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 Scriptura Tota Scriptura
창세기 1장 1절
사도신경 - 천지를 만드신(창조)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신경의 내용 중 ‘전능하사’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무엇인가? 말 자체로는 못하실 일이 전혀 없으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능력적인 면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되고, 그 능력을 그분의 의지에 따라 행하신다는 것까지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만 그 능력을 행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비교적인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은 우상과는 분명 다른 분이십니다. 우상은 무엇입니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피조물들을 우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우상에게 지극정성만 다하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우상이 대신 들어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극정성을 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들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들어주시지 않으며, 혹 들어주시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이 아니면 진노함으로 들어주실 뿐입니다. 즉 그것이 올무가 되도록 하는 형태로 들어주실 뿐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볼 내용은 ‘천지를 만드신’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는다고 고백할 때 전능하다는 말을 좀 더 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천지를 만드신’이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만들었다는 이 내용은 소위 창조와만 관련해서 이해할 수 없고, 창조와 더불어 섭리까지도 함께 이해해야 할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더불어 창조한 것이 유지되도록 섭리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창조 부분에 대해서만 살피겠는데, 우선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듯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2절 이하에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을 다 읽어보지는 않겠지만 창조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몇 가지를 먼저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절만 보더라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즉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 만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 위에 있는 것들, 그리고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할 때는 그런 뜻을 담고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할 때 이것으로 다 해석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 또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두 가지를 염두 해 두어야 하는데, 하나는 인간의 몸을 포함하여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적이며 보이는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창1:3-27). 그러나 보이는 것들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창조하셨는데, 여기에는 천사들(시148:2,5) 그리고 인간의 영혼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만물이라고 할 때는 ‘육적이며 보이는 것’들 뿐만 아니라,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는 하나님의 의해 창조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창조 속에 죄까지 포함해서는 안 됩니다. 죄가 창조의 결과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시금 언급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를 통해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시는데, 거기에 죄가 창조될 수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마귀 혹은 사단이라고 말하는 존재는 무엇인가? 성경은 마귀와 사단의 존재를 말하지 않는가? 물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창조될 때부터 지금의 마귀 혹은 사단과 같은 자로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맨 처음 그들이 창조될 때는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 천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들도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천사들 가운데 일부가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타락한 천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서 1장 6절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6일 창조 때는 타락하지 않았지만 창조 이후 어떤 시점에서 타락하게 되고,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일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란 존재는 오늘날 헐리웃 영화와 같은 곳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처럼 있는 겁니다. 그러나 대적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대적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하지만 대등한 모습으로 대적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이것은 욥기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되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 보이는 것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만드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롬4:17).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의 창조가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물은 결코 우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과학에서 말하는 빅뱅이론도 아닙니다. 빅뱅이론의 경우 무가 아니라 처음부터 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 가운데 있게 만드신 역사임을 말합니다. 당연히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근원은 누구신가? 하나님이십니다.
한 예로 나란 존재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깝게는 부모 때문에 나란 존재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부모로 올라가고, 또 그 부모의 부모로 올라가다보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맨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들도 피조물입니다.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창조하신 분이 누구시냐? 없었던 적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특별히 이성을 가진 피조물은 자기를 창조하신 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경배의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그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덕을 잊고 배반하는 것. 타락한 인간의 대표적인 죄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자를 잊어버리는 것. 본래 우리는 무였습니다. 어느 정도 있다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부모의 만남 속에서 태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인 것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
세 번째로 하나님은 만물을 그의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성경인 개역한글에서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나 ‘가라사대’나 똑같은데,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씀 없이는 지은 바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에 지음을 받은 사람이 흙이란 재료를 가지고 만들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으로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새 창조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그 일을 행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 이것을 거듭난다 혹은 중생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거듭나는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벧전1:23). 창조의 역사 속에서 말씀으로 지으신 것이 타락으로 인하여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 자리로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참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말씀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가장 가치 있을 때는 언제냐? 여러분의 실력이 발휘될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능력이 드러날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지식의 뛰어남이 드러날 때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만 우리의 참된 가치가 증명된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렇게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말씀하신 분이 그 말씀하신 바를 친히 이루시는 분으로 있습니다. 우리에게 순종을 이끌어 내시는 분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창조와 관련해 확인할 수 있는 네 번째 사실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시되, ‘6일 동안’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만물의 창조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혼란스럽게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매우 질서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보면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마치 배경을 만드시듯 그렇게 만드시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그 배경에 합당한 것을 채우시듯 그렇게 창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첫째 날 빛이 있으라 하시면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십니다. 재미난 것은 빛을 주관하게 하는 해와 밤을 주관하게 하는 달을 언제 만드시느냐? 넷째 날 만드십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역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둘째 날에는 궁창을 만드십니다. 그래서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궁창을 채우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다섯째 날에 하십니다. 