 해야 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일단 3항의 내용을 읽어드리면, “택함을 받은 어린아이들은 영아 때에 죽는다 해도, 자기가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에 따라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해서(18:15,16, 2:38,39, 3:3,5, 요일5:12, 8: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되고 구원함을 받습니다(3:8). 말씀의 사역을 통한 외적인 소명을 받을 수 없는 다른 모든 택함받은 사람들도 이와 같습니다(요일5:12, 4:12).”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의 사역을 통한 외적인 소명을 받을 수 없는 다른 모든 택함 받은 사람들도 이와 같다고 할 때 성인의 경우도 말씀 사역 없이 구원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를 생각할 수 있는데, 개혁교회가 분명 개혁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해 나가야 한다는 것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고백서들은 최상의 내용이 아닙니다. 성경 해석의 산물이지만 항상 최상의 해석을 해 놓고 있는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개혁된 내용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혹 부패의 요소가 들어온 것은 아닌가 살펴야 하고, 또 교회 역사 안에서 실수하거나 한 것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실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분에 있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야 할 방향입니다. 진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 오히려 진리를 진리답게 세워 나가는 것!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고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 부분은 정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정리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자유주의자들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또한 과학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합리성과 과학성으로 성경의 많은 부분 오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단편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유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나온 이들이 누구냐? 근본주의자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이런 자유주의에 대항해서 성경의 사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변증들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자들이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근본주의자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변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근본주의자들의 변증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사수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연약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오류의 내용에 삼켜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유주의자들에 대하여 변증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수고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변증할 때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해야 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고 할 때 근본주의자들은 그냥 맞다고만 대답했지만, 맞다고 대답한 그 자리가 이미 진리의 수준을 굉장히 낮은 내용으로서 대답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자유주의자들과 변론을 하면서 그들이 답변한 것이 마치 성경이 말하는 핵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함으로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높이와 깊이, 넓이만큼 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여름이 되면 모기장을 치는 경우가 있는데, 모기장을 치는 이유는 모기장 안에 모기가 못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근본주의자들이 대응한 방식은 뭐냐? 모기장을 쳤는데 모기장 안에 모기를 둔 채 모기장을 치는 대응이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가 진리를 내놓는다고 할 때 주께서 말씀하신만큼의 높이, 주께서 말씀하신만큼의 깊이, 주께서 말씀하신만큼의 넓이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기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믿을 수 없어!”, “예수님의 부활도 믿을 수 없어!”라고 한다고 해서, “아니야! 그것은 사실이야!” 이렇게만 답변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마치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핵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면 진리의 수준이 굉장히 낮아지는 것이요, 얕아지는 것이요, 좁아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때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부활 너무나도 당연할 뿐만 아니라, 그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의 인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신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성자로부터 삼위일체론까지 끌어 올려서 소개를 해 줘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 우리 삶의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가정 문제로 인하여 부부 세미나, 부모와 자녀 세미나, 결혼을 앞둔 청년들의 경우 결혼 특강 이런 것을 많이 합니다. 물론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만큼 말한다면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과연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만큼 말하고 있는가? 아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말하고 있는 것을 성경으로 포장하여 말하고 있는가? 정 목사님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도 삼위일체론을 가르쳐야 하고, 그때도 예정론을 가르쳐야 하고, 그때도 구원의 서정, 신구약의 통일성, 은혜언약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가? 왜 가정의 문제가 있는가? 왜 사회적인 갈등이 있는가? 우리는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이라고만 단정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제하고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 지식 없이는 인간의 어떤 문제도 실제로는 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방향은 거룩한 것, 진주, 즉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을 가지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그런 지식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루터주의의 핵심 교리는 이신칭의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이신칭의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 즉 예정론까지 끌고 올라갔다는 것이 바빙크의 진단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가 거룩한 것을 갖춘다고 할 때, 진주와 같은 귀한 것을 갖춘다고 할 때 그 방향은 바로 이런 방향이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말하고 있는 만큼의 높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말하고 있는 만큼의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말하고 있는 만큼의 넓이, 그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내용이요, 성도가 가지고 있어야 할 내용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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