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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자료실

29기 백가온 53차 여름하나 자료조사

작성자29기 백가온|작성시간26.06.09|조회수49 목록 댓글 0


1-2-2. 개요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사도섬)에 위치한 광산으로 조선 시대 즈음인 에도 시대(1601년)에 금맥이 발견되어 한때 일본 최대의 금·은 생산지로 유명했다. 1989년에 자원 고갈로 완전히 조업이 중단되어 현재는 미쓰비시의 계열사에 의해 관광지로 운영 중이다. [1][2][3]
원래는 금을 캐던 곳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군사 물자(금이 아닌 구리, 아연, 납 등 군사 물자에 필요한 여러 자원들)를 공급하는 핵심 광산으로 기능이 바뀌었다. [1]
그 과정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약 1,500명 이상의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동원 되었다. 이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지하 수백 미터 아래의 위험한 환경 속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혹독한 통제와 임금 차별를 받고, 진폐증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사도광산에 강제 징용되었던 조선인 광부들은 파업, 탈출 시도 등 수차례의 저항했다.[2][3]

1-2-2. 갈등원인
1) 역사 축소 시도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때, 대상 기간을 에도 시대(16~19세기 중반)로만 한정하여 신청했다. 이는 20세기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어났던 조선인 강제노동의 아픈 역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숨기려 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갈등의 신호탄이 되었다. [1]
2024년 7월,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를 거쳐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되었다. 일본은 약속에 따라 현지 박물관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 공간을 마련했으나, 전시 내용에 '강제 동원'이나 '강제 노동'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하나도 넣지 않고 단순히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라는 식으로만 표현하여 역사적 사실을 흐려 논란이 되었다. [3][4]
2) 과거 약속 불이행에 대한 불신 ( 예) 군함도 )
이미 일본은 2015년에 '군함도(하시마 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에도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모든 역사를 알리겠다"고 세계 사회에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가 사도광산에서도 반복되면서 양국 시민단체와 정부 간의 깊은 외교적·역사적 갈등 원인이 되었다[5]

*참고
하시마 조선인 강제동원 사건은 일본이 나가사키현 하시마 탄광에 조선인 약 800 명을 강제 동원한 사건이다. 일본은 2015년 7월, 하시마 섬을 유네스코 세계산업유산에 등재시키면서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내용을 반영할 것을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6]


소감 : 사도광산에 대해 이름만 들어보고 무슨 일이일어났는지 제대로 몰랐는데, 자료조사를 하면서 참혹한 일이 일어난 것을 깨달아서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하고 앞으로 참혹한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해결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역사적 금 생산지에서 오욕의 ‘강제동원’ 현장 된 사도광산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51050.html
[2]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https://share.google/2uYAO0xKooY4Tk0Bv
[3]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81606
[4]사도광산은 조선인 강제노역현장…전시물엔 '강제노동' 표현없어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41120104800073
[5]‘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유네스코 어떤 판단 내릴까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29475.html
[6]하시마 조선인 강제동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share.google/FWryAiSYq0vo2nI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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