하늘의 궁창에 새를 날게 하시고, 바다에 살 수 있는 고기들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셋째 날 물을 한 곳에 모으시면서 땅을 드러내십니다. 거기에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종 열매 맺는 나무를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 거기에서 살 수 있는 짐승과 맨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십니다. 매우 질서 있게 창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창조의 질서를 통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시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십계명 중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부모만을 공경하라는 의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도리와 질서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 대한 존중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럼 아랫사람만 존중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윗사람 역시 아랫사람을 존중해야 하고, 무엇보다 윗사람은 윗사람다운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이것이 질서입니다. 그런데 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으로 이런 내용을 담는가? 누구든지 부모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라는 대표적인 말을 쓴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말, 질서에 있어 가장 친숙한 말을 사용한 것 뿐입니다. 부모라고 썼기 때문에 부모에게만 제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도리와 질서가 5계명을 통해 가르쳐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이 형이나 오빠, 아니면 누나나 언니를 힘으로 이기려고 하거나 혹은 무시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질서에 합당하지 않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윗사람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닙니다. 윗사람은 윗사람으로서의 자질을 갖춰야 합니다. 존중을 받으려면 존중받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쉬운 예로 부모로서 자녀들이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순종한답시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한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당시 교회의 권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는 걸 금했을 때 어떻게 말했느냐?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던 겁니다(행5:29).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하여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있다고 할 때 그들의 그런 부분까지 순종해야 할 의무는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를 통해서도 그 질서를 드러내셨고, 계명을 통해서도 그 질서를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질서에 대하여 지키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마지막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처음 창조될 때의 세계는 아무런 흠도 결함도 없이 창조되었습니다. 죄가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매우 아름답게 지어졌습니다. 따라서 죄는 결코 하나님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천사가 타락한 것도 자기 스스로고, 인간이 타락한 것도 자기 스스로입니다. 인간의 경우 사단의 유혹이 있긴 했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자기 스스로입니다. 매우 선하게 창조되었고, 그래서 어떤 흠도 없었지만 그 스스로가 선택함으로 인해 결국 타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창조의 대략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되, 무로부터 그의 권능의 말씀으로 6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만물이 어땠느냐?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즉 매우 선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창조와 관련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 보면 이렇게 신앙의 고백으로 기록해 놓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9문 :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답 : 창조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무(無)로부터 모든 것을 그의 권능의 말씀으로 6일 동안 지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매우 선했습니다.
그러나 창조에 있어서 절정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마셔야 합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되 그 만물을 누구를 위해 창조하셨는가? 사람을 위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마치 배경을 만드시는 것처럼, 그리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그 배경에 합당한 것을 채우시는 것처럼 창조하셨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앞서 만들어진 것들을 다 누구를 위한 것으로 있느냐? 뒤에 만들어진 것을 위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셋째 날 땅에 풀과 씨 맺는 채소 그리고 열매 등을 만드셨는데, 그것을 누가 먹느냐? 땅에 있는 짐승, 그리고 사람입니다.
실제로 시편 104편에 보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8절 한절만 읽어드리면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여러분, 산은 언제 만들어졌습니까? 물을 한 곳에 모으셔서 뭍을 드러낼 때이기 때문에 셋째 날입니다. 그럼 산양은 언제 만드셨습니까? 여섯째 날입니다. 그러니까 셋째 날의 것은 누굴 위해 존재하느냐 하면 여섯째 날을 위해 존재합니다. 바위가 너구리의 피난처인 것도 만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가 배경이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가 배경을 채우는 것이라면 배경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배경을 채우는 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냐? 모든 것이 바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만한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하늘의 새, 바다의 고기, 그리고 땅 위의 짐승은 다 누굴 위해 존재하느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자요, 걸작품 중의 걸작품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보면 인간도 다른 피조물과 동일하게 말씀으로 지으시지만 그 독특성에 있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느냐 하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세기 1장 26절 이하 28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에 우리의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 왜 우리가 으뜸인 존재인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물질적이거나 우리의 외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며, 육신을 가지고 계시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하여 해석을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서 지식과 의, 거룩과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인생의 기초와 틀이 되도록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식으로서 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의로 다스리고, 거룩함으로 다스리는 존재가 인간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대표인 아담은 그것을 파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질서로 보자면 인간이 모든 만물의 으뜸으로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려야 했지만, 오직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 한분에게만큼은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순종해야 할 그가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순종해야 할 대상에게 불순종하니까 다른 모든 피조물들도 인간에게 불순종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질서가 파괴되고, 그런 측면에서 자연 질서가 파괴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8절에 보시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거퀴를 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복종해야 할 땅이 그걸 거부하더란 것입니다. 당연히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자녀가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가? 본래는 순종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순종이 아니라 불순종을 하는가?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누구시냐? 예수님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서 다시금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회복하도록 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가 다시금 그 형상을 회복하는 것, 이것을 위해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뭐라고 말하느냐? 앞서도 언급했지만 ‘새 창조’인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보이는 것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으며, 그분의 말씀으로 6일 동안 매우 질서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와 그 모든 것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구절 이후에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이 있는데,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가? 바로 이런 죄 때문임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우리의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진실로 믿고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그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어디 있는가? 인간 이후에 만들어진 존재는 없지만, 다시 말해 인간이 가장 마지막에 지음 받은 존재이지만, 지음 받은 자들은 자신을 지은 자가 있다는 것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이유에서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도 말씀하시는 겁니다. 특별히 타락 이후 우리가 구속을 받았다면 더더욱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만 하더라도 창조의 목적이 그의 영광이듯, 구속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우리는 자신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